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닦다가 엉덩이에 마음을 잃다
- 작성일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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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자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상체를 일으켜 앞을 보자 여사범님이 윤정씨를 안고 울고 있었다. 윤정씨는 실신을 한 듯했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는 피가 흥건히 흘러나와 있었다. 거기엔 뭔가 고깃덩어리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았다. 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다시 뒤로 누웠다. 이창동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철로 위에 올라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절규하던 대사가 떠올랐다.
“나 다시 돌아갈래!”
*
난 27살 때 건강을 잃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픈 데가 열군 데가 훨씬 넘었다. 특정 질병을 앓지는 않았으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았다. 난 원래 체력이 많이 약했는데, 아마도 20대 초반에 깊은 각성을 한 뒤 너무 무리해서 공부를 한 탓에 몸의 기능이 전체적으로 무너져 내린 게 아닌가 싶다. 그 후 난 생전 안 하던 운동도 매일 하고 -집 근처 산을 매일 올랐다- 병원과 한의원을 거의 매일 다녔으나 한번 망가진 몸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어서 돈을 벌어 몸이 불편한 엄마를 집에서 편히 쉬게 해드려야 했는데, 젊은 나에겐 정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다.
그런 병자의 생활을 1년쯤 했을 때 난 아무래도 뭔가를, 내 몸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뭔가가 추가돼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와 죽전의 ‘국선도’라는 기수련원을 다니게 됐다. 그곳은 지금은 연이 끊어졌지만 당시 절친했던 여한의사가 알려준 곳이었다.
국선도라는 명칭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몇 년 철학을 공부하여 기氣의 개념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기수련, 단전호흡 등에 완전히 문외한이던 난 막연히 그런 걸 다 사이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단어들은 사람이 붕 뜨는 이미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해보자 내가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국선도는 한번 할 때 1시간 30분 정도를 했는데 준비운동 30분, 단전호흡 30분, 마무리 운동 30분으로 이루어졌다. 1시간의 스트레칭과 가벼운 권법 느낌의 동작들, 단전호흡이라는 요상한 걸 하긴 하지만 그곳은 누가 봐도 순수하게 운동을 하는 곳이었다. 종교적인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또 흔히 수련하는 사람들이 듣는 ‘아-’ 하는 식의 소리를 어두운 방에서 오디오로 들으며 여러 명이 각자의 진도에 맞는 동작들로 묵묵히 단전호흡을 하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힘이 있었다. 나를 외부와 완벽히 단절시켜 우주에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을 줬는데 난 그때마다 절대적인 평온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난 그제야 이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사이비도, 바보도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여담이지만, 준비운동이 끝나고 단전호흡을 시작할 때 불을 끄고 모두 바닥에 누워 잠시 숨을 고렀는데 난 그때마다 혼숙의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꼭 광란의 집단성교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 이곳에 절박한 마음에 몸을 고치러 왔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이곳에서는 성적인 생각은 완전히 접어두기로 했다.
일주일쯤 수련했을 때 난 심하게 몸살이 났다. 오한이라도 걸린 듯 몸이 계속 춥고 부들부들 떨렸다. 관장님은 국선도를 시작하면 한동안 오히려 몸이 더 아플 수도 있다고만 말하고 이에 대해선 별 언급을 안 했는데, 내 느낌에는 왠지 ‘기몸살’ 같은 게 난 것 같았다. 단전호흡을 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만 불룩불룩 했을 뿐인 데도 일주일 만에 몸의 흐름을 바꿔놓다니, 단전호흡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고 효력도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내 몸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 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단전호흡은 매우 어려웠다. 평생을 코로 숨을 쉬었는데 숨구멍도 없는 배로, 그냥 배도 아닌 아랫배로 숨을 쉬려니 도무지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단전호흡을 할 때 마음을 아랫배에 두고 호흡을 하라고 했는데 이 말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마음은 생각일 테고, 생각은 머리로 하는 건데 그 생각을 아랫배로 옮기라니 마치 외계인의 행동양식을 나에게 적용시키는 것 같았다. 난 이러한 궁금증들을 관장님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지금은 어떠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있기로 했다.
그런데 난 단전호흡을 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얼마 전에 우연히 <꿈꾸는 다락방>이란 책 속의 “가장 힘든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란 구절을 보고 “맞아, 생각하는 게 제일 힘들어”라고 생각했었다. 앞날의 계획 한번 세우려면 머리가 터지려고 했다. 그런데 단전호흡을 하려면 아랫배에 집중을 해야 했는데 -아랫배에 마음을 두라는 말은 이걸 뜻했다- 자꾸만 머릿속으로 생각이 들어와서 그걸 생각하느라 아랫배로 호흡하는 걸 까먹어버렸다. 호흡을 놓칠 때마다 ‘자, 아랫배에 집중’하며 아랫배에 마음을 두려고 했지만 항상 허사였다. 생각은 마치 잘라 내도 잘라 내도 또 자라나는 말기 암환자의 암세포 같았고,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생각을 안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같았다. 지금껏 살면서 생각은 내 의지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우주에 또 다른 지구가 발견된 것과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달쯤 하자 아랫배로 숨을 쉬는 게 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단전호흡을 하면 아랫배에서 열이 난다고 했는데 열도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선도에는 어떤 종교적, 사이비적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젠 정말 안심하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단전호흡을 통한 ‘생각 안 하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각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침투해왔지만 순간순간 머리가 텅 비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될 때면 내 몸과 내 삶이 정리되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난 자주 몸살 기운을 느끼곤 했는데 3달쯤 수련을 했을 때부터는 단전호흡을 잠시 하고 나면 몸살 기운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관장님은 이 정도의 효과를 보려면 일 년은 수련해야 한다며 나보러 수련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했다. 무슨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그냥 숨만 쉬었을 뿐인데 갑자기 몸이 좋아지다니, 상상도 못했던 호흡이라는 새로운 세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국선도는 단전호흡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준비운동만으로도 정말 훌륭한 운동이었다. 온몸 구석구석을 좌우대칭으로 모두 풀어주는데 하면 할수록 그 과학적인 체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몸이 틀어지고 높낮이가 안 맞는 등 균형이 안 맞는 부위가 많았는데 이것만 계속 해줘도 큰 효과를 볼 것 같았다. 고마운 한의사님.
한창 수련에 맛을 들이고 있던 3월의 어느 날, 난 마무리 운동을 할 때 40대 아줌마와 짝을 이루어 하게 됐다. 보통은 관장님이 동성끼리 짝을 지어주는데 우리가 실력도 체격도 비슷하자 짝을 지어준 것이다. 난 체구가 작았다. 우리는 다리찢기를 서로 도와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마주보고 앉았다. 난 아줌마가 좀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는데 역시나 이 동작을 남자와 하기엔 거북했는지 아줌마는 좀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난 아줌마가 나 먼저 다리를 찢으라는 눈짓을 보내서 할 수 있는 만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리를 양 옆으로 찢었다. 관장님은 항상 남과 비교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했다. 아줌마는 다리를 벌려 양발을 내 복사뼈 근처에 댔고, 연이어 내 양팔을 잡고 자신의 몸을 뒤로 누이며 내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후- 난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스으윽, 매일 열심히 수련하여 상당히 부드러워진 내 몸은 얼굴이 아줌마 보지에 닿기 직전까지 내려갔다. 이런, 민망한 자세군. 난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일으켰고 괜히 서로 낯뜨거울까봐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줌마는 몇 초 뒤 나를 다시 잡아당겼고 난 숨을 내뱉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후- 다시 마주한 보지, 난 이번에도 수련에 집중하기 위해 성적인 생각은 꾹꾹 눌러버렸다. 난 반드시 건강해져야 했다. 잠시 후 난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보지에서 아무 냄새도 안 나네… 이 정도 거리면 냄새가 날 법도 한데…. 이 상황이 좀 익숙해졌는지 난 순간적으로 본능적 사고가 작동됐다. 아줌마는 날 다시 잡아당겼고 난 또 보지와 마주했다. 아무 냄새도 안 나… 40대 아줌마가 관리를 잘하나보네… 아냐… 예전에 사귄 현이도 옷 입은 채 보지에 대고 냄새를 맡았더니 아무 냄새도 안 났었어… 생리를 하지 않는 한 이런 상태로는 냄새가 나지 않나봐…. 난 잠시의 공상을 마쳤고, 우린 자세를 바꿔 이번엔 내가 아줌마를 잡아당겼다. 스으윽, 나보다 더 유연한 아줌마는 나보다 더 몸이 아래로 숙여졌다. 그러다가 내 자지에 입이 닿으려 하자 민망한 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난 수련에 집중하기 위해, 아니 그것보단 갑자기 자지가 꼴려서 아줌마 입속에 자지가 들어가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흐트러진 마음을 한 데 모으려고 노력했다. 몇 초 뒤 아줌마는 몸을 일으켰고 난 다시 그녀를 잡아당겼다. 안정된 상태의 자지, 다행히 꼴리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래… 그냥 수련이나 하자… 잡념은 그만…. 잠시 후 마지막 세 번째, 이번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고요한 마음상태… 그래 여기선 수련만 하는 거야… 난 반드시 건강해져야 해… 야한 공상은 밖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근데 그 순간, 뒤로 눕힌 내 몸을 앞으로 세우려는데 자지에 뭔가가 닿은 느낌이 스치듯 났다. 눈을 감고 있어서 보진 못했지만 분명 뭔가가 닿았다. 게다가 내 느낌이 맞는다면 그건 뭔가가 부딪힌 느낌이 아니라 뭔가에 감싸인 느낌이었다. 설마 아줌마가 입을 벌리고?…. 하지만 몸을 세우고 아줌마를 슬쩍 봤을 때 그녀는 아무런 이상한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역시 여기는 뭔가 요상한 곳인가….
