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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곽

  • 작성일 2010-03-20
  • 조회수 363

어젯밤 잠을 잘 때 왜 그렇게 몸이 으슬으슬 떨렸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와 보니 잿빛의 담벼락도, 페인트 벗겨져 가던 벽도, 흰 눈으로 모두 가려져 버린 채 그것이 마냥 제 원래 모습이라는 듯 있네요.

호오-살짝 바람을 불어보니 바로 뭉글뭉글한 것이 떠다니다 사라져가요.

담벼락에 쌓여있던 눈을 양손 듬뿍 쓸어 요리조리 뭉치며 둥근 모양이 되도록 톡톡 쳐주니 곧 원하던 모양이 나와요.

제가 봐도 너무 잘 만든 것 같아 엄마에게 달려가 보여주니 잘했다며 모자가 씌어져있는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그게 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다시 담벼락으로 달려가는데 무언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요.

무슨 소리지 생각하며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커다란 바퀴가 눈들이 뭉쳐져 조그마한 언덕이 돼 버린 곳에 걸려 못 움직이고 있었어요.

"어이구,또 걸려 버렸구먼."

눈 언덕에 걸려버린 바퀴를 보며 할아버지가 한숨 섞인 투로 말하시는데 할아버지의 입에서도 뭉글뭉글한 것이 나옵니다.

제가 호-불어서 나왔던 것보다 더 크네요.

그러고 보니 저는 이런 커다란 바퀴가 달려져있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는 길이나 엄마와 함께 시장을 나갈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끌고 다니시는 것을요.

지붕 없는 자동차 같은 것에는 사람이 타는 대신에 항상 커다란 상자들과 딱딱해 보이는 판, 병들이 가득 들어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할아버지의 자동차에는 겨우 10개가 넘어 보이는 병들이 있을 뿐이에요.

할아버지는 장갑도 끼지 않아 빨갛게 되어버린 손으로 바퀴를 빼내기 위해 지붕 없는 자동차를 밀고 있어요.

어른들이 한번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쉽게 빠질 것 같지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다들 앞만 보고 가고 있어요.

다시 한 번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바퀴가 드디어 눈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있어요. 조금만 더 힘을 주어 밀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라도 힘이 될 수 있겠죠?

누군가가 '응'이라고 대답을 해준 것처럼 저는 그쪽으로 다가가 할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지붕 없는 자동차를 밀었습니다.

안 그래도 많은 이마위에 주름들이 저를 보고서는 순간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 주름들은 곧 눈 주위로 내려가 버립니다.

"하나.둘.읏챠"

할아버지의 신호와 함께 학교에서 친구와 팔씨름을 할 때보다 더 힘껏 이를 깨 물으며 힘을 줬어요.

손이 허공에 띄어짐과 동시에 눈 언덕을 혼자 내려가는 지붕 없는 자동차에서는 병들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려와요.

"고맙구나. 꼬마야"

이제는 낡아버려 색이 바라진 운동화로 눈 언덕을 몇 번 두드리며 할아버지는 저에게 고맙다 합니다.

고개를 위아래로 살짝 저어보이자, 할아버지는 그 지붕 없는 자동차를 끌고 멀어져 갑니다.

할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더 이상 눈 언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와 그렇게 만난후로 엄마와 저도 곧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배고프다고 하는 저에게 엄마는 조금 있으면 저녁밥 차려 줄 테니 그때까지 우유를 먹고 있으라고 합니다.

저는 우유를 정말 좋아해요.

하얀 우유 초코우유 딸기우유 모두 맛있거든요.

이런 저 때문에 우리 집은 우유배달이라는 것을 시킨답니다.

덕분에 부엌에는 항상 다 먹은 우유곽이 모여져 있어요.

갑작스레 초인종이 울리고 엄마는 고개를 한번 갸웃해보이고는 살짝 문을 열었습니다.

초록색 모자를 쓰신 아저씨가 빈우유곽이 있다면 줄 수 있겠냐고 묻네요.

초록색모자 아저씨는 저도 안답니다.

아침에 가끔씩 일찍 일어날 때마다 볼 수 있던, 저에게 맛있는 우유를 전해주시는 아저씨니까요.

"네. 필요하시다면 가져가셔도 괜찮아요."

엄마가 부엌에 꾀 많이 쌓여져있는 우유 곽들을 하얀색 봉지에 담아 초록모자 아저씨에게 건네줍니다.

아저씨는 빈 우유곽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연신 하얀 이를 들어 내보이며 웃네요.

아까 밤에 우유를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평소에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자고 있을 시간에 화장실이 급해 깨버렸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창문 밖에서 어느새 익숙해진 소리가 들려옵니다.

덜커덩 덜커덩,눈 위를 거닐고 있을 큰 바퀴 돌아가는 소리.

