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
아바타
1.
가게에서 퇴근한 대식은 서울에 가기위해 봉고차를 지하 주차장에서 꺼내왔다. 아파트에 옮겨 심은 소나무의 약한 나뭇가지가 툭툭 부러져 내릴 정도로 봄바람이 세게 불었다. 대식은 바람에도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대식이 사는 아파트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그 이유가 바람이 지나가는 곳에 아파트가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서울에 취직한 딸의 이사를 도우러 가는 게 목적이었지만 한 가지 일이 더 있었다. 처남에게 자전거를 가져다주기로 한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표정이 사뭇 밝았다. 17층에서 내려 아파트 문을 여니 전실에는 자전거가 2대가 놓여있다. 하나는 대식이 타는 것이고 하나는 아내가 타는 것이다. 대식의 자전거에는 바람이 팽팽했으나 아내의 자전거는 바퀴의 바람이 쪽 빠져있었다. 다시 방화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란색 장판에 베이지색 침대가 있는 아들의 방이 있고 건너 아파트가 보이는 베란다에는 두 대의 자전거가 세워져있었다. 한 대는 유성구민체육대회에 가서 경품으로 타온 것이고 하나는 원룸에 살던 학생이 얼어터진 보일러 수리비대신 놓고 간 자전거였다. 대식은 처남에게 주기로 마음먹은 경품으로 받아온 새 자전거를 먼저 꺼냈다. 아끼느라 타보지도 않은 좋은 자전거였다. 집에서 끌고 나오는데 마치 길들이지 않은 말을 꺼내오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자전거를 끌고 일층에 내려온 대식은 자전거를 접어 봉고차의 안쪽에 실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 자주색 자전거도 끌고 내려왔다. 자주색 자전거는 바퀴가 작은 자전거였다. 안산에 취직한 아들이 한눈에 보고 그 자전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아들 또한 동생이 이사하는데 도우러 왔다가 자전거를 끌고 가겠다고 했다. 두 대의 자전거를 싣고 난 후 아내가 준비해둔 먹을거리들을 뒤에다 차곡차곡 실었다. 2년 전 아내가 취직을 하면서부터 명절에도 가보지 못한 처갓집이었다. 요즘 젊은 새댁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식은 퇴근시간을 피해 출발하기로 했다. 밤 8시 가까이 돼서 집에서 내려와 봉고차의 시동을 걸었다. 줄탁(컴퓨터사전에는 없음) 이라는 말이 있다. 줄은 입구 변에 병졸졸자를 쓰고 쫄 啄자를 써서 줄탁 이라고 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안에서 껍질을 깨려할 때 어미가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말한다. 대식은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믿었다. 여태껏 처남은 한 번도 무엇을 해보겠다는 말을 스스로 한 적이 없었다.
2.
한편 어제 점심때 대전 누나로부터 전화를 받은 우걸은 방에 누워있었다. 2평 남짓한 방은 흡사 돼지우리 같았다. 반쯤 먹은 커피 잔과 초코파이 박스들 그리고 쌓여있는 책들 먼지로 더께가 낀 텔레비전과 컴퓨터 쓰레기통 항시 펼쳐진 이불에는 과자부스러기가 비듬처럼 붙어있었다. 매형의 말로는 전에 볼 때는 김일성 같더니 이제는 살찐 김정일을 닮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소위 말하는 은둔형외톨이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은둔형외톨이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오늘도 우걸은 금호동에 있는 다방에 갔다 왔다. 과부인 다방마담은 우걸의 성적대상이었다. 우걸은 출근하듯 다방에 드나들었다. 손님이 없는 어두컴컴한 다방은 우걸에게 어울리는 장소였다.
