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 작성일 200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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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이 생전에 좋아하던 명태전과 해물 전을 지지고 탕과 육포며 어포, 과일에 제사음식 준비가 거의 끝나 갈 무렵 동현의 어머니가 왔다.
“혼자서 장만하느라 수고가 많았겠구나?”
“아니에요. 어머님 아줌마가 거의 해 놓고 가서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보며 차 여사가 말을 건네자 그녀는 갓 지져낸 해물 전을 한 조각 떼어 시어머니 입에 넘어주며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다음부터는 현세 애비 제사를 절에 맡길 생각이다 네게도 좋은 사람이 생긴 것 같은데 더 이상 네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할 순 없을 것 같아서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님? 현세 아빠 제사를 절에 맡기시겠다는 말씀은 뭐구 제가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말씀의 뜻은 또 무슨 뜻으로 받아 드려야 해요? 어머님?”
아들의 제사를 절에 맡기겠다는 차 여사의 가시 돋친 말의 세라는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슨 뜻이긴 네가 개가를 할 거란 전제 하에서 미리 적응을 해 두자는 거지 또 네게 할 말이 있다 어차피 현세도 우리가 길러야하니 한 달에 보름은 내가 데려가마 현세도 서서히 애밀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니까.”
“여태까지 제가 그 사람 제사를 지내 왔는데 새삼스럽게 절에 맡기시겠다니 저로서는 어머님 말씀의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고칠 것 아니겠어요. 어머님”
동현이 군에서 대 간첩 작전의 선두에서 지휘를 하다 도주하던 무장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전사를 하자 동현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존해 있어서 동현의 제사를 집에서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자식이 있는데 절에다 맡긴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세라가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태도로 보아 아무래도 어제 승탁과의 만남을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기왕에 이야기 나온 김에 툭 터놓고 이야기 하마 너 어제 남자 만나지 않았니?”
“네 만났어요. 하지만 별 뜻 없이 차 한 잔 마신 것뿐이에요.”
차를 한잔 마신 것 뿐 별다른 뜻이 없었다는 세라의 강변을 차 여사는 액면 그대로 믿지 못 하다겠단 표정을 지었다.
“남녀 관계란 모르는 법이다. 너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 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너도 그 쪽으로 마음을 구친 거냐?”
“어머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전 재혼 같은 거 안 해요. 전 현세만 있으면 되요. 그 사람이 아직도 제 가슴에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사람을 잊고 다른 사람을 받아 드리겠어요.”
세라는 6년이란 세월을 홀로 살았으니 그만하면 간 사람의 대한 도리는 다 한 거니 이제 새 사람 만나서 자신 마냥 청상으로 늙을 거냐며 여러 번 친정어머니가 말했었지만 번번이 이를 묵살 해 왔었다. 시어머니 차 여사도 세라의 마음을 조금은 알았는지 딸의 말만 듣고 홀로된 며느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서먹서먹했던 둘의 사이가 좁혀져 갈 즘 다시 둘 사이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을 전화벨이 울렸다.
“나예요. 승탁이 잘 들어갔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죠? 깜빡 잊고 말하지 못 한 게 있는데 이놈에 건망증 때문에 가끔 이럴 때가 있다니까요. 그래서 이따 내 퇴근 무렵쯤 돼서 낮에 만난 그 카페 아시죠. 그리로 좀 나오시겠어요?”
“승탁이 너 아까부터 좀 이상하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게 할 말이란 게 뭔데 그래?”
세라는 승탁이 건망증 때문에 할 말을 잊었다며 다시 만나자는 승탁의 말에 그의 의도가 아리송해 신경질적으로 쏘아 붙었다.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갈게요. 현세도 본지도 꽤 된 것 같은데 현세 맛있는 거 사가야 하겠는데 무엇을 좋아하죠? 피자 사갈까? 세라 씨! 세라 씨! 왜 대답이 없어요?”