이렇게 늦은 시간에 설마?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자마자 차갑다 못해 얼굴을 잡아먹으려는 듯 달려오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힘겹게 떴습니다.

역시 보이는 것은 할아버지와 지붕 없는 자동차였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꽉 찬 짐들과 멀지않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할아버지를 향하고 있는 초록모자 아저씨도 보이네요.
전체적으로 밖은 어두웠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세상이라는 듯 빛을 내던 그 많던 눈들은 어둠속에 파묻혀버렸나 봅니다.

그래도, 새까만 밤하늘에서 오늘따라 더욱 빛을 내보이며 있는 별들과 달, 가로등 덕분에 할아버지와 아저씨가 서있는 곳은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말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볼 수는 있게 됐어요.

지금, 초록모자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향해 많은 봉지들을 건네고 있어요.

"어? 우리 집 꺼다!"

정말이었어요.

초록모자 아저씨가 할아버지에게 건네는 수많은 봉지들 가운데에서 저는 우리 집을 찾아왔던 아저씨에게 엄마가 건네주던 하얀색 봉지를 보았어요.

할아버지는 그 많은 봉지들을 건네받고 한동안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어요.

봉지가 너무 많아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한 것일까요?

곧, 할아버지는 그대로 봉지들을 품에 한가득 안으며 초록모자 아저씨에게 한번,두번,세번이나 넘게 인사를 하고 지붕 없는 자동차를 끌며 멀어져가요.

초록모자 아저씨도 모자를 다시 한 번 고쳐 쓰더니 자전거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저도 창문을 닫고 이불속으로 들어와 다시 눈을 감습니다.

이불속이 더 따뜻하고 포근해진 것 같아요.

좋은 꿈을 꿨어요.

아침잠이 많은 저이지만 오늘 아침은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저는 새벽에 보았던 것들이 생각이나 엄마에게 말했어요.

그러자, 우리 엄마도 봉지들을 받아든 할아버지처럼 수저를 든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상하네요.

우리엄마도 수저가 무거운 것일까요?

"정아야"

드디어 수저를 내려놓은 엄마가 저의 이름을 부르네요.

최 정

제 이름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항상 저에게 말하곤 했어요.

정이 많은 아이로 자라달라고요.

정이 무엇인지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그러겠다고 말한답니다.

"오늘은 우유 말고 엄마가 보리차 끓여 줄게. 그거 먹자"

아침저녁으로 우유를 꺼내주던 엄마가 오늘은 보리차를 먹자 그러네요.

"응! 엄마가 끓여주는 보리차도 좋아"

우유는 좋아하지만 엄마도 무지하게 좋아하니까.

엄마가 끓여주는 보리차도 물론 좋아요.

탁탁

칼이 지나갈 때마다 당근이 작아지면서 많아져가는 것은 언제 봐도 신기해요.

엄마가 이렇게 탁탁 소리를 내며 요리할 때 저는 우유를 든 채 저녁밥이 만들어지는 것을 구경하곤 했어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우유가 아니라 보리차를 든 채 서있다는 거네요.

집안 곳곳, 화장실까지 벨이 울려요.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얀색 봉지를 들고 현관문을 여는 엄마네요.

초록모자를 약간 위로 올리며 아저씨가 익숙한 웃음을 보여 옵니다.

"빈 우유 곽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아저씨는 어제와 같은 말을 합니다.

또 할아버지에게 가져다주려는 건가 봐요.

"여기요"

엄마는 미리 챙겨둔 봉지를 아저씨에게 건넵니다.

봉지가 어제와는 다르게 꾀 묵직해 보여요.

봉지 안을 살펴본 아저씨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엄마를 바라보지만 엄마는 그저 웃을 뿐이에요.

"감사합니다."

곧 아저씨가 인사를 해요. 저와도 눈이 마주치네요.

'상냥하신 엄마를 두었구나.'

그 하얀 이를 들어 내보이며 아저씨가 저를 향해 소곤소곤 말하네요.

'네, 저도 알아요.'

저의 대답에 크게 웃으시는 아저씨를 보다보니 아저씨의 뱃속에는 커다란 기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아저씨한테 줄게 뭐예요?"

아저씨가 나가고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아저씨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집안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정 이란다"

안 그래도 희었던 얼굴이 더 환해지면서 눈이 보이지 않도록 미소를 지어보이는 엄마는, 정말 우리 엄마여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루 예쁩니다. 거기다가 어느때보다 기뻐보여서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네요.

'정'이라는 것은 주는 사람도 기뻐지는 거고 주위사람도 전염시키는 건가 봐요.

어느새 저도 엄마와 함께 웃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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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올리는데 너무 부끄럽네요~

두근두근. 정말 긴장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