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살인사건
- 작성일 200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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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 곤충강 벌목의 한 과. 호박벌 또는 왕벌이라고도 함. 몸의 길이는 1~3cm이며, 누런색과 검은색 또는 갈색의 아롱무늬와 띠무늬가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독침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임>
스크롤바를 천천히 내려가며, 교진은 탐식하듯 말벌에 관한 검색결과를 꼼꼼이 읽어 내려간다. 백과사전과 어학사전, 갖가지 블로그 하며 카페에 올라와있는 말벌의 종류와 특징에 관한 자료들, 주요 기사와 사진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모니터에 코를 박고 쉴새없이 클릭하며 창을 띄우던 그녀의 손가락이 검색창 오른쪽 한 구석, [연관검색어] 앞에서 가볍게 떨린다.
연관검색어: 땅벌, 말, 말벌 집, 장수말벌..... 말벌살인
교진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대된다. ‘말벌살인’. 그녀는 닥치는 대로 띄워놓았던 말벌에 관한 자료들이 그득한 창들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일제히 닫아버린다. 그리곤 떨리는 손을 움직여 마우스 화살표를 검색어 위에 올려놓는다... 클릭. 곧 하나의 블로그가 모니터 위로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끔찍한 죽음을 선물하고 싶은가? 여기,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게 고통을 느끼며 죽게 해주는 지독한 무기가 있다. 말벌은 그 어떤 무기보다도 잔인하고 끔찍한, 최고의 살인 무기가 될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추리소설의 한 페이지에서 발췌해 놓은 글들이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번에도 역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교진은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인쇄’ 버튼을 클릭한다... 드르륵. 정지되어 있던 프린터기가 요란하게 잠에서 깨어나 빠른 속도로 내용물을 출력하기 시작한다. 새하얀 A4 용지 위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죽음의 비법들이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채 깨알같이 찍혀 나오는 것을 보며, 교진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때,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휴대전화의 진동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푸른 액정 위로 떠오른 두 글자.
교진이 말벌집을 발견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새벽에 목욕탕에 다녀오던 그녀의 두 눈에 아파트 7층. 자신의 집 창틀에서 둥지를 튼 말벌집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빨래가 내걸려 있을 자신의 집 베란다를 올려다보다 축구공만 한 크기의 대형 벌집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한동안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그도 그런 것이 도심 아파트단지 한 가운데 벌집이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 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녀의 집 베란다 창틀 아래쪽에 썩어버린 늙은 호박처럼 붙어있는 싯누런 둥근 형체에서 우글우글 거리는 미세한 움직임들을 발견했을 때, 그래서 한참을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목이 아플 때까지 바라보고 났을 때 비로소 그것이 말벌들이 지어 놓은 커다란 벌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교진은 왜 하필이면 말벌들이 도심의 아파트 단지에, 그것도 자신의 집 창틀 밑에 둥지를 틀었는지 의아했다. ‘그대로 두면 위험하지 않을까? 말벌에 쏘이면 죽을수도 있다는데...말벌들이 아파트 단지를 휘젓고 다니면 분명 큰 문제가 될거야. 말벌집을 제거하려면 어떡해야하지? 119를 불러야하나? 아니면 경찰을? 경찰이 부르면 와줄까? 고작 말벌집을 퇴치하는데 민중의 지팡이가 출동을 해줄 것인가?’ 엘리베이터에 올라 현관문을 열기까지 숱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다른 집도 아닌 그녀의 집, 창틀 밑이었기에 알 수 없는 책임의식 같은 것이 그녀를 강하게 흔들었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베란다 문을 닫고 한참을 고민하던 교진의 가슴이 갑자기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알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 되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생각을 해냄과 동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미친 듯이 검색창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말벌살인’이었다.