“글쎄 이러지 말란 말이야. 알만 한 사람이 벽창호 같이 왜 이러는 거야. 앞으로 전화도 하지마”
누나누나 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라 씨로 호칭을 바꾸고······· 승탁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은 알았으나 이름을 두 번씩이나 불리고 나니 어 안이 벙벙하여 그녀는 더 이상 말대꾸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만난 사람 같은데 나가보지 그러냐? 지금 같은 세상에 널 보고 수절하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 더냐 살 사람이야 어떻게든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죽은 놈만 불쌍하지 박복한 녀석”
“어머님 전화한 사람은 저보다 어려요. 그리구요. 전 재혼을 한 다해도 현세를 길러놓고 그 다음에 재혼을 해도 할 거예요. 안 할 수도 있구요. 그러니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씀은 더 이상 하시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세라는 겉으로는 개가를 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남자로부터 전화가 오자 섭섭한 빛이 역력한 차 여사의 마을을 풀어 주기에 애를 쏟았다.
“아가 그 말을 믿어도 되겠니? 우린 너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제가 홀어머니의 딸인데도 절 흔쾌히 며느리로 받아 드리셨어요. 그리고 현세 아빠도 제게 과분할 정도로 행복하게 해주었었지요. 그런 사람의 사랑을 받아놓고 그 사람이 죽었다하여 다른 사람을 받아 드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대한 또 다른 배신이 아닐까요.”
차 여사는 며느리가 개가를 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대견한 생각이 들면서도 어딘가 홀로 살아갈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져 죽은 아들이 더없이 원망스러워졌다.
갖갖으로 시어머니 차 여사의 마음을 풀어주고 사람 만나는 일에 소홀히 해 이러한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자신에게 세라는 좀 더 대인 관계를 신중히 했어야 하지 않았었냐는 자책이 들었다. 뒷마무리를 하는 며느리를 도와 깔끔하게 일을 끝낸 차 여사는 제상을 차리는 세라를 보자 아들 생각에 사방을 뛰어 다니는 손자를 붙들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손자 현세를 힘껏 안아주고 설움에 복받쳐 가겠다는 말도 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라는 저녁 진지라도 드시고 가세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부모 먼저 간 자식의 제상을 보지 않으려는 시어머니의 마음 또한 모르는 것이 아니 여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세라가 제사 상차림을 끝내고 현세에게 새 옷으로 갈아입히려 할 무렵 현관 벨이 울렸다.
“세라 씨 우선 이것부터 받아요.”
“뭐 세라 씨! 아까는 얼떨결에 그냥 넘겼는데 자꾸 들으니 좀 거북하다. 그런 말은 삼가 해 주었으면 좋겠어”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꽃다발과 파자 상자를 자신에게 내밀며 세라 씨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승탁을 그녀는 팔짱을 키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거 되게 도도하게 나오시네 다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이름 뒤에 씨자 하나 붙었다구 그렇게나 불쾌해요?”
“무슨 소리야? 하루 볕이 어딘데 그나저나 왜 그래 나의 대한 감정이 어떤 건데 그래 너의 속마음이나 알자?”
“나 누나가 동현이 형이랑 결혼하기 아니 그 이전부터 누나를 사랑 했었어 누나 아니 세라 씨가 두 살 연상이라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었지 그러다 동현이 형에게 세라 씨를 빼앗겼지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거야. 연상이면 어때 세라 씨도 그만 새 출발 해 상대는 멀리서 찾으려 애쓰지 말고 아줌마도 내가 새 사위가 된다면 기뻐하실 테니까.”
“너 오늘 뭐 잘못 먹었니? 누가 너하고 결혼한데 나는 너를 동생 이상에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어 그것은 나의 대한 너의 연민이 사랑으로 착각하게 했을 거야. 그러니 나의 대한 감정을 접어 두었으면 해 그리고 너의 아버지께서 날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야. 우리 엄마가 너의 아버지께선 보수적이시다라고 말씀 하시더라 그런데 아이까지 딸린 데다 연상인 나를 며느리로 받아 드려 주시겠니?”
거두절미하게 자신에게 청혼을 하는 그에게 세라는 그의 아버지의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고 승탁의 청혼을 거절했다.
세라의 어머니가 승탁의 아버지의 대해 잘 아는 것은 중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동창이긴 했지만 승탁의 아버지가 세라의 어머니 보다········ 병 때문에 학교를 늦게 들어 간 관계로 두 살이 위였다. 그런 연유로 승탁의 아버지에게 세라의 어머니는 경어를 썼고 친오빠가 없는 그녀는 그를 떠났다 7~8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히 두 사람은 사랑하는 감정이 싹텄지만 승탁의 조부와 조모의 반대에 부딪쳐 결혼은 무산되고 말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서로 한 마음에서 배필을 골라 결혼을 했고 같은 마음에서 살았다. 하지만 먼저 결혼한 세라 어머니는 남봉꾼에다 주정뱅이인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10년 뒤 승탁의 어머니도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속내는 판이하게 달라 세라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살 거리 두들겨 맞으며 산 탓에 남자라면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남자의 대한 그리움이 없어 재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면 보수적인 데는 있었지만 승탁의 아버지는 아내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아내가 세상을 등진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재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마을에서 나고 자난 세라와 승탁은 부모들의 친분 관계로 그리고 외아들과 무남독녀라 친누이 친동생처럼 지냈다.
