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
- 작성일 200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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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
천장에서 울리는 사각거림은 점차 커졌고, 나는 낡은 천장 속에 쥐가 떼로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보았다. 다시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사각거림은 내 의식의 안팤을 왔다갔
다 했다. 난 마침내 사각거림을 붙들어 그것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보려 애쓴다.
어느 해 인가는, 쌍살벌 한 마리가 처마를 뜯고 내 방 천장 속에 들어와 밀랍으로 둥지를 틀
어 놓았다. 여름이 되었고, 꽤 많은 딸벌들이 태어났나보다. 책상 위에 올라가 천장을 노크
하듯 통통 치면, 동생들을 돌보느라 고단한 쌍쌀벌들은 ‘웅’ 하는 긴 저음을 내며 꽤 공포스
러운 목소리로 응답하곤 했다. 외할아버지와 나는 그것이 재미있어서 이따금 책상 위로 기
어올라가 킥킥거리곤 했다. 책상으로 올라가 천장을 쳐 본다. 텅 빈 울림과 함께 먼지가 날
렸다. 쌍살벌은 시도때도 없이 저들의 안식을 방해하는 내 노크에 질렸는지도 모른다. 쌍살
벌의 방이 비어버린 것은 지난 가을 쯤 이었던 것 같다. 가을에 새로 태어난 수펄과 짝을 지
은 암펄들은 저마다 날아가 버렸고, 어느 한 마리의 벌도 이곳으로 돌아와 집을 짓지 않았
다. 나는텅빈 천장만 퉁퉁 두어번 더 두드리고는 책상에서 내려왔다.
“먼지 떨어지잖니.”
엄마는 고데기로 머리를 말며, 나름 다정한 어투로 말했다. 친구와 드라마 촬영장에 놀
러가기로 했다던 엄마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엄마는 사각거리는 소리 안들려?”
엄마는 글쎄. 하고 관심없다는 듯 내뱉고는 화장대 서랍을 열어 마스카라를 꺼냈다.
“엄마, 오늘은 제발 이불 개고 갔으면 좋겠어. 우리 방에 없는 곤충이 없어. 우리 깨끗하
게 살자고 제발.”
“오늘은 늦었어. 미안해. 내일부터 갤깨.”
엄마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 하루 마스카라만 덜 칠해도 엄마 이불쯤 스스로 갤 수 있잖아?”
내가 불만이 가득 한 얼굴로 재차 이불을 스스로 갤 것을 종용하자, 엄마는 마스카라 번
진 눈을 조심스레 닦아내며 나를 흘겨보았다. 그리곤 쌀쌀맡게 내뱉기 시작했다.
“얘, 마스카라가 얼마나 중요한데? 저리 좀 가. 화장할 때 방해하지 좀 마. 짜증나니까.”
나는 기분이 상할만도 했지만, 짐짓 넉살 좋은 척 한마디 더 던졌다.
“참, 엄마 오늘 아침에 엄마 머리 위에 지네가 있었는데…….”
엄마는 그제야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머리 위 어디?”
나는 능청스런 표정을 곁들어가며 손가락을 한껏 벌려 벽에 붙은 모양과 크기를 묘사하
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 누워있는 베개 위에. 이 만 해서, 벽에 붙어있던데?”
내 손가락이 붙은 벽 쪽으로 엄마 고개가 돌아갔다. 엄마는 태연해 보이려 애쓰며 잡았지?
라고 말했다. 나는 빙글거리며 아니, 라고 말했다. 아이라인을 까맣게 칠해 한층 눈동자가
작아진 엄마가 나를 노려보았다.
“엄마 깰까봐. 그리고 돈벌레는 죽이는 거 아니라며? 돈벌레 같았어. 복 있게 생겼거던
데, 다리도 많고.”
신나게 어질러진 방 안에 기어다니는 벌레마다 엄마는 돈벌레라며, 잡기 귀찮은 핑계
를 대었다. 저런건 잡는게 아니야 하고. 거기에 대한 내 치졸한 복수에 엄마는 조금 화가 난
듯도 했다. 그러나 그런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 거울쪽으로 몸을 틀고는 중얼 중얼 거
렸다.
“딸 자식이라고 이쁘다 이쁘다 하고 키워봐야 소용없어.”
이에 질세라,
“지가 길렀나, 할아버지가 길렀지?”
라고 대꾸해 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왼손 주먹을 내밀어 내 등을 때리는 시늉을
했지만,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눈가에 댄 펜슬에 섬세한 힘을 가하는데 열심이다. 엄마의 얼
굴은 누가 보아도 서른 네 살 여자의 것이겠지만, 엄마의 눈빛은 천진한데가 있다.
