산골분교분쟁기
- 작성일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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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분교 분쟁기
강원도 산골 오지 분교. 초록빛 예쁜 산골짜기 아담한 교정에서 메아리가 울려 나왔다. 메아리를 따라가니 창문을 활짝 연 교실에서 구구단 수업 중이었다. 달랑 세 명인 학생 중에 두 녀석은 솔바람 베고 졸린 두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있고 한 녀석만 우렁차게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다. 창밖의 매미도 따라했다.
‘이 삼(2×3)은 맴맴, 이 사(2×4)도 맴맴….’
그 시각 운동장 한 모퉁이 철봉대 하나가 덩그마니 놓여있는 운동장 옆 느티나무 밑 잔디밭에는 커피를 홀짝이는 깍두기 둘 옆에 야시시한 차림의 시골다방 레지가 스쿠터 옆에 서있었다. 깍두기 하나가 다 마신 커피 잔을 건네며 짓궂은 표정을 건넸다. “야, 매일 시키는 커핀데 디스카운트도 좀 없냐?” 미스 강이라 불리는 레지가 코맹맹이 소리를 해댔다.
“호호호 커피 값 몇 푼 된다고…대신 티켓 끊으면 싸게 해줄게 오빠~앙!”
“젠장, 시간 없는 건 뻔히 알면서….”
깍두기의 투덜거림에 미소로 화답하며 커피 보따리를 챙긴 레지가 가랑이를 쩍 벌리며 스쿠터에 올라앉아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옆의 깍두기가 자신의 바지 앞섶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요새 앞이 무거워 죽갔는디 자가 사람 잡네이….”
그 모습을 본 깍두기가 자신의 앞섶도 내려다 봤다.
“크크큭….” 이들의 웃음 뒤로 매미소리가 청량하게 푸른 하늘을 갈랐다.
‘맴~맴~맴….’
수업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자 깍두기들이 다투듯 검은 승용차를 교실현관 앞으로 갖다 댔다. 가방을 메고 나오는 세 녀석은 산골아이 같지 않은 세련된 차림들이나 여전히 두 녀석의 눈꺼풀은 내려앉아 있었다.
준필과 윤선생의 배웅을 받으며 각기 자신의 차에 오른 두 녀석이 손을 흔들었다.
교문을 빠져나온 승용차가 시골길 비포장도로에 차가 튀자 뒷자리의 영중이 인상을 구겼다. 룸미러로 이 모습을 본 깍두기가 웃음으로 아부했다.
“아이구, 도련님 죄송합니다. 금방 좋은 길이 나올 거니까 편히 주무세요.”
아예 뒤로 돌아앉은 영중은 뒤따라오는 대삼의 차량을 향해 수화를 나누었다.
한낮의 영동고속도로에 서울로 향하는 승용차 두 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접어들었다. 두 녀석은 각자의 차 뒷자리에서 코 풍선을 불며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고 깍두기들은 서로 경쟁하듯 속도를 높여갔다.
환자들로 만원을 이룬 무적병원 현관에 검은 승용차가 멈춰 섰다.
로비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재빠르게 뛰쳐나간 수위가 경례를 하며 차문을 열자 휘황하게 치장한 신경질적인 표정의 여인이 거만하게 내렸다.
간호사들의 목례를 받으며 들어서는 여인.
휠체어를 굴리던 환자 하나가 여인을 쳐다보다 걸어오던 간호사와 부딪혔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간호사가 엎드려 쏟아진 물건을 주우며 고개를 들고 인사를 건넸지만 여인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원장실로 향했다.
병원장실에서 벽면에 걸린 필름을 응시하며 담당의사의 설명을 듣던 유 원장이 사납게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여인을 보자 얼굴을 찌푸렸다. 담당의사가 가볍게 목례를 하며 황급히 나갔다.
“벌써 학원 데려다 준거야?”
대삼엄마가 들은 척도 않고 자기 말만 해댔다.
“차가 막혔다고 20분이나 늦게 온 거 있지. 김 기사 꾀부리나봐.”
유원장이 다시 짜증스런 표정을 했다.
“저쪽에 박기사랑 보조를 맞추라고 내가 지시해서 그래,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오후수업이나 잘 챙겨! 여기 애들하고 보조는 맞춰나가야지, 어차피 오전은 콩 구워 먹는 거고….”
대삼엄마도 이마에 내천(川)자를 그렸다.
“이젠 애도 지쳐 가나봐, 빨리 무슨 결정이 돼야지 애 잡겠어. 남의 집 애들은 미국서 펄펄 날고 있는데 산골이 뭐야 산골이….”
“조만간 승부가 나겠지 조금만 더 고생해, 그리고 이거….”
유 원장이 서랍에서 돈 봉투를 꺼내 건네자 사납게 봉투를 낚아챈 대삼엄마가 휑하니 나갔다.
“제기랄, 검사아빠 못 만나 담임선생이 시험대신 안쳐준다고 난리 칠까 걱정이네.”
담배를 꺼내 물려던 유 원장이 병원 안임을 깨달은 듯 입맛을 다시며 도로 집어넣었다.
같은 시간 건설회사 회의실.
중역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회의장에 박기사가 들어섰다.
“학원에 모셔드리고 왔씸더.”
박 기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응, 수고했어. 그런데 저쪽 분위기는?”
강태환이 잠시 회의를 멈추고 박 기사를 쳐다봤다.
“뭐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것 같씸더.”
“하여간 신경 바짝 써야 돼, 사소한 것도 놓치지 말고.”
“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씸더. 김 기사도 구워삶아 놨구예….”
“쓸 데 없이 자만하지 말고… 집사람이나 연희동에 좀 데려다 주고 와.”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박기사가 나가자 회의장은 다시 뜨거워졌다.
한낮의 운동장에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체육시간인지 윤 선생의 구령에 맞춰 보건체조를 하는 세 녀석.
준필이만 반바지에 조끼 러닝셔츠 차림으로 그나마 제대로 팔다리를 움직일 뿐 나머지 두 녀석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라 어기적어기적 흉내만 내며 두 눈은 감고 있었다.
