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줌마
- 작성일 201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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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재수없는 경우다. 이건 뭐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하얀 손이 쑥 들어왔다.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누군가의 침입을 감지한 문은 덜컹 멈추더니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충실한 용수철처럼. 그 몇 초의 시간동안 오늘은 제발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 기도만 들어준다면 기꺼이 교회를 다시 나갈 용의도 있었다. 내가 교회를 간다는 건 예수님을 은화 30전에 배신한 유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는 것처럼 극적인 감동을 자아낼 일이었다. 적어도 내 자신의 인생에서는 말이다. 이런데도 기도를 안 들어주면 너무하잖아. 하지만 신따위를 믿지 않은지 오래된 내 마음 한구석엔 오늘도 역시,라는 체념이 물처럼 스며들었다. 나는 물먹은 도화지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선으로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봤다.
오늘은 모처럼 집을 나서는 거였다. 아마도 사흘만일 것이다. 대부분의 날과 마찬가지로 옆집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잦아든 새벽 4시쯤에 잠들었고,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식욕이 떨어졌기 때문에 보통 우유를 섞은 커피 한 잔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오늘도 커피메이커에 원두커피 한 스푼을 넣고 물을 붓고 전원을 켰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속에 은은히 퍼지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산 커피의 탕약같이 진한 향을 맡으면서 기분 좋게 냉장고를 열었는데 우유가 없었다. 슈퍼마켓은 아파트 바로 앞 상가 지하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까지 합쳐도 기껏해야 5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잠옷과 평상복 구분 없이 입는 주황색 라운드 면 티셔츠와 남색 추리닝 바지에, 얇은 회색 점퍼만 걸치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운동화의 뒤축을 꺾어 신었다. 외부세계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인 현관문의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그 구멍에서 옆집 아줌마의 커다란 얼굴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말 그대로 놀라 기절할 뻔 했다. 복도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누가 있나하고 구멍에 눈을 댔는데 아줌마의 왜곡되게 일그러진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나는 구멍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줌마와 얼굴을 맞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아줌마는 가끔씩 그렇게 우리집을 훔쳐봤다. 밖에서 안이 보일 리가 없는데도. 나는 그 때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로즈마리 베이비’를 떠올렸다. 집주인의 기분과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두드려대던 이웃집 여자의 얼굴과 아줌마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언젠가는 그 얼굴이 렌즈 안으로 쑥 빨려 들어와 내 목을 조를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오늘은 다행히 빈 복도와 옆집의 굳게 닫힌 현관문만 보였다. 얼른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구멍을 통해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변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15층에 서는 순간 후닥닥 뛰어나가 엘리베이터를 탔고 ‘닫힘’ 버튼을 재빠르게 눌렀다.
한 낮의 슈퍼는 한가로웠다. 우유진열대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손에 가장 먼저 닿는 우유를 집어 계산대에서 졸고있는 아줌마 앞에 현금을 탁 놓고 쏜살같이 나왔다. 팔레트에 하늘색 물감을 푼 듯한 하늘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 사그라질 불꽃처럼 화려하게 핀 철쭉꽃도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쳐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왔고, 먹이를 낚아채는 날렵한 새처럼 1503호 우편함에 꽂혀있는 공과금 우편물을 꺼내 엘리베이터 앞으로 왔다. 엘리베이터는 10층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감시카메라를 향해 일부러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무공처럼 튀어오르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엘리베이터는 13층에서 멈추더니 내려왔다.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이론이 생각났다. 13, 12, 11… 일 초 일 초가 진흙벽돌처럼 쿵쿵 가슴에 내려앉았다. 드디어 1층에 멈췄다. 눈을 살짝 감았다. 하나 둘 셋.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이 없다. 눈을 떴다.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 달린 거울 안에 모자를 푹 눌러쓴 추레한 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 나는 모자를 더 푹 누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닫힘’ 버튼을 재빠르게 눌렀다. 그 때 바로 그 오싹한 ‘하얀 손’이 들이닥친 것이다.
기계의 작동원리에 충실한 엘리베이터의 문은 멈췄고,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공기가 점점 물컹해지는 것을 느꼈다. 희미한 거품방울이 원을 그리며 눈앞에서 올라갔다. 호수 바닥에 가라앉는 것만 같았고 점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구토가 올라왔다. 물은 천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틈으로 조금씩 새어나가다가 갑자기 둑이 터지듯 콸콸 흘러 넘쳤다. 물결에 휩쓸려 회오리 모양을 그리며 바깥으로 밀려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위는 고요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멀쩡히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다. 문은 이미 모두 열려있었다.
문 앞엔 예상대로 그녀가 있었다. 한 치수는 큼직한 분홍색 추리닝을 위아래 세트로 맞춰 입은 그녀는, 체크무늬 버버리 야구모자를 썼고, 요즘 이 동네 아줌마들의 운동 필수아이템이라는 커다란 천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 착용자의 ATM 인출을 금지한다는 뉴스 아래 “이거 완전 강남 아줌마 복장이네.”라고 달렸던 댓글이 생각났다. 아줌마의 하얀 면장갑 손은 빨간 줄을 잡고 있었고, 줄의 끝에는 하얀 털이 복실한 6인용 밥통만한 크기의 괴생명체가 오른 다리로 귀를 비벼댔다. 그들은 바로 우리집 문구멍에 자꾸 얼굴을 들이미는 ‘옆집 아줌마’와, 밤새도록 낑낑대는 통에 잠을 설치게 만드는 웬수 같은 강아지 –강아지의 종은 뭔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 ‘쫑이’였다.