“엄마, 오늘은 오토바이 타는 그 친구 안 만나지?”
“너 하는 것 봐서.”
“얌전히 들어오자. 응?”
나는 타이르듯이, 그러나 그것이 아주 공손하여 엄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
며 말했다. 엄마는 기분이 상하진 않았는지 명랑하게 대꾸했다.
“너희 아빠가 통금 시간을 정해 놨으니 어쩔 수 없지, 일이 늦게 끝나면 그거 얻어 타고
달려와야 잖니?”
일은 무슨 일이야. 친구들 적당히 만나고, 조금 일찍 일어서면 되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
지 차올랐지만, 꾸욱 삼켰다.
“아빠한테 부탁 좀 해주라. 이 청춘에, 통금 두시는 너무 가혹하지 않냐? 너도 놀아봐서
알잖아.”
나는 전혀 대꾸할 기분이 아니어서, 방을 나와 버렸다. 어른이 되기 까지는, 엄마가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더 원망스러웠다. 엄마라기 보다는 여동생 같은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 때
면, 나의 의식은 붕 떠서 이동한다. 그리고 엄마가 갑작스레 엄마가 될 수 밖에 없던 날이 찾
아왔고,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그 교정 운동장을 맴돈다. 엄마의 뒷모습은 열네 살에 멈
추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검은 눈동자만 보면 중학생의 그녀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엄마가 한껏 차려입고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아빠 눈은, 벌써부터 걱정을 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엄마가 오늘 늦게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양, 넌지시 말하는
것이다.
“자기, 오늘은 일찍 오는거지?”
엄마가 아빠의 눈을 피하며 검은 애나멜 구두에 발을 뀄다. 검게 반짝이는 구두는 앞코
가 좁아 발가락 사이의 골이 깊게 엿보였다. 엄마는 거울을 보며 옷차림을 확인하고는, 또각
또각. 현관문을 민다.
“오늘 저녁,”
하는 아빠의 말이 현관이 열리며 울리는 종소리에 쨍그랑. 하고 잘렸다. 탁. 닫힌 문 안쪽
으로
“같이 먹자.”
하는 말이 뚝 떨어졌다.
내가 사춘기가 되기 전 까지, 두 마리의 암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만 하던 엄마와
나였다. 엄마가 아빠를 만나고, 또 나를 낳던 열 네살이 내게도 찾아 온 해 부터는 엄마를 이
해하려 애썼다. 언젠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화가를 지망하던 소녀가 미술실을 찾아가
던 그 걸음을. 점수가 혹시 잘못 된 것은 아닌가 해서요. 여교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머리를 매만진다. 파우더 팩트 거울에 비친 빨간 입술만 소녀를 향해 중얼거린다. 얘가, 누
굴…? 웃긴애네. 그래도 소녀가 가지않고 고집스레 서 있자, 교사는 얼굴을 들이밀고 빤히
쳐다본다. 소녀는 고개를 빼며 눈을 피하다가, 결국은 포기했다는 듯 집요하게 따라오는
눈빛을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본다. 여교사는 속삭였다. 얘 평가는 누가 하는건데? 좀 가줄
래? 그리고는 의도적으로 소녀의 젖가슴을 잡아 세게 밀친다. 소녀는 교무실 미닫이 문에
‘쿵’ 머리를 받으며 쓰러졌다. 여교사는 쿵 소리에 아랑곳도 없이 크게 소리친다. 어머, 어린
애가 가슴은 또 왜 이렇게 커? 징그러워. 소리를 뒤로하고 소녀는 중앙현관으로 달려나온
다. 노는 아이들도
없는 텅 빈 운동장엔 나무들의 그림자만 길다. 소녀는 조회대에서 걸음을 잘못짚고 날듯이
붕- 떠서 운동장 바닥으로 떨어진다. 소녀가 떨어지던 운동장엔, 미술교사를 기다리던 남자
친구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떨어져 엎드린 그녀에게로 누군가 걸어온다. 소녀는 그가 누구
인지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방 안에는 홀로된 내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시계의 째깍거림 만이 낮게 흐르고 있었
다. 별안간 내 뒤에서 방바닥을 똑! 하고 야무지게 때리는 소리가 시의 흐름을 끊어놓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검은 미국바퀴가 똘똘똘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바퀴의
더듬이는 이미 장롱을 향해 곧게 뻗어있어, 나는 그것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걸음이
닿기도 전에 30cm 앞 장롱 안으로 들어갈 기세였으므로. 그저 그 똘똘거리는 걸음을 지켜
보았다. 바퀴가 장롱 밑으로 시원하게 들어가 버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외풍을 막아
보겠다고 장롱 옆과 아래에 꼭꼭 밀어 넣어 놓은 담요가 여름인 지금까지도 철거되지 않은
채였다. 때문에 바퀴는 미쳐 집어넣지 못한 검은 엉덩이를 장롱 그늘 밑에 감추고 숨죽였다.