혀를 차며 휘슬을 불던 윤 선생이 체조가 끝나자 운동장 한 복판으로 축구공을 굴려 넣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깍두기 둘이 어느새 운동화 차림으로 달려들었다.
윤 선생이 공을 튀기며 모두에게 외쳤다.
“선생님과 영중이, 대삼이가 한편이고 준필이와 아저씨들이 한편이다. 알았지?”
윤 선생의 휘슬소리에 맞춰 3명이 한 팀이 된 축구경기가 시작됐다.
언제 졸았냐는 듯이 펄펄 나는 영중과 대삼에다 윤선생의 볼 다루는 실력이 월등해 시간이 지나자 깍두기들과 준필의 일방적인 패배로 흘러갔다.
헉헉대며 뒤를 쫓는 깍두기들을 따돌리며 영중에게 패스하는 윤 선생.
공을 잡은 영중이 달려드는 준필의 머리위로 공을 올려 대삼에게 패스하자 공을 받은 대삼이 몸을 잔뜩 웅크리며 강슛을 날려 보지만 골대를 향해 날아가는 대삼의 신발이 네트를 갈랐다.
운동장 옆 잔디밭에서 스쿠터를 세워놓고 기다리던 미스 강이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 주스 병을 들고 운동장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늘아래 잔디밭에서 둥그렇게 앉아 주스를 마시는 일곱 사람.
유난히 윤 선생에게 추파를 보내는 미스 강에게 준필이가 눈을 하얗게 흘겼다.
그 모습에 파안대소하던 깍두기 둘, 주스 잔을 내려놓자 교사 뒤로 달려갔다.
학교 뒤 개울가에 온 두 사람은 옷을 벗어 던지고 팬티차림이 됐다.
얼룩덜룩한 온몸의 그림.
서로의 문신을 노려보며 근육을 과시하던 박 기사가 미소를 띠며 동료를 불렀다.
“어이, 김 기사 일루 좀 가까이 와 봐.”
김 기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섰다.
“뭔데 그래쌌노?”
박 기사가 팬티를 열어 보여주었다.
“이거 함 보고 앞으로 문신자랑 그마해라이! 문디 같은 거 갖고….”
팬티 속을 들여다 본 김 기사가 경악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팬티 속 박 기사의 꼬추는 용 문신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뒤따라 들어간 박 기사가 물싸움을 벌이자 어느새 세 녀석도 발가벗은 채 물 속에서 맨손으로 고기를 쫓기 시작했다.
물가에서 바지를 걷고 발을 담근 채 세수만 하는 윤 선생의 발목을 송사리 한 마리가 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산골분교 앞 비포장도로에 뽀얀 먼지를 뿌리며 검은 승용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컨보이 차량을 따라 교문으로 들어서는 차량들을 안내하던 교통경찰이 먼지를 마시며 콜록댔다.
교문 앞에는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하는 난장이 서고 아낙들의 지짐 굽는 소리가 차 소리에 스며들었다.
야바위꾼들이 구경나온 촌로들의 주머닐 노리고 바람잡이들을 앞세워 박보 장기판 앞에 인파를 끌어 모으자 엿장수의 신명나는 가위소리가 맑은 하늘을 가르기 시작했다.
하교 안 운동장에는 요란한 구호와 천막이 몇 동 가지런히 마주한 위로 하기수련회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반대편 구석엔 으뜸건설의 요란한 구호와 하기휴양소 표식이, 그 옆엔 적십자를 휘날리는 무적병원의 휴양시설이 서로 위용을 자랑하듯이 치장하고 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시내다방 마담과 미스 강이 커피 잔을 들고 분주스럽게 오갔다.
한쪽에서 가마솥을 걸어 놓고 불을 지피던 아낙들이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마담과 미스 강을 보며 삐죽거렸다.
“저 꼬라지 좀 봐라! 저기 머꼬. 똥구멍은 왜 저리 흔들어 되노? 똥가루 떨어 지거로.”
“누가 아이라나. 주둥이는 쥐 잡아 먹은 것 맨치로 쳐 바르고선 생전 남자 구경 몬한 에펜네들 맹끼로 우예 저리 살살 거리노, 살살거리길….”
머리에 붙은 검댕을 뜯어내며 다른 아낙이 끼어들었다.
“얄궂제? 양조장집 아들이 병원장이 되고 병원장집 아들은 집짓는 회사사장이 되고… 우리사 모두 병원장 아들이 의사될 줄 알았는데 말이시.”
“뭐, 원래 공부도 지지리 못했다믄서 저만해도 출세핸기지.”
처음의 아낙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공부사 원래 윤선상이 알아주는 천재였는디… 아부지가 광산에서 낙반사고를 당해 들어 눕는 바람에 돈 안 드는 교대간 뭔가를 갔지… 다들 서울대는 그냥 들어간다고 했는디.”
“그렇게 공부를 잘했어야?”
“지금이사 폐광되고 동네가 다 찌그러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윤선상이 도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이었는데… 판검사는 해묵어 윤씨 집안 일어 설끼라고 다들 믿었제.”
가마솥 뒤로 얼기설기 엮은 굴뚝으로 무럭무럭 올라가던 연기가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과 뒤섞이며 멋진 그림을 연출했다.
학교 뒤 개울에는 여기저기 파라솔이 쳐있고 물놀이하는 꼬마들의 신나는 함성이 이어졌다.
개울가 비치의자에는 개기름이 뚝뚝 흐르는 차기 대권주자이자 3선을 자랑하는 우두수의원이 앉아있고 강태환, 유억민, 윤종태가 나란히 도열해있었다.
건너 편 기슭과 개울가에 진초록의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낀 검은 양복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우두수가 거만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훑어봤다.
“그러니까 윤선생!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반장도 못 뽑고 자모회장도 여태 없다는 말 아이가? 내가 정치판에 나서면서부터 우리학교 육성회장 계속 연임이고 죽을 때까지 할 낀데 올핸 왜 이런고?”
보좌관이 두 손을 비비며 머리를 조아렸다.
“의원님! 육성회장 없어지고 운영위원장으로 바뀌었다고 진즉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두수가 발끈했다.
