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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런

  • 작성일 2010-05-17
  • 조회수 444

 치킨런

 

 #

 -처음 피기에 좋은 담배로 주세요.

 카운터 안, 후덕한 아저씨의 사람 좋아 보이는 눈과, 카운터 밖에 서있는 남자의, 준수한 외모와 부조화를 이루는 생기 없이 퀭한 눈이 마주쳤다. 그린마트의 주인아저씨는 손을 뻗어 수많은 담배들 중, 한 갑을 꺼내었고 그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열었다. 그가 지갑 안에 든 돈의 액수를 확인하고 담배 값이 얼만가 물어보려 고개를 들었을 때, 주인아저씨는 그 담배갑에서 한 대를 꺼내 물곤 불을 붙이고 있었다. 당황한 그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이윽고 주인아저씨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씩 웃었다.

 -세상에 좋은 담배가 어딨냐, 이 녀석아.

 

 #

 그가 아직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때, 전교생을 대상으로 기타를 가르치는 강사에게 정식으로 기타를 배우자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너, 다른 악기 배운 적 있냐?

 덥수룩한 파마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온 강사가 거만한 태도로 물었다. 창문 너머로 새파란 나뭇잎들이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파도를 쳤다.

 -아주 어렸을 때 피아노 몇 년 배웠던 게 전부인데요.

 그 또한 강사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었다.

 -너 하는 거 보니까, 좀 더 배우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타동아리 들면 내가 잘 가르쳐 줄게.

 강사의 말을 듣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몸을 앞으로 당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선생님께 기타를 배운다고, 제가 뭐 음대를 가겠습니까,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강사는 얼굴에 천진난만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그냥 해라. 난 네가 마음에 든다.

 했다.

 

 #

 -그렇게 하는 게 아니잖아. 이 멍청아.

 스승과 제자간의 예의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강사의 말에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자, 봐라. 세 번째 손가락은 여기, 네 번째 손가락은 여기에 가 있어야지.

 -네, 네. 알았다구요.

 그래도 강사의 말을 잘 따르다 보면 어느 새 그는 어려운 곡들도 꽤 그럴 듯하게 연주해 낼 수 있었다. 지난 몇 달간,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그 강사에게 기타 교습을 받으면서, 수업이 끝날 때마다, 강사가 교내 구석자리서 담배 한 대 씩을 피고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강사가 피우는 담배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공기중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을 2층 창가에 기대어 지켜보곤 했었다.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그는 생각이 많아진 어느 날, 담배를 태우고 있는 강사에게 다가갔다. 강사의 주변엔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담배꽁초가 즐비했다. 아마 그 강사 말고도 이곳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이다.

 -담배는 무슨 맛이에요?

 강사는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놀라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담배를 맛으로 피우냐, 멍청아.

 하며 벽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나 담배를 피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하는 소리라면 그러지 마라.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이 이 담배야.

 강사는 눈을 치켜들어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어서 교실로 돌아가라며 재촉한 후, 학교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받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여자 친구 있으세요?

 그가 웃으며 강사의 뒷모습에 대고 물었다.

 -그럼, 이 얼굴에 없겠냐? 이 멍청아.

 하고 고개를 돌려 웃는 얼굴을 보였다가 다시 몇 걸음 걷는가 싶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돌아와 물었다.

 -너, 혹시 좋아하는 여자애 때문에 고민이냐?

 -네? 네... 사춘기 남학생이라면 안 그런 게 이상하겠죠.

 강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꼭 고백해라. 신호등이 언제까지나 파란불을 허락해 주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곤 강사는 다시 멀어져 갔다.

 

 #

 그가 교실로 들어 왔을 때, 같은 반 녀석이 그의 가방을 뒤지고 있는 모습을 목격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방을 뒤지는 것에 열중인 그 녀석의 어깨를 밀치고 호통을 쳤다.

 -너 뭐야, 뭐하는 거야.

 그 같은 반 녀석은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조용히 소근 댔다.

 -나 급한데, 담배 한 대만 줘봐.

 -그걸 왜 나한테서 찾는 건데, 난 담배 피우지도 않아.

 히죽대던 녀석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언성도 조금 높아졌다.

 -까지 마, 너 쌈터에서 나오는 거 다 봤어.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이 다시 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너 지금 냄새 심하게 나는 거 알아?

 그는 교실까지 올라오면서 느꼈던 이상한 눈초리들을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한텐 없으니까 다른 데 알아봐.