내가 외출을 하는 경우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처럼 갑자기 식료품이 떨어졌다든가 아니면 쓰레기를 버려야한다든가 하는 불규칙적인 이유로 나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갈 때마다 옆집아줌마와 마주쳤다. 바람 좀 쐴까하고 탄천의 산책로를 걷다보면 저 앞에서 아줌마와 쫑이가 걸어왔고, 밤에는 안 마주칠까 싶어 슬쩍 나가 쓰레기를 버리면 막 단지 안으로 들어온 검은색 BMW에서 영락없이 옆집 아줌마와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머피의 법칙’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듯 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이성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법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도 70여시간, 분으로 계산하자면 4천200여분만에 단 5분만 나갔을 뿐인데, 어떻게 산책하고 돌아오는 아줌마와 딱 마주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신을 배신한 대가로 악마의 저주를 받았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아줌마를 향해 입꼬리만 억지로 올려 웃음을 지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옆집아줌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면서 엄지와 검지만 사용해 마스크를 우아하게 벗었다. 사각으로 잘려진 기다란 손톱에는 펄이 들어간 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부모님은 잘 계시고?”
“예.”
이런 종류의 대사를 주고받고 나면 천성적으로 닭살이 돋는다. 체면치례라는 기능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대화들. 나는 엘리베이터 왼쪽 모서리에 붙어섰고, 아줌마는 버튼 앞에 섰다. 그녀는 매일 피부마사지라도 받는지 아님 보톡스 주사라도 맞는지 얼굴 피부가 예순이라는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로 우유빛이었고 방금 부풀어오른 빵처럼 탱탱했다.
“요즘 얼굴 보기 통 힘드네. 그 집 비었나하고 내가 몇 번이나 문에 귀도 갖다대고 구멍도 들여다보고 그랬는데… 엄마가 그 집 비었을 때 나한테 가끔 봐달라고 부탁하셨었거든.음악소리 같은 게 들리긴 하더라구.”
그래서 우리집을 그렇게 감시했던 거였어? 돈 많고 팔자 늘어지니까 심심해서 맨날 감시했던 건 아니고. 엄마가 아무리 부탁했다고 해도 이제 내가 이 집에서 사는데 그런 건 좀 ‘오버’ 아니야?, 라고 마음 속으로만 생각했다.
“예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맨날 집에만 있었나봐. 얼굴이 하얘. 살도 쪘고. 이제 아줌마 티 난다. 남편 없다고 그렇게 막 굴리면 금방 몸 불어.”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예의상 미소를 지었다. 아줌마, 난 당신이 이러쿵 저러쿵 나를 평가하는 말을 들을 아무런 의무가 없다구. 입 좀 다물 수 없어? 조용히 집에 가고 싶어. 그런 말들이 부글부글 목구멍까지 솟아올랐지만, 역시 입밖에 내지 않았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쫑이는 내 다리로 다가와 제 털을 비벼댔다. 나는 개라면 딱 질색이다. 아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개든 고양이든 병아리든 살아있는 것을 키워본 일이 없다. 심지어 꽃 하나도. 화분을 선물 받으면 일주일도 못 돼 시들어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관계를 맺는 일에 서투른 걸까. 내가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비켜서자, 강아지도 같이 놀라며 아줌마 뒤로 쪼르르 숨었다.
“어머. 우리 쫑이가 놀랐겠네. 강아지가 무서워? 서른이 넘어서?”
내가 놀란 게 문제지 강아지가 놀란 게 문제야? 어휴 속터져.
“제가 개 알러지가 좀 있어서요.”
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숫자는 5를 지나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몰라 계속 변하는 숫자만 지켜봤다. 6,7,8… 왜 우리집은 15층에 있을까. 조용히 가길 원하긴 했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침묵은 오히려 예상외로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23년간을 옆집에서 마주보고 사는 사이라는 건 그런 거였다.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 할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쳇말로 완전 쌩깔 수도 없는 사이. 나는 아줌마의 말도 싫었지만 이 어색한 정적도 견딜 수 없어 초조하게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줌마가 먼저 아슬아슬한 침묵의 균형을 깼다. 가장 짜증나는 방식으로.
“남편은 언제 돌아와? 미국 어디에 있다고? 우리 상인이도 애틀란타에 있는데…”
“출장이 길어져서요. 이곳저곳 돌아다녀요.”
“남자 혼자 오래두면 안되는데… 남편이 UCLA 나왔다고 그랬나? 우리 상인이는 뉴욕 유니버시티 나왔는데…”
무슨 얼어죽을 UCLA. 남편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난 UCLA의 U도 벙긋 한 적이 없는데, 자기 맘대로 저렇게 생각하다니. 아줌마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 나왔다고 다들 그렇게 하는 건줄 아나보지. 한국에서 대학 떨어져서 돈으로 미국 대학 보낸 게 뭐 자랑이라고. 하지만 나는 귀찮아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고 말하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엘리베이터는 드디어 15층에 섰다. 문이 열리면서 환한 햇살이 구원의 빛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들어가세요.”
“그래. 잘 가라. 부모님께 안부 전해드리고. 남편한테도 자주 전화하고.”
나는 재빨리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러 집안으로 들어왔다. 문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아줌마와 쫑이가 들어가는 게 보였다. 옆집 문이 닫히고 완벽한 정적에 휩싸이자 그제서야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온 듯 편안해졌다.