시인(詩人)인 매형이 서울에 문학모임이 있었다며 지난주 금요일인가 가뭄에 여우비 내리듯 다녀갔었다. 밤늦게 술에 취해 찾아온 매형은 뜻밖에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먼저 안방에서 늙은 아버지와 길게 얘기를 하고 나온 매형은 우걸의 방으로 들어왔다. 우걸은 매형이 온 것을 알았음에도 인사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인사하러 나가지 못한 것은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어서였다. 우걸의 몸은 살찐 호두나무 애벌레처럼 통통해서 배가 접히지 않아 일어나 앉기도 무척 힘들었다. 한마디로 고도비만 환자였다. 병원에서도 집에서 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살이 찌니 호흡마저 가빴다. 매형은 우걸을 보자 첫마디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처럼 들렸다. 그러나 듣고 보니 귀가 솔깃했다. 우걸은 그 소리에 애벌레처럼 반 윗몸일으키기를 10여 번 반복하더니 겨우 일어나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었다. 대식은 그 이상한 행동이 일어나기 전 예비동작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전 같으면 담배를 피우면 제발 그만 좀 피우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뻐끔담배라고 변명을 해왔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담배를 피워 당당하게 남 눈치 볼 것 없어’ 라고 말했다. 2평 남짓한 좁은 방은 금방 담배연기로 가득 찬다. 매형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서 괴로운 표정이 읽혀졌다. 그때 우걸이 말했다. ‘창문 좀 열어주세요.’ 매형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조금 열었다. 아니 조금 열려있던 것을 얼굴을 내밀만큼 열었다. 그리고 바깥공기를 쐬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마디 했다.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라고 매형이 말했을 때 우걸은 한마디 했다. ‘걷기도 힘든데요. 뭘, 숨도 가쁘고 현기증도 나요.’ ‘나도 사실은 기분이 좋았다. 나를 사랑하기로 한 것을, 나도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살고 싶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니 새로운 기운이 나더라.’ 매형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결혼을 안 하면 어떠니 그럴 수도 있어 스님이나 신부님도 결혼을 안 하고 살잖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 이왕 이 세상에 왔으니 즐기고 살아 알았지’ 매형은 양반다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걸아 장자알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몸을 환기시키라고 사타구니에서는 시쿰한 냄새가 나고 발가락 사이에서는 발고랑 냄새가 나고 겨드랑이 에서는 누린내가 나지 그게 왜이겠어? 사람의 뱃속에는 똥밖에 더 있어 그러니 냄새가 날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그러면서 창문을 열듯 가슴을 열어 환기를 시키라고 했어 너는 머리가 뛰어난 애였으니까 내말 이해하지?’ 우걸은 매형이 자전거를 권했을 때 선뜻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다. 매형은 그러면서 중고 자전거는 몇 만원이면 살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직접 사라고 했다. ‘계란은 껍데기를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에그 프라이가 된다고’ 스스로 사는 게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매형은 마라톤을 했다. 우걸은 4년 전 동아마라톤에서 매형이 뛰는 것을 보았었다. 우걸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하자 흥이 난 매형은 작년 고등학교 동문체육대회 단축마라톤에서 3등을 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면서 3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스스로 개발한 호흡법이라고 말했다. 최대한 산소를 많이 마시기 위해 두 번 숨을 들이켜고 짧게 한번 내뱉는 방법으로 5Km를 지치지 않고 달렸다는 것이다. 일등을 할 수도 있었는데 아쉬웠다고 했다.
누나의 말로는 오늘 밤 매형이 직접 자전거를 봉고차에 싣고 오기로 했다고 했다. 완강한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랐다. 우리 집에서 아버지를 이기는 것은 오직 시집간 누나뿐이었다.
3.
대식은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동네에 있는 셀프주유소를 찾았다. 행복도시에서 월드컵경기장으로 이어지는 10차선 도로가 텅 빌 정도로 자동차의 수요가 줄었다. 예전 같으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였다. 주유할 때 옛날에는 말에 여물을 주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비싼 양주를 먹이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눈금이 내려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기계음의 지시에 따라 기름을 넣고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대식은 자전거로 중학교를 다녔다. 자전거에 관한 전문가나 다름없었다. 빵구를 직접 때우기도 하고 휘어진 바퀴를 바퀴살을 조절에 잡기도 한다. 지금은 새 다이아도 버리지만 옛날에는 닳아서 못쓸 때까지 타고 다녔다. 마라톤을 하는 대식은 체중조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장거리를 뛰면 기름을 먹는 자동차처럼 체중은 저절로 줄었다. 몸은 하이브리드 차처럼 처음에는 당을 태우다가 장거리를 뛰면 자연 지방을 태우게 되어있었다. 우걸이 가지고 있는 지방도 자전거를 타면 자연 소비되게 되어있었다. 서울에는 한강에 자전거길이 잘 되어있었다. 서울은 자전거의 천국이었다.