4월말.
호흡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거의 한 달 주기로 한 단계씩 좋아지는 것 같았다. 관장님은 내가 저번 달에 승단할 때, 지금까지 자신이 본 국선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호흡이 가장 좋은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했다. 내가 이쪽에 정말 타고난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수련을 한 결과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런 발전 속에서도 나의 몸은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난 몇 년 전부터 여름만 되면 원인을 알 수 없이 온몸이 따끔거리면서 간지러웠는데,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이 짜증나는 증세가 또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난 2년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최근 좀 괜찮아지는가 싶다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또 3년 전에 다친 골반이 최근 많이 좋아졌다가 요즘 무리를 좀 했더니 다시 안 좋아졌다. 내 몸은 왜 이 모양인지,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좋아지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지 두렵고 갑갑할 뿐이었다. 한동안 단전호흡이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듯 맹신했었는데 이 또한 그저 하나의 방편일 뿐인 듯했다.
5월초.
난 강남역의 오피스걸과 오랜만에 매춘을 했다. 최근 몇 년 2, 3개월에 한번씩 매춘을 하다가 국선도를 시작한 뒤로는 수련에 방해가 될까봐 잠시 참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몸이 섹스를 원하는 것 같아서 하게 됐다. 그런데 기분전환이나 좀 하려고 했었는데 섹스 후 내 몸은 예상외의 아주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였다. 우선 섹스 후 우울증이 많이 완화됐다. 사실 창녀랑 성격이 많이 안 맞아서 섹스는 별로였는데 -난 평소 성격처럼 섹스할 때도 까다로워서 상대와 성격이 잘 맞아야 했다- 아마도 억눌린 욕정이 풀리면서 몸의 기순환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우울증은 말 그대로 어두운 감정이 몸이 순환되지 않아 풀리지 못하고 계속 쌓이는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있을 때도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언젠가부터 매우 어두워진 얼굴표정을 바꾸기 위해 한두 달 전부터 계속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의학에선 주기적으로 섹스를 해주지 않으면 몸에 여러 가지 이상증세가 생기는 독신병이라는 게 있는데 정말 그런 게 있는 것 같았다. 섹스여 내게 오라!
5월말.
우울증이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긍정적인 생각하고, 억지로 하는 거긴 하지만 매일 수십 번씩 웃고, 매일 등산과 국선도를 하는데도 왜 이놈의 우울증은 사라지지 않는지. 아무래도 윗집에서 내는 소음 때문인 것 같았다. 소리에 민감한 난 윗집에서 사람이 걸을 때마다 나는 쿵쾅거리는 소리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윗집 사람들이 차 타고 어디 놀러갔다가 사고 나서 모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장님은 항상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건강은 자연히 따라오는 거라고 했다. 벌써 병자생활을 2년 넘게 하고 매일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난 이제 그 말뜻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말을 들으면 짜증부터 났다. 관장님은 건강을 무슨 보너스 개념으로 생각했는데 한번 잃은 건강은 결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건강은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관장님은 너무 건강해서 건강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기본적으로 육체가 정신에 복속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육체가 튼튼하면 마음은 자연히 편안해지게 마련이었다. 마음은 몸의 투사체일 뿐이었다.
6월초.
난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건 아니나 딱히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사람을 아름답거나 선한 존재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난 국선도의 오전반 아줌마들과 -난 저녁반이었다- 우연히 강원도 쪽의 리조트에 1박 2일로 나들이를 갔다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 그녀들은 너무도 선했다. 조금도 나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껏 내가 만나온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 같았다. 난 누굴 만나서 ‘사람 참 좋다’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녀들은 바로 그러했다. 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 이 사람들이 국선도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님 이런 사람들이 국선도를 하는 건지 생각해봤다.
6월 중순.
다른 도장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우리 도장은 토요일, 일요일은 쉬었다. 주말은 그냥 하고 싶은 사람 나와서 하는 자율수련시간이었다. 난 그동안은 주말에 쉬다가 이제는 주말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서른도 안 된 놈이 돈도 못 벌고 계속 이렇게 병자노릇을 할 순 없었다. 난 하루라도 빨리 건강해져야 했다.
자율수련은 원래 오전에 하는 거였지만 난 오전에 운동하면 머리가 아파서 원래 수련하는 시간인 저녁에 나가서 자율수련을 했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항상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텅 빈 넓은 방, 여자친구가 있다면 섹스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같이 밤을 보내도 될 터였다. 무료 모텔….
어느 토요일 저녁, 도장에 들어서자 현관에 웬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있었다. 혹시 도둑이 아닌가 싶어 순간 겁이 났다. 안으로 들어서자 다행히 같이 수련하는 젊은 아줌마가 있었다.
“아… 오셨어요? 전 아무도 없길래 혼자 하기 겁나서 그냥 갈까 하고 있었어요.”
“아… 그렇죠… 여자 혼자 하기엔 좀 무서울 수 있죠.”
나도 처음 몇 번은 꼭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무서웠었다. 우린 도복으로 갈아입고 국선도씨디의 소리에 따라 준비운동을 했다. 그리고 준비운동을 마친 뒤 단전호흡을 하기 위해 불을 끄고 바닥에 누웠다. 여자와 단둘이 어두운 방에 누워있자 아까 그녀와 대면했을 때부터 미미하게 감돌던 야릇한 기운이 순간 몇 배로 증폭되는 게 느껴졌다. 안 돼… 수련에 집중해… 넌 지금 딴 생각할 여유가 없어…. 우린 서로 묵묵히 단전호흡을 해나갔다. 25가지의 동작들을 천천히 하나씩. 하지만 예상대로 수련은 잘 되지 않았다. 야한 생각을 안 하는데도 자지가 자꾸만 꼴렸다. 그러다가 어느덧 마지막 자세를 할 차례가 왔고, 내 몸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저 아줌마를 이대로 보내긴 너무 아쉬운데… 가슴 만지고 싶어… 가서 볼에 뽀뽀라도 할까… 그녀는 어쩌면 아까부터 내 뽀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어쩌면 남편과 섹스한 지 오래돼서 내가 야수처럼 덮치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빨리 결정해… 시간 없어…. 땡, 결국 단전호흡시간은 끝나버렸고 난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왠지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날려버린 느낌이었다.
7월초.