나는 커피에 우유를 섞어서 천천히 마셨다. 커튼을 열자 태양이 빛을 토해냈다. 바닥에 뒹구는 머릿카락과 먼지가 선명했다. 커튼을 다시 닫았다. 이 40평대 아파트는 나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크다. 청소하기도 귀찮고. 지난해 가을 동생부부가 영국으로 3년간 출장을 떠나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나는 전셋값을 아끼려고 결혼하기 전까지 내가 살았고, 얼마 전까진 부모님만 살았던 이 집에 들어왔다. 옆집 아줌마가 사이코처럼 매일 나를 감시한다는 걸 알았다면 이사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돈 때문에 들어오긴 했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비참해진다. 나도 결혼 전까지는 이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얹혀사는 신세다. 왜 바보같이 이혼하면서 위자료도 챙기지 못했을까. 저 옆집 아줌마는 왜 이렇게 남의 집 구석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냥 확 이혼해버렸다고 까발리고 나 좀 내버려두라고 말할까. 사실 이혼도장을 찍을 때의 용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옆집 아줌마가 왜 혼자 이사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죄인마냥 움츠러들어서는 얼결에 남편이 출장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 번 내뱉은 거짓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왔고, 나는 점점 더 기를 펼 수 없었다. ‘당당한 이혼녀’란 말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말이었다. 우유를 너무 많이 탔는지 커피가 느끼했다. 반쯤 남은 커피를 싱크대에 부어버리고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커다란 야자수 잎 너머로 하늘은 코발트빛으로 빛났다. 나는 지도를 보면서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오래된 사원을 향해 걸었다. 어딘가에서 개가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뒤에서 커다란 검은색 개가 따라오고 있었다. 가슴이 오그라들었지만 태연한 척 발걸음을 빨리 옮겼다. 인도가 없는 일차선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컹컹. 개 짖는 소리는 바람과 풀벌레소리만이 울리는 세상을 향한 선전포고 같았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다행히 앞에 편의점이 보였다. 나는 뛰어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유리문 밖에선 개가 멈춰 서서 안쪽의 나를 향해 짖어댔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본 편의점 직원이 문을 열어 개를 좇았다. 어딘가로 사라지나 싶더니, 망할 놈의 개는 다시 돌아와 아예 편의점 문 앞에 자리잡고 앉았다. 내가 쳐다보니 또 짖기 시작했다. 직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가지도 못하고 조그만 가게 안에 갇힌 신세가 됐다.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었고, 이곳엔 나와 개만이 존재했다. 왜 나는 개를 무서워하게 되었을까. 저 개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이 곳에만 갇혀있다는 것은 정말 억울해. 나는 개가 한 눈 파는 틈을 타서 용기 내어 문을 열었지만, 개가 내 쪽을 향해 머리를 돌리자마자 다시 문을 닫았다. 지는 태양빛을 받은 개의 눈은 나를 잡으러 온 지옥사자처럼 이글거렸다. 나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눈을 떴다. 마취가 덜 깬 것처럼 온 몸이 축 늘어졌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새벽에 냉장고를 모조리 뒤져 알코올이란 알코올은 모두 마셔버리고 거실 바닥에 쓰러지듯 잤던 게 생각났다. 문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저 미친. 이상한 개꿈을 꾼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시계의 바늘은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니 대낮부터 복도에서 왜 짖고 난리일까. 눈을 다시 감았지만 개 짖는 소리가 머리를 망치질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벌떡 일어나 발 끝으로 소리나지 않게 걸었다. 현관 문의 구멍을 들여다봤다. 옆집 아줌마가 자기네 집 문 도어록의 뚜껑을 올렸다 내렸다 번호를 눌렀다 쾅쾅 두드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바라봤다. 마치 아줌마는 마임 공연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옆에서 강아지는 계속 짖어댔다. 왜 집에 못 들어가고 저러고 있는 거지.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시끄러워서 짜증이 났다.
나는 두 개의 엄지손가락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힘껏 눌렀다. 핏줄이 제멋대로 튀어 오르는게 느껴졌다. 현관 앞 거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네 발 달린 짐승처럼 간신히 기어서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 서랍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빌어먹을. 두통약은 어디에 있는 거야. 머리 속은 벌레가 파먹듯 점점 쑤셔왔다. 광고전단지, 나무젓가락, 랩, 쿠폰 등등을 모두 꺼낸 뒤에야 웅크린 아이처럼 구석에 숨은 두통약 한 알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물도 없이 약을 삼킨 뒤 거실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하지만 어지럽고 구토가 올라와 벽에 기대 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손 끝이 조금씩 저려왔다. 갑자기 바깥이 조용해졌다. 벽에 머리를 기댄 채로 잠의 구멍에 쑥 빨려 들어가려고 하는데 벨소리가 나를 순식간에 끌어당겼다.
띵동. 띵동.
나는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띵동. 띵동. 띵동. 내가 안에 있는 거 다 안다는 식으로 무례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띵똥 띵똥 띵똥 띵똥. 컹컹컹컹. 으아. 한계점에 다다른 인내심이 화산폭발처럼 터졌다. 저 예의 없는 강남 속물 아줌마. 도대체 왜 계속 벨을 누르는 거야. 안 열면 열기 힘든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야지. 남 생각은 티끌만큼도 안 하고. 나는 단단히 항의할 생각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문을 확 열었다. 며칠전과 같은 복장을 한 옆집 아줌마가 서 있었다. 나의 분노어린 표정을 본 강아지는 갑자기 짖는 것을 멈추고 다리로 귀를 긁으며 딴청을 피웠다.
“자는 거 깨웠나 보네. 미안.”
아줌마의 발랄한 복장과 달리 얼굴은 초췌했다. 눈 주위는 거멓게 부어있었고, 머리는 푸석푸석했다. 자다 깬 건 내가 아니라 아줌마 같았다.
“우리집 문이 고장나서 A/S를 불러야할 거 같은데 잠깐 전화 좀 쓸 수 있을까하고… 핸드폰도 집에 두고 왔고…”
아줌마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전투심을 불태웠던 마음은 누그러지고 나도 모르게 상냥하게 대답했다.
“예. 들어오세요.”
아줌마는 강아지를 안아 들더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전화 있어요.”
나는 아줌마가 통화하는 동안 술 냄새가 날까봐 창문을 급히 열었고, 화장실로 가서 대충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는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23년간 문을 마주보고 산 이웃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하는 거라고 스스로 정당화시켰다. 저 아줌마가 강남 속물이라고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어쨌든 뭔가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돕는 건 좋은 일이니까.