유성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에 차를 얹었다. 고속도로를 포장도로라고 하면 지루하다. 그래서 대식은 포장도로를 수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변을 늪이라고 가정하고 차를 몬다. 대식도 젊었을 때는 과속을 많이 했다. 주로 처갓집을 다녀올 때였다. 아이들은 속도 계기판을 보고 150Km/hr 넘었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때는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나 대식의 봉고차는 100Km이상 달리지 못한다. ‘프로는 여유다’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었다. 대식은 자고로 시인은 안이비설신의 오감이 아닌 인간의 정신적 오감인 감정, 상상, 직감, 보편적 양심, 영감으로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바람처럼 걸림이 없지만 지키고 사는 것이 시인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시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말모임에서 ‘시인은 산이나 길을 먹고 산다’고 말해 친구나 친구 부인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시는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다.
아버지가 없었던 대식은 장인어른이 인생의 멘토였다. 장인어른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다. 지금도 장인어른이 고마운 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을 선뜻 큰사위로 맞아준 것이었다. 장인 장모님은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았으며 둘만 잘살면 된다고 하셨다. 양가 상견례 자리에 대식의 엄마와 아버지가 참석했지만 아버지는 병풍 속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딴살림을 차려 대식이 결혼할 나이가 된 것도 모르는 분이셨다. 모든 권한은 엄마가 가지고 있었으나 엄마 또한 대식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위로 두 형이 있었으므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대식은 혼자였다. 그러나 장인은 집안에서는 왕이셨다. 그리고 나머지는 신하였다. 아무도 장인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대식은 서울에 살면서 고스란히 장인을 닮아갔고 장인의 방식대로 가정을 이끌어왔다.
4.
우걸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방에 누워있었다. 오늘도 병원에 갔다 왔다. 약값과 주사비로 25만원을 지급했다. 약값이 5만원이고 주사한대 값이 20만원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로부터 그 말을 듣고
“에이 속상해 죽겠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의사가 맞으라는데 주사를 안 맞을 수는 없잖아요?”
“우걸이가 큰일이다.”
“오늘 항용이 아빠 온다고 했어요.”
“지난주에 왔다갔지 않아, 왜 쓸데없이 그러니?”
“우걸이 자전거 실어다 준다고 그랬어요. 낮에 남순이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우걸이 타고 다니며 운동하라고 그러지 않아요?”
“나는 절대 반대다!”
우걸은 방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지금 나서봤자 언성만 높아질 뿐 해결될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하려는 일에 찬성한일이 거의 없었다. 그것도 있었지만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몇 발짝만 걸어도 현기증이 나고 다리에서 기운이 쪽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형의 말대로 자전거를 타면 걷지는 못해도 타고가면 나을 듯싶었다. 그녀는 다방출입을 그만 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돌이켜보면 성욕이 떨어지면서 자꾸 먹었던 것 같다. 그게 살로 가서 이제는 걷기조차 힘들어졌다. 우걸에게 한 가지 낙이 있다면 다방마담을 만나는 일이었다. 다방마담도 소문을 들어서 안다. 우걸이 조금 모자라지만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을 장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걸은 결코 모자란 사람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에는 반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수재였다. 이름처럼 우걸은 어리석은 것 같지만 속으론 걸물이었다. 나름대로 과부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5.
대식은 신탄진을 지나고 있다. 신탄진을 지나면 곧바로 충청북도로 연결된다. 대식의 고향은 대전이 아니라 충청북도 옥천이었다. 대식의 다리는 보통사람의 허리둘레만큼 굵다. 이는 어릴 때 20여리 비포장 길을 자전거 통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상급학교 진학률도 자전거도 드물었을 때였다. 먼 통학 길에 뒤에 타는 솜털 보송한 동네 여중생도 있었다. 대식에게는 뼈아픈 기억이 있다. 대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진학에 실패하고 고향에 와서 재수를 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도 그 탓일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해준 것은 그뿐이었다. 대전에서 5, 6학년을 다니게 해준 것이다. 어제는 아버지의 23번째 기제사가 있었다. 아버지는 해준 게 없어도 9남매 중 미국에 있는 하나만 빼고 다 모인다. 거기서 큰형님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며 말했다. 결혼식에 주례를 서려고 갔는데 글쎄 신랑이 나타나지 않아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당에 내려가 보니 음식은 준비되고 준비된 음식은 혼주에게 보여 진 즉시 폐기되더라는 것이다. 돈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큰처남이 그랬다.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처남의 복수였다. 결혼은 장인의 강요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맞선본 여자가 싫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처남이 가출을 했던 것이다. 연락이 되지는 않았지만 식구들은 설마 했다. 그래서 청첩을 취소하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대식은 맏사위였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앞장서서 수습을 해야 했다. 황당해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부 측이었다.