관장님은 호흡이 좋은 나에게 아랫배에서 기운을 뱅글뱅글 돌리다가 그 기운을 머리까지 올려보라는 말을 몇 차례 했었다. 이건 수련을 꽤 오래한 사람들이 하는 상급호흡법이었다. 2, 3달 전에 몇 번 해봤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그 이후론 시도를 안 했었다. 그러다가 호흡을 위로 끌어올리려면 호흡하는 동안 한 순간도 집중의 끈을 놓으면 안 되기에 생각을 끊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다시 시작을 하게 됐다. 이놈의 생각은 도무지 물리칠 방도가 없었고 난 이에 좀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하자 그 호흡이 먹히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장 잘 되는 마지막 자세에서 초집중을 했을 때 내 몸은 안에서 용암이라도 흐르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랫배뿐만 아니라 전신이 후끈거렸고, 호흡을 마치고 나면 격렬히 운동이라도 한듯 도복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불은 곧 파괴, 어쩌면 뜨거운 열기가 몸속 구석구석의 독소들을 모두 제거시켜서 나에게 새 생명을 안겨줄 것 같은 희망이 들기 시작했다.
7월 중순.
난 찜질방에 들어가 있기라도 하듯 온몸이 후끈거리는 호흡을 하던 도중 아주 잠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현실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짙은 어둠이었다. 그 순간 생애 최고의 평온함이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평온감이고 도 닦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경지가 바로 이런 것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
난 6월부터 집 근처 한의원에서 피부가려움증을 치료했다. 의사는 여름에 뜨거워진 열기가 피부에 닿았을 때 그 열기가 체내에 흡수되지 못 하고 피부 겉에서 맴돌아서 따끔거리는 증상을 유발하는 것 같다며, 분해와 흡수를 담당하는 위장기관을 위주로 치료를 했다. 이전에 치료를 받은 한의사들과는 좀 다른 관점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치료를 받아도 별 진전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그러겠거니 하며 별 기대를 안 했었는데 내 몸엔 대대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난 위가 안 좋은 지 몰랐는데 위가 좋아지면서 위가 얼마나 안 좋았었는지를 알게 됐다. 위가 좋아지자 아침에 밥이 잘 들어갔고, 약간 과식을 해도 위의 느낌이 불편하거나 무겁지 않았고, 밥을 천천히 먹어도 평소 먹는 양을 거뜬히 다 해치울 수 있었다. 또 한의사는 두통도 위가 안 좋으면 머리로 맑은 기운이 올라가지 못 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고,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신장보다는 기본적으로 소화기능이 떨어지면 다른 장기들에게 영양소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위장과의 연관이 더 깊다고 했는데 정말 그러한 듯했다. 위가 좋아진 뒤로는 머리도 한결 가벼워졌고, 이전보다 피로감도 훨씬 덜했다. 수면 중 피로가 풀리지 않아 저녁보다 아침이 더 피곤하던 것도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본래 목적이었던 간지럼증도 완치는 안 됐지만 상당히 호전됐다. 그런데 이런 많은 변화들 중에서 내가 가장 큰 기쁨을 느낀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바로 우울증이 거의 사라진 것이었다. 예전에 한 양방의사가 자기는 우울증환자 치료할 때 위를 먼저 치료하는데, 그러면 별도의 치료 없이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다 낫는다고 한 인터뷰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우울은 어둡고 슬픈 기운이 계속 체내에 쌓이는 것, 위는 분해기관, 오호라!
8월 중순.
난 강남역 오피스걸과 또 매춘을 했다. 그러나 이번엔 불행히도 창녀와 성격도 많이 안 맞았고, 사정도 일찍 했고, 저번처럼 섹스 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도 않았다. 아주 불만족스런 섹스를 한 난 오리역 챔프안마의 미니가 그리웠다. 그녀는 외모는 별로였지만 순종적이고 남자가 뭘 원하는 지를 아는 제대로 된 창녀였다.
난 재작년 여름에 몸의 기능이 크게 무너진 뒤 여름만 되면 맥을 못 췄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창 더운 7월쯤에 좀 쉬어줘야 했는데 무리해서 몸을 썼더니 -난 글을 썼다- 결국 여름의 끝자락에 탈이 나고만 것이다. 염병할 몸뚱이! 요즘 몸 좀 좋아지는가 했더니 또 지랄이야! 언제까지 이 지랄을 하며 살아야 할지! 하지만 이번에 난 짜증만 잠시 났을 뿐 절망하지 않았다. 병자의 삶을 2년 넘게 살고 있는 난 최근 정신적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하게 됐다. 몸은 아프다아프다 하면 작은 병도 큰 병이 됐고, 날 병도 나지 않았다. 몸은 신기하게도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물체였던 것이다. 만약 이걸 진작 알았다면 내 몸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일 터였다. 난 이참에 오랜만에 휴식이나 취하잔 생각으로 느긋하게 병가를 즐기기로 했다.
8월말.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도장에는 가뜩이나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다 나가고 -국선도를 해서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4, 5년은 해야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리 효과를 못 보니깐 몇 달 하다가 그만 두었다- 관장님과 나, 그리고 두 명의 남자만 나오고 있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번 정도 더위도 식힐 겸 운동이 끝난 뒤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정예부대 같은 느낌으로 조촐히 맥주 한 잔씩을 했다.
“호흡은 어떠세요?”
관장님은 수시로 호흡 상태에 관해 물어오셨다. 이 말을 벌써 30번은 들은 것 같았다.
“최근 한두 달 호흡이 되게 좋았거든요? 오묘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근데 요즘 몸이 다시 안 좋아져서 그런지 호흡은 그냥… 그냥 별 거 없어요.”
“호흡은 그냥 하는 거예요. 무슨 오묘한 기분을 느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밥 먹듯이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아차!… 난 몇 년 전에 나의 지독한 허영심과 결별을 했고, 불과 며칠 전에는 신비스런 느낌에 현혹되어 수련을 잘못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글귀를 책에서 봤었다. 그런데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관장님뿐만 아니라 같이 수련하는 도우道友들도 다 나를 높게 평가해주고 있었는데 개망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이 자리를 통해 아주 귀중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난 단전호흡을 오묘한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는 걸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오였다. 호흡은 그 자체가 목적이었으며 ‘그냥’, 말 그대로 ‘그냥’ 하는 거였다. 이제 도 닦는다는 게 뭔지, 수련하는 사람들의 삶의 실체가 뭔지 감이 좀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관장님은 가끔씩 “삶의 질이 달라지셨죠?” 라고 물었는데 이제 그 말뜻도 이해됐다. 실제로 국선도는 내 삶에 커다란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난 언젠가부터 머리를 집중해서 쓸 때가 아니면 머릿속이 비어 있는 듯한,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느낌은 내 삶에 휴식과 여유와 고요를 가져왔다. 뭔가 삶이 정돈되고 간결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지난날의 내 삶을 돌아보면 마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쉼 없이 허우적거린 듯 난잡하게만 느껴졌다.
9월초.
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최근 엄마의 수입이 좋지 않아 엄마가 카드 4장으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구멍이 나서 용인의 시골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이번이 벌써 5번째 파산인가 그랬다. 난 이사를 가기 이틀 전에 암담한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낮에 집으로 13만 원짜리 콜걸을 불렀다. 난 가슴이 좀 큰 여자가 좋았는데 그녀는 D컵은 되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잡아야 감싸지는 풍만한 가슴, 출렁출렁이는 젖탱이,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보통 여자들보다 2배는 시커먼 보지, 우람한 대음순, 좆나 야성적이었다. 입으로 질겅질겅 씹어대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여자가 보지에 입을 대는 걸 거부해서 그러진 못했다.