아, 바퀴벌레만큼은 엄마가 잘 잡는데. 엄마의 말로, ‘사내답다’는 나는 바퀴벌레 앞에선 한
없이 두려움에 떨었다. 차라리 사자를 때려잡고 말지, 그리고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엄마
가 빨리 들어와야 할텐데.
통통탕탕탕탕...... 발소리다. 달도 뜨지 않는 그믐의 밤. 숲 집을 침범한 자의 발소리. 슬
레이트 지붕을 요란스레 두드리며 경보를 울렸다. 반갑지 않은 빗소리였다. 나는 온 감각을
긴장시켰다. 엄마가 늦곤 하는 이 밤들을 얼마나 평온하고 고즈넉하게 보냈던가. 그러나 자
기연민에 빠질 때가 아니다. 빗속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지. 주황색 비닐 우비를 양 팔에 꿰
어 뒤집어쓰듯이 입고, 그리고 신발장 위의 손전등을 집어 든다. 현관문을 열자 습습한 비내
음이 천천히 새어든다. 통통 철계단이 울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외할아버지께서
잠이 덜 깬 표정에 창백한 얼굴을 하시고 옥상계단에서 내려오고 계셨다. 우리는 빗방울이
하얗게 얼룩진 복도의 창을 열어 마당이 있을 어둠 속을 내려다보았다. 옥상을 타고 내려온
빗물받이에서 마당으로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당 곁에 축대를 올려 높게 만든 화단
의 하수관에서도 물이 쏟아져 내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마당으로 고여 들며 못을
만들고 있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에 비해 마당 한가운데의 하수구는 너무나 자그맣고
귀여웠다. 그 동그란 연둣빛 배출구는 과거 소통의 추억을 가진 배꼽처럼 마당 한가운데에
박혀있었다. 그리고 내리는 비를 관망하며, 더 깊은 곳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둘둘 말린 비
닐호스를 들고 발목까지 찰랑찰랑 차오른 물을 첨벙첨벙 거리며 걸어갔다. 내가 앞서 걸어
가면 늘 내 팔을 밀어 두시고는 호스를 빼앗아 혼자 걸어가 손수 작업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오늘은 뒤편에 서서 내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대로 흙탕물을
쏟아내는 화단의 하수관에 비닐호스를 끼웠다. 그제야 할아버지께서 첨벙거리며 마당 한가
운데로 걸어오시더니 반대편을 끌고 가, 지대가 높은 쪽 맨홀에 끼워 넣었다. 나는 마당 한
가운데의 하수도를 장화신은 뭉특한 발로 후벼 팠다. 하수도를 막고 있던 풀잎 몇장과 흙 한
줌이 붕 떠오르며 소용돌이가 생겼다.
“그것은 사고였어.”
약혼자와 함께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는 아빠가 엄마를 임신시키는 사고를 친 것이 아빠
만의 잘못도 아니었다. 엄마는 임신을 하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 학교에 다녔고, 낳게 된 날
이 되어서야 자기 낳은 것이 아기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낳고 학교만은 다닐 수 없게 되었
지만, 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엄마의 방랑벽을 외할아버지는 잘 아셨다. 아빠가 인사를
하러 집에 왔을 때, 외할아버지는 딸을 임신시킨 남자를 덮어놓고 짐승 취급하는 여느 딸가
진 부모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아빠를 대하셨다. 오히려 창창하던 앞날이 허물어져가는 청년
을 위로하셨다. 그런 둘의 책임감에 몸서리치는 것이 엄마였다.
아빠와 외할아버지는 천방지축 소녀를 이해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으로서 끈끈한
동지애를 갖게 되었다. 아빠는 적극적으로 외할아버지를 따랐고 외할아버지께 운을 띄웠을
뿐인 말들을 잘 들어두었다. 그리고 간단한 집 설계를 시작으로 집을 지었다. 매형된 아빠를
아주 좋아하며 따랐던 외삼촌도 집을 짓는데 아주 적극이었다. 입으로만 바빴지 손끝하나
까딱 않고 밤낮 놀러만 다니는 엄마를 빼고는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아버지 모두가 하나 되
어 전등 스위치부터 타일이며 벽지까지 함께 알아보았다. 아버지는 어린 엄마를 사랑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엄마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는 늘 날 좀 내버려 두란 말이야. 방목해
달라구. 를 입버릇처럼 붙이고 살았다. 얄미운 여선생의 약혼자의 빼앗아 보겠다던 유치한
생각이 내인생을 망쳤어. 오빠, 제발 지금이라도 날 놓아줘. 난 자기 원망 안할깨? 응?