화장실을 나오니 아줌마와 쫑이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순박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빌어먹을. 이래서 나는 안된다니까. 왜 ‘착한 여자’ 연기를 하고 있을까. 뜬금 없이 어린 시절 젓가락을 제대로 잡지 않았다고 혼났던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온가족이 앉아 밥을 먹는데 내가 젓가락으로 엑스자 모양을 만들어 반찬을 집어올리는 순간 할머니는 언성을 높였다. “여자아이가 젓가락질을 저리 해서 쓰나. 어디 가서 가정교육 못 받았다고 욕이나 얻어먹지. 저렇게 젓가락질 하면 헤픈 년 소리밖에 더 들어?.” 나는 젓가락을 얌전히 내 옆에 놓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숟가락으로 밥과 국만 퍼서 먹었다. 나는 반항하고 싶었다. 반찬만 집어들면 되지 어떻게 젓가락을 잡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나는 반항하는 대신 며칠동안 열심히 젓가락질을 연습했다.
교회 주차장의 장면도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가족 모두가 예배를 본 뒤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누군가가 야구를 보러 가자고 했다. 사촌 오빠 둘과 내 남동생, 아버지, 작은 아버지, 고모부가 한 차에 타고 가기로 했다. 나도 가고 싶어서 떼를 썼다. 내가 갑자기 울고 불고 그러니까 모두들 난처해했다. 그 때 내 뺨을 때리는 큰 손이 느껴졌고, 섬뜩하고 차가운 전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그 순간 나는 어렴풋이 앞으로의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울음을 딱 그쳤다. 아빠가 성난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여자애가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호랑이가 으르렁대는 듯한 아빠의 성난 목소리는 나를 삼켰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의견이나 생각을 어른들 앞에서 말하지 않았다. 속마음은 달라도 겉으로는 말을 잘 듣는 척했고 점점 그런 게 익숙해졌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얌전하고 착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A/S 직원이 오긴 한다는데 한 시간쯤 걸릴 거라는데, 여기 조금 있다 가면 안 될까?”
아줌마는 머뭇거리듯 느릿느릿 말했지만 매끈한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를 뻔뻔스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전화를 다 썼으면 나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놈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다행히 좀전에 먹은 두통약의 효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머리가 아까처럼 아팠다면 이성을 잃고 나가라고 소리쳤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러지는 못했겠지만 얼굴에 싫은 티를 감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네. 여기 앉아 계세요.”
나는 부엌에 가서 가스불에 물주전자를 올렸다. 오토바이의 요란한 엔진소리가 열린 창을 타고 넘어와 물 끓는 소리와 뒤섞였다. 찬장을 열어 포트넘 앤 메이슨의 얼 그레이 홍차잎와 거름망을 꺼냈다. 일부러 오랜시간 잎을 우려 차를 만드는 동안 아줌마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있었다. 엄마가 쓰시던 로얄 알버트 홍찻잔에 차를 따라 쟁반 위에 놓고 다소곳이 들고 걸어가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쫑이는 아줌마 품에서 얌전히 숨만 쌔근쌔근 쉬었다. 아줌마는 소중한 것을 다루듯 두 손으로 찻잔을 감싸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셨다.
“향이 좋네..”
강남 아줌마라고 우아한 티는 엄청 내는군. 나도 아줌마와 비슷한 동작으로 차를 마셨다. 우아한 척하는 건 나도 뒤지지 않았다. 어차피 내 인생은 대부분 ‘척’으로 이루어졌다. 착한 여자인 척, 얌전한 척, 이혼하지 않은 척, 멀쩡한 척. 그러다보니 나도 내가 때로는 어떤 인간이지 헷갈렸다. 내가 내 인생에서 단 한번 ‘척’하기를 거부했던 건, 이혼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다른 여자와 내 침대에서 뒹구는 남자에게 나는 더 이상 ‘착한 여자’를 연기할 수 없었다. 아줌마는 차를 한 입 마신 뒤 찻잔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현진이 취향 좋네. 로얄 알버트 잔은 고전이지.”
“엄마가 쓰시던 거에요. 저.. 신문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아니야 됐어. 요즘 글자 같은 거 보면 눈이 어지러워.
난감했다. 한시간이나 이렇게 아줌마와 마주보고 앉아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리모컨으로 TV를 틀었다. 어떻게든 어색함을 줄여보고 싶었다. 코미디 프로가 나왔다. 우스꽝스런 복장과 화장을 한 개그맨들을 향해 방청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줌마를 곁눈질로 봤다. 찡그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날 교양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는 재빨리 채널을 바꿨다. 영화, 드라마, 대부업체 광고, 홈쇼핑… 볼 만한 게 없었다. 스위스의 눈 덮인 산을 오르는 붉은 산악열차 장면에서 채널을 멈췄다. 너무 푸르러서 비현실적인 파란 하늘,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옴직한 예쁜 목조주택이 열차의 창에 오롯이 들어찼다.
“내가 요즘 좀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 쫑이가 많이 짖어댔지? 애아빠가 집에 잘 안 들어오다보니…”
아줌마의 시선은 탁자에 고정되어있었다. 목뼈 위엔 거죽만이 몇 겹의 주름으로 접혔고 얼굴엔 하얀 가루를 뿌려놓은 듯 버짐이 번져있었다.
“괜찮아요. 참을 만해요.”
내 생각과 달리 입은 엉뚱한 말만 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조울증이 있어. 요즘 통 잠이 안 와.”