“내일 주말인데 용평에 스키 타러 가요? 현세도 좋아할 거예요. 실은 내일이 내 귀빠진 날이거든요.”
“어머 깜빡했다. 어쨌든 축하해 내가 바쁘다 보니 깜빡할 때가 많아 미안하다.”
내일이 생일이라는 승탁의 말에 그녀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이 전사를 한 이후로 6년 동안 그녀는 스키장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용평이 고향이라 어린 적부터 스키를 첩 할 기회가 많아 스키 타는 데에는 일과 견이 있었지만 웬 일인지 남편 없이 혼자 간다는 게 내키지 않아 한번 가볼까 하다가도 그만 두었었다.
연애시절 그녀의 코치 하에 동현도 곧잘 스키를 타고 마침내 그녀를 앞도 할 정도로 실력을 쌓아 열렬한 스키 광이 되었다. 남편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까닭에 설 명절의 고향인 용평엘 가도 스키장에는 가지 않았었다.
“생일 선물로 함께 가주었으면 하는데 어때요?”
“알았으니까 오늘이 현세아빠 기일이거든 미안 하지만 그만 돌아가 줄래?”
남편의 제상이 놓인 집안에 외 갓 남자를 오래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 죽은 남편의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싶어 그를 돌려보낸 생각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승탁이 세라에게 스키장엘 가자고 한 것은 그녀에게 멋있게 사랑 고백을 하기 위해서였으나 그녀가 다그치는 바람에 스키장에 가기도 전에 사랑했었다는 말이 불쑥 튀어나와 속이 무척 상했다. 주말 아침 동트기가 무섭게 승탁이 찾아와 한참 잠에 빠져있는 세라 모자를 깨웠다. 내키진 않았지만 어쨌든 약속은 약속인지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묵혀 놓았던 스키 장비를 챙겨 용평으로 떠날 차비를 꾸렸다.
용평에 도착하니 때마침 겨울 들어 첫 눈이 펑펑 내려 스키 타러 온 사람들의 입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현세 아빠도 여기 스키 타러 왔을 때 이렇게 합방 눈이 내리면 저 사람들처럼 좋아했었지 지금도 환하게 그 모습이 눈에 떠올라”
“지금쯤 잊을 때도 됐잖아 세라 씨 우리도 슬슬 시작해 볼까”
“그 세라 씨라구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스키고 뭐구 다 집어치우고 가버린다.”
잠잠하더니 아예 반말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에게 그녀는 가버리겠다고 경고 성 엄포를 놓았다. 승탁은 그녀의 동태를 주시하면서 스키 타는 데만 열중하는 척 연기 아닌 연기를 하였다. 그러나 세라는 유아용 스키를 착용하고 어설프지만 승탁의 동작을 따라 연습을 하는 아들을 보며 남편과에 추억 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이 지구상에 모든 것은 생명체이건 무생물이건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소멸의 과정 또한 있음이 만고의 진리임을 그녀는 잘 안다. 하지만 대부분에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과는 별게 인 양 망각하며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일상에 삶 속에서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산 사람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난,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그리하여 그리움은 세월이 흐르면 흐름만큼 강줄기가 원류에서 여러 갈래로 갈리듯 잊어지는 갈래와 새록새록 가슴속에 각인되는 두 양상을 뛰게 된다. 하지만 그리움이 가슴속에 각인되는 한 갈래의 강줄기는 쇠퇴의 변화를 겪으며 즐거움을 찾아 헤메이는 또 다른 외로움으로 각인의 강줄기를 메워간다.
세라는 자신이 어떤 부류의 속할까? 죽은 남편만 그리워하며 혼자 살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건만 어머니 말처럼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나이에 청춘을 허비한다는 것도 한편 생각하면 자신에게 가혹한 형별을 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 저기 외할어머니 같은 분이 계세요?”