작은 배출구가 열리자, 물은 빙글빙글 돌아가며 조금씩 빠져나갔다. 우리는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당에 어수선하게 남은 젖은 흙들을 비질해서 화단으로 올렸다. 빗소리가 거
세서 우리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화단을 둘러놓은 벽돌이 금가고 낡아 그 틈으로 흙
과 풀잎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일은 화단부터 정리해야지. 날이 좋은 날엔 깨진 벽
돌부터 보수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작년 여름부터였다. 어쨌든 이쯤 해 두면 일단 큰 비를
피해 갈만한 최소한의 조치는 마친 셈이다. 집이 나이 먹어 갈수록 챙겨주어야 할 것도 하나
씩 늘었다. 온갖 작은 곤충들과 들이치는 찬 바람과, 여름날 내려 지붕에 한 쪽에 스몄다가
미쳐 날아오르지 못한 물방울들과, 작은 이끼와 씨앗들에게 늘 살 곳을 내어 주는 낡은 집의
모습은 어쩐지 아빠의 눈빛처럼 안타까웠다. 검고 투박한 모양새에 담쟁이와 등나무 따위를
띠쳐럼 두르고 있었다. 집을 지을 때 주변의 땅 주인과 협상을 하지 못해, 삼각형으로 잘리
고 말았던 엉성한 마당도 이 집이 불안해 보이는 데 한 몫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족과 이 집
은 오랫동안 퍼즐처럼 맞물리며 닮아가고 있었다. 집안 곳곳의 이야기들과 자취들은, 이 집
곳곳의 삭은 자리마다 스며있었고, 생각과 추억거리들은 언제고 한 번씩 주워 읽을 만큼 여
기저기 툭, 발에 채였다. 엄마가 나를 낳고 난 뒤, 아빠, 외할아버지, 외삼촌이 함께 만든 집
이었다. 이 집을 짓게 한 것도 그녀이지만 이 집에 있어 가장 무책임 한 것도, 그녀이다. 중
학생 주제에 대학원 준비하느라 바쁜 아빠를 철없이 따라다니던 그녀는 아이를 낳은 뒤에는
그것이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계단에 올라서서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대리석 계단에 젖은 슬리퍼의 흔
적을 남기며 계단을 올랐다. 할아버지는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시며 웃으셨다. 쳐진 눈꼬리
끝에 매달린 포근한 웃음에 마음이 편안해 졌다. 할아버지는 통통통 발소리를 내며 옥상으
로 올라가셨다. 불 켜진 내 방은 지친 동물이 찾아드는 굴처럼 포근했다.
나는 방문을 열고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무언가가 밟히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
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발바닥을 보호하려는 반사신경의 반응으로써, 발꿈치를 살짝 들
었을 뿐이다. 그 발바닥의 촉감이 채 사라지기 전이었다. 소설책 한권을 들고 다시 이부자
리로 돌아오는 내 눈에 커다란 바퀴의 잔해가 보였다. 육즙이 내 왼쪽 발바닥 닿은 방바닥
곳곳마다 조금씩 묻어있었다.
새벽 미명, 5:03분. 새가 어둠을 쪼아내듯 고요 속에서 짹짹 지저귀기 시작한다. 아주 고
즈넉한 소리였음에도 방금까지 꾸었던 꿈들이 기억의 손이 닿지 않을만큼 멀리 흩어져 버렸
다.
엄마가 누워있어야 할 요 위에는, 이불이 어젯밤 모양 그대로 동그랗게 말린 채였다. 커
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나는 엄마의 이불을 걷어버렸다. 다시는 대신 개 주지 않으려
했는데. 요를 들어 풀썩 털자, 엄마가 늘 안고 자는 돼지 인형이 툭 떨어진다. 엄마의 남자친
구 ‘준호아저씨’가 준 것이다. 엄마의 남자친구라서 아저씨일 뿐, 나랑 나이차이가 여섯 살
밖에 나지 않는다. 철없는 청춘들. 나는 돼지의 못생긴 코를 꽉 깨문채로 얼굴을 흔들었다.
