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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 작성일 2010-05-03
  • 조회수 340

30. 장갑
 
 
 
어릴적 옛 일기장에서 우연하게 본 말이있다. '내가 네 옆에 있다면 따뜻한 내 손으로 잡아줄텐데' 지나간 추억이라기엔 너무나도 아련한 기억이라서 그저 묻어만 두었던 이야기가 내 손에 의해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리도 몰랐을까 하는 마음에 괜히 나자신을 원망도 해보지만 지금에 와서 원망한들 지나간 기억은 추억 속에 잠들어있는 것이다. 항상 누구나 같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들이 나를 울리게 하지만 그만큼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오로지 혼자만의 세상 속에 갇혀 있던 나를 한 발짝 넓은 세상으로 꺼내주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이 든다. 현실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돌아온 계절은 춥다. 혼자서 보내야하는 시간이 늘어버렸기 때문에 내 마음도 내 옆구리도 차갑게만 느껴진다. 또한 내 손도. 겨울이 다가오기만 하면 유독 내 손은 차갑게 변해버린다. -여름에도 에어컨의 강도가 높은 경우에도 그렇긴 하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충동을 느낄만큼 내 손은 얼음이 되어있다. 차가운 바람이 내 손을 스쳐가면서 나는 지난 추억은 끝자락을 펼치면서 주머니속에 손을 찔러넣는다.
장갑을 챙겨다닌 것을 곧 잘 잊어버리는 편이었다. 목도리는 챙기면서 장갑을 안챙기는 멍청이라고 친구들은 잘 놀렸다. 하지만 그냥 내 습관이란 것을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나는 꺼내둔 장갑을 책상위에 올려둔채로 시내를 활보하고 마는 것이다.
"안추워?"
"춥다-"
나를 챙겨주는 15년지기 친구가 있어서 고맙다. 어리숙한 다 늙은처녀하나 챙긴다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덕분에 여자친구하나 못 만들고 있는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나를 챙겨주는 녀석이 있기에 그나마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마지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습게 들릴지라도 나는 이기적이라서 어쩌면 녀석을 앞으로도 잡아두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못난 여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책상에 두고온 장갑 생각에 눈이 내리고 있는 창문을 쳐다보고만 있다. 어느새 옆에온 건지 이군이 나를 툭 친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쳐다보았다. 그 예의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가 내 시간을 방해당하는 것을 무지 싫어하는 것을 알고도 가끔 저렇게 행동을 한다. 어린녀석이 다 늙은 처녀 붙잡고 난리다. 왜 저러는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다.
"선배님, 커피 드세요. 따끈 따끈한~ 이군표 자판기 커피 입니다!"
씩씩한 녀석의 목소리가 편안하긴 하니까 내가 아무말을 할 수가 없다. 내 시간을 방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녀석의 어깨를 툭 쳐주고서 커피를 받아서 마신다. 알싸한 블랙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순간에 어느새 내가 자라버렸음을 느낀다. 항상 커피도 단 커피만을 마셨던 내가 언제부터였는지 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하나씩 늙어나는 주름까지도.
"오늘도 울쩍한 날인가봐요- 선배님은. 눈오면 눈와서 비오면 비와서 해뜨면 해떠서. 언제쯤 웃을래요?"
"신경끄셔라."
"까칠하시긴. 그래서 제가 선배를 좋아하잖아요!"
저렇게 생각 없이 내 뱉는 말로 좋아한다는 말에도 적잖게 놀랄 때가 있다. 무슨 '밥 먹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마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저 대사가 신경이 안 쓰일수가 없다. 그래도 진심이라고 믿기에는 내가 너무 닳아도 닳은것이 아닐까 의심을 해본다.
"선배. 좀 웃어요. 웃는 것이 예쁘다니까요."
누구는 웃기 싫어서 웃지 않는가. 그저 삶이 허탈하니까. 그냥이니까. 정말 말 그대로 그냥. 사는 것 같아서 아쉽고 허무하다. 내 삶의 목적과 꿈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능글맞은 이군이 오전부터 날 괴롭히더니 오후내내 나를 괴롭혔다. 결국 칼퇴인 내 뒤를 밟아서는 나를 질질 끌고 어디론가 간다. 어디가냐고 물었더니 가는 내내 싱긋 웃기만한다. 내 눈에는 싱긋이 아니라 비열한 웃음 같아 보이지만. 끝끝내 말없이 나를 데려간 곳은 넓은 광장. 황당하기도하고 우습기도하고 허탈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서 나왔다.
"하- 여길 오자고 이 추운날 날 질질 끌고 온거야?"
"선배는 감정이 매말랐어요! 자자. 진정하시구요."
"보자 보자 하니까 내.."
"선배는 보자기가 아니라 제 하나뿐인 보물이라니까요."
능구렁이를 도대체 얼마나 삶아 먹으면 이렇게 될려나. 나도 좀 한수 가르쳐주면 안되겠냐. 노처녀보다 어째 네가 더 능구렁이를 많이 먹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나이까지 의심하게 된다.
"선배. 자 손 좀 줘봐요."
"손? 손은 왜?"
"아, 얼른요."
"자."
"이제 안 차갑죠?"
내 손을 덥썩 잡더니 묻는다. 황당스럽다. 얘 오늘 뭐 잘 못 먹은건지 나한테 왜 이런데.
"제가 선배 옆에 있을께요. 선배 항상 장갑 안들고 다니죠? 제가 선배 장갑 해드릴께요. 저한테 와요."