“네가 잘 못 본 걸 거야. 할머니는 이런 덴 안 오셔”
삶과 죽음, 그리움과 외로움의 대한 상념에 졌어 있는데 아들 현세가 외할어머니 같은 사람을 보았다며 중년의 아주머니를 가르키자 그녀는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세라는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쓰고 자세히 살펴보니 아들 현세의 말이 틀림없는 어머니 끝순 씨가 분명했다. 어머니는 같은 나이 또래의 남자와 다정히 눈 내리는 설원을 걷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 일색인 이곳에 어머니가 그것도 웬 남자와 나란히 걷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현세가 할머니하고 달려 갈까봐 다른 곳으로 데려 가려고 했으나 아이는 막무가내며 할머니하고 그 쪽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네가 여긴 웬일로 왔냐? 통 이곳에는 들르지도 않던 네가?”
“약속 때문에 왔어요. 어머 아저씨였군요? 저는 어떤 남자 분이신가 했는데 그럼 그렇지 우리 엄마가 다른 분을 사귈 분이 아니시지”
손주의 손에 이끌려 세라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된 끝순 씨는 길용 씨와의 데이트가 딸에게 들통이 난 것이 겨면 적은지 낯빛이 붉어졌다.
“아버지가 여기는 웬일이세요? 이런 곳은 젊은 사람들한테나 어울리는 곳이지 연세 드신 분들은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이 안 드세요?”
“아니 이놈이 애비한테 못할 말이 없다. 그럼 이런 곳에는 젊은 놈들만 오라는 법이라도 있단 말이더냐? 살다 살다 이젠 별 소린 다 듣겠네. 이 애비 아직 늙지 않았다. 무시하지 말아라.”
승탁이 멀리서 그들을 보고 다가와 자신이 계획했던 일이 숲으로 돌아간 것 같아 아버지 길용 씨에게 애꾸은 신경질을 부렸고 길용 씨는 길용 씨대로 지지 않고 맞받아 쳤다.
길용 씨와 끝순 씨가 이곳에 오게 된 사유는 스키장 인근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중학교 동창이 계를 치를 차례여서 자신의 호텔에서 모임을 가졌었던 것이다. 계는 남녀 혼성인데다 회장과 총무를 맡고 있는 길용 씨와 끝순 씨가 참석하지 않으면 모임에 진행상 불참이 불가피 했던 것이다.
모임이 끝나갈 무렵 짓궂은 동창들이 연거푸 술을 권하는 바람에 취기가 돈 끝순 씨가 어지럽다며 눈 구경도 할 겸 찬바람을 쐬기 위해 나가자 길용 씨도 따라 나왔던 것이다.
“엄마 아저씨가 엄마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엄마는 그런 거 못 느꼈어요?”
“아서라 우린 그런 감정 없다. 이 애미는 둘 째 치고 넌 재혼 안 할 거니? 애미와 딸이 쌍 과부라니 무슨 운명의 장난이 이다지도 짓궂을 수가 있니?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은 뼈를 깎아내는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더 늦기 전에 좋은 사람 만나서 새 출발하도록 해라.”
“그럼 엄마는 왜 여태껏 재혼하지 않았어요?”
“내 시대 때는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시대는 다르지 않니.”
끝순 씨와 딸 세라는 길용 씨 부자가 열띤 입씨름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세를 앞세우고 서로가 재혼하라, 재혼하지 안 한다 재혼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는 등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마치 친구처럼 다정히 스키장을 내려왔다.
“아니 그럼 너도 끝순이 아주마니 딸 세라를 마음에 두고 있단 말이냐?”
“예상은 했지만 역시 놀라시는군요. 네 세라 씨를 마음에 아니 사랑합니다. 설마 아버지도 끝순 아주머니를·······?”
한동안 아들의 동태를 살피던 길용 씨가 승탁에게 세라를 마음에 두고 있냐고 묻자 승탁은 사랑한다고 대답하고, 승탁도 또한 아버지도 끝순 아주머니를 이라고 말끝을 잇지 못하였다.
“그 얘와는 안 된다. 연상에 아이까지 딸린 데다 내가 반대한 더 큰 이유는 장차 네 누나가 될 사람이다. 가슴이야 아프겠지만 이 애비를 위해서 니가 단념하는 게 좋겠다.”