꽉 물면 물 수록, 반응없는 녀석이 더 얄미웠다. 아귀가 아파오자 더 화가나서 아귀에 더 힘
을 주었다. 그리고는 인형을 이불장 가장 아랫칸에 쑤셔 박아버렸다. 창밖에서 이불을 개는
나를 보는 맞은편 옥상 누렁이가 꼬리를 흔든다. 지난 봄부터 저기 있던 녀석이다. 3월경, 이
옥상에 처음 놓였을 때, 저 녀석은 젖을 마악 떼고 온 모양인지 봄눈처럼 보송하고 자그마했
다. 그러던 녀석은 잔반만 먹고도 잘 자라서 벌써 어른 키만하다. 아주 이따금 빨래를 널러
올라오는 여인 말고는 올라가보는 사람도 없는 그런 작은 옥상이었다. 녀석의 눈은 퍽 쓸쓸
해 보였다. 창만 열면, 내 책상과 마주하고 있는 누렁이가 싫지 않았다. 이따금은 내 기분이
어떻건 꼬리를 흔들어 대고 친한 척을 하는 그 모습이 괜히 성가신 날이 오기도 했다. 그럴
땐 그 쪽 창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한번은 내가 글줄을 쓰고 있을 때, 누렁이가 하얀
빨래를 물어내려 흙발자국을 찍으며 뛰어놀았다. 흰 빨래가 발자국으로 더럽혀지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퍽 즐거운 볼거리였다. 그날 저녁, 누렁이는 2m도 안되는 짧은 목줄에
메여 있었다. 꽤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 녀석은 날 보고 몸에 바람을 넣듯 푸욱 일어
서더니 꼬리를 슬슬 흔들었다. ‘어이, 공범?’ 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빨
래장난마저 할 수 없게 된 누렁이는 살만 포실하게 쪘다.
커피를 마시다가 찻잔을 쨍 하고 내려놓았다. 베란다에서 푸드덕 소리와 함께 회갈색 덩
어리가 휙 날아올랐다. 그것은 베란다 여기저기 부딪고는 뚝 떨어졌다가, 이내 또 날아올랐
다. 나는 찻잔을 들어 올리다가 다시 쨍 하고 내려놓고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갈라진
타일 바닥 위에 새가 죽은 듯이 떨어져 있다. 몸체가 동그마한 것이 어린 새인 모양이었다.
발그레 한 부리가 머리에 비해 컸다. 그 검고 영롱한 눈동자를 보니, 엄마가 ‘좌르륵’ 쏟아놓
던 해바라기 씨 쵸코볼을 떠올랐다. 대리석 바닥을 튀며 구르는 쵸코볼을, 엄마는 연신 주워
서 입에 넣으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새는 별안간 푸다다닥 하고 날아올랐고, 나는 어깨를 들
썩이며 물러섰다. 맑지도 않은 유리에 정신없이 머리를 받는 새가 답답하기만 했다. 유리 한
장 너머, 커다란 측백나무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새 한 마리는 유리 안쪽에서 나가겠다
고 머리가 깨어지도록 법석이고, 어린 새끼 새 두어 마리는 둘이 노는데만 정신이 팔려, 측
백나무 가지가 들썩이도록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튕기며 까부는 모양이 고무줄
사이로 노는 여자애들 같았다.
늙은 측백나무는 이 집을 짓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었다. 마당을 시멘트로 바를 때, 저 큰
나무를 어쩌지 못하고 밑동 주변만 둥그렇게 피해 발랐다고 한다. 측백나무 위와 시멘트 틈
새에서는 끊임없이 빨간 개미가 줄지어 나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면, 하
얗게 발린 시멘트 바닥위에, 노인네의 살비듬마냥 시든 측백나무 잎 쪽들이 와그르르 쏟아
져 있었다. 늙은 여자처럼 내 마당 위에 제 식구들을 품고 기르는 측백나무의 그늘은 점점
더 어둡고 커지며 내 마당을, 집을 잠식해왔다. 난 공연히 나무가 원망스러웠다. 창밖이나
베란다 쪽이나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새를 보니 머리가 아팠다. 도대체 새가 들어올만한 구
멍이 어디에 나 있는 걸까? 나는 일어나서 신경질 적으로 커튼을 쳤다. 그 와중에도 새는 콩,
콩 정신없이 유리에 박아댔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였다.
“강남 백병원으로 오너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나는 어쩐지 이유를 묻고 싶지가 않았다.
엄마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던 남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 엄마도 피를 많이 흘려서
위험했지만 목숨은 어린 새의 숨만큼 붙어 심장만 간신히 뛰고 있었다. 붉고 푸르게 부어오
른 얼굴은 너무나 무기력 해, 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집을 나서던 엄마의 당돌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양 어깨는 굵은 땀으로 꿰매어 간신히 수습되어 있어 관절인형의 것처럼 흉측했
다. 그녀 온 몸에서 생기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도 외할아버지도 나도 아무 말이 없
었다. 그녀에 있어서 우리가 바라던 것은, 건강을 위해 담배를 줄이는 것, 아침식사를 하는
것,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지 않는 것 단 세가지 였다. 엄마는 그런 우리의 바람
조차, 버거워 하였다. 엄마는 결국 자기 몸을 부서뜨리면서까지 분노를 표출하는 것처럼 보
였다. 아, 그러기엔 너무나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우리 곁을, 낡은
집을 떠나가고 싶어했던 엄마였다. 그런데 엄마는 하필 우리 셋이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곁에 모여있던 시각에 눈을 떴다. 우리 모두의 곁에서 수술한 지 64시간 만에 깨어난 엄마는
어린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아침의 마당은 새벽햇살에 물기를 말리고 있었다. 마당을 가로지른 비닐 호스는 퉁퉁하
게 부풀어 올라, 죽어 배를 드러낸 구렁이 같았다.