이군의 어이없는 발언에 황당해버린 나머지 거기서 그대로 뒤를 돌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사실 그 순간 나는 슬펐기 때문이다. 창가에 기대서 멍하게 넋을 놓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며칠이 흘렀지만 이군은 별 변화가 없다. 내가 그렇게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전하게 나를 웃으면서 반긴다. 이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기적이라서 내가 다치는 것은 하기 싫다. 그래서 연애를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몇번이나 다쳤는지 이제는 진저리 넌저리가 난다. 이제는 그만 다치고 싶다.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주게된다. 그리고 다시 내가 그 상처를 몇곱절은 더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멍청하게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안 바쁘면 한잔하자]
녀석에게서 문자가 왔다. 녀석은 내 기분을 무지 잘 맞춘다. 15년지기는 아무나 하나 싶긴하지만 족집게가 따로 없다. 미안한 마음이 들긴하지만 녀석에게는 자꾸 기대게 된다. 이러지않아야한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알면서 이렇다.
[그래]
 
 
 
약속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어쩌다가 이군의 눈을 봐버린 걸까. 멀쩡한척 하면서 사실은 엄청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모른척 눈감아버렸는지도. 아프지만 괜찮을 거야라는 말도 안돼는 자기 합리화부터 나는 고쳐야할 것이 많은 늙은 처녀일거다. 이래서 시집가긴 다 글렀다고 친구들이 누누히 강조하지.
"여어."
들어가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반겨주는 모습에 그새 풀어지고 만다. 녀석을 싫어한 적은 단한번도 없다. 그리고 좋아한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릴적엔 잠깐 녀석에게 이성으로써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이다. 오랜시간 동안 알아온 우리기에. 어쩌면 이것도 나의 위선이자 가식.
"먼저 왔네. 꽤 기다린거아냐?"
"한가한 내가 먼저 와서 기다려야지. 누굴 기다리게 하겠어."
"그래 알면 됐다. 시키자."
아무말 없이 술잔이 오간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난 것은 술인 것같다. 예전엔 오히려 못 먹던 술을 지금은 잘만 마시고 있다. 사람이 변한다지만 나는 자꾸만 엉뚱한 쪽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서 빙글빙글 돌고만 있는 것이다.
"이번엔 무슨일인데."
"맞춰봐."
"피식."
"왜 웃냐?"
"이번엔 간만에 연애?"
"내가 너를 속이려면 죽을 때쯤 돼야하는건가?"
"아니. 넌 내생에서도 날 못 속일꺼야."
"그럼 다음생엔 부디 보지 맙세."
"매정한 여자야. 이번엔 어떻게 된건데?"
"몰라. 어디서부터 매듭이 얽힌건지. 내가 잘 못한 걸까?"
"왜?"
"이군. 전에 소개시켜준 이군 기억하지?"
"아, 이군이라고 나한테 소개시켜줘서 자기 이름도 모르냐고 소리쳤던?"
"응. 그 이군."
"너도 징하다. 웬만하면 이름을 불러줄 때도 된거아니냐?"
"연하는 싫어. 난 애키우는 거 내 적성아니다."
"웃기시네. 네가 언제 어른이라고 취급한적있냐? 다 네가 보기에는 애면서."