“야, 너 내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비디오를 복제하는지 모르지? 이젠 손이 알아서 복제기에 척척 테이프를 넣는다? 그냥 막 무의식적으로 알아서 일을 해. 머리론 딴 생각을 하면서 손으론 복사를 하는 거야. 의무적으로, 초고속 스피드로. 지인짜 질린다 그 짓. 안 본 영화도 붙여 논 제목만 보면 내용이 뻔히 보인다니깐 거짓말 같냐? ……누나, 나 좀 살려줘라. 먹고사는 일도 지겨워죽겠는데 연애마저 지겨우면 난 무슨 재미로 사냐? 너랑 만나면서도 나, 솔직히 다른 애 생각해. 무의식적으로 그냥. 비디오 복제하는 짓이랑 다를 게 없어 아무 감각이 없다니깐? 우리 솔직히 너무 질질 끌었잖아? ……야 싯팔 짜증나게 왜 울어. 나 같은 놈 때문에 울면 눈물이 아깝지 않냐? ……아 진짜 구질구질하게! 나 쿨한 여자 좋아한다고 했지? 이러지 말자 교진아. 내일부턴 진짜 나 살던 데로 갈거니까 그렇게 알아. 짐은 내가 가져갈 테니까 내 물건에 손대지 말고.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전화 좀 하지마! 하루에 수십 통이 다 니 전화야. 누나가 내 마누라냐? 에이씨 헤어지는 마당에 더 말해서 뭐하겠냐. 우리 더 얼굴 붉히지 말고 여기서 쿨하게 헤어지자. 나 먼저 간다. 마지막이니까 계산은 내가 하고 갈게. ”
칼끝처럼 뾰족한 붉은 모나미 볼펜으로 그녀는 익숙하게 H를 그린다. 모자를 쓴, 귀가 유난히 크고, 도드라진 인중 때문에 얼핏 원숭이 같은 느낌도 줬던 H. 에이포 용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H의 얼굴을 그려 넣고, 실제와 너무도 흡사하게 그려진 눈동자에 볼펜 똥을 잔뜩 엉겨 동공을 그려 넣어주고서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그녀는 한때 더없이 선하다고 생각했던 겹 쌍커풀이 진한 H의 두 눈을, 휴대폰을 가로로 눕혀 완벽히 가려버린다. 그리곤 시작되는 난도질. 퍽.퍽.퍽퍽.퍽퍽퍽퍽. 그의 커다란 얼굴로 파편처럼 붉은 잉크가 마구 튄다. 붉은 반점이 돋아난 그의 각진 얼굴 위론 눈동자 대신 ‘부재중전화 1통’이 간판처럼 반짝 반짝 빛난다. 완성된 그의 얼굴은 사이버 괴물 같다.
최고의 무기가 빼곡히 적힌 인쇄물 위로 그가 그려진 에이포 용지를 뒤집어 올려놓고 메신저에 접속한다. 창이 뜨기가 무섭게 쪽지가 날라 온다. 대화명 (남자는 다 개다). 그녀의 소울메이트 유지영.
유지영(남자는 다 개다): 나 그 새끼랑 진짜 끝냈어. 교진아. 남자 진짜 믿지 마라. 다 똑같애.
이교진(돌아와줘...) : 태준씨랑 또 무슨 일 있었던거야?
유지영(남자는 다 개다): 야 그 새끼 이름도 꺼내지마. 그리고 쪼잔한 건 둘째 치고 그 새끼 그거 완전 짐승이더라. 뭐래는 줄 아니? 자기는 에어캡 보면 여자 가슴이 생각난대. 나 진짜 어이가 없고 소름이 돋아서!
이교진(돌아와줘...)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에어캡이라니?
