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서 나온 남자[41-45]
- 작성일 201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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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철이와 과부와 그 딸 그리고 학호 이렇게 넷이서 한방에서 잤다는 얘기네. 아이고 징그러라. 수철이가 그렇게 호락호락 한방에 재워줄리는 없고 뭔가 구린내가 나기는 나는데. 어서 마저 애기해봐."
"그래,그래 빨리 얘기해봐."
곽씨네가 조급히 재촉하고 혜수씨가 거든다.
"짐작대로들 학호가 도둑질한 돈과 패물이 탐이 낫던거야. 글쎄 수철이에게 고급 룸싸롱에서 비싸다는 외제 양주에 계집까지 붙여주고 ,용돈까지 집어 주었던 모양이지. 수철이 걔가 어디 보통애야. 학호를 구워 삶아서 삼분의 이 이상을 갈취했던 모양인데, 말이 갈취지 형사들의 조사에 의하면 학호가 맡기는 형식을 취했데. 그리고 그 과부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학호를 절도범으로 신고를 했다나봐. 수철이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데. 오직 수철이 자기하나 의지하고 사는 과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신고를 하고나니 갈취한 돈은 몽땅 경찰에 압수되고. 그래도 학호가 의리를 지킨다고 순순히 자백을 하는데, 끝까지 수철이에게 맡긴 돈이었다고 바득바득 우겨대서 수철이는 무혐의로 풀려나고. 지금쯤 그 추운 감방에서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을까."
"형사들은 이 기회에 수철이를 털어보고 싶었다는거야 .학호 개. 생각이 짧아도 그렇게 짧을수가 있나."
"그래도 의리 하나는 끝내주네. 참 어리석다. 수철이가 학호 아버지 재범이에게 손찌검을 한것이 어제 오늘 같은데 그것을 잊어버렸을리는 없고. 참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다. 병호씨 소주병 깨서 찌른 상철이보다도 더 악질이 수철인데."
솔이내가 여지껏 꿀먹은 벙어리모양 잠자코 있더니 한마디 했다.
"그럼 일어서들나라고. 내 집에 가보아야 하는데 ,서산댁 피곤할테니 다들 가자고."
"춘자씨. 서방도 없는데 왜 우리들보다 조급해서 그래. 일호가 뭔 일이라도 일으킨거야."
솔이내가 춘자씨의 성미를 건드린다.
"아니 솔이내, 지금 내가 서방 잃은 과부라고 얕보는거야. 보자보자하니까. 눈에 헛것이 씌엇나 뵈는게 없어."
춘자씨가 갑자기 성질을 내는데 마음 약한 솔이내가 단박에 기가 팍 죽어 버린다.
"왜들 이래 여지껏 재미있게 놀았는데.자 분위기도 어수선하게 됐구나. 서산댁 ,이 맥주 남은것이랑 통조림, 안주 잘 치워두어. 낼이나 모래 쯤에 또 모이자고."
영암댁이 험악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고 치마에 뭍은 과자부스러기를 손으로 살살 털어낸다.
[8.엉큼한 성만호 꿍꿍이]
조봉암이 집나간지 열흘이 자나도록 귀가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것이 성만호이다. 오늘 저녁나절에 집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대문간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조봉암의 아내 임씨로부터 열흘전 밤에 전화벨 소리를 듣고는 "또 그 지랄병이 도졌구나" 하고 ,건넌방에서 였들은 말로는 놀음꾼들이 불러내는 전화였다고 한다.
"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시고.추운데 방으로 들어가쇼. 몇일내에 좋은 소식이 있을거요."
"아니, 좋은 소식이라뇨."
"암튼 열흘씩 집비우고 놀음판에서 살림차리듯하는 하는 남자들이 이 마을에 한둘이요. 시태아버지랑, 뭐냐. 성식이도 집나간지 열흘이나 됐으니까. 모두 한곳에서 지금쯤 한몪 단단히 거머쥐었을거요. 그러니 따뜻한 안방에 들어가서 기다리기나 하쇼."
이렇게 조봉암을 위해서 ,그의 처 임씨를 안심시키기는 했으나 또 이 마을에서 집잃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겠구나. 내심 불안하다. 조봉암의 성격도 진득하지 못하고 급한것이, 벌써 쥐고나간 돈을 다 잃어 버렸을텐데 아직도 귀가하지 않는것이 집문서라도 가지고 나가서 홀라당 잃어버렸거니 생각이 앞선다.
성만호는 밤 늦은 야밤에 서산댁 앞을 지나거려니 아랫도리가 움출댄다.
담장을 넘겨다보며 불이 켜져 있는 서산댁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말소리를 듣고는, 좀처럼 기회를 잡기힘든것에 짜증이난다.
"-아 여자들이 살판이 났구나. 김노인 죽은뒤로 장씨내도 홍씨내도 안가고들 ,저렇게 서산댁에 모여들 있으니 내가 답답하여 상사병으로 죽겠네.-"
성만호씨는 할수없다는듯이 오늘밤은 체념하고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장씨내를 향하여 간다.