화단을 두른 벽돌의 깨진 금으로 밀려나온 흙들을 보고 섰다가 화단 곁에 쭈그려 앉았
다. 그리고 깨진 벽돌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화단 한켠엔 검은 항아리도 하나, 벽돌인양 구
석에 엎드려 웅크리고 있었다. 검고 반질한 것이 벽돌과 비슷해 보여서 눈에 띄지 않았고그
게 그곳에 있는 줄도 몰랐다. 진흙을 뒤집어 쓴 항아리를 수도에 씻어보았다. 닦고 보니 항
아리는 제법 반질하고 쓸 만해 보였다. 항아리까지 집어낸 화단 둘레는 휑했다.
“MRI상으로는, 뇌의 손상 정도가 크게 나타나진 않았습니다만, 이 환자의 경우 회복기
동안 세심히 지켜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감각신경은 무리 없이 회복 될 것으로 보이지만,
기억의 손상은 다소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라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만…….”
의사는 알 수 없을 말만, 또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그런 말만 했다. 엄마는 우리가 머리위
에서, 이러쿵저러쿵 자기에 대해 떠들어 대도 아무 대꾸도 반응도 없었다. 우리 셋의 말이
맞다고 해도 엄마는 본인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세사람을 촌스럽게 여길 수 있는 대단한 당
당함을 갖고 있는 여자였는데. 이제는 그런 눈빛마저 사라지고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로,
사물처럼 누워있었다. 엄마의 머리 한 쪽이 텅 빈 여백인 채 남아있는 동안, 저편에 조그맣
게 말려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조금씩 엷게 퍼지고 있었나보다. 어느 날 아침, 엄마의
텅 빈 눈동자로 기억의 파도가 흘러 나왔다. 어린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 곁에서
나는 꽤 냉담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엄마가 낯설어, 어떻게 행동 해야 할지 알 수 없
었다. 외할아버지께서 젖은 시트 위로 몸을 숙여 엄마를 측은하게 바라보자, 엄마는 팔을 뻗
어 외할아버지를 꼭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더 크게 울어댔다.
엄마는 깊은 곳의 기억을 끌어와, 천방지축의 어린 어린이가 되었다. 우리 가족 중 아무
도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을 위해 울어주지 못했다. 그동안 지나친 술과 담배, 불규칙적인 생
활로 인해 엄마의 몸은 많이 낡아있었다. 그런 엄마의 몸은 어린아이의 삶을 살며 조금씩 회
복 되어갔다.
마당 뒷 켠에 쌓아두었던 벽돌들을 기억해 내고는 마당 안쪽으로 걸어 돌아갔다. 문득,
마당 안쪽으로 움집처럼 뚫려있는 지하방 두 칸이 떠올랐다. 빗물이 몇 번 새어들어 세입자
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집이 위태로울때의 공포는 어떤 것일까. 그로 인해 몇 년 전부턴
사람들이 살지도 않는 굴 같은 방이었다. 간밤 살펴보는 것을 깜박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다. 지하로 통하는 복도 바닥의 타일을 보니 보얀 먼지가 앉은 것이 그간 물이 새어들진
않은 모양이다. 흘러드는 물 없이도, 쉼 없이 고여 드는 습한 공기들이 벽 안쪽에 달려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곳이었다. 지하방을 열고 조명을 켰다. 눅눅한 공기가 끼쳐왔지만 기분이
좋았다. 이십년 전쯤, 도배도 안 된 이 지하방에 남자친구와 숨어들어 키스도 했었지. 이제
는 홀로 남은 숲집 에서의 비오는 밤은 그리 낭만적인 밤이 아니다. 나는 빗소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연을 가졌으니까. 지하방에서 현관 쪽으로 나서자 오전의 햇살이 날
카롭게 비쳐들었다. 빗소리마저 개운하게 말리는 태양빛이었다.