엄마와 난 용인시 동천동의 손골이라는 용인에 사는 사람도 잘 모르는 시골로 이사를 왔다. 가평이나 양평과 분위기가 흡사하고 30분에 한 대씩 17-1번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이었다. 근데 몇 천 만원의 카드빚을 안고 시골로 이사를 왔는데도 전혀 기분이 울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보다 마음이 더 편해진 것 같았다. 가끔씩 실실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더 이상 윗집의 소음에 고통 받지 않아도 돼서였을까? 아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서? 그리고 여름에 떨어진 체력이 아직 다 올라오지 않았는데도 몸의 전반적인 상태는 확실히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았다. 근 3일간 이삿짐 정리를 했는데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하루만 일해도 몸살 기운이 올라왔었다. 난 집이 어느 정도 정리됐을 때 다시 국선도에 나가 관장님과 이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근데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느낀 건데요… 몸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 제 사고의 리듬이 좀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안 좋은 일 일어나면 절망을 하진 않더라도 그 슬픈 기운이 제 몸속에 녹아들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집이 망한… 꽤 큰일을 당했는데도 그 상황이 슬프게 느껴지지 않아요. 오히려 저의 이런 상황들이 매우 역동적으로 느껴지면서 재밌어요. 꼭 모험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며칠 전부터 자꾸 웃음이 나와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길 가다가도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미친놈처럼 혼자 깔깔대며 웃어요.”
“호흡이 좋으시네요.”
“….”
“호흡이 굉장히 좋으세요.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이게 호흡이랑 무슨 상관이야? 내 사고가 밝게 변한 거겠지. 누가 단전호흡 하는 데 아니랄까봐 별 걸 다 호흡이랑 엮네.
“며칠 전부터요.”
하지만 난 얼마 뒤 관장님이 왜 나보고 호흡이 좋다고 한 지 알게 됐다. 인간의 호흡은 어떤 감정이 발할 때 그에 해당하는 호흡으로 바뀐다. 즉 희로애락에 따라 호흡의 상태가 바뀐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반대로 호흡이 희로애락을 관장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호흡상태가 좋으면 마음이 항상 즐겁고 편안한 것이고, 관장님은 이러한 관점에서 나에게 호흡이 매우 좋다고 한 것이었다. 신기한 호흡의 세계.
한동안 단전호흡을 할 때 온몸이 후끈거리던 증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더위가 꺾이기 시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온몸이 후끈거리는 호흡으로 인해 몸의 어디가 특별히 좋아졌다든가 하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잠시 지나가는 여름의 뜨거운 바람이었던 것 같았다.
9월 중순.
난 국선도를 하면서 매일 마음을 바로 잡는 훈련을 하고, 사람들과 마음에 관한 얘기를 나눴지만 여전히 마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마음은 그냥 마음일 뿐 중요한 건 몸뚱이였다. 몸이 튼튼해야 뭘 해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며칠 뒤, 난 며칠간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을 겪었는데 마음이 흐트러지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2년 넘게 애지중지 가꿔온 몸은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몇 시간째 서 있는 듯한 강렬한 고통이 내 모든 감각들을 짓누르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내 삶은 지옥이었다. 난 그때서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란 것을, 육신을 지배하는 건 마음이라는 것을.
난 왼쪽 턱이 중학생 때부터 하품할 때, 입 크게 벌릴 때, 밥 먹을 때 등 수시로 빠졌다. 그러던 2009년의 어느 날 밤, EBS의 의학방송에서 악관절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나온 걸 봤는데 그들이 겪는 신체적 고통이 나와 너무나 흡사했다. 두통, 안구통, 목통, 어깨통, 어떤 사람은 골반이 안 좋은 것까지. 난 그동안 내 몸이 왜 이 모양인가 했는데 그 원인은 왠지 턱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즈음 지인으로부터 턱이 비뚤어지면 골반까지 다 비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내 몸이 전부 틀어진 원인 또한 턱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내가 운이 좋은 경우라고 했다. 증세가 심하지는 않고, 주걱턱만 뒤로 넣어주면 턱 건강에 좋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턱수술을 하면 턱 주변의 아픈 곳들도 좋아지냐고 묻자 그에 대해선 확답을 주지 않았다. 방송에서 봤을 때 아직 턱과 턱 주변의 통증들 간의 구체적인 상관관계를 밝혀내진 못했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러한 듯했다. 하지만 난 턱만이라도 좋아지면 다행이었기에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난 아래턱이 뒤로 들어갔을 때 윗니와 아랫니의 치열이 어느 정도 맞게 하기 위해 1년 정도 치아교정을 먼저 한 후 2010년 11월에 수술을 했다. 수술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 듯했다. 수술 후 호흡곤란, 악통, 입을 못 벌리게 철사로 칭칭 묶어놓은 데에 대한 답답함, 식사 곤란 등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정말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고통과 불편들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내 걱정은 오직 왼쪽 턱이 좋아지느냐 마느냐였다. 수술 후에도 계속 왼쪽 턱이 아프면 난 또 오른쪽으로만 음식을 씹어야 할 테고, 그러면 또 다시 턱이 비뚤어지면서 온몸이 다 망가질 터였다. 난 극도의 불안과 초조 속에서 되든 안 되든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잔 생각으로 마음을 왼쪽 턱에 두고 아주 간절히 단전호흡을 하며 몸이 좋아지기를 빌고 또 빌기 시작했다. 정말로 단전호흡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님 나의 간절한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오른쪽보다 2배가량 더 붓고 더 아팠던 왼쪽 턱은 며칠 만에 오른쪽보다 붓기도 더 많이 빠지고 통증도 덜 했다. 난 상식주의자에 특정 종교를 섬기는 종교인도 아니었기에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는데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으로 몸을 조종할 수 있다니, 예수가 앉은뱅이를 갑자기 걷게 한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했고, 이제 병원에서 손 놓은 말기 암환자들이 혼자 힘으로 암을 극복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 지도 좀 알 것 같았다. 신비한 세상.
수술 후 2달이 좀 안 됐을 때 난 이번엔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오전반으로 도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오전반에는 여자 사범님이 지도를 하셨다. 왕복 2시간 30분, 수련 1시간 30분, 아직 체력적으로 버거운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도장에서 제대로 수련을 해줘야 턱이 온전히 건강해질 것 같았다. 내 턱은 반드시 좋아져야 했다.
다행히 수련은 할 만했다. 움직일 때마다 턱 근육이 당겨서 좀 아프긴 했지만 몸에 무리가 오진 않았다. 오히려 몸의 회복 속도는 더욱 빨라진 듯했다.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했다.
정작 힘든 건 다른 것보다도 식사였다. 난 집이 멀어서 도시락을 직접 싸 수련이 끝나고 도장에서 밥을 먹었는데 잘 씹지도 못하고, 반찬은 항상 턱에 무리 안 가는 김 같은 것만 먹고, 3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해진 시간 안에 서둘러 밥 먹고, 양치질까지 하고, 참으로 수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수련이 끝나면 으레 사범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고 보통은 내가 나가기 전까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장에 남아 혼자 조용히 책 보는 걸 좋아하는 사범님까지 모두 내가 밥을 다 먹기 전에 나갔다. 휑한 도장, 쓸쓸하면서도 동시에 야릇한 기분이 스쳤다. 난 밥을 다 먹고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한 후 물건을 챙기기 위해 도장으로 돌아왔다. 순간 아까의 그 미미한 야릇한 기분이 좀 더 세게 밀려들었다. 수술 후 몸이 약해져서 한동안 성욕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오랜만의 꼴림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눈은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기라도 한듯 바로 여자탈의실로 향했다. 다 나이가 좀 있고 특별히 예쁜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여자가 옷 갈아입는 곳이었다. 딸딸이를 치기엔 제격인 장소였다. 난 물건을 챙기고 도장 뒷정리를 하며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버스 시간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집으로 가는 긴 여정이 남아있기에 체력을 탕진하기 겁나서, 또 난 나에게 새 삶을 준 이곳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런 곳을 욕보이긴 싫어서 그냥 가기로 결정했다.