"-언젠가 기회가 올것이야. 김노인이 남긴 유산이 얼마인데. 아직은 마을남자들이 속셈을 보이지 않고는 있으나 내가 먼저 도장을 꽉 찍어 놓고 내것으로 만든 다음에 남정내들 경계를 잘하라고 교육을 시켜주어야지.-"
십이월의 밤은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계절이지만 요즘은 푹하니 이렇게 야밤에 마누라들 몰래 나들이 하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모두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장씨내서 쏘가리 매운탕과 돼지갈비구이를 겸업하고서부터 더욱 그러하다.
성만호가 생각하기에는 이 마을이 망하지 않고 그럭저럭 삶을 유지하는것이 신비하기만 했다.
해마다 겨울철만대면 남정내들은 놀음에 술에 주색잡기에 미쳐있고,여인내들은 철따라 꽃놀이 몰놀이 단풍놀이 다녀 저희들 남편들 닮아 서산댁이니 홍씨내 안방에서들 먹기내기 화투에 ,그 새나가는 돈이 얼마나 클것이며 그 자식놈들은 자식놈들대로 공부는 애초에 글러먹어 방학을 한 요즘 마을 골목에서 사방치기다 딱지치기다 팽이치기 연놀이 등 ,좀 더 추우면 저수지도 빵빵 얼어붙을것이요. 스케이트 사달라고 때쓰고 하루나 이틀을 친구내 방에서 자고 ,그 부모가 걱정되어 찾아다니거나 친구 부모가 쫗아내야 기어들어 오는놈들이니 이 마을의 장래는 참으로 암담하다 할것이다.
물론 이장 박명호씨나 요즘도 비닐하우스에서 땀깨나 쏟는 최칠성씨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뭔 귀신들이 쒸여갓고 노는대만 정신들이 팔려있으니, 성만호도 이중에 포함되기는 한다만 전답문서다 집문서다 경운기다 잡히는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장 선거에서 박명호씨에게 해마다 쓰라진 패배를 하니 이것 사는 맞이 나지 않는데, 김노인이 죽은뒤로 혹심이 생겨 살맞이 나는 요즘이다.
아직은 꺽어 손에 쥘 기회를 잡지 못햇으나, 그것이 더욱 애타고 조바심이 드는게 오히려 즐거운 성만호다.
무료한 겨울철에 놀음패 오야지 장만득이 불러내는 전화도 이핑계 저핑계 꾸며대며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것을 성만호의 처도 보고 듣고 한지라 마음이 이만저만 흡족한것이 아니니 그의 처가 끼니마다 솜씨를 다해 차려내는 반찬이 참으로 먹을만하고 잠자리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메주같은 상판의 마누라보다 달같이 예쁘고 젊은 서산댁에 한번 빠진 마음이 쉽게 떨어지기는커녕, 그 재산도 탐이나는데는 성만호도 어쩔수없는 모양, 아쉬운 달밤이다.
올해는 시태아버지나 성식이 조봉암 등 마을에서 몇칠째 눈에 띄지 않아 놀음방에 쳐박혀 있다는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고는 있으나 서로들 눈치를 보며 그들이 처들에게 장소를 비밀로하고 시침때기가 또한 남정내들 의리라고 생각하는 이 마을의 못돼먹은 전통이다.
성만호가 왁자하니 담장넘어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헛 기침을 하고 장씨내 대문을 발로 걷어 찬다.
낚시꾼 셋이서 평상에 앉아 가스렌지위의 불판에 돼지갈비를 뒤집으며 오늘 월척을 했다고 입이 마르게 웃고 떠들고 있고, 장씨의 안방에서는 가끔 장탄식이 흘러 나온다.
여자의 목소리라 장씨의 것이 분명하고 쪽마루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니 시태아버지와 성식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성만호는 장씨의 딸들의 방을 건너다 보았다.
불이 꺼져 있는게 잠에 골아떨어졌나보다.
"게들 있는가. 나요 성만호."
"어서 들어 오게나. 그렇지 않아도 우리둘이 알아볼일도 있고하니 마침 잘왔네."
나이 쉰 아홉의 시태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가 정말 반기는듯한 목소리라 성만호는 쪽마루 밑에 어지러이 헝크러있는 여섯개의 신발들을 재차확인하고서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니 형님, 그리고 동생 어쩐일로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예서 술타령이요. 읍내에서 재미 본 모양입니다."
시침 뚝 떼고 성만호가 넉살좋게 장씨의 엉덩이를 만지며 장씨의 곁에 앉는다.
"얼마나들 따오셨소. 잠바 주머니들이 두둑한것을 보니 많이도 따셨나보오. 그런데 조씨는 어인일로 여기 없소. 그 친구 재수가 없어도 이만저만 없는것이 아니네."
순간 장씨는 긴장한탓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 트린다.
"에그머니".
"아, 조심하오.고기점이 치마에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요. 요즘 같은 날씨에 옷이라도 적게 빨아야지, 그 고운 손 트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시태아버지가 젊잖게 장씨를 건너다보며 옆에서 안즉도 장씨의 엉덩이를 주므르고 있는 성만호를 또한 흘겨본다.