“아버지 그 고리타분한 생각 좀 버리세요? 결혼은 제가 하는 거지 아버지가 아니잖아요. 사랑하면 아이가 무슨 문제예요? 전 세라 씨를 포기할 수 없어요. 아무리 부자지간이라 해도 물러설 수 없어요. 사랑은 쟁취예요. 아버지가 뭐라고 하셔도 전 세라 씨와 결혼하고야 말겠어요?”
길용 씨가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온 길용 씨와 승탁은 서로 모녀를 놓고 그녀들은 알리 만무한 가운데 부자간에 갈등이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애비가 혼자 된지도 10년이 넘어서고 있다. 네 어머니도 애비가 재혼하길 바라실 게다. 이제 혼자 밥 끓어 먹는 것도 지쳤다. 니가 애빌 재혼 시켜 주지는 못 할망정 방해를 하다니 자식이라고 믿고 살겠냐? 어디”
“아버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세라 씨 어머니예요? 아버지가 저를 위해 양보하시면 안 되겠어요?”
길용 씨는 한 치에 양보도 하지 않으려는 아들과 싸워야 하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고 승탁 또한 아버지와 같은 심정이었다. 둘이 맞대고 있으면 부자간에 사이만 더 악화될 것 같아 승탁은 당분간 집을 나가 있기로 했다.
길용 씨도 그러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하에 집을 나가겠다는 승탁의 말에 승낙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 간에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이라고 두 부자는 생각했다.
길용 씨는 끝순 씨의 딸 세라를 만나 어머니를 자신과 재혼 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해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승탁도 세라의 어머니를 만날 생각을 했다.
“세라야 너 아저씨 어떻게 생각하니?”
“아저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짐작이 가요.”
길용 씨는 세라가 자리에 앉자 쑥스럽고 어색한지 헛기침을 하고 머뭇머뭇 입을 열었고 그런 길용 씨를 본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간다고 말을 받았다.
“그제 스키장에서 두 분을 뵈었을 때 너무 다정해 보였어요. 그때 처음 알았죠. 아저씨가 너희 엄마를 특별하게 생각하시고 계시다는 걸요. 그런데 프러포즈는 하셨어요. 저도 엄마를 설득 할 테니까 아저씨도 적극적으로 나서 보세요.”
“문제는 너희 어머니보다도 승탁이 녀석이 더 큰 문제다. 그 녀석이 너를 보통으로 생각하고 있지 안다는 것이야”
길용 씨는 끝순 씨를 설득하겠다는 세라의 말에 그녀가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임을 알고 조금은 기쁜 마음이 들었으나 승탁을 떠올리니 기뻤던 마음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녀도 길용 씨의 말을 듣고 승탁이 못지않게 어머니도, 젊은 딸년도 재혼을 하지 있는데 오십이 내일 모레인 사람이 재혼을 해 뭣하겠냐고 완강히 버틴 것이 불을 보듯 뻔해 길용 씨가 망설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간 승탁도 세라의 어머니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니 결혼할 수 있게끔 그녀를 설득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래 정말 우리 세라와 결혼할 생각의 대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니? 너도 잘 알다시피 세라는 남편과 사별하고 애까지 딸려있는 사람이야. 신중히 생각지 않으면 둘 다 더 불행해 진다는 것을 명심 해 야해”
“누나를 불행하게 만들 거라면 결혼할 생각도 애당초 하지 않을 겁니다. 현세도 제 자식처럼 기를 거구요 문제는 누나예요. 누나는 지금까지 죽은 사람의 환형에 사로잡혀 있어서 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끝순 씨는 승탁에게 결혼 상대자로 세라를 신중히 생각할 것을 강조했고 이에 승탁은 그녀를 불행해하게 만든다면 결혼은 생각지 않을 거라며 오히려 두 사람의 결합에는 세라 쪽에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을 작정이야. 네가 재주가 있으면 우리 세라와 결혼을 하겠고 그런지 않으면 못하겠지”
“아주머니가 반대만 하지 않으셔도 저는 천군만말를 얻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그녀는 아이까지 딸린 과부인 딸을 연하의 총각인 승탁이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자 승탁이 한편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사회의 이목이 두렵기도 하여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승탁으로서도 끝순 씨의 이러한 마음을 읽고 있던 터라 반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께서는 누나를 며느리로는 받아 드리시지 않을 생각이신가 봐요.”
