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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 작성일 2010-06-13
  • 조회수 339

 나는 32살이었고 내 또래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32살 직장인이 그러하듯 나는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 나는 5분 정도를 걷는다. 그리고 버스와 지하철을 탄다. 모두 같은 번호의 버스들이지만 어떤 것은 낡아있고 어떤 것은 더욱 더 낡아있다. 과속방지턱을 넘고 기어를 바꾸고 정차를 할 때면 버스들은 자신의 나이와 주행거리를 삐걱거리는 소리로 알리곤 하였다. 버스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종일 달리고 또 달린다. 수천수만의 승객을 그렇게 실어 나르고 잦은 급제동과 급정지에 낡고 낡아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애처로운 소리로 울어댄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서글퍼지고 말았다. 내 집은 도시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타는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탈 때면 나는 항상 창가 좌석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했다. 출근 할 때 15분 퇴근 할 때 15분. 그 30분은 무언가를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었다. 나는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그 시간들을 사랑했다. 때문에 버스 안에서는 책을 읽지도 않았고 음악을 듣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지하철을 타고 난 뒤에 해도 충분했다. 나는 그저 멍하게 앉아 생각을 했다. 주제는 무엇이라도 좋았다. 몇 일전에 읽은 소설책에 관한 생각도 좋았고 정치적 이슈에 관한 생각도 좋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한 생각도 좋았다.

 그렇지만 대리가 되고 슬슬 일상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버스 안에서도 mp3를 들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치기어린 반항이자 비웃음이었다. ‘나는 이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차피 사회 속에 섞여 시키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생각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가끔은 mp3와 내가 듣는 노래들이 내 생각을 이해해주는 것처럼 여겨지곤 하였다. 그 나름대로 또 씁쓸한 일이었지만. 거리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어떤 사람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분주하게 걸었다.

 그날 나는 흔들리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피아졸라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 너머로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동그란 가로등이 긴 뱀이 되고 그의 아내의 별칭에서 따왔다던 노래 Mumuki의 절정부분이 흘러나올 무렵 애절한 반도네온의 멜로디를 타고 예전의 추억이 미끄러지듯 흘러들어왔다.

 

 그해 겨울 나는 3년간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예전에 살던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한 아파트. 그곳에는 매일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경비원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세월의 흔적 중 절반은 부드러움으로 나머지 절반은 날카로움으로 승화한 눈이 있다면 아마 그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눈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 경비원 할아버지, 무척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 옆 동에 살고 있대.’ 나와 함께 점심을 먹던 엄마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 할아버지는 물고기를 키운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주, 아주 많이. 나는 그의 집에 놀러가고 싶었지만 무슨 명분을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하기엔 내 앞에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놓여있었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그 아저씨와 정겹게 인사를 나눴고 가끔은 무거운 첼로 케이스를 매고 학교로 향했다.

 눈이 펑펑 내리던 그날 나는 새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집을 나섰다. 내가 늘 쉬는 숨은 겨울이 되자 구체적인 형태를 띤 입김이 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한숨이 되었다. 고난 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어둡고 쓸쓸한 의미를 담았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건 그런 생각을 반복하는 나 자신이었다. 그때 나는 작년 겨울에 샀던 값비싼 검은 코트 위에 커다란 첼로 케이스를 걸치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거리를 걸어 다니면 동네 여고생들에게 자주 동경어린 시선을 받곤 하였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에게 그 검고 커다란 케이스는 무거운 짐과 공허한 책임감에 불과했다. ‘음악 하나봐 학생.’ 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마 그날 그 경비원 할아버지가 먼저 나를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듬해 이사를 갈 때까지 결국 그의 집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눈이 쌓인 좁은 골목을 걸어 지하철 역 입구에 도착했을 무렵 첼로 케이스 위에는 눈이 얇게 쌓여있었다. 검은 케이스 위의 흰색 눈들은 부드러운 원색의 조화를 이루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 물고기를 키웠지.”