“치워라, 육성회장이던 운영위원장이던 그게 그거지 이름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봐라!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만들어 뭐가 달라졌나? 다 할일 없는 놈들이 소일거리로 지랄하는 거지, 돈만 없앤 거 아이가?”
머쓱해진 보좌관이 뒤통수만 긁어댔다.
우두수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내뱉었다.
“껍데기가 중요한 게 아닌 기라, 내용이 좋아야지. 평판만 좋으면 뭘 해? 표가 나와야지 표가! 정치인은 표로 먹고사는 거야, 표로!”
아예 손바닥을 비벼대기 시작하는 보좌관을 보며 윤 선생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반장은 학생이 셋이다 보니 서로 하겠다고 해서 월 반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투표를 해도 각자 한 표씩 나오니 방법이 없습니다. 자모회장 문제는 제가 학부형이긴 해도 선생이다 보니 제 표 행사가 곤란 하구요. 어쨌든 가을 학기엔 어머니회나 체육진흥회도 정상화 시켜놓겠습니다. 선배님께 항상 실망만 시켜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강태환과 유억민도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너 거 셋 이는 동기들 아이가? 서로 잘 해서 이 학교 함 살려봐라. 이 학교 없어지믄 안된데이, 이곳이 내 정치적 고향이요 탯줄인기라, 누가 잘 하고 있는지 내 눈 여겨 볼 끼다.”
물러가라는 듯 비치의자를 뒤로 눕히는데 정복차림의 경찰서장과 수사과장이 헐떡 거리며 나타나 거수경례를 올렸다.
“죄송합니다, 영감님! 워낙 비밀리에 오시는 바람에 정보가 늦어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악수라도 기대하며 다가서는 서장에게 우두수가 손을 내저었다.
“아, 괜찮소. 우리들이야 서울서 경호팀들이 다 내려왔으니까 신경 쓸 것 없고 뭣하면 삼거리 교통정리나 좀 해주시오 그럼 나는 피곤해서 이만….”
눈을 감는 우두수를 보고 머쓱해진 서장과 수사과장이 뒤통수에 경례를 하며 물러났다.
“서장씩이나 해 처묵으면서 학생 수 하나 못 채우는 놈들이….”
우두수를 바라보는 윤준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10년 전 개울가.
고3인 우주수가 불량스런 교복 차림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몽둥이를 손에 든 채 엎드려 있는 중2 뺏지를 단 세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강태환 이 새끼야! 넌 병원장 집 아들이란 새끼가 그래, 친구 아부지가 죽어 가는데도… 그러고도 친구라고?”
강태환이 한손으로 궁둥이를 문지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들이사 친구지만 아부지들은 원숩니더. 그 놈의 선거가 좁은 동네를 다 갈라놔서….”
“시끄러 새끼야! 너희 병원 약 훔쳐서라도 갖다 줘, 그리고 넌 너네 술도가에서 모래미라도 매일 퍼날러… 그게 의리지 새끼들아, 손바닥만한 탄광촌에서 선거 때마다 패가 갈리니….”
엎드린 채 훌쩍이는 윤태환.
어느 정도 세월이 흐는 뒤 양복차림의 우두수와 교복차림의 윤준태가 나란히 개울가에 앉았다.
옆에는 소주병과 새우깡쪼가리가 뒹굴고 있었다.
“요번에 총학생회장 출마할끼다. 아무래도 일단은 야당으로 들어 가야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난중에 갈아타면 안 되겠나?”
“지가 뭐라… 선배님 하시는 대로 잘 되시기만…”
윤준태가 말끝을 흐렸다.
“학교는 어쩔긴데?”
“아무래도 서울대는 포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가까운 교대나….”
“내가 탄광에 총무과장으로 있는 선배한테 부탁해서 너거 아부지 보상금은 많이 받아 줬잖아? 그 선배 얘기론 진폐 환자 중에 최고로 받아줬다던데, 왜?”
“그동안 아부지 약값으로 여기저기 빌려 쓴 돈 다 갚았습니다.”
“니는 그기 큰일인기라. 아부지 죽었는데 그걸 왜 갚아! 우선 니 공부부터 하고 나중에 벌어서 갚던가 하는 거지, 있는 놈들 봐라! 가진 놈들이 얼마나 발악하노, 나랏돈이나 남의 호주머니나 눈에 띄면 삼키려고 하는데….”
“그래도 어려울 때 도와주신 분들인데 어찌 그러겠습니까, 아부지도 남들한테 원망은 듣지 말아야지요.”
“이구, 한심한 놈. 네부터 살아야지…그래 결국 엄마를 선탄부로 내몰았냐?”
혀를 차는 우두수를 보며 윤준태의 머리는 점점 땅으로 파고들었다.
학교 앞 삼거리에는 잔뜩 부운 서장과 수사과장이 삼거리에 나와 있는 교통경찰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이봐! 여기 먼지 안 나게 살수 차 동원하라고 해. 학교가 없어질지 아닐지 모르니 포장도 못하고 젠장!”
발길로 바리게이트를 걷어차는 서장 옆으로 우두수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한 고급 승용차들이 줄을 이어 들어왔다.
한밤중 우두수의 천막 안에는 미스 강과 우두수가 알몸으로 엉켜있었다.
“니가 없었으면 이놈의 휴가를 어찌 보낼 뻔 했냐?”
미스 강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뱉었다.
“몰라잉, 영감님이 빨리 서울로 데려 가잉.”
헉헉대는 미스강의 높아지는 숨소리와 함께 천막 안이 뜨거워져 갔다..
건설회사 사장실 앞 복도에는 검은 양복의 깍두기들이 도열해 있고 안에는 강태환과 두목이 마주 앉았다.
“그러니까 우리 애들을 이번 운동회에 참가시켜 병원 팀만 눌러 달라 이말 아닙니까?”
강태환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무식하게 주먹잽이 티내지 말고 오늘부터 머리들 길러. 철거반 운영하듯이 운동회 접수한다고 설치지 말고 제대로 좀 해봐, 이제 슬슬 정치판 물도 먹어야잖어?”
꾸벅 머리를 조아리는 두목에게 강태환이 돈 가방을 건넸다.
그 시간 병원장실에서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축구팀 감독과 씨름팀 감독이 유원장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유 원장이 축구팀 감독을 바라봤다.