 하며 자리에 앉은 그를 녀석은 불안스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아, 그러지 말고. 한번만 부탁하자.

 -없다.

 그의 단호한 말투에 녀석의 눈동자는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알아서 찾아가지.

 하며 그의 가방을 빼앗아 들고 또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다시 일어나 녀석을 또 한번 밀쳐 버렸다.

 -그만 하라고!

 그 바람에 녀석은 교실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고, 교실 안은 매서운 폭풍이 치기 전의 고요한 밤처럼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다만, 싸움이 벌어 질 것 같다는 소문에 방금 막 도착한 다른 반 녀석들이 자초지종을 알아내려 동문서주하며 칼 같은 정적에 금을 내고 있었다. 녀석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뭍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고는, 몰려든 구경꾼들에게 대접하듯, 불끈 쥔 주먹으로 육체적 충돌의 시작을 알렸다.

 퍽!

 

 #

 아담과 이브의 아들이자, 아벨의 형이었던 카인이 자신의 동생을 돌로 쳐 죽인 이래로, 인간의 시기와 질투는 좀처럼 끊이질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증거인 셈이다. 그는 녀석과 격렬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주변의 상황을 확실히 감지 할 수 있었다. 구경꾼은 거의 배로 늘어나 있었다. 개중에는 창문을 넘어 오는 녀석도 있고, 걱정되는 눈초리로 말려 보려는 녀석이 있는 반면, 이 상황이 즐겁다는 게 얼굴에 확실히 드러나 보이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또, 평소 마음에 두고 있었던 그 여학생까지도... 그런 주위 상황 덕분에 그는 점점 흥분이 최고조에 다다름을 느꼈다. 그는 녀석에게 떠밀려 벽에 등을 부딪쳤다. 그에게 연속적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환호성이 점점 더 크게 그의 귀를 파고 들었다. 그는 손을 더듬어 도움이 될 만한 도구를 찾았다.

 

 -

 그때, 그런 사소한 이유로 그 녀석과 몸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여학생이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그날, 미술 수업이 들지 않았더라면, 어떤 조심성 없는 학생이 그 위험한 조각칼을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두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조각칼을 손에 쥐었을 때, 그 많던 구경꾼들 중 어느 한명이라도 나를 필사적으로 막았더라면, 아무렇게나 휘두른 조각칼에 그녀석의 피가 교실 공기중으로 솟아 오르지 않았더라면, 아아, 정말 그랬더라면 내가 나를 이토록 원망하지 않게 되었을까.

 -

 라며 훗날, 몇 년이 흐르고 난 뒤, 그는 그렇게 고백 한 바 있다.

 

 #

 태초의 고요함, 그 정적이 가득 메워진 교실 안은 그의 거친 숨소리만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너덜해진 녀석의 피부에서 흘러나온 그 피가 점점 더 교실바닥에서의 자신의 영토를 넓혀갔다. 그의 코에서도 빨간 피가 몇 방울 떨어져 조그만 섬들을 이루었다. 수십 개의 눈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듯,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완벽에 가까운 정적을 깨고 구경꾼들 사이로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신호로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술렁임이 일었다. 이제야 한 학생이 선생님을 부르러 달려가고, 몇 명이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녀석을 살펴보았다.

그는 학교 밖까지 뛰쳐나가 한 빌라의 주차장으로 숨어들었다. 부들대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부모도 아닌, 친한 친구도 아닌, 기타를 가르쳐주는 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몇 번의 통화 대기음이 이토록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여보세요? 방금 헤어져 놓고, 왜?

 불안하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 저 지금 학교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오면 보이는 파란색 빌라 주차장에 있는데요. 여기로 빨리 와주실 수 있으세요? 아, 아니 꼭 와주세요.

 -어? 뭐야, 지금 나 바쁜데. 왜 그러는 건데?

 그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 지, 끝없이 태연하기만한 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해요. 설명은 만나서 해도 충분하니까 빨리 와주세요.

 -어, 어 그래 알았다.

 통화를 마치고, 그는 어떻게는 되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지만, 그건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었다.

 

 강사가 서둘러 그가 숨어있던 빌라로 찾아 왔을 때, 이미 그는 그곳에 없었다.

 

 #

 -그렇게 해서, 호적에 빨간 줄 긋고 나와 보니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 그런 얘기구만.

 -뭐, 그런 얘기죠.