 그는 그렇게 말하곤 테이블 위에 있는 여러 사료통 중 하나를 집더니 창가 구석에 있는 수조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열댓 개의 수조에 있던 온갖 기괴한 물고기들이 일시에 요동쳤다. 섬뜩한 그림자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온 집안을 훑었다. 순간 어두침침한 거실은 악령 들이 춤추고 있는 무도회장이 되어있었다. 그는 수조 속에 먹이를 한 움큼 집어넣더니 내 쪽을 쳐다보았다. 이상한 무늬를 가진 기다란 물고기가 물 밖으로 입을 내밀고 뻐끔거렸다.

 “어떤 생각이 드나? 아내가 죽자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물고기를 키운 것 같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반대야. 나는 예전부터 물고기를 좋아했지. 그런데 아내는 물고기들을 싫어했어. 특히 이렇게 음침하고 괴기스러운 녀석들은 더더욱 싫어했지.”

 나는 그가 타온 커피를 마시며 곁눈질로 거실을 둘러싸고 있는 수조를 계속해서 흘끔거렸다.

 “아내가 죽자 그제야 나는 물고기를 키울 수 있었던 거야. 아, 그렇지만 오해하진 말아줘.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래. 어쨌든 나도 예전엔 잘나가는 대기업의 임원이었다네. 그렇지만 이 많은 물고기들을 관리하려면 더 이상 회사에 나갈 수가 없었지. 자주 집에 오고 가야하니까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곤 가볍게 기침을 했다.

 “때마침 이 동네 아파트 경비를 구한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여기로 이사를 오면서 두 번째 직장을 잡은 것이라네. 물고기를 위해서 말이야. 이 녀석들을 키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거든.”

 나는 아마 그럴 것 같다고 말을 하곤 다시 한 번 테이블을 중심으로 거실을 둘러봤다. 물고기를 키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많은 수조를 관리하려면 시간과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음악을 한다고 했었지? 첼로를 켜나?”

 “네, 그렇지만 조만간 관두려고 합니다.”

 그는 커피 잔을 비우고 ‘으흠’하는 소리를 내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마의 주름살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느낌이 희미하게 배어있었다.

 “내 자네의 사정은 모르나 관둘 필요야 있겠나? 가끔이라도 연주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늘 내게 웃으며 인사를 하지만 나에겐 가끔 자네 뒤를 감싸고 있는 그림자 같은 것들이 보이곤 했다네. 그렇지만 그림자란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 정도면 괜찮아. 저기 저 물고기들도 다 그림자를 가지고 있지 않나?”

 확실히 어두운 거실의 조명 탓에 물고기의 그림자는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들의 그림자는 이따금 수조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렇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그 그림자가 슬슬 옅어지기 시작한다네.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해결될 수 없는 그림자는 서서히 자네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오지 누군가의 죽음도 마찬가지야. 시간이 지나고 지나면 우리는 나쁜 추억들을 잊는다고들 하지. 그렇지만 그림자는 옅어지면서 서서히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걸세. 비록 우리가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그림자와 하나가 되어가는 거지.”

 

 이듬해 우리 가족은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나는 전공하던 첼로를 관두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이사를 하던 날 경비 아저씨와 마지막 인사를 했던 그 순간 나는 그의 등 뒤를 감싸고 있는 그림자를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그의 아내의 죽음은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물고기로부터 만들어진 죄책감 사이를 떠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약 그 경비원 할아버지의 아내가 되살아난다면 그의 그림자는 어딘가를 맴돌지 않고 말끔히 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다.

 우리 집의 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었고 우리는 점점 도시를 벗어난 외각으로, 낡은 아파트로 떠밀려 나왔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고집을 피우지 않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늘 재기를 꿈꿀 때 나는 조금이나마 월급을 받아왔고 우리가족은 나로 인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현실을 때론 원망하고 때론 수긍했고 그 사이 나의 첼로는 창고의 한 구석에서 조용히 먼지를 뒤집어썼다.