컨테이너 트럭 위에 회색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능청스레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맛살을 뜯어서 던졌다. 깜짝 놀란 새끼고양이는 돌담을 타고 잽싸게 달
아났다. 컨테이너 트럭 위에 하얀 살을 드러낸 맛살조각만 덩그러니 놓였다. 괜히 짭잘함만
감도는 입맛만 다셨다. 새끼고양이는 먹이를 주는 내 손짓에 겁을 먹고 도망 갈 뿐이다. 던
저 준 그것이 얼마나 맛이 향그럽고, 소중한 것인지를 녀석은 알 리가 없다. 문득 고양이의
눈빛이 낯익다는 것을 발견해내며 몸서리쳤다. 우리에게 길들여지지 못한 것처럼, 상쳐입
은 어린아이는 영영 자라지 않고 엄마 안에 고여 있었다.
아빠가 바라는 아내가 되는 것은 여자로써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받아주고, 곁
에서 튕겨나가지 않는 것뿐. 우린 이제 그만 마셔. 일찍 들어와. 등속의 말로 사랑을 부어주
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지독하게 몸부림쳤다.
“이런 내 인생이 지긋지긋해! 이게 뭐야. 내 친구들은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난 아저씨
같은 남편이 맨날 나만 보면 술 그만마셔라 일찍 들어와라 잔소리만 하고.”
아빠는 아무 말없이 잔소리를 멈추곤 했다. 엄마의 그 다음 말,
“답답해. 이런 집이 너무 싫어! 나가 버릴꺼야!”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가 말이 없어지면 보란 듯
이 다시 밖으로 나가 놀곤 했다.
“이렇게 큰 애 엄마인게 창피해!”
라고 엄마가 외치는 순간은, 아빠도 나도 기가 막혀서 뭐라 대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칠 않았다. 아빠는 내게도 엄마에게도, 미안하다 하셨다. 기가 질려 말이 없는 우리들을
뒤로하고, 엄마만 문을 힘차게 열어 재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애 엄마인 것이 정말 창피
할 만큼 보란 듯이 실컷 놀고 술을 마시다가 새벽녘에 되어서야 돌아왔다. 난 그런 엄마를
앞으로 보지도 않을 작정인 것처럼 나와 보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가 들어오는 순간까지 귀
만은 쫑긋 세운다. 엄마가 집에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누워 잠들었다가, 벌떡 일어나
서 욕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다 욕조에 기대 잠든 엄마를 잊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야 깨어 욕실로 달려간다. 그럴때 마다 이미 깨끗이 정돈된 욕실을 맞닥
뜨리곤 했다. 불 켜진 부엌엔 누군가 올려놓은 콩나물국이 한소끔 끓어 퐁퐁 비오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엄마는 눈뜨고 밤을 지새우는 아빠 곁에 코를 골며 누워있곤했다. 지하에서 나
와 마당 뒤로 돌아갔다. 축대가 꽤 높은 우리 집 아래로 아랫동네가 보였다. 그 때 어디선가
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담 넘어 우리 건너편 집 쪽에서 연기가 밀려오고 있다. 난 집 뒤로
더 돌아들어갔다. 남자 둘이서 집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빨간 목장갑 낀 손으로 파
란 불꽃을 뿜는 부탄가스를 쥐고 흔들자, 다른 한 손으로 쥔 뻣뻣한 물체에 검은 얼룩이 생
기며 탔다. 다른 한 쌍의 목장갑도 물체를 뒤집어 가며, 골고루 그슬리게 했다. 검은 물체의
한쪽엔 붉은 깃발같은 것이 달려, 전체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스산하게 덜렁거렸다. 그것은
누렁이의 다정했던 혀였다.
한낮의 햇살이 짙어지자, 앞집의 네살박이 병우가 마당으로 나와 수도를 틀었다. 그리고
고 조막손으로 세수를 했다. 병우는 왼발 슬리퍼를 오른쪽에, 오른발 슬리퍼를 왼쪽에 꿰어
신고는, 아장 아장 뛰듯이 걸었다. 난 저거구나 싶었다. 엄마는 저것을 언젠가 보아두었던
모양이다. 어제 운동화를 신을 때 제 신발을 벗어 좌우를 바꾸어 신으며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런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었지만 엄마의 헤벌쭉 웃는 낯을 보니 힘이 빠져 웃고
말았었다.