 그는 슈퍼 아저씨에게 흘러간 시간을 털어 놓고는 감상에 젖었다. 아저씨는 그와 걸터 앉아있던 나지막한 콘크리트 담장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곤 그와 함께 길가로 나와 건너편에 있는 치킨집을 가리켰다.

 -내가 잘 말해줄 테니, 저기에 한번 가 봐라. 온몸으로 맞는 바람의 느낌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

 투명한 기포가 깊숙한 곳으로부터 표면까지 떠올라 쉴 새 없이 사방으로 튀는 검은 액체. 그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콜라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장님은 잠깐 일보러 나가셨으니까, 금방 돌아오실 거야.

 그보다 한,두살 어려보이는 남자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뭐가 그리 좋은 지 생글생글 웃음 짓고 있었다.

 -내 이름은 김영찬인데, 너는?

 영찬은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색했는지 말을 계속했다.

 -난, 최준..

 그가 입을 뗌과 동시에 치킨집 출입문이 열리면서 그 위에 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렸다.

 -오셨어요, 사장님.

 영찬이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그도 따라 일어나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엇!

 -야~!

 그 앞에 서있는 치킨집 사장은 분명, 그가 철없는 고등학생이었을 때, 기타를 가르쳐 주던 바로 그 강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날렵했던 모습은 많이 죽었지만, 천진난만한 웃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마 죽을 때 까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이야, 최준성. 맞지, 너? 정말 반갑구나. 정씨한테 얘기 듣고 혹시나 했는데, 정말 너구나. 몇 년 만이지? 가만있어보자, 하나, 둘, 셋...

 그는 아직까지 자신을 기억해 주고 반가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몇 년 전까지 기타 강사였다가 지금은 치킨집 사장이 된 남자, 그를 기억해 주는 그 남자는 어린아이같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다가 멈추곤, 조금 격하게 그를 껴안아 주었다. 옅은 담배 냄새가 풍겼다. 좋을 게 하나도 없다면서 아직도 끊지 못하셨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

 -비가 오네...

 한때, 음악이 자신의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던 치킨집 사장이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기타 수업이 끝나고 학교 구석자리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있던 강사를 바라보았을 때처럼. 그리곤 영찬과 함께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들을 멍하니 주시했다.

 -아, 평화롭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평화는 무슨, 전화나 받어.

 영찬이 비꼬며 말했다. 그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슬며시 일어나 전화기 앞까지 미끄러지듯 걸었다. 전화기 앞에 서서는 잠시 망설이더니,

 -사장님, 그냥 전화 받지 말고 오늘 장사 접는 게 어때요? 비도 오는데.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녀석이 배때기가 불렀구만. 내가 받는다. 이 멍청아.

 사장은 수화기를 귀에 붙이고 종이에 몇 자 적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를 감상했다. 잠시 후, 사장이 포장까지 마친 치킨을 내밀고,

 -준성아, 갔다 와라. 이것까지 하고, 네 말대로 오늘은 여기서 장사 접자.

 했다.

 -넵, 알겠습니다.

 그는 사장과 영찬의 배웅을 받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배기관에서 검은 연기가 한뭉큼 뿜어져 나왔다.

 

 #

 아기가 자고 있으니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주세요.- 또박또박 귀엽게도 써놓은 경고글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똑똑똑.

 -치킨배달 왔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도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초췌한 한 남자였다. 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미는 손을 따라 올라가 팔뚝을 보니, 칼자국 몇 개가 드문드문 보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초췌한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너.

 그가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신음을 내뱉었다.

 -빨리 잔돈이나 내놓고 꺼져.

 철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그 남자가 언성을 높였다. 그는 허둥지둥 대다 동전 몇 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쇳소리가 선명하게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하, 나 참, 가지가지 하네.

 그는 몸을 숙여 주섬주섬 동전을 줍다 집 안을 살짝 엿보았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보, 집안에서 담배 피우지 말랬잖아, 아기도 있는데.

 그 목소리. 그는 어디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던가 곰곰히 기억을 더듬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위협적인 눈초리로 자신의 아내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언젠가 그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랬던 적이 있었다. 바로 그 목소리로.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짜증을 내었다.

 여자가 눈물을 지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해졌다.

 이 모든 상황이 그를, 정말로 철이 없었던 고등학교시절로 되돌려 놓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는 몸을 피고 일어났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내가 알 게 뭐야, 시발.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란 속,

 

 -그럼 오늘이 무슨 날인지 혹시 아세요?

 -엿 같은 소리 하지 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너 죽는 날.

 

 

 

 

 

 END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치킨런(sad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