“코빙이란 게 아냐, 그냥 연습생들 중에서 대충 공 좀 잘 다루는 애들을 의사처럼 꾸미라는 거지.”
축구팀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암만 그래도… 햇볕에 그을은 애들이라….”
유억민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났다.
“거 왜 있잖아, 선수 같지 않게 생긴 놈들만 추려서 햇볕 못 쐬게 밤에만 훈련시켜.”
가라앉은 분위기에 눌린 씨름팀 감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린 뭐 하죠? 씨름도 종목에 있습니까?”
“아니, 하지만 기마전이 있어서.”
“그럼 말이 될 튼튼한 놈들만 추려놓으면 되겠네요?”
“아니지, 기수들이 공중싸움에서 기술을 발휘해서 꺾어 뜨려야해.”
유억민이 돈 가방을 두 개 꺼내 감독들에게 건넸다.
분교 가을 운동회.
삼거리엔 교통 초소가 임시 가설되고 끝없는 승용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교문 앞엔 선글라스를 낀 사이드카가 위엄 있게 서있었다.
본부석 천막아래 우두수 의원과 여당 중진들이 자리하고 교육감 교육장 등 내빈들로 꽉 차 강태환과 유억민은 본교 교장과 천막 밖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품과 선물더미 앞에 운동복을 입고 나란히 서있는 세 녀석 앞에 선 윤선생의 하얀 운동복이 희다 못해 새파랗게 빛났다.
교단에선 내빈들의 우 의원을 향한 아부성 찬사가 끊일 줄 모르고 이어졌다.
유지 한 명이 연신 우두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밤이 길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고 이 분교를 살리려는 어르신의 뜻은 이제 서서히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새해 예산이 확정되면 제일 먼저 폐광진흥지역으로 지정된 우리 동네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의원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모두 박수를 치자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반쯤 일어섰다 앉은 우두수의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이 보였다.
지루한 연설이 이어지자 단상 밑의 세 녀석은 연신 하품을 해댔다.
윤선생의 총소리에 맞춰 세 녀석의 100M 달리기가 시작되자 병원 팀과 건설회사 팀의 응원전이 치열해졌다.
이에 질세라 미스 강이 치마를 걷어 올려 쥐고 따라 뛰어가며 악을 써 준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1위로 골인한 준필이 자신을 안으려는 미스 강을 피해 빠져나가자 두 손이 허공을 가르고 장내엔 폭소가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자 건설회사와 병원 팀의 운동회로 바뀐 한 구석에선 속출한 부상자 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운동장 복판에선 기마전이고 계주고 간에 양 팀의 사활을 건 혈투가 계속됐다.
본부석의 우두수 앞엔 차례로 머리를 조아리는 추종자들이 도열하고 119구급차는 계속 경광등을 울리며 질주했다.
혈투가 끝나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아래 잔디밭에선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한 잔씩 걸친 참석자들은 모두 피아 구분 없이 흥겨워했다.
세 학생을 위한 운동회가 아니었던 만큼 내빈들을 위한 오락회가 되어버리고 세 녀석은 시무룩하게 한쪽 구석에서 휴대용오락기를 두드려댔다.
신명나게 마이크를 잡던 미스 강이 윤 선생을 운동장 복판으로 끌어내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진하게 몸을 부딪쳐 오는 미스 강 땜에 난감해하는 윤 선생.
우두수가 그 모습을 보고 너털웃음을 날렸다.
소란이 사그라진 숙직실에서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뭔가를 기록하던 윤 선생이 거칠게 문을 밀치고 비틀거리며 들어서는 미스 강을 보자 황당해했다.
미스 강이 혀가 말린 소리로 윤 선생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야! 니가 그렇게 대단하냐? 훈장이 무슨 벼슬이냐? 내 평생 선생이란 작자들은 지긋지긋했었는데 너도 그러냐?”
윤준태가 깜짝 놀라 볼펜을 떨어뜨렸다.
“아니 이 시간에 웬일이야, 여길 어떻게?”
미스 강이 윗도리를 목 위로 벗으며 눈을 흘겼다.
“왜? 내가 못 올 때 왔냐? 씨팔, 이래도 나 좋다는 놈들 줄 섰다. 하지만 티켓도 가려 받는 몸이야 이거 왜 이래.”
당황한 윤 선생이 윗도리를 입히려하며 사정했다.
“아, 아 알았어… 일단 옷부터 바로 입고….”
이때 문짝을 “쾅! 쾅! 쾅! 쾅!”부셔져라 두들겨대는 소리가 들리며 마담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빨리 문 열어 이것아! 여기 온 거 다 알어, 얼른 문 못 열어.”
윤 선생이 허겁지겁 문부터 열자 마담이 씩씩거리며 들어서 미스 강을 노려봤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윤선생 아들 오늘 서울 갔다두만 그새 여기 쫓아와서 꼬랑지 흔들고 있네.”
“언니두 참, 꼬랑진 무슨 꼬랑지….”
그러다 갑자기 화가 난 듯 마담을 노려보며 미스 강이 따지고 들었다.
“근데 여기까지 언니가 웬일이유? 분명히 난 오늘 티켓 안 받는다고 못 박았는데!”
마담이 노려봤다.
“티켓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언능 옷 추스르고 기어나가 이것아! 어르신이 찾는다고 서장님이 직접 모시러 와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구먼….”
“무슨 놈의 팔자가 연애 한번 맘대로 못해 씨팔….”
미스 강이 투덜대며 숙직실을 나섰다.
운동장 한복판에서 경광등을 반짝이는 지프 앞에서 기다리던 서장이 미스 강을 차에 밀어 넣었다.
굉음과 함께 지프가 출발했다.
숙직실에서는 아예 알몸으로 윤 선생을 안으려는 마담과 자꾸 빠져나가려는 윤 선생의 몸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괜찮은 여자야, 이거 왜 이래!”
윤 선생 계속 두 손을 저으며 마담의 공세를 막아냈다.
“젠장 도둑 피하려다 강도 만났네!”
곡선으로 된 급커브 길을 달리는 지프 안에서는 서장이 미스 강을 붙들고 통사정을 해댔다.