도장에 나간 지 보름쯤 됐을 때 수술 후 처음으로 조민희씨를 보게 됐다. 여행을 좀 다녀오느라 근 3주 만에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난 그동안 민희씨를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긴 해도 딱히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정말 예뻐 보였다. 갸름해진 듯한 얼굴, 반들반들한 피부, 앵두 같은 빨간 입술, 게다가 도시적인 섹시한 느낌이 나는 짙은 향수냄새. 그녀는 내가 알던 30대 아줌마가 아니었고 난 마치 미녀 연예인을 마주하고 있기라도 하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준비운동 할 때 민희씨를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제대로 수련을 하지 못한 난 그만 정신을 바로 잡고 열중해서 단전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몸이 좋아져야 하는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오직 수련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짙은 향수냄새가 계속 코끝을 자극해서 그런지 자꾸만 예쁜 민희씨의 모습이 마음속에서 아른거렸다. 강하진 않았지만 무시해버리기엔 아쉬운 설렘이었다. 결국 난 잠시만 쉬잔 생각으로 살며시 눈을 떠 2, 3미터 앞에서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 민희씨를 바라봤다. 호흡 중 눈을 떠 다른 사람을 쳐다보긴 처음이었다. 그녀는 마침(?) 다리를 벌리고 서서 ㄱ자로 허리를 굽혀 열 손가락을 바닥에 살짝 대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크면서 적당히 볼륨 있는 엉덩이, 예전에는 몰랐는데 그녀의 엉덩이는 상당히 괜찮았다. 순간 자지가 빳빳해지면서 뒤에서 꽂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
민희씨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난 이내 평정을 되찾고 단전호흡과 마무리 운동을 잘 끝마쳤다. 덧없음, 앞으로는 이런 일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모두 마치고 난 평소와 다름없이 도시락을 먹었다. 천천히 한 입 한 입. 그런데 도장 사람들이 내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하여 어떤 기회를 주고 싶기라도 한듯 내가 밥을 다 먹기 전에 모두 일찍 도장을 나가버리는 거였다. 나만의 공간, 조민희, 여자탈의실, 순간 본능적으로 자지 부근에 스르르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아… 어떡하지… 할까 말까… 아냐아냐… 조급해 하지마… 생각은 이따가 해도 충분해…. 난 아직 식사 중이었기 때문에 소화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이 느낌은 잠시 밀쳐두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질을 한 후 도장에 돌아오자 잠시 잊었던 아까의 그 야릇한 기운이 다시 밀려들었다. 10분가량의 여유시간… 빠듯한데… 방금 밥 먹어서 위에도 부담을 줄 것 같고… 갑자기 누가 들어올지도 몰라… 어떡하지…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잠깐 동안 여러 가지 고민을 한 난 결국 민희씨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일을 치기로 했다. 난 먼저 누가 오면 잽싸게 상황수습을 하기 위해 수련방과 현관 쪽의 미닫이문 두 개를 반쯤 열어놓았다. 현관에서 누가 들어오면 여자탈의실에서 바로 보일 터였다. 설사 보지 못 하더라도 문 여는 소리를 듣고 바로 대처할 수 있을 터였다. 바깥문을 정비한 후 난 혹시라도 안에 누가 있을까봐 문에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던 난 여자탈의실 문을 아주 살며시 열었다. 두근두근, 별 일 아닌데도 꽤 긴장이 됐다. 인기척이 없어서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자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난 문을 열어 놓은 채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오… 이곳이 바로 여자탈의.. 앗!… 깔끔하게 정돈되어 걸려 있는 도복들, 향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쾌쾌한 냄새도 안 나는 깨끗함, 지저분하고 구린내 나는 남자탈의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심지어 성스러운 느낌마저 났다. 야… 이게 바로 여자의 모습이구나… 겉모습은 여자 같지 않아도 속은 다 여자구나… 근데 요즘에는 지저분한 여자들도 많은데 이분들은 다 깔끔하네… 옛날 사람들이라 그런가… 멋있다… 아 참,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난 민희씨의 도복을 찾기 위해 도복이 위아래 두 개의 봉에 걸려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디 있으려나…. 하지만 이름을 확인하려면 옷걸이에 걸린 명찰을 봐야 하는데 정돈된 옷이 흐트러질까봐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너무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조금만 흐트러져도 바로 티가 날 터였다. 젠장…. 하지만 정말 나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지 난 다행히도 3번 만에 민희씨의 도복을 찾을 수 있었다. 난 조심히 그녀의 도복이 걸린 옷걸이를 들어 반대편에 있는 식당 같은 데서 많이 쓰는 팔이 여러 개 달린 나무 옷걸이에 걸었다. 오… 민희야… 너를 먹을 시간이 왔구나… 이게 얼마 만에 여자 옷으로 딸딸이 치는 거냐…. 지체할 시간이 없는 난 얼굴을 바로 도복의 가슴 부분으로 가져가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흠… 나의 가슴… 어?… 향수냄새가 안 나네… 몸에다만 뿌렸나… 그래도 그 정도로 강하게 냄새가 났으면 옷에 냄새가 배었을 텐데… 음… 겉에는 아무 냄새도 안 나네…. 난 옷을 살짝 뒤집어 안쪽 냄새를 맡아봤다. 흠… 앗!… 여자의 부드러운 속살에서 풍기는 이 향긋한 냄새… 스무 살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서 나던 그 냄새… 아줌마 가슴에서 이런 젊은 여자의 속살 냄새가 나다니 대단히 매력적인데… 아… 냄새 너무 좋아… 난 바지 지퍼를 내리고 팬티 속에 손을 넣어 자지를 주무르며 다시 한번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흠… 아… 씨발 좆나 흥분되네… 평소에 느낄 수 없는 흥분이야… 벌써 자지에 정액이 가득찬 것 같아… 손 몇 번만 흔들면 지금이라도 당장 쌀 것 같아… 아… 역시 섹스는 이미지야… 이미지… 다시 흠… 아… 너무 좋아… 그냥 지금 쌀까…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이 향긋한 젖무덤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흠… 아… 죽인다…. 난 쌀까 말까 빠르게 고민하다가 보지를 눈앞에 두고 그냥 지나쳐버리긴 너무 아쉬워서, 또 보지를 범해야 진정한 강간의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만 가슴에서 얼굴을 뗐다. 뒤를 돌아 현관문 쪽을 바라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5분 경과, 난 서둘러 옷걸이 하단에 세로로 반 접혀서 걸려 있는 바지에서 앞쪽이 어딘지 찾아보았다. 어디가 앞이냐… 어디가… 하지만 접힌 상태로는 앞뒤 구별이 쉽지 않았다. 결국 난 옷걸이에서 바지를 빼 좌우로 펼친 다음 다시 앞쪽을 찾았다. 금새 앞쪽을 찾은 난 보지 부분을 바로 코에 갖다 댔다. 흠… 오… 나의 보지… 근데 별 냄새가 안 나네… 다시 한번 흠… 옷 냄새밖에 안 나… 이런… 흥분이 가라앉으려고 해… 그냥 아까 싸버릴껄…. 조급해진 난 바지 윗부분을 뒤집어 안으로 보지냄새를 맡았다. 흠… 오!!! 보지 특유의 암모니아처럼 시큼한 냄새가 마치 꽃잎에 둘러싸여서 나듯 아주 부드럽게 그 향을 발했다. 흠… 오… 내 사랑 보지냄새… 냄새 좆나 좋네… 민희 이 년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주 죽이는데… 다시 봐야겠어…. 그동안 몰래 맡았던 여자 팬티에서 나던 보지냄새들이 오버랩 됐다. 난 이제 바지와 팬티를 엉덩이 아래로 내리고 본격적으로 자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흠… 아… 보지냄새… 낙원이 따로 없구만… 정신이 혼미해… 민희 보지… 민희 보지… 흠… 민희야 난 네 보지를 탐하고 있어… 넌 나에게 먹힌 거야… 당사자 모르게 내 마음대로 유린하는 이 짜릿함… 흠… 어… 나온다… 나와… 어… 민희야 사랑해!… 민희야 사랑한다고!… 어어어!… 꿀럭꿀럭… 꿀럭꿀럭… 꿀럭꿀럭….