유지영(남자는 다 개다): 그 새끼 우리 회사 뒤에 자동차 관리하는데서 일하잖아. 사고 난 자동차 에어캡 자르는 시덥지 않은 일하는 거 몰랐어? 무튼 공기가 빵빵하게 찬 에어캡이 있는 자동차만 보면 막 흥분된다는거야. 난 처음에 그 소리 듣고 별 볼일 없는 자기 일에 그정도로 열정이 있나, 했다? 근데 웬걸, 그게 여자 가슴 같아서 흥분된다는 거였어. 그 빵빵한걸 보면 여자가슴 같다는 거야. 그걸 칼로 정확하게 두 도막 낼 때 카타르시스가 최고조가된다나 어쩐다나. 나 진짜 그 새끼가 능글능글 웃으면서 그 얘기 하는데 어찌나 밥맛이 떨어지던지 포크로 확 찍어버리고 싶어지더라. 그거 완전 싸이코야. 아우 밥맛없어. 야 근데 너 아직도 대화명이 왜그래! 그새끼 못잊은거야? 아직도? 박태준이나 그 새끼나 다 똑같이 개새끼야! 등신같이 너 자꾸 이럴래? 잊으래두. 그새끼 너 단물만 쏙 빼먹고 버린걸 생각해. 박태준보다 더 드러운게 그 자식이야 교진아!!!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이름 옆에 꼬리처럼 붙어다니는 대화명을 응시한다. (돌아와줘...)
피식, 웃음이 난다.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여 대화명 변경을 누른다. 톡,톡,톡 스타카토처럼 밝고 켱쾌하게 백스페이스를 눌러 한 글자씩 차례차례 지운다. 돌아와줘.. 돌아워줘. 돌아와 돌아 돌 ……
이교진(말벌살인)
그녀는 만족스럽게 자신의 새로운 대화명을 본다. 그리고 서둘러 메신저 창을 닫는다. 급하게 날라든 지영의 쪽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화장대에 앉아 휴지로 콜드크림을 닦아내던 교진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지로용지처럼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날라든 일방적인 통보였다.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카락에 물기를 닦아내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서서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을 있다, 언제부터였냐고 묻는 교진을 향해 등을 돌려 누우며 H는 냉랭한 목소리로 교진을 만나기 전 부터라고 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대학 후배라는 여자. H는 말하는 자신조차 진부하고 어색하다고 느꼈는지 뒤끝을 흐리며 ‘첫사랑’이라고 했다. 그의 등 뒤로 새어나온 생경스런 그 한마디에 교진은 머릿속, 희미한 알전구에서 아슬아슬하던 필라멘트가 팍, 하고 끊어져 나감을 느꼈다. 잠깐은 괜찮아. 시간 줄 테니까 알아서 감정 정리해. 자기를 믿을게. 떨리는 목소리로 H의 등을 껴안으며 교진이 말했다. H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짜증스런 뒤척임을 그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랬기에 교진은 더 이상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H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일산에 있는 자신의 원룸으로 간 것이겠거니 했다. 그녀와의 사소한 말다툼이 있는 날이면 두 살 어린 나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린아이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고 일산 원룸에서 자고 오던 그였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가고 며칠째 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삼일 째 그녀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받지 않고, 원룸 앞에서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끝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던 그를 만난 곳은 그녀와 H의 단골 바였다. 그 곳에서 그는 처음 보는 앳된 여자와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숱하게 날라든 그녀의 문자메시지와 전화들을 모조리 씹어버렸던 그의 실버핸드폰은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앳된 여자의 앙상한 손에 들려 있었다. 팬티가 보일정도로 아찔한 여자의 스커트 밑으로 이미 만취한 H가 실실 웃으며 머리를 들이미는 장면을 본 순간 그녀는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며 달겨 들었다. 순식간이었다. 그녀의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며 교진을 피해 달아났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파편을 튀기는 칵테일 잔과 밧데리가 분리되어버린 H의 휴대전화. 뭐하는 짓이야! 붉게 충혈 된 두 눈이 커다랗게 부푼 H가 교진을 향해 소리지른다. 너 누구야! 뭐하는 년이야! H의 말 따윈 들리지 않는 다는 듯, 교진은 앳된 여자를 향해 달려가 머리가 아닌 그녀의 짧은 스커트를 손으로 잡아 뜯는다. 악! 왜이래 이 여자! 미쳤어? 오빠 어떻게 좀 해봐! 반쯤 드러난 검은 레이스 팬티를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소리를 앳된 여자가 소리를 지르자 당황한 H가 그 여자의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와 교진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다. 털썩. 미친듯이 앳된 여자의 치마를 찢어발기던 그녀가 주저앉아버린다. 그런 교진을 앳된 여자에게서 매섭게 떼어내며 당장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던 H. 그녀는 그만 얼이 빠져버린다. H의 크고 굵직한 손에 던져지다 시피 쫓겨나 돌아오면서 그녀는 드라마 속 미친 여자가 되어 엉엉 울어 제낀다. 그 여자의 루이비통 가방 버클에 걸려 엉켜버린 머리가 안테나처럼 비죽 솟아있는 그녀. 지나가는 사람들이 미친 여자 보듯 힐끔거리며 수군거리던 그날 밤. 그녀, 교진이 싸늘하게 식어 죽어버린 밤.