“긴말 안 해도 잘 알겠제?”
미스 강이 메롱 하며 혀를 내밀었다.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우시다고 아뢸 것!”
서장이 거수경례를 하며 싱글거렸다.
“예~써얼!”
모텔 방.
밝게 켜진 형광등 불 아래 침대위에 남녀가 뒤엉켜 있었다.
불룩 나온 배를 씩씩거리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의원의 몸 밑에서 일부러 교성을 질러대던 미스 강이 우의원의 얼굴에 윤선생의 얼굴이 겹치자 으스러져라 등을 끌어안았다.
우 의원이 씨근거리며 만족한 미소를 흘렸다.
“좋은감? 나도 좋은디!”
이윽고 만족한 듯 미스 강의 몸에서 내려온 우 의원이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자 잽싸게 수건으로 몸을 가린 미스 강이 욕실로 뛰어들었다.
욕조에 물을 받으며 변기에 걸터앉은 미스 강이 자신의 사타구니를 쓸어 올렸다.
“망할 놈의 영감탱이! 온 허벅지에 풀칠만 해대고….”
못다 오른 고지를 위해 미스 강은 윤 선생을 떠올리며 자신의 손가락으로 격렬하게 문질러댔다.
알몸으로 침대에 엎드려 자는 미스 강의 엉덩이를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만지던 우의원이 철썩 내리쳤다.
부스스 눈을 뜨는 미스 강.
우 의원이 양복상의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며 경대위에 올려놓았다.
“머리나 하라구….”
미스 강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해댔다.
“벌써 가시게요? 어흠.”
기지개를 켜는 미스 강의 출렁거리는 가슴을 보며 우 의원이 침을 꼴깍 삼키며 입맛을 쩝 다셨다.
“아침 회의가 있어서….”
침대로 다가와 미스강의 볼에 뽀뽀를 하고 난 우의원이 큰기침을 하며 방을 나 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올린 미스 강은 다시 꿈속을 헤맸다.
한낮의 다방 안에선 퉁퉁 부은 얼굴의 마담이 담배를 붙여 물었다.
때 맞춰 빠끔히 들어서는 미스 강을 향해 마담이 쏘아붙였다.
“지금이 몇 시냐? 망할 년! 이제사 삐죽삐죽 기어들어 오는 꼴하고….”
미스 강이 달려들어 팔짱을 꼈다.
“언~니~이! 미안해, 영감탱이가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꼴깍 샜지 뭐유… 그나저나 머리 값 받은 걸루 우리 뭐 맛있는 거나….”
봉투를 열어 보던 미스 강이 경악하며 얼어붙었다.
“어~억!”
“이년이 왜이래….”
봉투를 뺏어본 마담이 같이 경악했다.
“어~억!”
둘이서 동그라미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다섯……아~홉!”
10억 원짜리 자기앞수표였다.
마지막 넘어가기가 아쉬운 듯 태양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경찰서장실에 검은 양복차림의 건장한 사내 둘이 미스 강을 에워싸고 서있었다.
서장의 책상에 한쪽 발을 올려놓은 또 다른 사내가 긴장된 표정으로 미스 강을 바라봤다.
“이제 그만 하자고…… 영감님이 당비 납부할 봉투하고 바뀌었다고 하시잖아!”
사내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백만 원이니까 얼른 받고 봉투 돌려 줘, 우리도 빨리 올라가야지. 벌써 몇 시간째야! 응?”
미스 강이 멀뚱멀뚱 바라만 봤다.
“허~참! 그만 하재두….”
다른 사내가 미스 강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년 이거 돈 보더니 돌아버렸나 본데 야, 이년아! 니 몸값이 그렇게 비싸냐?”
미스 강이 작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그래 씨팔, 내 꺼는 금테 둘렀다 어쩔래? 니가 뭔데 욕하고 지랄이야! 영감탱이 직접 오라고 해! 난, 니 같은 놈들은 안 믿어.”
악을 써대는 미스 강을 사내가 주먹을 들어 치려는 모션을 취했다.
“이런 씨팔년!.”
책상의 사내가 양팔을 저으며 만류 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책상의 사내가 수화기를 들었다 벌떡 일어났다.
“네…네!… 아직….”
머리까지 조아리던 사내가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미스 강을 바라봤다.
“원하는 게 뭐야?”
미스 강이 머뭇머뭇 거렸다.
“글쎄, 그냥… 다방이나 인수…할…까?”
사내가 다시 수화기를 입에 대고 속삭였다.
“네, 네 그러니까 다방을 인수하겠다고… 네, 네!”
굽실거리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사내가 이쑤시개를 입에 물며 다시 거만한 자세 로 돌아갔다.
“야! 니들 이년 데려가서 그 다방 인수 시켜줘라, 그 깐 시골다방 몇 푼이나 한다고!”
사내들이 고개를 꾸벅했다.
“예! 알았습니다, 형님!”
다시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한 사내들을 미스 강이 멈칫멈칫 따라 나섰다.
겨울 방학이 가까워 올 무렵이라선지 운동장에 나와 있는 세 녀석이 두툼한 옷을 입고도 추운 표정들을 지었다.
잠시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으뜸건설 마크를 단 버스가 들어와 이들 앞에 멈췄다.
윤 선생이 뛰어나와 버스에서 내리는 세련된 옷차림의 남자애 둘 여자애 셋의 전학생을 맞았다.
빨갛게 코끝이 언 세 녀석은 건성으로 박수를 쳤다.
교무실에서는 윤 선생이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예! 예! 강태환의 직원자제들이 전학을 완료했습니다.… 예, 예! 이들의 통학을 위해 버스가 투입되고 수적으로 우세한 영중은 반장이 되었고 강 사장은 체육진흥회장과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대표로 부위원장이 됐습니다. 당연히 영중엄마는 어머니회장이 되었고요….”
창밖으로 겨울답지 않게 먹구름이 비쳤다.
수업이 시작되자 깍두기 둘이 버스에 올라 앉아 버스기사를 자신들의 똘마니처럼 여기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김 기사가 발길로 의자를 툭툭 찼다.
“얌마! 총각 놈 장가 보내준다는데도 튕기냐?”