"그래도 이군은 아니야."
"왜?"
"과거가 아파."
"또 그놈의 과거 타령. 너 어디 한,두명 스쳐간 것처럼 말하네."
"진짜 아파. 이번엔 너무나도 닮아버렸거든."
"넌 술만 들어가면 과거 타령이야. 지루하다 못해 지겹다는 거 알지?"
"그런 너는 왜 과거 타령에 얽매여서 안벗어나?"
"넌 여전히 네 생각만 하니까 그렇지."
"응. 난 지금까지도 이기적이었구 앞으로도 이기적일 거야. 그러니까 말리지마."
"가끔 나는 네가 진짜로 이기적이길 바래. 널 지킨다고 다치지말고. 진짜로 너를 지키는 것.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말아줬으면해. 고작 그래봤자. 27과 34이다. 7살밖에 안 차이나."
"7살이면 나 초등학교때 걔 태어나서 젖먹었어."
"그래도 이젠 같이 늙어가잖아."
"됐다. 이제 것 아무편도 안 들던 애가 갑자기 왜이러냐."
"나도 벗어나고 싶어서. 너 좀 떠넘기게."
벗어나고 싶어서. 그말이 그토록 간절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농담삼아 던지던 말이 아닌,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서 날아가겠다고 이젠 잡지 말아 달라는 애절함이 담겨있는 말에 더이상 어떠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너는 뭘 믿고 7살이나 어린 녀석에게 날 덥석 넘기려는 거니. 묻고 싶지만 물어서는 안되는 질문이다. 녀석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나는 모르겠다. 사실. 나는 녀석을 모른다. 녀석은 나를 안다. 우린 엇갈린 친구. 아니 어색한 사이. 아는 사이. 우스은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받은 상처 또한 클 것이다. 우린 처음부터 바보 였던 것이 아닐까.
내가 항상 늘어놓았던 핑계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았어. 친구로써 오래이고 싶었어.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나면 우리사이가 과거가 되었을 때 그 아픔을 떠맡기 싫었다. 그랬다.. 이젠 끝인지도 모른다.
"집에서 선보래."
"그래."
"나도 보기로 했어. 참한 여자래."
"응."
"내 집이 필요해."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 몰랐다. 어느새 발걸음이 닿는데로 걷다보니 집이었는지도. 꽁꽁 얼어버린 내 손이 처량맞았다.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바랬던 것은 어쩌면 녀석이 나에게 저말을 해주길 바랬던 것이 었을지도 모른다. 집이 필요해. 한마디만 나에게 던져주기를 나는 지난 15년간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치만 어쩌면 그것도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꾸 이러면 내가 보낸 15년이 우스워질테니까.
"선배."
"... 이.."
"그 호칭 싫어요. 이젠 선 안 그어도 되니까요. 그냥 받아들여요. 제발."
"바보야. 보채지마. 아니면 너부터 호칭 고치던지. 멍청아"
나를 보더니 웃는다. 뭐야 이건. 갑자기 덥썩 끌어안는게 어딨냐. 머쓱해진다.
"알았어요. 아니 알았어. 진짜 좋다."
"알면 이거 좀 놔."
"에이 좋으면서 팅기긴. 어디 세상 다 뒤져봐라 나 같은 남자 없다!"
"얼씨구."
"손 줘. 내가 진짜 장갑 해줄께. 꼭 잡아서 따땃하게 해줄게."
"......"

"그리고 영원히 안 놓을께."
 
 
 
 
 
 
 

- 장갑 마침.


오래전에 써두었던 글을 다시금 꺼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