처남은 더듬는 습관이 있었다. 행동을 한 번에 하지 못하고 여러 번 반복한다. 가령 숟가락을 집을 때 단박에 들지 못하고 여러 번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들었다. 그처럼 행동뿐만 아니라 말도 더듬었다. 그러나 운동을 할 때는 멀쩡했다. 대식은 큰처남이 운동부족이라고 생각했다.
6.
“여보 내 말 좀 들어봐요. 자전거는 안돼요.”
“안되기는 뭐가 안 된다고 그래요. 지가 타겠다고 그러는데”
“항용이 아버지가 틀렸어요. 자전거를 타다가 할마이나 부딪혀보세요. 수천만 원 들여서 고쳐줘야 돼요. 내말이 틀렸어요?”
“그럼 오지 말라고 해요? 아까 출발했다고 했는데”
“항용이 아버지가 오면 내가 돌려보내겠소.”
우걸은 누워서 안방에서 들리는 소리만 듣고만 있었다. 이제까지는 모르지만 오늘부터는 자신의 뜻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7.
대식은 쉬어가기위해 죽암휴게소에 들렸다. 연식이 오래된 차라 쉬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오줌이 마렵지는 않지만 화장실로 향했다. 내일 이사하는 딸이 한걸음 빨랐다. 딸은 이미 새 자전거 하나를 고속버스에 싣고 갔다. 고속버스에서 전철로 양천구 목동 원룸까지 가져갔다. 남자도 하기 힘들 것을 여자 힘으로 해냈다. 집도 마찬가지다. 대식의 명으로 되어있는 가락동 재개발지구아파트 전세를 내보내고 그리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딸의 말로는 휴일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다. 딸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 똘똘해 보이는 남자친구도 있었다. 아직 이사를 하는데 도와주겠다는 말은 없었으나 심적으로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대식은 장인어른에게 배운 것처럼 행동해왔다. 둘만 좋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첫째인 아들이 문제였다. 서른둘이 되도록 여자 친구도 없을뿐더러 아예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었다. 대식은 처남을 볼 때마다 아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화장실에 갔다 와서 대식은 화물칸의 문을 열어보았다. 처남의 자전거 1대가 쓰러져 있었으나 접는 자전거라 다른 물건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대식은 흐뭇했다. 문득 처남의 자전거에서 처남의 웅크린 모습이 보였다. 처남에게 자전거를 선물한다는 것은 선물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엔 물고기를 선물하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했다면 지금은 건강을 선물하기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면 자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어 있다. 첫째 인간이 두발로 걸었다면 자전거를 타보면 굴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비바람 같은 자연에 노출되어있다. 보호대가 아닌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셋째 자전거는 직접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밀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멀리 갈 수 있다. 뒷문을 닫은 다음 대식은 차를 둘러본다. 발로 타이어를 퉁퉁 소리가 날 정도로 차본다. 아마도 다음 도착지는 음성이나 이천휴게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식은 차를 타지 않고 휴게소 건물 쪽으로 다시 향했다. 주머니를 뒤져 자판기에서 커피한잔을 뽑았다. 건강을 생각해 평소에는 먹지 않는 자판기 커피였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대식은 초기 고혈압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심비대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이 커져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심장이 크다는 말에 마라톤을 해서 그런가? 착각하기도 했으나 알고 보니 혈관이 좁아져 부하를 받아 심장이 커졌다는 것이다. 위험한 신호였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손발이 찬 편이었다. 대식은 탁자가 있는 나무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봉고차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대식은 아들 항용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 엄하게 키운 것이 원인인 것처럼 보였다. 아들은 많이 맞고 자랐다. 군대에 갔다 와서는 아예 집을 나가 독립해 살았다. 독립해서 살며 많은 소식이 들여왔다. 공모전에 상을 받아 유럽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서울에 올라가서 선배에게 빌붙어 산다고 했다. 그러다 취직을 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취직 전에는 구박도 많이 받았다. 취직을 못할 바에는 집에 내려와서 가게에서 일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식의 등살에 며칠을 못 버티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대식은 아들이 앞서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 취직을 한 이후부터는 강요하는 일은 없어졌다. 이제는 집에도 자주 오지만 부자관계는 소원한 편이었다. 그것은 대식이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끌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주기로 생각했다. 멀리 떨어진 수영장에 걸어 다닌다고 말했을 때도 자전거를 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전거를 실어다 달라는 것이었다. 전 같으면 직접가지고 가라고 했겠지만 올라가는 김에 마지못해 실어다주겠다고 말했었다.