다음날. 그녀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떴을 때 H가 없다는 현실이 엄습하자 너무나도 두려워져 미친듯이 휴대폰을 찾아 1번. H의 번호를 눌렀다. 한참을 애원한 뒤에야 겨우 그녀를 만나 준 H는 울고 불며 매달리는 교진을 매정하게 떨쳐내며 쿨하게 헤어지자했다.
교진은 처음으로 거센 살인 충동을 느꼈다. 차갑게 자신을 밀치던 H. 그리고 그녀를 등진채 까폐를 나서 앳된 그녀를 만나러 가는 H. 교진은 결국 그를 죽여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딩동.
H가 있을 앳된 여자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다. 잠시후, 문이 열리고 놀란 얼굴에 그 여자가 보인다. 그녀를 밀치고 교진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안으로 들어간다.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TV를 보고 있던 H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너, 여길 또 왜 찾아...’ 일그러진 얼굴에 H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들고 있던 커다란 비닐봉지를 열어 H의 얼굴 위로 부어버린다. 수십, 아니 수백마리의 벌떼들이 H에게로 달려든다. 커다란 독침을 칼처럼 빼낸 그 끔찍한 무기들은 H의 사지 위로 무자비하게 일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여자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오피스텔 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H는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지르며 데굴데굴 구른다. 그녀의 발 앞에 고꾸라져 울고불며 살려달라고. 제발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소용없다. 교진은 죽어가는 H를 보고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오피스텔을 빠져나간다...
따르릉 따르릉.
땀에 젖은 교진의 뺨 위에 구겨진 A4용지가 들러붙어있다.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떼어내며 그녀는 전화를 받는다. 경비실에서 걸려온 전화다.
전화를 받고 일층으로 내려가니 커다란 소방차 한 대가 와있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있다. 누군가 그녀의 집 창틀에 둥지를 튼 말벌둥지를 보고 신고를 한 것이 분명했다. 무장을 한 소방대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심히 말벌집을 떼어내기 시작한다. 한참 기회를 엿보던 소방대원이 순식간에 말벌집을 떼어내 봉투에 담아버리자 밑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진은 빙글, 몸을 돌린다. 알 수 없는 허전함과 패망감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다.
돌아선 그녀의 눈에 낯익은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서울 (가) 8320 ’ 그녀의 차다. 차에 기대어 비스듬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차가운 H의 두 눈을 마주하던 그녀의 시선은, 그의 손에 들려있는 소라 열쇠고리가 달린 차 키에 꽂힌다. 그와 처음으로 동거할 때 그녀에게 수줍게 건넨 H의 첫 선물. 바다가 보이는 그의 고향 휴게소에서 사왔다는 촌스러운 소라 열쇠고리. 그걸 받아들고 그녀는 촌스럽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얼마나 좋아했던가.
“니 차 키 받아. 기름은 내가 새로 채웠어. 아 그리고, 혹시 집에 내 카메라 있냐? 지난번 짐에 빠진 거 같아서. 내 물건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누나도 찝찝하잖아? 그것만 좀 확인해주라. ”
최고의 살인 무기를 실은 소방차가 천천히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다. 카메라를 찾으러 집으로 올라가는 그녀의 가슴이 빠르게 쿵, 쿵,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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