“그럼 반대하신 단 말이야? 하기야 애 딸린 과부에 나이도 두 살이 윈 여자를 어느 부모가 순순히 승낙을 하시겠어 반대하시는 것이 당연하시지”
“저의 말뜻은 누나를 딸로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즉 아버지는 아주머니와의 재혼을 생각고 계시다 이 뜻입니다.”
“뭐 아버지가 나와의 재혼을 이거 뭐가 뭔지 도통 헛갈려서 온 그럼 부자간에 우리 두 모녀를 놓고 서로 신경전을 버리고 있단 말이 되는데 이일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는지 모르겠다.”
승탁으로부터 길용 씨가 자신과의 재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밖에 말의 끝순 씨는 적잖게 놀라워했다. 승탁을 만난 지 보름가량 지나서 끝순 씨는 길용 씨를 자신들의 문제와 자식들에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만났다.
“정말 나하고 재혼할 생각이에요?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이들을 위해서 승탁 아버지가 양보하시면 안 되겠어요? 나도 재혼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무슨 소리야? 이제껏 저희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어 이제라도 우리들 몫의 삶을 살자고 홀로 남겨 진다는 것이 어떤 건 줄이나 알아 그것은 삶의 의미가 하루하루 무의식 속에서 사라져 간다는 것이야. 나는 그 무의식 속에서 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어 더 늦기 전에 그러기 위해선 네가 필요해”
길용 씨의 말을 듣고 난 끝순 씨도 그의 말의 듯이 조금은 이해가 되 더 이상 자신을 포기하라는 말을 못하고 그와 헤어졌다.
“이거 놓지 못해 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이러면 안 돼 이런다구 너의 대한 나의 마음이 변하진 않아 그래 내 몸을 가질 테면 가져 하지만 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현세 아빠의 대한 추억이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너는 내 몸을 강제로 가지겠지만 나는 너를 죽은 날까지 증오할거야”
“세라 씨 제발 그 위선의 가면을 벗어 던져 세라 씨도 날 사랑하고 있잖아 난 알 수 있어 세라 씨가 얼마나 나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퇴근길에 할 말이 있다며 세라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데려온 승탁은 그녀의 몸을 가지려다 완강히 버티던 그녀가 스스로 옷을 벗으려 하자 주춤하고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선 승탁은 욕실로 들어가 자신의 비열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씻으려는 듯 찬물로 샤워를 했다.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한 세라는 승탁이 샤워를 하는 동안 숨을 죽이고 살며시 그의 오피스텔을 빠져 나왔다. 사지와도 같았던 승탁의 오피스텔을 빠져나온 그녀는 현세를 데리고 용평에 친정어머니 끝순 씨에게로 갔다.
“엄마 나 오늘 동현 씨에게 미안해 해 야할 일 당할 뻔했다.”
“미안해 해 야할 일을 당할 뻔 하다니?”
일을 당할 뻔했다는 딸의 알쏭달쏭한 말에 끝순 씨는 놀라는 표정을 하고 되물었다.
“글쎄 승탁이 나를 범하려 들지 뭐예요. 귀가 막혀서 그러고도 지가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겠어요?”
“강제로 너를 어떻게 해보려는 걔도 문제지만 너무 도도하게 군 네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얼마나 속이 답답했으면 그랬겠냐? 그렇게 튕기지만 말고 잘 좀 해봐라 요즘은 너처럼 애 딸린 여자들도 총각에게로 재혼도 많이 하더라”
“엄마 지금 누구 역성을 드시는 거예요? 혼자 살았으면 살았지 비굴하게 나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 던지고 싶지 않아요. 엄마 나 엄마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이제 엄마에게도 곁에 계셔주실 분을 찾으실 때도 됐잖아요? 그래서 말씀인데요. 엄마가 길용 아저씨와 재혼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승탁이 걔도 날 단념할 것 같아요.”
“여태껏 홀로 살아 왔는데 새삼스레 재혼은 무슨 길용 아저씨가 너더러 날 설득하라 그르든? 먼저 재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앞날이 구만리 같은 너야 너 알아 이 사람아!”
끝순 씨는 길용 씨와 재혼하라는 세라의 권고에 되려 난색을 표명하며 딸이 재혼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혼자 살다가 진정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느껴질 때 그때 할래요 현세아빠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새 사람에게 충실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하지만 엄마도 그만 하셨으면 아버지의 대한 도리는 다 하신 거잖아요. 사실 아버지의 대한 애정도 별로 없으셨다면서요. 엄마도 길용 아저씨가 싫으신 건 아니시죠?”