박 기사도 버스기사를 향해 이죽거렸다.
“절마 저거 여즉 딱지도 못 뗀 거 아이가? 지랄 말고 커피 함 시켜봐라! 버스 안에서 한번 하게끔 밀어 줄끼니께….”
버스기사가 발끈했다.
“생각 없습니다. 학교 파할 때까지 잠이나 잘렵니다, 나가 주이소.”
박 기사가 버스기사의 뒤통수를 쳤다.
“이 자슥은 밥상 채려준다 캐도 지랄이네, 우리 갔다 올 테니까 뭔 일 있음 전화 때려라이 알았제?”
버스에서 내린 깍두기 둘이 김 기사의 승용차에 올랐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승용차.
머리에 보따리를 인 아낙이 달려오는 차 소리에 놀라 가장자리로 비켜나며 멈춰 섰다.
아낙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먼지.
아낙이 팔뚝으로 감자를 먹였다.
그 모습에 파안대소하던 박 기사 시트를 뒤로 잔뜩 제킨 채 담배를 붙여 물었다.
김 기사가 차창을 내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자껏 보소! 차에서 담배피면 안된단깨롱 억시 말을 안 들어야….”
박 기사가 연기를 운전석으로 내 뿜었다.
“됐다, 마. 콩알맹크로 쥐쌀만한 애나 타는 찬데 우째 그리 가려 쌌노!”
김 기사가 손으로 연기를 내저었다.
“그래야? 니 차 탈 때 함 보더라고이….”
“그나저나 미스강 그년 지가 주인 되더니 인자는 손도 못 잡게 지랄하두만….”
박 기사가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던져 버리자 창문을 올린 승용차가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트로트가 울려나오는 다방에는 음악에 맞춰 궁둥이를 씰룩이며 탁자를 훔치는 마담을 보며 미스 강이 카운터에서 볼펜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음악이 넘어가는 사이 미스 강이 껌을 질겅거렸다.
“어째 이리 조용한가? 커피 처먹음 뒈진다고 방송이라도 났남!”
마담이 히죽 웃었다.
“싸장님두 괜히 그려서… 요즘 매상이 얼마나 뛰었는데!”
미스 강이 손거울을 보며 우쭐했다.
“그거야 주인 년이 이쁘니까 당연한 거고….”
문이 열리며 깍두기 둘이 들어오자 마담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마! 어서 오세요! 근데 한분은 빠지셨네?”
“글마? 함 안준다고 이제부터 안 온데… 근데 쓰파! 넌 주인 되더니 인사도 못하는구마… 옛 서방 괄시하면 팔거지악인데….”
박기사의 걸쭉한 목소리에 미스 강이 껌을 뱉으며 다가왔다.
“지랄하네! 언제 누구 배꼽이 더 큰가 재보기나 한 것처럼!”
“아따. 사장님 돼버리더니 말솜씨도 거칠어져버렸소이, 사장이 좋긴 좋은 갑소, 사장은 틀렸고 마담이나 이리오소 내가 살살 만져줄끼니….”
김 기사가 능글거리자 마담이 활짝 웃었다.
“꿈도 야무지네! 닭 대신 봉황을?”
좁은 다방에 바탕 웃음이 터졌다.
분교 앞 공터.
겨울방학이라 굳게 닫힌 분교 옆 논밭에서 대규모 건설공사가 시작됐다.
포 크레인 삽날 뒤로 무적병원 분원 신축부지라는 팻말이 보이고 분주히 오가는 인부들과 이를 취재하는 차량들이 보였다.
그 시간 무적병원 원장실에서는 기자들 숲에 유억민이 앉아있었다.
기자들의 녹음기와 마이크가 서로 가까이 하려고 신경전을 벌여댔다.
유억민이 마저 말을 이었다.
“… 산 좋고 물 맑은 자연 속의 휴양 종합병원의 건설이 이젠 필요한 웰빙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 겁니다….”
기자들이 물러나자 TV카메라를 앞세운 또 다른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방이 차자 몰려드는 기자들을 제지하는 원무과장.
“자, 자. 여기까지. 나머지 분들은 조금 있다….”
떫은 표정으로 물러나는 기자들과 이어지는 취재진에 활짝 웃는 유억민을 보며 취재를 끝내고 나가는 기자들에게 입구에 선 간호사가 봉투를 건네며 애교 섞인 눈웃음을 보냈다.
“웰빙병원 보도 자룝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자하나가 봉투를 열자 서류 몇 장 틈에 수표가 한 장 끼어져있었다.
자신의 사무실 소파에 비스듬히 걸쳐 앉은 우 의원의 개기름 낀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흘렀다.
TV 화면 속에는 분교가 비치고 카메라가 앵커를 향했다.
“원래는 본교였던 이곳 분교출신들의 활약상이 연이어 매스컴에 보도되고 지역출신 우의원의 입지전적 성공에 주민들의 갈채가 쏟아지며 이곳 분교는 관광 명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웰빙 병원 개원과 때맞춰 으뜸건설의 웰빙 타운 건설이 발표 될 예정인 이곳은 이제 새로운 미래 도시로 우뚝 설 것으로 보입니다….”
보좌관이 손을 부비며 머리를 조아렸다.
“유 원장과 강 사장의 충성경쟁이 더 격렬해지는 것 같습니다요.”
우 의원이 배를 쓸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봄이 되자 분교 앞은 수십 대 식 몰려드는 관광버스로 인해 난장판이 됐다.
영중과 대삼은 뽑기며 솜사탕 등으로 시작종이 울리거나 말거나 놀러 다니기 바쁘고 깍두기들이 이들을 찾으러 다니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분교교무실은 윤 선생 혼자 사용하던 교무실에 여선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딘가로 전화를 하는 윤 선생을 여선생들이 선망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윤 선생이 수화기를 손으로 가린 채 굽실거렸다.
“예, 예! 병원건설 현장 상주직원의 자제들의 전학으로 여선생이 두 명 더 발령돼 오고 학생 수에선 이제 유원장이 한 명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우 의원 사무실에서는 수화기를 우 의원의 귀에 댄 보좌관이 굽실거리고 있었다.