 

 “그 그림자란 해결되지 않는 한 항상 자네를 좇거나 자네에게 서서히 스며들겠지만 문득 숨어버리기도 한다네. 예컨대 그 그림자보다 더 짙은 어둠이 자네를 감싸면 그림자 같은 건 금세 사라지고 말겠지. 그림자란 희미하더라도 빛이 있을 때만 보이는 법이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홀짝였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개념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건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자네는 아직 젊지 않나. 그 그림자를 반드시 떨쳐버릴 수 있을 거야.’라던 그의 마지막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봤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그림자는 내가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학생이었고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유학을 포기하고 음악을 포기하는 것으로 집안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피아졸라의 노래가 끝나갈 때 즈음 나는 정류소에 도착했다. 그러자 나의 우울한 추억도 불현 듯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살고 있는 원룸 촌으로 향하는 길은 밤이면 언제나 어두웠다. 수많은 나방과 풀벌레들이 낡은 가로등 불빛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들은 가로등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몇몇은 가까스로 가로등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열기와 배고픔에 고통스럽게 죽어가겠지. 그렇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가로등은 그저 빛을 내는 것으로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벌레의 죽음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마 일 년에 한두 번 가로등을 청소하는 사람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벌레는 그들에게마저 귀찮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문제는 저 가로등과 벌레들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길게 늘어선 그림자가 가로등 밑에서 나를 좇았다. 나는 그때까지 벌레가 죽고 또 죽으면 가로등 안에 수북이 쌓여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림자 보다 짙은 어둠은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서서히 늘어나곤 한다.

 집에 도착한 나는 넥타이를 풀고 침대에 누웠다. 부모님은 결국 지방으로 이사를 가셨고 나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남아 조그마한 원룸에 살고 있었다. 원룸으로 이사를 오던 그날 나는 무거운 첼로 케이스를 좁은 방바닥에 눕혀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잃어버린 꿈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몸속에서 역한 느낌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경비원 할아버지의 집에서 보았던 기다란 물고기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들을 감상적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행위는 내가 아닌 무언가에 대한 모독처럼 여겨졌다. 이사를 하던 그날 이삿짐 차는 지방으로 향했고 그해 겨울 팔려가고 말았던, 내 짐을 잔뜩 실은 아버지의 검은 벤츠는 그 반대편인 지금의 내 원룸을 향했다.

 

 다음날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줄곧 걸었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는 그 길을 나는 차분한 걸음으로 약 한 시간정도 혼자 걸었다. 가로등은 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지날 때 보다 훨씬 느리게 나를 스쳤다. 그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길게 뻗은 잔상도 만들지 않았다. 서있는 것은 그저 동그란 가로등이었다. 중간 중간에 있는 어둑한 샛길들에는 아무런 불빛이 없었다. 이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누군가는 저 어둑한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집으로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쓸쓸한 느낌이 내 두 팔을 감싸 안았다. 가끔 등 뒤에서 버스의 새하얀 불빛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가온다. 불빛은 점점 밝아져 강렬한 섬광이 되고 소리는 굉음이 되어 울려 퍼진다. 한줄기 서늘한 밤바람이 스치면 붉은 빛이 된 섬광은 이내 빠르게 나를 앞질러 저 멀리 사라진다. 그렇게 불빛은 희미해지고 버스의 소음은 서서히 Fade-Out 되어 나는 다시 어두운 밤거리에서 둘이 된다. 나. 그리고 버스의 불빛에 키가 커졌다 줄어든 내 그림자.

 

 원룸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는 검은 케이스를 쳐다보았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 놓여있는 그 케이스는 중세 시대의 거대한 관을 연상시켰다. 조심스럽게 첼로의 시체를 넣고 꽃을 뿌린다. 누군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길고도 애절한 추도사를 읊었다. ‘여러분 여기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던 한 아름다운 악기가 누워있습니다-.’ 사람들은 관의 뚜껑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눈물을 흘린다.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나자 관 속에는 새까만 어둠만이 남았다. 중세시대의 장례식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아마 장례식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문득 경비원 할아버지의 죽은 아내가 떠올랐다. 되돌아올 수 없는 것이 있었고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케이스를 뒤덮고 있는 먼지들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케이스를 눕혔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현악기는 낡은 버스처럼 삐걱대기 마련이다. 나는 창 밖에서 희미하게 흘러오는 가로등 불빛으로 조심스럽게 조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