행위를 마친 난 서둘러 옷부터 입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도 없었다. 만약 누가 들어왔다면 바로 걸렸을 텐데 참 바보 같으면서도 운이 좋았단 생각이 들었다. 난 바로 민희씨의 도복을 원래의 모습대로 잘 정리하여 옷걸이에 걸고, 바닥에 뿌려진 정액을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닦기 시작했다. 슥슥슥슥… 부르르르, 정액을 닦는데 온몸이 떨려왔다. 마치 살인을 저지른 뒤 바닥의 피를 닦고 있는 것 같았다. 증거소멸을 위해 분주히 피를 닦는 살인자… 이제야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인식하고 죄의식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살인자…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지금껏 이런 적 한번도 없었는데….
민희씨는 그로부터 이틀 뒤에 도장에 나왔다. 혹시라도 그녀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줌마들의 나에 대한 태도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휴… 역시 사람은 죄 짓고 살지 말아야 했다.
그후 난 다시 예전처럼 수련에만 집중했다. 다행히 여자탈의실에 대한 욕망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고 민희씨는 그날 이후 전혀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못한 느낌도 들었다. 소나기 내리듯 잠시 스쳐간 해프닝.
3월.
난 이제 단전호흡을 예전처럼 집중해서 하지 않았다. 우선 아랫배로 숨을 쉴 뿐 호흡이 매끄럽게 되든 안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또 생각을 안 하려는 노력도 크게 하지 않았다. 생각을 끊으려는 시도는 예전과 다름없이 끊임없이 했지만 일단 생각이 들어오면 그냥 놔뒀다. 잠시 그 생각과 놀다가 그만 됐다 싶을 때 적당히 쫓아냈다. 이러한 모습은 단전호흡을 하는 태도가 불성실해졌다기보다는 호흡에 대한 집착 또한 버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드디어 멸집滅執에 대한 이해가 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근 반 년쯤 전부터 호흡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예전에 저녁반 다닐 때 같이 수련하던 분이 호흡을 단련할 때 중간중간 계단의 수평한 모양처럼 정체기가 찾아온다고 했었는데 지금이 그 첫 번째 정체기인 듯했다.
4월초.
난 성격이 매우 예민했다.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실수하는 것도 매우 싫어했다. 그런데 최근 나의 이런 성격이 변한 걸 발견하게 됐다. 도시락 쌀 때 수저를 빠뜨려도, 휴대전화를 놓고 와도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에구, 안 챙겼네’라고 한 마디 하고 끝이었다. 그리고 난 시골로 이사를 간 뒤 오전 10시에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곳에서 사범님 차를 타고 같이 도장에 갔는데, 얼마 전에 사범님이 일이 있어 같이 못 간다고 보낸 문자를 못 보고 10시에 사범님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병신 같은 새끼 왜 문자를 확인 안 한 거야!’ 하며 스스로를 호되게 질책하고 경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순간 잠시 허탈했을 뿐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우스꽝스런 상황에 미소까지 살짝 지어졌다. 게다가 그렇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후 난 도장까지 거의 1시간을 걸어갔다. 난 무슨 일이든 웬만해선 지각을 안 하는 강박증이 있었는데 순간 거기에 얽매여 스트레스 받기가 싫었었다. 심지어 도장까지 어떻게 갈 지 생각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저 마음을 편안히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 예민하던 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신경성으로 매일 하루에 3번씩 설사를 했을 정도로 예민하던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다간 정말 초단기간에 도인이 될지도 몰랐다. 이제 내가 그동안 왜 살이 안 쪘는지, 뚱뚱한 사람들은 왜 살이 찌는지 알 것 같았다.
4월 중순.
난 집 근처 로또안마에 가서 섹스를 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아가씨는 외모는 별로였지만 성격이 털털하고 피부가 좋았다. 난 여자를 안았을 때 피부가 좋지 않으면 흥분이 바로 반감됐기 때문에 여러모로 나와 잘 맞는 아가씨였다. 하지만 난 매춘 후 씁쓸했다. 더 이상 감정 없는 섹스는 하기 싫었다. 이젠 애인이랑 섹스하고 싶었다. 6년째 쏠로, 아….
5월.
내가 사범님과 같이 차를 타고 도장에 가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 아니었다. 수술 후 한동안은 몸이 힘들어 그러한 이유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대화였다.
나에겐 4년째 행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한 여동생이 있는데 2년쯤 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점심 때 친구랑 같이 밥 먹으면서 10분만 수다를 떨 수 있으면 하루 종일 치열하게 공부하는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을 텐데 그게 없어서 공부하기가 참 힘들다고. 내 삶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난 현재 몸이 안 좋아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진 않지만 인간관계가 좁아서 항상 대화가 부족했다. 많이도 아니고 매일 약간의 대화가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사범님의 차를 같이 타고 가면서 나누는 10여분의 대화는 내 대화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내 몸이 원활히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범님과의 대화는 감성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범님이 전문적으로 도인의 길을 걷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씩 내가 모르는 새로운 영역에서 기발한 정신적 확장을 시켜줬다. 그중 하나는 ‘용서하라’였다. 사범님은 매 주말마다 서울의 어느 곳에서 공부모임을 가졌는데 그곳의 핵심주제가 바로 ‘용서하라’라고 했다. ‘용서’ 그 한 마디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했다. 하지만 난 처음 사범님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사이비종교 같은 냄새가 나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가끔씩 사범님의 입에서 ‘용서하라’라는 말을 대화 도중 스치듯 몇 번 듣고 나서, 어느 날 문득 그 말뜻이 이해되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나의 실수를 용서하고, 지난날 나의 과오를 용서하고, 나의 추함을 용서하고, 그러면 난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요즘 난 생애 처음으로 죄의식이란 것에 시달리면서 -나이 서른에 아직도 엄마에게 빌붙어 사는 게 너무 죄스러웠다- 그 무시무시함을 알게 됐다. 또 나에게 고통을 준 모든 이들을 용서하면 분노가 사라져 마음에 고요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용서, 정말 이 말 한마디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실재화 하지 마라’였다. 이 말도 예전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 스치듯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견제의식이 있어 그 말뜻을 물어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사범님이 다른 도우분과 그것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걸 듣고 그 말뜻을 알게 됐다. 얘기는 이랬다. 한 아이가 있었는데 학교 들어갈 때가 다 된 나이에 이불에 오줌을 쌌다. 다른 집 엄마였으면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이불에 오줌을 싸! 라고 했을 텐데 그 집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엄마 나 오줌 쌌어 라고 말했다. 엄마는 근데? 라고 말했다. 아이는 이번에는 엄마 나 오줌 쌌다고! 라고 힘을 주며 말했다. 엄마는 또 근데? 라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엄마 나 7살이야! 라고 크게 소리쳤다. 엄마는 또 근데?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아이에게 이 일에 대해 언급을 하자 아이는 자신이 7살에 이불에 오줌을 싼 것에 대해 정신적인 상처를 받지 않았을뿐더러, 아예 이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6월 둘째 주.
날씨가 더워지자 준비운동을 하고 나면 땀이 꽤 났다. 여자들 중에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도복 뒤로 브래지어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줌마들이었지만 가끔씩 흥분이 되곤 했다.