엄마는 환한 방 안에서 아직도 자고 있었다. 엄마의 살짝 올라간 윗입술을 보
니 꼬집고 싶어져 손가락을 가져다 대 보았다. 엄마는 요즘 괜한 것에 고집을 부린다. 우유
를 마셔도 컵에 따른 것은 절대 마시려 하지 않는다. 꼭 200ml우유팩을 살짝 뜯어서 젖 빨듯
이 혀를 대고 빨아서 마시려고 한다. 애기처럼 그게 뭐야! 따위의 말은 먹히지 않는다. 이제
그런 말은 신경도 쓰지 않을 만큼, 정말 어린아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우유를 빨아
먹는 엄마 앞에서 미간을 보란 듯이 찌푸리며, 남아있던 200ml의 우유팩 마저 뜯어서 컵에
쪼르륵 부어버렸다. 그리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엄마는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 볼 뿐이
었다. 아빠는 출근하려고 구두에 발을 꿰다가, 다시 들어와 엄마 머릴 슥슥 쓸었다. 엄만 입
가에 묻은 우유를 아버지의 검은 양복에 묻혀가며 헤헤 웃었다. 바람이 슥 들어왔다. 엄마
가 몸을 움츠린다. 마른 어깨엔 아직도 파란 멍과 수술한 봉합자국이 남아있다. 바람이 돌아
나간 열린 창 밖으로 누렁이가 놀던 옥상이 보였다. 빨간 목줄만 덩그러니 비어있고 반기는
이 없었다. 엄마가 깨어나면 저 목줄이라도 가져다가 누렁이를 무덤을 만들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목줄 없이 뛰어 놀던 누렁이를 생각하며 영혼만이라도 자유롭게 이 세상을 떠나도록
기도해 주었다.
창 밑으로 벽돌이 4~50장 정도가 시멘트 담 아래에 쌓여있던 것을 본 것 같은데, 남아
있는 것은 여섯장 뿐이었다. 넙죽한 그 벽돌은 코렐 그릇처럼 공식화 된 것이 아니었다. 내
가 중학생일 때에 외삼촌과 트럭을 가지고 벽돌 공장에 가서 주문한 것이다. 삼촌과 이것들
을 하나하나 손수 고르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시간이 오래 되어 잊을 법도 한데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삼촌이 이 집을 들르곤 할 때마다 이 집을 지을 때 본인이 공헌한 바에
대해서 섭섭잖게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여든을 바라보아 백발이 성성한 삼촌
이다. 삼촌이 벽돌을 고른 기준은 표면이 고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을 이루는 모든 재
료가 그렇다. 이 집의 인상을 더 칙칙하게 하는 데에는 이 벽돌도 한 몫 하리라. 유난히 넙죽
하고 검은 것은 것이 울퉁불퉁하기까지 한 것을 보면, 삼촌은 붉고 고운 것과는 거리가 먼
놈으로만 골라놓았다. ‘크고 단단한 놈’이 그 기준이라 말하던 삼촌이다. 첫눈에도 이 집이
오래되어 삭고 허물어져도 벽돌만큼은 남아있을 거라고 믿게끔 하는 그런 이상스레 든든한
녀석이었다.
삼촌이 좋아하는 아버지도 늘 그렇게, 못생긴 벽돌처럼 엄마를 품어왔다.
새삼스레 벽돌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벽돌을 찾으려고 그랬는지 공연히 집 대
문을 나서서 골목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무의식중에 집안 곳곳에
놓인 벽돌들을 보며 치나친 것 같은데 그것이 어디 있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옆집 대문 앞에 요강만한 분홍 통이 놓여있다. 8월의 음식물 배출을 허용하는 숫자
‘8’이 그려진 종이스티커를 붙이고서, 머리엔 낯익은 벽돌을 얹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외삼
촌의 벽돌이다! 거기가 제자리인 마냥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누르고 있었는데 떡두꺼비처
럼 앉아있는 모양새가 제법 대견해 보였다. 난 이것이 여기 놓여있는 것을 어제도 그저께도
무의식중에 보며 지나다녔던 것이다. 그 벽돌을 찾아가려고 쭈그려 앉자 숫자 ‘8’스티커가
눈망울처럼 젖어 날 바라보았다. ‘이것을 들어내면 배고픈 길고양이들이 음식을 찾아 통을
뛰어넘을 것이고, 통은 엎어져 고개를 휘휘 굴리며 생선 대가리며 썩은 냄새나는 국물들을
뱉어 낼거야. 성가시지? 혼나기 싫은 가여운 고양이 녀석들은 뚜껑을 열 줄만 알았지 닫을
줄은 모르니까.’
나는 잃어버린 벽돌들을 마저 찾지 못하고 골목을 나섰다. 뒷산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간다. 봄철에 제비꽃을 꺾으러 갔다가 보았던 미나리 군락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그 뻘
속에 연두 줄기들이 힘차게 뻗어 올라 있었는데. 아까 화단에 엎어져있던 항아리에 심을 요
량이었다. 밤마다 들려오는 낡은 집의 사각거림, 그 음험함을 잊기엔 미나리 순 씹는것도 괜
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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