커피를 다 마신 대식은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다음 봉고차에 올랐다.
대식이 타는 자전거에는 안장이 없다. 일부러 안장을 떼어내 버렸다.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다. 불편할 것 같지만 사실은 편안하다. 가풀막 길을 오를 때에는 서서타면 쉽게 오를 수 있다. 내리막길에도 서서타면 다리에서 스프링역할을 해서 충격을 받지 않는다. 안장이 없으면 서있는 거나 마찬가지로 편하다. 사이클 선수들도 보면 대부분 서서 탄다. 대식은 스케이트 선수보다 더 굵은 사이클 선수의 금벅지가 부럽다. 단지 자전거가 쉽게 고장 날 뿐이었다. 대식의 자전거는 본체의 축과 페달에 연결된 쇠 부분이 뭉그러져 떨어져 나오는 바람에 망치로 때려 박고 풀림방지 볼트처럼 고정시켜버렸다. 배낭을 메고 자전거에 오르면 어디든지 갈수가 있다. 자전거를 타는 감도 좋아 마치 날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걸이 건강을 회복해 자신처럼 여행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장인어른보다 큰처남이 먼저 죽을 것만 같았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장거리 운전은 지루하다.
8.
우걸은 누워서 텔레비전을 켰다. 일본에서 원자로가 폭발하는 장면이 나왔다. 자신도 숨이 가빠지며 가슴에서 폭발할 것 같이 답답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일어나 잡은 것이 담배였다. 담배를 깊이 빤 다음 우걸은 빨갛게 달아오른 담뱃불을 본다. 원자로의 노심이 녹았다면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1000도 가까이 오른다는 원자로와 비슷하게 오르는 담뱃불이다.
매형이 말하기 이전부터 자전거는 한번 타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은 알지만 이번만은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희생된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동생도 희생자였다. 조카가 대학에 입학했는데도 입학금이 없어 대학에 보내지 못하고 재수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난 것은 시집간 누나와 여동생뿐이었다. 문제는 아버지와 싸우면 집을 나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막상 집을 나가면 갈 데가 없었다. 지난번에도 아버지에게 대들었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매형은 자신을 학대하는 일을 저지르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가령 신년 계획을 세울 때 담배를 끊겠다든가 아니면 술을 끊겠다가 아닌, 가족의 위해 산다가 아닌,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즐겁게 담배를 피우고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며 가족을 위해 돈을 쓰지 말고 자신을 가꾸는데 돈을 쓰라는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하면 일이 지루하지만 만약 여행자금 마련을 위해 일을 하면 즐겁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라는 말씀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또한 과거와 미래는 잘라버리고 현재만 생각하면 안 풀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몸이 아픈데 마음이 아프지 말고, 마음이 아픈데 마음이 아프지 말라는 것이다.’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니고 마음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낳아야만 대를 잇는다는 생각도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안에 정신이 깃들어 있어 정신은 결코 죽지 않고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결혼을 안 했다고 죄책감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시인은 단순히 시인이 아니라 입신의 경지에 들어가 사람이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시인은 죽은 빵을 먹지 않으며 산 빵을 먹는다고 했다. 몸이 먹는 것은 죽은 빵이며 정신이 먹는 것은 산 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죽음의 경계 밖에서 인간세상을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게 과연 무엇이겠는가? 되물었다.
우걸은 주먹에서 불끈 힘이 솟았다. 지구나 달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면 별이 아니라고 했다. 답답한 가슴에서 화산이 분출하려는 듯 아팠다.
9.