단전호흡을 하는데 누가 나가는 소리가 났다. 호흡도 잘 안 되고 해서 살며시 눈을 떴다. 수련 도중 가끔씩 일찍 집에 가는 수희씨였다. 그녀는 마음의 병이 깊었는데 이럴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서 가는 건지 집에 일이 있어서 가는 건지 궁금했다. 눈을 감고 다시 호흡에 집중할까 하다가 조금만 더 딴짓하고 싶은 마음에 앞을 슬쩍 바라봤다. 2미터쯤 앞에서 윤정씨가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서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고 손은 허리 뒤에 포개서 올려놓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날 좀 보이소 하는 엉덩이, 워낙 수수한 외모라 몸에 눈길이 가지 않아 그녀의 엉덩이를 자세히 쳐다본 적이 없었는데 꽤 괜찮은 엉덩이였다. 조금 통통한 체격이었는데 유난히 엉덩이에 살이 두툼하게 붙어 있었다. 아까는 등 뒤 브래지어 자국으로 눈길을 끌더니 이제는 엉덩이로 눈길을 끄네… 뒤치기를 하면 쿠션이 아주 좋겠어…. 난 더 이상 엉덩이에 마음을 뺏기면 자지가 빳빳해지면서 단전호흡을 할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그만 마음을 접기로 했다. 앗!… 그런데 시선을 접으려는 찰나, 똥구멍과 보지 쪽에 바지 겉으로 비쳐야 될 팬티의 선이 보이지 않았다. 저 자세로 있으면 반드시 팬티의 선이 비쳐야 됐다. 그렇다면 노팬티… 아님 끈팬티? 오… 저런 발칙한 년! 신성한 도장에 끈팬티를 입고 와! 내 자지는 순간 앞으로 힘차게 뻗쳤다. 오… 쌍년… 벙어리에 -충격을 받고 몇 년 전에 언어장애가 왔다고 했다- 수줍음 많아 보여서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쑥맥일 줄 알았는데 남편하고는 아주 화끈하게 보나보네… 아… 꽂고 싶다… 바지를 스윽 벗기고 똥구멍에 낀 끈을 살짝 옆으로 젖혀 그대로 쑤욱! 캬!….
너무 강렬히 흥분을 한 난 이후 단전호흡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일찍 집에 가면 윤정씨 도복의 보지냄새를 맡으며 딸딸이라도 치려고 했으나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난 마음을 다잡고 수련에만 열중했다. 괜히 쓸데없는 공상으로 수련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나중에 기회 봐서 민희씨를 따먹은 것처럼 윤정씨도 도복에 딸딸이 한번 쳐주면 될 터였다.
하지만 윤정씨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윤정씨만 보면 준비운동 할 때도 자꾸만 자지가 꼴리려고 했다. 어떻게 살살 꼬셔서 한번 따먹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5일쯤 지났을 때 사람들이 모두 일찍 가서 딸딸이를 한번 쳐주자 그제야 흥분이 좀 가라앉았다. 다소 짙은 보지냄새가 아주 일품이었다. 국선도 아줌마들 생각보다 괜찮은 여자들 같았다.
그 후 난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수련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날씨가 더워지자 체력이 또 위태위태해지려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방황은 금물이었다. 내년부터는 대학원에도 다닐 것 같아서 이번 여름의 체력관리는 특히 중요했다.
하지만 나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건지 시험에 들게 하려는 건지 열흘쯤 지났을 때 윤정씨는 날 다시 유혹했다. 여름이 되면 운동하기 귀찮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안 나왔는데 그날도 나와 사범님을 포함해 4명만 도장에 나왔다. 나머지 둘은 윤정씨와 60대 노인 만수씨였다. 우리는 휑한 분위기 속에서 소소하게 준비운동을 마치고 단전호흡 전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바닥에 누웠다. 사람들이 바닥에 눕자 사범님은 수련방 옆의 사무실로 건너갔다. 가끔씩 단전호흡 시간이 되면 옆방으로 건너가 책을 보는 건지 개인적인 볼 일을 보는 건지 뭔가를 했는데 최근에 안 가다가 오랜만에 갔다. 그리하여 남은 사람은 3명, 4명 있을 때는 별 느낌 없었는데 3명만 있자 갑자기 야릇한 기운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수님이 혹시라도 중간에 나가시면 나와 윤정씨만 방안에 남는 거였다.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대는 벙어리 윤정씨와 그걸 지켜보는 나 단둘이… 음….
난 일단 호흡에 집중해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만수씨가 중간에 나가면, 윤정씨를 직접적으로 건들 수는 없어도 뒤에서 딸딸이는 칠 수 있을 터였다. 끈팬티 윤정씨, 도장에서 여자를 앞에 놓고 대놓고 딸딸이 치기, 내 인생 최고로 짜릿한 딸딸이가 될 터였다.
단전호흡 시간 30분 경과, 남은 시간 15분, 만수씨가 중간에 나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괜한 공상으로 귀중한 호흡시간을 날려버린 게 너무 한심스러웠다. 이 중요한 시기에 최근 제대로 호흡한 적이 없네… 바보 같은 놈… 도장에서는 오직 수련에만 열중해야 하거늘…. 그런데 그때 남자탈의실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게 들렸다. 내 것이 아니었으므로 만수씨의 벨소리였다. 만수씨는 전화를 받으러 들어갔고, 잠시 후 급한 일이 생겼는지 옷을 갈아입고 바로 도장 밖으로 나갔다. 오…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황송하기 그지없네… 부르르르, 시작도 하기 전에 긴장과 설렘으로 몸이 떨려왔다. 남은 시간은 10분, 오케이 시작하자고. 난 윤정씨를 뒤에서 바라보면서 살며시 바지와 팬티를 엉덩이 아래로 내렸다. 이미 꼴린 자지가 윤정씨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전율… 그녀에게 자지를 깐 것만으로도 상당한 희열이 몰려왔다. 난 옷이 스치는 소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오른팔의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 올리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자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오… 죽이는데… 스윽… 스윽… 역시 딸딸이는 이렇게 쳐야 해… 섹스는 이미지야… 이미지… 스윽… 스윽… 아… 좋아… 윤정아 사랑한다… 나의 끈팬티… 스윽… 스윽… 근데 정액은 어떻게 처리하지?… 아냐 그건 나중에 생각해… 이 황금 같은 기회에 흥분 사그라질라… 스윽… 스윽… 오… 내가 도장에서 이런 짓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스윽… 스윽… 스윽….
“동-법-”
스피커에서 마지막 자세로 바꾸라는 음성이 흘러나왔고, 윤정씨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뻗치는 자세에서, 양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뒤꿈치에 대며 앉은 뒤 상체를 아래로 숙여 무릎 앞 바닥에 머리를 댔다. 저건 윤정씨가 하는 호흡법이 아니었는데 좀 이상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가량,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였다. 딸딸딸딸… 윤정아 사랑해… 딸딸딸딸… 널 먹을꺼야… 딸딸딸딸… 씨발 끈팬티…. 그런데 그때, 윤정씨가 양손바닥을 바닥에 댄 채 팔을 앞으로 뻗으며 상체를 앞으로 당겨 엉덩이를 위로 치켜세웠다. 그러더니 허리를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여 엉덩이를 씰룩대기 시작했다. 씰룩… 씰룩… 팬티끈이 보이지 않는 오늘따라 유난히 풍만한 엉덩이… 씰룩… 씰룩… 누가 봐도 꽂아달라고 애걸하는 엉덩이…. 난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장에서 수련 도중 남자에게 꽂아달라고 엉덩이를 들썩이다니, 이건 인도의 고대 야사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씰룩씰룩… 씰룩씰룩… 그녀의 엉덩이는 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씰룩씰룩… 씰룩씰룩… 아… 씨발… 그녀의 엉덩이로 달려가 바로 자지를 꽂아버리고 싶었다. 씰룩씰룩… 씰룩씰룩… 아… 못 참겠어… 좆물이 터져나오려고해… 어떡하지…. 그녀의 엉덩이는 더욱 빨라졌다. 씰룩씰룩씰룩… 씰룩씰룩씰룩… 이제 곧 끝날 시간!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쑤시고 싶어! 하지만 이건 범죄야!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그 순간, 난 잘못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보지 부근이 좀 젖어있는 걸 발견했다. 핑~, 그래 가자, 머리에서 나사가 하나 빠진 듯 정신이 뒤집힌 난 그녀에게 바로 돌진했다. 부르르부르르, 온몸이 떨려왔다. 엉거주춤 그녀의 뒤로 달려간 난 그녀의 바지를 휙 벗기고 무릎을 꿇고 않아 바로 자지를 쑤셔넣었다. 그녀는 노팬티였다. 푹!푹!푹!푹!… 아!… 꿀럭꿀럭… 난 자지를 넣자 마자 사정을 했다. 푹푹… 푹푹… 아아… 아아… 꿀럭꿀럭…. 그녀는 몇 번 쑤심을 당하고 나서야 날 뒤돌아 봤다. 화나거나 수치스런 표정이 아닌, 그렇다고 좋아하는 표정도 아닌, 하지만 뭔가 애잔함이 느껴지는 묘한 표정이었다. 푹… 푹… 푹… 푹… 꿀럭… 꿀럭….