“… 허허허허! 그동안 학교 일을 핑계로 수시로 독대를 하자며 위치를 다져가던 강 사장이 위기를 느끼게 생겼구먼… 허허 윤 선생은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허허허….”
골프채를 휘두르는 우 의원의 등 뒤로 국회의사당의 지붕이 보였다.
한낮인데도 아파트 거실에서는 팬티 차림으로 TV를 보고 있는 강태환의 옆에 요염한 차림의 여인이 과일접시를 내려놓으며 나란히 앉았다.
“이젠 임자가 두 아이를 분교로 전학시켜야겠는데….”
과일을 한 입 베어 문 강태환의 말에 여인이 당황해했다.
“그랬다가 당신이 감춰놓은 아이들이란 게 밝혀지면 어떡하시려고요?”
“언제 밝혀져도 밝혀질 것 아닌가? 나중에 뒤통수 맞는 것 보다 지금 미리 터지는 게 낫지, 수적으로 하나 열세지만 얘들 둘이 가면 오히려 우리가 하나 앞서는 거야.”
여인이 감격한 표정으로 품에 안겼다.
“난 몰라요, 그냥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뭐.”
거실이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학부모회가 진행 중인 교실에서 자신의 감춰놓은 두 자식까지 분교로 전학시켜 학생 수 한 명의 우세로 역전 시켜놓은 강태환이 득의만만하게 회의를 진행시키는데 유억민의 부인인 대삼엄마와 함께 연희동의 윤 선생 부인이 들어섰다.
“강 사장님, 이제 단상에서 내려오시죠! 이젠 동수인 것 같은데….”
강태환을 향해 빈정거리던 대삼엄마가 여인을 보고 깜짝 놀라 영중엄마를 쳐다봤다.
“언니! 저 여자가 여길 어떻게?”
영중엄마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일어났다.
“아니, 그럼 이년이!”
당황해하던 여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콧등을 일그리며 생각하던 여인도 일어서 당당한 포즈로 맞섰다.
“이년? 누구보고 이년이야! 니가 뭔데?”
강사장부인과 감춰뒀던 여인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해프닝이 벌어지자 여인을 두둔하는 대삼엄마와 준필엄마로 인해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놀란 윤 선생이 준필엄마의 팔을 끌고 창 옆으로 왔다.
“회의만 진행되면 무슨 일이든 발생해 결론을 맺지 못하고 주저앉는 분교운영에 양다리를 걸치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인데 당신은 왜 온 거야?”
준필엄마가 히죽 웃었다.
“주도권 쟁취를 위한 물밑싸움이 치열하다 못해 처절해져 애들 간에도 편 가르기로 난리라는데 내가 와야지….”
조용하고 아름답던 산골분교는 분쟁에 휘말리는 우리나라 국회 양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여당의 대선주자 후보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벌어진 여당 당사에서 호언장담하던 우두수는 전직대통령의 딸에게 고배를 마셨다.
씁쓰레한 얼굴로 전당대회장을 빠져나와 승용차에 오르려는 순간 건장한 젊은이들이 양옆에서 우두수의 팔짱을 꼈다.
“이것들 뭐야? 이거 못 놔?”
양옆의 사내들은 묵묵부답, 잡은 손에 힘을 가하고 언제 나타났는지 전경들이 도열해 기자들을 물리쳤다.
전경들 복판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사관이 한 명이 신분증을 우두수의 코앞으로 들이댔다.
“특수부 이광탭니다. 정보촉진화 기금운영에 대해 여쭤 볼 말씀이 있어 모시러 왔습니다.”
“특수부? 야 임마! 이게 모시러 온 거냐? 도둑놈 붙잡는 태도지!”
“정확히 말하면 피의자의 신분으로 연행되는 겁니다”.
“이 자슥들이,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래! 이래도 되는 거여 이거!”
수사관이 비웃듯이 속삭였다.
“네네, 잘 알지요. 국민의 혈세 수천만 원씩이나 시골 다방 티켓값으로 날리시는 대단하신 분인데….”
우두수가 멀리 있는 기자들을 보며 당황해 했다.
“뭐, 뭐…야? 일단 가서 보자구….”
허겁지겁 자진해서 차에 오르는 우두수를 점멸등을 반짝이며 나타난 패트롤카가 앞장서 인도했다.
인천공항 로비.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있는 강태환의 옆에 트렁크를 든 여인이 뛰어왔다.
강 사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질 없이 다 한 거지?”
여인이 숨을 헐떡였다.
“급하게 오느라 숨이 차 죽겠네!”
가방을 열고 통장과 여행자 수표를 건넨 여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전부 먼 친척뻘 되시는 분의 명의로 해서 이상 없을 거예요… 애들은 전부 어머님께 맡겨 놓았고 전학도 시켜 놨으니 걱정할 것 없고….”
간태환의 팔짱을 낀 여인이 신난다는 표정을 했다.
“그런데 정말 이제는 당신과 나 둘이서만 나가 사는 거예요?”
강 사장이 어이없어했다.
“이런 젠장, 서방은 부도나서 도망가는데 뭐가 그리 좋다고….”
여인이 메롱하며 미소를 보냈다.
“골치 아픈 사업이야 내가 알게 뭐야! 난 당신만 있으면 되니깐….”
시간이 된 듯 가방을 든 두 사람이 출국장으로 향했다.
특수부 조사실에서 수의 차림의 우두수가 검사와 마주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로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듯 말없이 담배연기만 뿜어 올리는데 허겁지겁 수사관이 들어섰다.
“한발 늦었습니다. 벌써 내연의 여인과 함께 출국해 버렸습니다.”
수사관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보고하자 검사가 입맛을 다셨다.
“예상했던 건데 뭘! 시나리오대로 아닌가? 무적병원 쪽은?”
“무리한 병원 신축을 핑계로 고의 부도를 내고 강남병원은 제삼자에게 이미 넘겨버렸습니다.”
담배를 들고 유심히 귀를 기울이던 우의원이 ‘크크’소리를 내며 웃었다.
검사가 그런 우 의원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 정돈 예상 답안에 있던 겁니다. 도망갈 놈 다 가고 나면 의원님 비행 밝히기가 더 수월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놈들만 캐면 되니까….”