중부고속도로 음성을 지나고 있었다. 다행히 차량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계기판의 온도계가 계속 중간에 머물러 있었다. 차량이 과열되면 운전을 멈춰야 한다. 음성을 지나 다음 이천휴게소에서 쉬기로 마음먹었다. 대식은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한마디로 아들은 영악하지가 못했다. 먹고 살만해 도와주려는 부모를 충분히 이용해 먹으면 좋으련만 자꾸만 멀어지려고만 했다. 부모는 아들이 제살궁리를 하길 바랐다. 안산 공단에 취직을 한지도 3년 남짓 되어간다. 대식은 월급을 타서 엄마에게 전액 송금을 하는 것을 말렸다. 어느 정도 송금을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 살면 지친다고 말해주었다. 취직을 했으면 옷도 사 입고 자동차도 사라고 권했다. 그래야만 일한 보람을 느끼지 않겠냐는 대식의 생각이었다. 과거 대식의 삶이 그랬다. 돈을 쓸 줄 모르고 모으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아들은 연애도 한번 안 해본 놈이었다. 대식은 그게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한지 몰랐다.
결혼하면 30평대 아파트 하나는 사주기로 했다. 그러나 결혼을 마치 부모를 위해하는 것처럼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찌질 한 놈?” 남자가 숫기가 있어야지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대학4년을 보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대식은 요즘 만약에 아들이 친손자를 안겨주지 않더라도 할 수 없다고 정리했다. “이삿짐을 날라주러 온다고?” 와야지 오는 것이다. 밖에서는 몰라도 집에서는 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내는 대놓고 외삼촌처럼 되려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가져다 달라니 놀라운 변화였다. 자전거의 가격을 따지기는 했지만 자전거를 뭐 패션으로 생각하는지……
아무튼 부모 곁을 떠나 연매출 500억이 넘는 중소기업의 기획실에 취직을 해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니 대식은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었다. 대식의 바람은 제발 취직을 해서 남 밑에서 한 3년쯤 고생을 해봐야 부모가 힘든 것도 알고, 철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철이 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긴 했다. 그러나 아직 모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자기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얘기만 전해졌다.
“에이 씨팔 꿀꿀해서 못살겠네.”
“야 개새끼야, 그게 부모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자식하나 없다고 생각할께.”
운전 중에 대식은 갑자기 핸들을 손으로 치며 괴성을 질렀다.
먹먹하던 가슴이 후련했다.
“혼자 잘 지냈니? 요즘 결혼해서 애 키우는 젊은이들 고생이 말이 아니다더라 애 하나 낳으면 병원비가 천만 원 들고 유치원 보내면 한 달에 몇 백만 원 들고, 잘 생각했어.”
“토요일 일요일 쉬잖아 집에 내려와서 밥이나 먹고 가?”
“쪽팔린다고 생각하지 마, 그냥 편하게 살아라. 그렇게 살다가 결혼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외삼촌처럼 혼자 사는 거고”
내일 아들을 만나면 듣기 좋은 말만 하기로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는 결혼해서 집에서 탈출하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장인 장모가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일 없이 싸우다보니 아이들은 주눅 들고 기를 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수사자가 가족을 지배하듯 장인의 바람기 또한 골목에서 대단했다고 한다.
어둠속에서 이천휴게소 표지판이 보였다.
10.
매형은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른다. 우걸은 담뱃불을 끄고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버지는 손님이 올 때는 철저히 사자의 발톱을 숨겼다. 오늘은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돌았다. 아버지는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집에 들이지 않고 무조건 돌려보냈다. 매형이 그런 일이 있었나? 되돌아 봤지만 매형은 아직 그런 일이 없었다. 우걸은 매형이 조카의 이사 차 온다는 것을 모른다. 오로지 자신에게 자전거를 실어다주기위해서 대전에서 부러 올라오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소심한 우걸은 그게 더 걱정이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지 않으셨다. 아들에게도 자전거를 사주지 않았다. 우걸은 아버지 몰래 아이들의 자전거를 빼앗아 탔다. 그때 우걸은 아이들을 때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을 밀어 쓰러뜨리거나 주먹다짐으로 빼앗아 탔다. 아버지는 모르는 사실이다. 이웃에 있는 작은집에는 자전거가 있었다. 어린 사촌들은 우걸에게 특히 많이 맞았다. 언덕으로 밀어 사촌여동생이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아버지의 성질을 알기 때문에 숨겨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걸이네 집에 자전거가 들어오는 것이 처음이다.
11.
기름 값이 올라서인지 이천휴게소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대식은 생각했다. 만약 와이프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면 처남이 아직 혼자살고 있을까?
결혼식 날 처남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은 기억을 되살리기조차 끔찍했다. 그러나 작은 돌부리에는 넘어져도 태산에는 넘어지지 않는다고 대식이 나서서 모든 것을 물어주기로 약속하고 마무리되었다.