“근데 얘가 보자보자 하니까 못할 소리가 없네 그런 소린 할 테면 당장에 서울로 올라가거라”
끝순 씨는 세라의 재차 권고에 버럭 화를 내며 홀로 나가 버렸다. 그러나 끝순 씨도 길용 씨를 전혀 마음이 없지 않다는 느낌을 세라는 느낄 수 있었다.단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젊은 딸을 그대로 두고 자신이 먼저 재혼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처지여서 재혼하라는 권고에 되려 화를 낸 것이라고 세라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말로는 어머니의 고집을 꺽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길용 씨로 하여금 극약 처방을 쓰겠끔 하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극약 처방이란 기회를 만들어 끝순 씨와 잠자리를 같이 하라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좀 그런데 그러다 나를 성폭행 범으로 고발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아니에요. 저희 엄마는 창피해서라도 고발하진 않을 거예요. 그 방법 외에는 아저씨가 저희 엄마와 결혼할 방법은 없어요.”
그녀가 생각해낸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에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길용 씨는 나이께나 먹은 사람이 그런 비겁한 동행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인생이란 것이 모험이 아니던가? 싶어 길용 씨는 끝순 씨가 자신의 마음만 알아준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승탁 아버지 날 어떻게 한 거예요? 남부끄러워 어떻게 살라고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놔요?”
“이제 우리는 한 몸이 된 거야 남들을 뭐 하러 의식해 우리가 부정한 일이라도 저지른 거야? 그런 건 아니잖아 날 잡아서 식을 올리면 되는 것 아니야”
세라를 만난 뒤 길용 씨는 끝순 씨와 잠자리를 같이 할 방법을 모색했고 곧 묘안이 떠올 났다. 그 묘안이란 즉 맨 정신의 자자고 하면 끝순 씨부터 문전 박대를 당할 것이 뻔해 그는 그녀에게 술을 먹여 일을 치르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다지고 용인의 내려가 외롭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자고 했고 그녀도 별 의심 없이 술상을 차렸다.
술을 마시는 척 하다 길용 씨가 끝순 씨에게 안주 좀 더 가져 오라 했다. 끝순 씨가 안주를 장만하는 사이 그는 그녀의 술잔에 간 수면제를 넣고 그걸 모르는 끝순 씨가 그 술을 마셨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완강하기만 하던 끝순 씨도 기용 씨와 재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결혼식 날짜를 잡고 결혼식 준비에 들어갔다.
“아버지, 어머니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거니? 기왕에 이렇게 된 거 기쁜 마음으로 두 분의 결합을 축복해 주었으면 좋겠어 너와 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두 분이 행복해 하시는걸 보면서 자식으로서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닐까?”
“누나 누나는 이렇게 부모님을 생각하는데 난 그동안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모른 척 내 실속만 챙기려고 했던 것 같아 누나 나 부탁이 있어 그 대신 매형 된 사람은 내가 책임져도 되지?”
결혼 전날 세라는 승탁이 하고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가 부모님 결혼식에 며칠 앞두고 참석하라고 하자 그는 모든 걸 순리에 맡겼는지 그동안 잘못을 뉘우치는 눈치였다.
“너 매형 묘소에 나랑 같이 가 줄래?”
“그럼 나도 부탁이 하나 더 있어.”
승탁의 또 하나의 부탁이란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이가 아닌 여자로서 안아 보고 싶었다.
그는 한참동안 그녀를 안고 있다가 ‘나의 사랑 안녕’이라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떠나보내고 누이로서의 그녀를 힘껏 안아 주었다.
“누나 삶과 죽음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난 동현이 형이 누나와 현세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떴을 때 나가 사랑했던 사람을 슬프게 하고 떠나는구나 싶어 형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었지 죽음도 삶의 일부분인데 말이야.”
“그래 삶과 죽음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야 삶 속에 죽음이 죽음 속에 삶이 죽음을 마지한 사람의 떠나보냄을 바라보는 사람도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지 삶과 죽음은 그리고 외로움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아”
동작동 국민 묘지의 동현의 묘소를 참배한 두 사람은 햇볕에 따뜻해 진 동현의 묘비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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