나는 놀라서 아줌마의 얼굴을 쳐다봤다. 온갖 우아한 척 하는 아줌마의 입에서 나올 말이아니었다. 아줌마는 내 반응은 상관 없다는 듯 시선을 바닥에 내리깐 채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나는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나에게 뭘 묻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장통에서나 들을 법한 중년아줌마의 뻔한 하소연이, 터진 둑 사이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강물처럼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젊었을 때부터 시어머니의 등쌀이 장난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반찬도 만들어놓고 시댁 집안 청소까지 다했다. 그런데 남편이 새파랗게 젊은 여자하고 바람이 났다. 내가 어떻게 시집살이를 했는데 그 사람이 내게 그럴 수는 없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애들 때문에 꾹 참고 살았다. 상인이가 성공하고 막내 상철이가 성실한 게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조울증이 생겨서 병원을 들락날락거렸고, 한동안 나아지는가 싶더니 요새 다시 병이 도졌다. 남편이 아예 대놓고 집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의 바람기는 익숙해지지가 앉는다. 가슴에 돌멩이가 있다. 그게 점점 커지고 이젠 막 구르기 까지 한다. -그 말을 할 때 아줌마는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드렸다.- 이젠 먹어도 대부분 토하고 잠도 오지 않는다. 전에는 약이 잘 들었는데 요즘은 먹을 때뿐이다. 잠깐 괜찮아질 때 집안일도 하고 산책도 한다. 밤엔 참기 힘들다. 죽어버릴까 몇 번씩 생각했지만 결혼 안한 상철이 생각에 꾹 참는다. 정말 매일 칼날 위를 걷는 기분이다. 거기다가 상인이는 위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아줌마는 이 대목에서 한 번 멈췄다. 나도 처음 듣는 얘기라 흠칫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끊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래도 상인이는 젊고 건강해서 잘 이겨내고 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서 위를 조금 떼어냈는데 식이요법만 잘 하면 다시 완쾌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있으면 내가 한식으로 반찬해 줄 텐데 미국에서 맨날 기름기 있는 것만 먹어서 걱정이다. 조만간 반찬 싸들고 가려고 하는데 조울증이 계속 심해져서 날을 못 잡고 있다. 상인이 아빠는 상인이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된다. 며느리보다도 어린 년하고 어떻게…
나는 조용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었다. 무대 위 일인극처럼 그녀는 무려 30분도 넘게 혼잣말을 했다. 때로는 울먹이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초연해지면서. 왜 저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걸까. 처음엔 듣기가 거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던 두터운 공기는 옅어졌다. 얼마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으면 자식뻘인 내게 털어놓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힘겨웠으면. ‘속물 강남 아줌마’라는 한가지 의미로 아줌마를 깔아뭉개버린 내 자신이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그녀 역시 고통받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나처럼.
아줌마는 말을 끝낸 뒤 모든 힘을 쏟아 마라톤을 완주한 뒤 주저앉는 주자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녀의 세포는 모두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찻잔에 이미 식어버린 홍차를 조금 더 부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정신이 든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눈에 최대한 공감의 의미를 담아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듯 살짝 웃어보였다.
“아줌마. 힘드실 때 가끔 와서 차라도 한 잔씩 하고 가세요. 그렇게 이야기하시다보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실 거에요.”
“넌 괜찮니? 뭐 힘든 일 없어? 넌 뭐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착했고 시집도 잘 갔잖아. 너네 엄마가 볼 때마다 어찌나 자랑하시던지…”
“저도 뭐 사는 게 그렇죠.”
“애는 빨리 나아. 벌써 30대 중반이잖아. 나이 들어 키우려면 얼마나 힘든데… 남편은 아무말 안 해?”
“사실은 저… 이혼했어요. 자랑거리도 아니고 해서…”
나는 순간 움찔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평소 비아냥거린 사람에게 내 상처를 보여주다니… 아줌마의 상처를 낱낱이 들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았을까. 아니면 볼 때마다 남편의 행방을 묻는 거에 거짓말로 둘러대기가 지긋지긋했을까. 아마도 뭔가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말을 건네고 싶었던 거겠지. 상처 받은 인간에게 가장 큰 위로는 남들도 나만큼 상처 받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까. 아줌마는 내 말에 놀라는 듯 했지만 노련한 갬블러처럼 바로 표정을 감췄다. 쫑이는 아줌마의 품에서 배를 위로 한 채 유순한 아기처럼 잠이 들었다. 아줌마는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 쫑이의 털을 쓰다듬었다.
“그래. 사는 게 만만치가 않지. 나도 대충은 짐작했어. 너 여기 온지가 벌써 몇 달 째야.나도 네 나이고 애들 없었으면 그랬을 거야.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살게 되더라. 나도 애 아빠 모르게 이 아파트 내 이름으로 바꿨어. 송파 쪽에 상철이 이름으로 아파트도 하나 해줬고. 상인이야 미국에서 워낙 잘 사니까 신경 쓸 건 없지. 아, 상인이가 이번에 애틀란타에서 큰 집 샀어. 3층짜리. 앞에 정원에서 바비큐도 해먹고, 작은 수영장도 딸렸더라. 돈이 힘이야. 난 현금도 많이 확보해뒀어. 힘들다가도 수억 들은 예금 통장 보고 있으면 든든해져. 너도 이혼할 때 위자료 좀 챙겼지? 악착같이 돈은 챙겨야 돼. 남자는 없어도 되지만 돈은 없으면 안돼. 시어머니도 내가 돈줄을 쥐고 있으니까 이제 예전처럼 못한다. 이번에 동해 쪽 부동산이 좋다고 해서 거기도 투자할까 하고 돈 좀 찾아놨어.”