오늘에서야 처남을 위해서 아니 처갓집을 위해서 뭔가 해줄 수 있어 모든 게 감사했다. 장인어른의 엄격한 교육 때문이었는지 아내는 시집와서 빈털터리였던 대식에게 적지 않은 부를 안겨주었다. 대식이 요즘 하는 사업은 임대사업이었다. 장인어른이 하는 것도 임대사업이었다. 그리고 20년 넘게 감속기를 납품하는 자영업을 하는 것도 독립해서 사는 작은처남의 도움이 컸다.
지난번에는 술에 잔뜩 취해 빈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장인은 구정에 아내가 택배로 보내준 소곡주를 맛있게 먹고 계셨다. 새마을금고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평상시에는 술을 입에도 안대는 분이었다. 그런데 소곡주를 최고급 양주 마시듯이 조금씩 약처럼 마시고 계셨다. 장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다른 사람은 손도 못 대게하고 조금씩 아껴먹는다고 하셨다. 오늘은 자전거뿐만 아니라 선물도 제법 챙겼다. 서둘러서 장인어른이 잠들기 전에 도착하고 싶었다.
12.
결국 말다툼하던 안방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송곳 같은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이 집어던진 것은 여자가 믿는 성모상이었다. 도자기로 된 마리아성모상은 산산조각이 나서 방바닥에 흩어졌다. 팔순의 노인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몰랐다. 이어서 빈 술병을 자개장식 화장대의 거울을 향해 던졌다. 와장창하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옛날부터 심하게 싸워도 여자가 집을 나가는 적은 없었다. 여자는 자식을 위해 참을 뿐이었다.
건넌방에서 우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겁에 질린 찌질한 수사자처럼 꼼짝도 못하고 무서워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겁에 질려 담배를 피워 물 생각조차 못했다. 아버지는 우걸이 담배피우는 것을 몰랐다. 우걸은 춥다고 전기난로를 가져다놓고 항시 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만약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면 당장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엄마가 황급히 깨진 성모상과 파손된 거울파편을 치우는 사이 우걸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우걸은 꿈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외계인 ET처럼 하늘을 날아가는 꿈이었다. 한여름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보였다. 뭉게구름은 거대하게 안나푸르나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우걸은 힘차게 자전거페달을 밟았다. 구름이 다가왔다. 뭉게구름은 설산처럼 온통하얀색이었다. 뭉게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구름알갱이들이 물방울처럼 크게 보였다. 눈앞에 개울물이 나타났다 뒤돌아보니 초원이 펼쳐져있었다. 그때 수사자 한 마리가 등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사자는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빨리 건너라는 듯 으르렁 거렸다. 금방이라도 발톱이 날카로운 앞발로 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자세히 보니 수사자가 매형이었다.
지난번 매형의 말로는 꿈에 이루어지면 현실에도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매형은 자기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어느 정신과의사의 말이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나니 자전거를 타고 개울을 건너가지 못한 게 아쉬웠다. 사람은 몸과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춘향이처럼 몸이 질곡(桎梏)에 묶일 수도 있지만 의식이 질곡에 묶여있으면 발의 차꼬와 손의 수갑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13.
대식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유리문을 두드렸을 때 문을 따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지못해 문을 열어주듯 장모님이 문을 열어주었다.
대식이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장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항용이 애비 안방으로 들어오기요. 대전에서 자전거 싣고 왔다고? 반갑지 않으니 되 싣고 내려가오. 내말 알겠소?”
“왜요? 큰처남 타라고 가지고 왔는데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10여 년 전에도 한번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런 분위기였다. 그때는 아내와 처남들이 다세대주택을 처분하고 강남아파트에 투자를 하자고 했다고 맏사위인 대식까지 거실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쫓겨났었다. 대식은 눈치를 채고 시키시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어디 아프신 데는 없으시지요?”
이어 장모님을 보며 안부를 물었다. 장모님은 손을 베었는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별것 아니라며 웃으며 말했다.
“일없소, 자전거는 위험하오. 항용이 아버지가 다른 것은 다 잘했는데, 이번에는 잘못한 것 갔소. 자전거는 위험하오. 내 말대로 하오.”
“큰처남 말 좀 들어보고요”
“만약에 타겠다고 하면 집에는 들여오지 말고 저 밖에다 묶어두오”
“새 자전거인데 훔쳐 가면 어떡하라고요?”
장모님이 한마디 했다. 대식은 처갓집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장모님 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다.