사정을 마친 난 원래 자리로 돌아와 바닥에 누웠다. 머리는 멍하고,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몸은 계속 부르르 떨려왔다. 내가 뭘 한 거지…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지….
7월 첫째 주.
다행히 그날의 사건은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 사범님을 비롯해 도장 사람들 모두가 그 일을 모르는 것 같았고, 경찰이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윤정씨는 이틀을 쉬고 다시 도장에 나오기 시작했고, 난 안 나가면 더 이상할 것 같아서 그냥 계속 도장에 나갔다. 그 일은 그걸로 끝난 것 같았다. 정말 큰일 날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한시름 놓은 듯했지만 난 정작 죄의식이라는 무서운 형벌에 시달려야 했다. 윤정씨는 최근 얼굴이 꽤 좋아졌었는데 그 일 이후로 다시 안색이 굉장히 안 좋아졌다.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어쩌면 그전보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었다. 난 그녀의 그런 어둠이 짙게 깔린 얼굴을 볼 때마다 귀한 생명을 무참히 짓밟은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괴로웠다. 어쩌면 그녀는 임신을 했을 수도 있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난 더 이상 날 사랑할 수 없었다. 난 죄인이었다.
둘째 주.
난 도장에 나가기 싫었다. 윤정씨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의식이 숨통을 조였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장에 안 나갈 순 없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도장을 다니던 내가 회비 만기일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갑자기 도장에 안 나가면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그러다 사람들이 윤정씨와의 사건을 알게 되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감옥도 감옥이지만 그곳엔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는 거대한 절망의 늪으로 빠질 터였다.
셋째 주.
내 삶은 철저히 붕괴되어 갔다. 3년 동안 죽을힘을 다해 만들어온 건강은 마음이 어지러워지면서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이사 직후 잠시 힘든 일이 있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됐다. 이건 그야말로 파멸이었다. 다시 원점, 형용할 수 없는 절망이었다. 그리고 죄의식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지지가 않았다. 나를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가 안 됐다. 난 약자 중의 약자를 난도질한 쓰레기였다.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라는 다큐에서 한 피해자의 가족이 살인마 유영철을 용서하려고 하자, 김영철이 자신은 용서받아선 안 된다며 용서받기를 거부했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넷째 주.
죄의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죄의식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난 20대 초반까지 심미적 감수성이 마비돼 있었다. 무엇을 대했을 때 아름답거나 추하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선악의 개념도 없었다. 모든 것이 그냥 그러한 상태로 느껴질 뿐이었다. 따라서 윤리관도 없었고 죄의식이란 것도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다. 난 그 시절 살인이 멋있어 보여서 살인자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난 거의 평생 내 삶에 머리카락조차 내비치지 않았던 죄의식이란 것에 시달리며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참혹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예전과 지금의 차이라면, 가장 큰 차이라면 지금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같다. 난 인간이 점점 아름답게 보이고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국선도를 하면서 인간에게 깊게 빠져들어 버렸다. 난 현재 인간을 많이 사랑한다. 그렇다면 죄의식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랑은 고통인가? 내가 인간을 사랑하기에, 윤정씨를 사랑하기에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젠장… 사랑 아주 좆 같네… 예전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었는데… 다시 감성이 마비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제발….
8월 둘째 주.
이틀 있으면 만기일이었다. 난 오늘까지만 도장에 나가기로 했다. 드디어 이곳을 떠나는 거였다.
도장에 안 나간다고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닐 테지만 어쨌든 오늘 이후 윤정씨의 얼굴을 더 이상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난 준비운동을 마친 뒤 멍하니 바닥에 누워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후, 난 갑자기 불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총 6명의 사람이 나왔는데 단전호흡을 시작할 때 사범님은 옆방으로 건너가고, 방금 전에 2명이 연달아 도장 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나, 윤정씨, 민훈씨 3명뿐, 만약 민훈씨마저 중간에 나가버리면 윤정씨와 단둘이 남는 거였다. 둘만 남는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어떡하지… 생각 잘 해야 돼… 말도 안 되는 걱정일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잖아… 젠장… 기분 좆나 꾸리하네… 혹시 모르니까 아예 내가 먼저 나가버릴까…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잖아…. 그때, 누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눈을 떠보니 민훈씨가 탈의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헛!… 순간 어둠의 톱니바퀴들이 일제히 맞물려 돌아가면서 모든 출입구가 봉쇄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민훈씨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급히 도장을 빠져나갔다. 윤정씨와 나 단둘, 한 달쯤 전에 죄를 지을 때와 동일한 상황이었다. 뭐지… 이 상황은 뭘 뜻하는 거지… 마치 누군가가 짜놓은 개 같은 각본대로 내 삶이 조작되고 있는 것 같아….
난 몸을 일으켜 앉은 뒤 3미터쯤 앞에 서 있는 윤정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나로 인해 망가진 여자, 그녀로 인해 망가진 나, 머릿속에서 먹구름과 함께 회오리가 몰아쳤다. 윤정씨는 곧 자세를 바꿔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 자세를 취했다. 내 인생을 조진 엉덩이… 오늘도 팬티의 선이 비치지 않네… 씨발년… 쑤욱, 자지가 본능적으로 빳빳해지며 고개를 쳐들었다. 이 요물단지… 넌 이 상황에서도 본분을 잊지 않는구나… 남자는 가운데 머리가 아닌 윗머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했거늘… 덧없는 인생… 인생은 정말 한순간이구나… 내 인생은 이제 어쩌지….
“축-법-”
윤정씨는 다시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리에 앉더니 저번에 날 홀렸던 자세를 똑같이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저번과 또 똑같이 엉덩이까지 들썩이기 시작했다. 들썩들썩… 들썩들썩… 들썩들썩… 들썩들썩… 빠직! 그 순간 나의 이성은 퓨즈가 나가버렸다. 난 바지와 팬티를 벗어 바닥에 내던지고 터벅터벅 그녀의 엉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뒤에 앉은 뒤 그녀의 바지를 확 아래로 내렸다. 오늘도 노팬티였다.
“씨발년…”
난 입안의 침을 자지를 향해 걸쭉하게 한번 뱉은 뒤 그녀의 보지 속으로 자지를 팍 쑤셔 넣었다.
“개 같은 년… 너 뭐야… 너 뭐하는 년인데 도장에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지랄이야… 너 언어장애가 온 게 아니라 정신장애가 온 거지…”
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
“씨발 또라이 같은 년… 너 내 인생 망치려고 일부러 개수작 부린 거지… 누가 시켰어… 니 남편이 시켰냐 이 씨발 노팬티야…”
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어!…”
난 오른손으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거세게 뒤로 당기며 소리쳤다.
“이 개년아!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니가 엉덩이 흔들면서 박아달라고 애원했잖아! 어떤 새끼가 그 상황에 가만히 있어! 법적으로도 책임은 너한테 있는 거야! 난 아무 잘못 없어! 이게 뒈질려고 누구한테 죄를 뒤집어 씌워!”
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
“난 아무 잘못 없어!! 다 니 잘못이야!! 이렇게 된 건 다 니 잘못이라고!!”
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
“병신 같은 벙어리년아 들려!! 잘못은 너한테 있는 거라고!!”
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
“죽여버릴꺼야!! 내 숨통을 조이는 너!! 이 개 같은 벙어리년아 죽어!!”
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쑤욱!….
“죽어!! 죽어!! 죽어!! 아아악!!!”
정신을 차리자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상체를 일으켜 앞을 보자 여사범님이 윤정씨를 안고 울고 있었다. 윤정씨는 실신을 한 듯했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는 피가 흥건히 흘러나와 있었다. 거기엔 뭔가 고깃덩어리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았다. 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다시 뒤로 쓰러졌다. 이창동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철로 위에 올라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절규하던 대사가 떠올랐다.
“나 다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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