아줌마의 돈자랑이 이어졌다. 아, 내가 잠시 착각을 했던 거지. 그녀는 ‘강남 속물’이 맞았다. 저 아줌마에게 내 치부를 드러내다니. 아니다. 그건 치부가 아니다. 나는 이제 당당히 내 현실에 맞서야 한다. 언제까지 움츠리고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나는 돈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풍족했고 결혼 후에도 그랬다. 결혼생활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도 돈을 챙겨 나와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모든 재산은 시부모 이름으로 되어있었고, 나는 그저 그 곳을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부모와 동생에게 빌붙어서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TV 속에서는 융프라흐의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발길도 묻지 않은 순수한 눈덩어리가 흰 몸을 반짝였다. 갑자기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아무 의미 없이 한 달여가 지나갔다. 나는 여전히 집 밖을 거의 나오지 않았고, 아줌마는 우리집 문구멍을 들여다봤다. 샘솟는 의지의 힘에 이끌려 취직을 해보려고 몇 곳에 구직원서를 접수했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결국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똑같은 일상을 되풀이했다. 가끔씩 외출할 때마다 아줌마와 마주쳤고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아줌마가 더 이상 남편의 행방을 묻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곤 아무것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가 변하긴 변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는 결코 발견하기 힘든 변화였다. 나는 처음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둘러싼 그림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안면이 있는 몇몇 동네 사람들에게 고개인사를 하면 그들은 몇 초간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내가 지나가는 뒤에서 조용히 수군대는 소리도 들렸다. 경비아저씨는 이상하리만치 친절하게 내게 말을 건넸다.
어느날 경비아저씨가 내게 선을 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나오고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건실한 청년인데 이혼한지 2년 됐어요. 애가 하나 있긴 한데 엄마가 키우니까 신경 쓸 일은 없고, 성실해서 분당에 30평대 아파트도 벌써 하나 마련했구요. 인물도 좋아. 내가 잘 아는 집 아들인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나를 뭘로 보고 애 딸린 남자를 소개해주는 거지? 경비아저씨가 감히.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하면 할수록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1.5리터짜리 물을 단숨에 들이키고, 집 거실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이 회전목마처럼 빠르게 휙휙 지나갔다. 현실은 흐릿해졌고, 벽은 흔들렸고, 욕지기가 솟았다. 애 딸린 남자를, 그것도 경비아저씨가 소개해주었다는 사실에 부아가 났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속물처럼 생각돼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옆집아줌마나 다름없는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보단 내가 이혼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아줌마가 너무 미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멱살을 잡고 당신이 뭔데 그러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저주를 퍼부어도 모자를 옆집 아줌마는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재수없게 흐느껴 울었다. 새벽마다 쫑이가 깨갱댈 때면 난 이어폰을 꼽고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이어폰을 뺀 순간 쫑이의 소리에 희미하게 뭔가가 덧붙여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용히 문으로 다가가 옆집방향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건 분명 여자의 흐느낌이었다. 옆집 아줌마는 언제부터 저렇게 울었던 걸까. 나는 왜 이제서야 저 소리가 들리는 거지. 옆집 아저씨가 또 집에 들어오지 않나. 돈도 많다면서 깨끗이 정리하고 나와서 살면 되지 왜 저렇게 궁상을 떠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런 일로 저리 난리법석을 떨면 남편이 바람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나는 적어도 참고 살지는 않았다. 정말 짜증나는 족속이었다.
몇 달만에 대청소를 하려고 창문을 모두 열었다. 두터운 구름 뒤로 하늘이 숨어있었다. 오늘은 부모님이 오시는 날이다. 동생 내외가 휴가를 맞았고 오늘 오후 도착 비행기로 부모님이 동생보다 며칠 먼저 오시겠다고 일주일 전쯤 전화가 왔다. 뭔가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쳐서야 시험공부를 하는 수험생처럼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야 창문을 활짝 열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걸레로 닦았다. 화장실 타일을 꼼꼼하게 솔로 문질렀고, 샤워커튼을 락스물에 담갔다. 가스레인지의 기름때를 닦고 싱크대도 잘 정돈했다. 유리창을 닦고 가구에 쌓인 먼지도 닦아냈다. 전기 코드줄을 매직블럭으로 밀었고, 전등 위에 쌓인 오래된 먼지도 벗겨냈다. 이불은 모두 들고 나가 힘껏 털었다. 지난해 초까지 3년간 이어졌던 결혼생활이 떠올랐다.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하는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나는 체크리스트까지 써서 하나하나 지워가며 청소를 해야했다. 내가 깨끗하게 빨아놓은 침대시트 위에서 그들은 내가 없는 사이 뒹굴었다. 내가 그 날 예상보다 빨리 귀가하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한 편으론 그게 더 평온하지 않았을까하는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지금 삶이 구질구질하다보니 별 생각을 다하는군.
청소를 마치고 장을 보러 나섰다. 비를 품은 먹구름이 바람에 밀려오고 있었다. 서둘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옆집아줌마와 마주쳤다. 웬일인지 쫑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는 초록색 체크무늬 재킷에 검은색 정장바지를 단정하게 차려 입었다. 국민 핸드백이라는 루이비통 토드백을 팔에 자랑스럽게 건 아줌마의 얼굴은 어제 새벽 궁상을 떨며 울어댔던 것과는 달리 환한 웃음으로 넘실댔다. 아줌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물 만난 생선처럼 신나게 뻐끔거렸다.
“내일 우리 상인이 보러 애를란타 가. 손주들 선물 좀 사려고 나왔어. 현대백화점이랑 롯데백화점 들려볼려구. 면세점도 가보고. 화장품도 좀 사고. 애를란타 날씨가 요즘 좀 춥다해서 점퍼도 좀 사구… 상인이가 좋아하는 것도 좀 사구…”
아틀란타를 저렇게 굴려서 말하다니.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이성을 찾고 나름 정중하게 말했다. 왜 이혼한 거 말하고 다녔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좋으시겠어요. 상인 오빠 아픈 건 좀 어때요?”
아줌마의 얼굴은 지나치게 화사해서 비현실적인 알프스의 풍경을 닮아있었다.
“어. 이제 다 나았대. 멀쩡하게 회사 잘 다녀. 상인이 이번에 진급해서 연봉이 이제 10만불이 넘는다고 내가 얘기했나?”