“우걸이가 타겠다고 했으니 안에다 들여놓고 묶어놔요”
“예, 알겠습니다. 장모님 딸기 가지고 왔는데 좀 씻어다 장인어른 드리시지요?”
장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큰처남은 자전거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우걸은 힘이 없었다. 대식은 처남들과 달리 장인의 비위를 잘 맞추는 편이었다.
14.
딸기를 먹자고 처남을 불렀으나 처남은 끝내 건너오지 않았다. 씻어온 딸기를 함께 먹고 대식은 돼지우리 같은 처남의 방으로 들어갔다. 병이 쉽게 치유되지 않듯 처남의 방은 일주일전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하루에 1%씩만 바꿔도 100일이면 100%가 바뀐다고 말해줬었는데 과연 어디가 7%가 바뀌었는지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겉보다는 마음이 바뀌는 게 더 중요했다.
“큰처남 자전거 탈거지?”
“그럼 탈수 있어요.”
“조심해서 타 다치지 말고, 처음에는 말(馬)처럼 끌고만 다녀 알았지”
“내가 어린애 인줄 아세요?”
“다방마담은 잘 있고? 매형이 왔으면 누워만 있지 말고 쓴 커피라도 한잔 타와 봐.”
“알았어요.”
처남은 살찐 호두나무벌레처럼 반 윗몸일으키기를 여러 번 하다 일어났다.
“야 처남 지난번에는 열 번에 일어나더니 지금은 아홉 번 만에 일어나네?”
“운동 좀 했죠.”
“알았어. 매형이 맥주한잔 사줄게.”
“나 술 먹으면 안 되는데”
“먹고 싶을 때 먹고 억지로만 먹지 마,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내가 말했지”
처남은 결혼식 사건 전까지 용산 미8군 실내수영장에 근무했었다. 수영장에 약품을 타고 수위 조절하는 일을 했었다. 그 후 도망가서 서울역 인근 쪽방 촌을 전전하다 집에 돌아 왔을 때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마른 꼬챙이처럼 말라있었다. 겨우 길 잃은 새끼 새를 찾아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장모님이 장인 몰래 음식을 날라다 주었었다.
“처남, 옛날에는 나보다 날씬 했잖아?”
“그럼요. 매형은 껨도 안됐지”
처남이 좋아하는 맥주를 사다놓고 둘은 새벽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다.
15.
아침 일찍 가락동시영아파트로 향했다.
어쨌든 자전거 한 대는 해결했다. 다른 한 대가 문제였다. 안산에 있는 아들이 가락동에 나타날지도 의문이었다.
옛 강동구 가락동에서 88년에 전세를 주고 대전으로 이사를 갔으니까 23년 만에 찾아가는 집이었다. 성동대교를 지나자 동아마라톤 코스를 따라 국제마라톤대회를 알리는 깃발이 걸려있었다. 4년 전 큰처남이 저쯤에서 대식을 응원 나와 주었었다. 서울숲 앞을 지날 때 다리에 쥐가 나서 고생을 했었다. 평평한 아스팔트길만 달리다가 쇠로된 복강판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몸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마음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개울물처럼 건널 수 있던 잠실대교를 타클라마칸 사막처럼 힘겹게 건넜다.
“처남 파이팅! 힘! 힘! 힘!”
대식은 운전대를 꽉 잡고 외쳤다. 마라토너 들이 서로를 응원할 때 외치는 구호다. 주먹을 쥐고 힘! 힘! 힘! 외치면 새로운 힘이 솟았다.
16.
아~아~
23년 세월이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 듯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삿짐을 들이기전 집수리를 하는데 딸의 남자친구가 왔다.
모든 집수리가 끝날 무렵 아들이 왔다.
딸의 남자친구는 마라톤 풀코스를 뛴 적도 있고, 익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서울까지 왔었단다. 대식도 뒤돌아보니 길이었다. 길의 끝에는 장인이 서 있었다. 대식은 딸의 남자친구가 전생에 할아버지였거나 손자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화는 아주 조금씩 이루어진다.
처음 장인어른은 함흥냉면을 두 그릇이나 시켜주었었다. 질겨서 못 먹는 음식이었다. 대식은 한 식구처럼 중국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아들은 자전거를 끌고 갔다. 안산가는 시외버스 편이 없어 가락동시장 앞을 한참 헤매다가 먼저 내려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