“맘대로 해 보시게나.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먼지도 먼지 나름 아니겠습니까? 금테 두른 여자도 있는 세상인데….”
비꼬듯이 내뱉는 검사의 말에 우 의원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허리 밑을 논하는 검사가 있다니….”
한낮의 교도소 복도를 팔짱을 낀 채 걸어가는 우 의원 뒤로 교도관이 따르고 있었다.
사방으로 들어가는 철문을 열어준 경비교도대원이 배를 내밀며 가슴을 뒤로 젖혀 악을썼다.
“… 쭝…!”
교도관이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가자 경비교도대원이 다시 힘주어 악을 썼다.
“ …쏙…!”
사방 안을 찌렁찌렁 울려대는 경례소리에 소지가 손끝에 붙인 거울 조각으로 망을 봤다.
“의원님 돌아오시는 데요!”
감방장이 소지의 뒤통수를 갈겼다.
“씹새끼, 의원은 무슨! 저 씹새 이제 단물 다 빠진 개털이야, 개털! 여직 우리 방에 뭐 하나 넣어주는 것 봤냐? 지 주딩이만 아는 도둑놈이지….”
우 의원이 지나가다 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숙였다.
퇴근 무렵의 소장 방 소파에 우의원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소장은 책상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껄끄러워 내 이감을 신청했다는 거구만?”
담배연기와 함께 내뱉는 우 의원의 물음에 소장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과 동향이라 워낙 말들이 많습니다. 윗선의 지시도 있고 해서….”
“허긴, 내 꼬라지가 이런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만 난 그래도 자네를 최초의 비 검사 출신 법무장관으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네…
전직 대통령들 보게나! 추징금 따윈 발톱의 때만큼도 안 여기지 않는가? 나도 그만한 힘은 있는 사람일세.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게나….”
소장이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선배님도 참… 제 처지가 지금 너무 어려워서 그런 겁니다. 윗분들의 뜻도 그러하고요….”
우 의원이 말없이 담배를 하나 더 붙여 물었다.
분교 교실에서 코펠에 끓인 라면을 앞에 놓고 윤 선생 부자가 마주앉아 있었다.
라면 가닥을 입에 넣으려던 윤 선생이 목이 메는지 창밖을 내다봤다.
창밖에는 새떼가 푸른 하늘을 가르며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교문 앞은 여기저기 어질러진 공사현장이 을씨년스런 몰골로 파헤쳐져있었고 찢겨진 플래카드와 흉물스럽게 변한 건축구조물 옆으로 무표정한 촌로들이 지나갔다.
윤 선생이 교무실에서 힘없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동안은 우 의원 땜에 분교유지가 가능했던 거지만 이젠 줄 끊어진 연 신세라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전화기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에 윤 선생이 애원하듯 매달렸다.
“아직은 학생이 한명 있지 않습니까? 학생이 있는데 어떻게 폐교를….”
짜증스런 전화 속의 목소리가 울렸다.
“… 아니 그동안 그렇게 얘기 했는데도 또 반복해야 돼요? 내가 무슨 녹음깁니까? 그리고 학생, 학생 하는데 그게 윤선생 아들이지 분교 학생입니까? 그동안 우두수에게 알랑거리던 교육감등 지역유지들이 우두수에게 당한 분풀이를 윤 선생에게 해대기 시작하는 것도 몰라요? 정히 그렇다면 아들은 남기고 윤 선생은 낙도분교로 가세요. 그러면 분교는 유지될 거니까….”
어떡해서든 폐교만은 막아보려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윤 선생에게 교육청은 예산 낭비를 앞세우며 전출을 종용해댔다.
운동장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울리자 윤 선생이 나와 집배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편물을 받았다.
우편물 뭉치에서 교육청주소가 찍힌 대 봉투가 보이자 다른 우편물을 옆구리에 끼고 봉투를 찢은 윤 선생이 우편물과 봉투 속의 내용물을 떨어뜨린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얄미우리만치 푸르고 아름다웠다.
바닥에 떨어진 공문서가 바람에 펄럭였다.
전·출·명·령·서
교무실로 돌아와 묵묵히 짐을 꾸리는 윤 선생과 준필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했다.
책상위에는 윤 선생이 써놓은 사직서가 보였고 적막한 교무실의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힘차게 울렸지만 둘은 받지 않았다.
운동장에 세워놓은 승용차 트렁크의 문을 닫고 운전석 문을 연 윤 선생이 잠시 운동장을 둘러봤다.
이 때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분교로 들어서는 까만 승용차들의 무리가 보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승용차 문을 닫은 윤 선생을 포위하듯 둘러 싼 승용차에서 검은 양복들이 내렸다.
도열한 검은 양복들 사이로 차에서 내린 전직 대통령의 딸인 대선후보가 윤 선생 에게 악수를 건넸다.
얼떨결에 두 손을 마주잡는 윤 선생을 보며 대선후보가 미소를 지었다.
“윤 선생님!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윤 선생님이 나 좀 도와줘야겠어요.” “…?”
어리둥절해하는 윤 선생에게 보좌관이 대봉투를 내밀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잠시 멍해있던 윤 선생이 분교를 살리기 위해 공천 수락을 결심했다.
뒤이어 도착한 교육감등 유지들이 윤 선생에게 악수를 청하며 굽실거렸다.
새 학기 분교.
윤 선생이 섰던 교단에는 젊은 여선생이, 준필이가 앉았던 책상에는 여선생의 딸 인 사팔뜨기 계집아이가 혼자 앉아 콧물을 흘리며 졸고 있었다.
운동장을 들어서는 승용차의 행렬이 이어지더니 먼저 내린 교육감등 지역 인사들이 교문 양쪽으로 도열해 누군가를 기다렸다.
나중에 도착한 승용차에서 앞문으로 내린 보좌관이 뒷문을 열자 의원이 내렸다.
도열해 있던 인사들이 허리를 구부렸다.
가슴에 국회 배지를 단 윤 선생.
모여 선 이들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교실로 가 여선생과 악수를 나눈 후 고개를 숙인 윤 선생이 창밖을 내다봤다.
“4년 후엔 돌아올 자리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창밖엔 여전히 솔바람이 불고 산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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