또 시작되는 돈자랑. 저 아줌마에게 연민을 가졌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상인 오빠는 다 나았다면서 한국에 안 나오는 걸까.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한국에 나왔었는데, 얼굴을 못 본지 꽤 된 것 같다. 아줌마는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상인이가 온다고 했는데 애들 데리고 나오는 거 번거롭잖아. 그냥 우리가 가는 게 편하지. 미국 여행도 하고. 가끔 우리집에 뭔 일 없나 봐 줘. 상철이가 있긴 한데, 걘 집에 늦게 들어오니까.”
나보다 두 살 많은 상인 오빠는 ‘삼수’를 해서 서울 근교의 대학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옆집 아줌마가 대치동 초특급 강사를 붙여 과외를 시켰지만 결과가 그 모양이었다. 혼자 공부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과외 한 번 하지 않고 명문대를 한 번에 붙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상인 오빠는 재미교포 사업가 딸과 결혼했고 지금은 미국에서 1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다. 나는 세상물정 모른 채 빈털터리로 이혼해 부모에게 빌붙어 살고 있다. 상인 오빠의 동생인 상철은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직까지 결혼을 안 하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자기는 결혼도 안 해놓고선 누가 옆집아줌마 아들 아니랄까봐 나만 보면 “왜 애를 안 낳아?” “너도 요즘 아줌마 티 난다.” 는 식의 말로 염장을 질렀다. 아줌마는 할 말만 다 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바보처럼 아줌마가 뒤돌아가도록 따지지도 못했다.
장 본 것들을 냉장고에 넣은 뒤 정성 들여 화장을 했고, 시폰 소재의 분홍색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오랜만에 뵙는 부모님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난 부모님 몰래 이혼했다. 결코 이혼을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생각과 달리 조용했다. 화만 나면 소리를 질러 손자손녀들에게도 ‘버럭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던 아버지는 나를 불러 이 한마디만을 했다. “조용히 있다가 다시 좋은 남자 만나. 그럼 사람들도 네가 이혼했던 거 모를 거야.” 나는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아버지가 고마웠다. 부모님이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쯤 여유가 있다. 브래드 멜다우의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소파에 파묻혔다. 라디오 헤드의 ‘엑시트 뮤직’을 커버한 재즈 피아노 연주곡이었다. 전쟁터에서 총탄을 맞은 사람에겐 죽음이 평온한 안식이듯, 평화로운 슬픔에 빠져 눈물까지 흘리며 음악을 듣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띵동. 눈을 떴다. 시계는 5시를 넘기고 있었다. 띵동. 나는 재빨리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갔다. 현관 옆 거울을 보면서 대충 머리 결을 다듬은 뒤 문을 열었다. 부모님이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옆에 세워두고 서 있었다.
“전화 하시지. 그럼 공항터미널에라도 나갈 텐데…”
“내리면 바로 택시 있는데 뭐하러 그래.”
엄마는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으면서 끌어안았다. 아버지는 여행이 피로했는지 안색이 어두웠다. 콜밴 택시기사에게 바가지라도 쓴 것일까. 트렁크 가방을 들고 작은 방으로 옮기려는데 아버지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요 앞에서 옆집 아줌마 만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너 왜 이혼했다고 떠벌리고 다녀?”
이 빌어먹을 옆집 아줌마. 나는 무안해서 가방을 옮기면서 변명을 했다.
“그게 아니라… 옆집 아줌마가 하두 물어봐서… 어쩔 수 없이…”
“당신 옷이라도 갈아입고 말해요. 피곤하실 텐데…”
엄마는 아버지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혼이 무슨 죄도 아니고. 나 이제 괜찮아요. 더 이상 죄인처럼 숨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의 얼굴이 술 취한 사람처럼 붉어졌다. 아버지는 노여움이 섞인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너가 괜찮은 게 문제야? 내가 안 괜찮아.”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담긴 분노와 적의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 옛날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나를 삼켜버렸던 으르렁거림이 생각났다. 더 이상 어른들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하지 않으리라고 했던 어린시절의 결심도.
“얌전히 있으라고 그거 하나 부탁했는데 그걸 못 들어줘?”
아버지는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아버지가 예전에 내게 건넸던 한마디의 뜻을 나는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다.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체면을 위해서 한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상적인 상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을지라도 진심으로 고아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서른 중반이 되도록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증오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지 유난히 수다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대학까지 나왔다는 엄마의 지적 수준이 의심스러웠다. “구집사 딸 알지. 이번에 행정고시 붙었대. 연봉이 7천도 넘는다는데. 공무원들 월급을 진짜 그렇게 많이 주나? 김권사 아들은 회사에서 미국 MBA 보내줬대.” 기껏해야 엄마가 할 수 있는 수다란 온갖 주변 사람들의 딸아들을 시샘 내는 것뿐이었다. 아버지의 젓가락질 속도는 빨라졌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옛날 할머니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앞의 밥과 국만 먹었다. 밥이나 축 내는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부모님도 나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베이브 루스의 ‘킹콩’을 무한반복해서 들었다. 맥박소리처럼 반복되는 사이키델릭 기타 연주에 혈관이 터질 듯 들끓어 올랐고, 나는 벌떡 일어나 벽을 긁었다. 손톱 끝에 피가 엉겨 붙었다. 피부가 촛농처럼 녹아 흐르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왔다. 베개를 들어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나는 어느새 옆집 아줌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다음날 부모님을 따라 모처럼 교회를 갔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부모님의 친구 부부와 마주쳤다. 나는 인사를 하고 어른들이 대화하는 동안 다소곳이 한 발자국 뒤에 서 있었다. 제발 나한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마라,고 주문을 걸면서. 이제 기도 따위를 들어줄 신이 없다는 건 잘 알고있다. 신이 있다 해도 나 같은 사람의 사소한 기도를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을 것이다.
“현진이 오랜만이구나. 요즘 교회에서 통 안보여.”
주문이든 기도든 안 먹히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예. 다른 교회 다녀요.”
“시집 가더니 그 쪽에서 다니나 보구나. 친정 부모님 오니까 좋지?”
나는 수줍게, 아니 수줍은 듯한 연기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보면 남편에 대해 물을까. 나의 존재가치는 그걸로 정의되는 걸까. 내가 아무 대답을 못하고 있자 엄마가 끼어 들었다.
“어. 미국 출장 갔어. 우리 현태처럼 장기 출장.”
씻은 듯이 말간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연설이 이어졌다. 한국사회가 어떤 사횐데 이혼녀라고 낙인 찍힐 일이 있느냐,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남들 흉잡힐 일 하려고 하느냐, 그렇게 할 일 없으면 어디 취직이나 해라… 나는 묵묵히 들으며 창 밖을 쳐다봤다. 일요일의 테헤란로는 텅텅 비어있었고, 햇빛은 고층빌딩들의 모서리에서 부서지며 조각을 뿌렸다. 곧 빌딩들은 레이저빔을 맞은 것처럼 갈라졌고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곧 내 머리 위로 시멘트 더미가 쌓일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은 모두 도시의 쓰레기더미에 묻혀서 괴롭게 숨이 끊어질 것이다. 우르르 쾅쾅. 정신을 차리고보니 차는 테헤란로를 빠져 나와 영동대로로 우회전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부모님과 동생 내외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내 인생은 다시 제자리를 맴돌았다. 독립하겠다는 의지와 끝없이 치솟던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수그러 들었고, 그 자리에 무기력증이 자라났다. 매일매일 하는 일이라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는 일 뿐이었다. 심심하지는 않았다. 집안에만 있어도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거리엔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분노한 대학생들이 뛰쳐나왔고, 물가는 연일 치솟았고, 취업 못한 젊은 여성들은 몸을 팔았다. 중동지역에서는 민주화시위가 들끓었고,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이 굶주렸고, 미국에선 토네이도가 집을 휩쓸어갔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넌 행복한 거야. 네가 힘들어 하는 건 사치야. 넌 돈 한 푼 벌지 않고도 굶주릴 걱정 없이 팔자 좋게 살고 있잖아. 하지만 수 백번 자기 암시처럼 되뇌이고 되뇌어도 기분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결코 깰 수 없는 두터운 벽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그 벽은 점점 나에게 다가와 언제가는 나를 짓뭉개버릴 것만 같았다.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고, 가슴엔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객관적으로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차고 넘쳤지만,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꼈다.
미국에서 아들을 만나고 왔다는 아줌마는 한동안 기분이 좋아보였고,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 자랑에 열을 올렸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예의상 말을 들어주는 척 했다. 이제 아줌마에게 이러쿵 저러쿵 따지는 것도 무의미해 보였다. 어차피 바뀌는 건 없었다. 내가 말만 조심하면 된다.
슈퍼에서 맥주를 한아름 사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누군가 현관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정지 버튼을 눌렀다. 상철이었다. 나는 맥주가 담긴 봉지를 뒤로 숨겼다. 문이 닫혔다.
“너 요즘 좀 살 빠진 거 같다.”
저러다가 또 남편은 요즘 뭐하냐고 물을까봐 나는 선수를 치며 아줌마 얘기를 꺼냈다.
“너네 엄마 상인이 형 만나고 오셔서는 기분이 좋아지신 것 같아.”
엘리베이터가 5층을 지나가고 있었다. 상철이는 물끄러미 숫자가 변하는 것을 지켜보다가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상인이 형 죽었어.”
나는 잠시동안 그의 말 뜻을 알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오늘 상인이형이 죽었다는 말인가. 아님 얼마 전? 그런데 상철이는 저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담담히 말할 수 있지?
“무슨 소리야? 너네 엄마 오빠 만나고 오셨잖아.”
“위암 말기였어. 형 2주기라 갔다 오신 거야.”
나는 잠시동안 할 말을 잊었다. 엘리베이터는 12층을 지나갔다.
“그.. 그럴리가. 오빠가 분명 건강하다고 그러셨는데…”
“엄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셔. 가까운 친척 말고는 아무도 몰라. 장례식도 미국에서 치렀고.”
엘리베이터가 15층에 섰고, 나는 무거운 얼굴로 그에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어린시절 엄마가 없어서 집 앞 복도에서 기다리던 나를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과자도 주었던 상인 오빠의 모습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나는 집에 들어와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아줌마의 히스테릭한 웃음소리가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휘감았다. 눈을 감았다. 폭죽이 터지듯이 요란스럽게 왼쪽과 오른쪽 귀를 오가며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아줌마는 미쳤다. 나도 미친 거 아닐까.
그 뒤로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음악도 듣지 않았고, 하루종일 돌 같은 침묵이 누르고 있는 집안을 누워있거나 느릿느릿 돌아다녔다. 집안은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처럼 절망감이 피어올랐고, 시간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 같았다. 커튼을 열지 않은 탓에 낮 시간에도 어둠이 고여있었고, 그것은 침묵과 어울리는 한 쌍을 이뤘다. 나는 매일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혈관엔 알코올이 흘렀고 나는 점점 죽어간다고 느꼈다.
얼마나 흘렀을까. 일주일 아니 보름. 잘 모르겠다.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커튼 사이로는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시계는 3시를 가리켰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였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네.”
눈물이 났다.
“지난번에 수고가 많았다. 쉬어라.”
전화를 끊은 뒤 주위를 둘러봤다. 평화로운 고요, 질서정연한 사물의 어스름, 나른할 정도로 기운 빠진 몸, 완전한 고독… 갑자기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공간이 완벽하게 느껴졌고, 나 역시 분에 넘칠 정도로 완벽한 행복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서 커튼을 걷었다. 창문을 모두 열자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부엌에 가서 두통약을 삼켰다. 먼지가 쌓인 전기청소기의 코드를 콘센트에 꼽았다. 붕. 전기청소기의 소리와 함께 다시 세상이, 내 인생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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