"아니,형님 뭔 눈을 그렇게 뜨나요. 이것이 술집에서는 그래도 에티켓이 아니겠소. 안그렀소. 장씨."
"그런데 자네 조봉암이 우리하고 있지 않았어. 장만득이가 몇차례나 조봉암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도 안받고 있던걸. 그렇다면 조봉암이가 다른 놀음패들과 연즉 있는가."
"다른 놀음패라니요. 형님. 장만득이 말고 또 읍내에 놀음패들이 판을 벌리고 있어요."
성만호가 이번에도 시침 뚝 떼고 되묻는다.
"만호, 장만득이 개들 감방에서 오년을 있었지. 그동안에 손가락이 근질거려서 못베기는 놈들 상대로 읍내에 우후죽순으로 놀음판이 생겨났네. 판들이 소규모라 나도 몇번 기웃거리긴 했지만서도 감질이나서 장만득이가 감방에서 나와 다시 불러대니 안가고 베겨. 그래도 성식이와 나는 본전은 잃지 않았지. 개들 있잖아. 고등리 문식이, 태수, 영만이 본전 찾는다고 전답문서랑, 문식이 자가용 타고 다니잖아. 스텔라 고놈을 잃고 열이 뻗쳐서 지금 정말로 밭문서를 걸었다니까. 우리가 그것을 보고 안돼겠다 싶어 자리 털고서 일어났네. 판이 그렇게 걷잡을수없게 커지면 장만득이가 본격적으로 눈속임을 할것이고, 그 패들도 손발을 다시 맞출텐데."
"잘하셨소. 형님, 그러고 동생."
"장씨도 야심한 밤에 가끔 불을 환화게 켜놓고 있는것을 보면 꾀 적적한가 보우.허허허"
성만호가 능구렁이 성식을 보며 양볼이 튀어 나오도록 웃어제킨다.
"아니 형님 그게 뭔 소리요. 난 당췌 초저녁 잠이 깊어 모르고 있던 얘기예요."
능청이다.
장씨는 자꾸 엉덩이를 더듬는 성만호의 손을 뿌리쳐도 우왁스런 힘에 못이기는척 잠자코 있는데, 딸년들이 잠을 곤히자고 있으니 망정이지 큰일날 일이다.
가끔 자가용을 굴리고 낚시하러오는 사장족들이 엉덩이를 더듬는 경우는 있으나 잠시잠깐뿐 장씨가 요령껏 피하면 되는데 오늘 성만호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왜 이리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는것일까.
남편 잃고 서러운 삶, 이제 남편이 살아있음을 평생 감추고 살아야돼는 장씨의 고뇌, 그래서 성만호의 따귀를 올려버리고 싶어도 지레 겁먹고 있는것이다.
"기왕에 왔으니 술한잔 받아야지. 고기도 집어 먹고. 장씨 아주머니 여기 돼지삼겹살 두서인분만 더 갔다주소."
기태아버지가 못마땅한듯 ,성만호씨에게 잔을 권하고 장씨를 방에서 잠시 내보낸다.
장씨가 부리나케 일어서서는 방문을 열고 나가는것을 보고는 시태아버지가 두꺼비 같은 거친 손으로 앞이마를 쓸어 넘기며 다시 말을 잊는다.
"만호 자네도 생각이 있으면 그렇게 짓굿게 장씨를 대하지 말아. 저 방의 아이들이 다 큰 처녀들 아닌가. 성수가 죽은뒤로 이렇게 성실하게 집안을 꾸려나가고 별로 이렀다할 소문도 없이 잘살고 있는 장씨가 만호, 자네의 짓굿은 손버릇에 얼마나 속이 미어지겠는가. 나도 계집은 벌겋게 밝혀. 그렇지만 때와 장소는 분간할줄아네. 읍내에 나가면 술집 마담치고 내 이름 석자 모르는 계집있던가. 그래도 조성수, 그 애 가난한 부모 밑에서 고생스럽게 컷어 .전문대학까지 장학금으로 졸업했고. 아깝지, 정말 아까운 인물이 어느 한순간에 정호의 꽴에 빠졌는지 못믿겠어. 나는 아직도 마을 남정내들이 다하는 놀음, 아마 성수, 자기만 빠지니까. 놀때도 자연히 마을친구들과도 거리가 생기고 하니 한번 맞이나 보자. 놀음이 어떻길래 마을 남정내들이 죽고 못사나 그런 생각으로 정호를 따라 나섰을거야. 나도 놀음에는 피가 마르고 엉덩이가 진무르드록 놀음방에 앉아서 집문서껀 잡혀봤었어도 ,그게 도데체 끊을 수 가 없단말이야. 만호 자네나 성식이도 애매한 친구들 끌어들이지 말고, 자네들이나 놀음방에서 살던가 살림을 차리던가 해."
"형님 말씀이 공자님 말씀이요 .제 이의 조성수는 만들지 말아야지요."
"그렇고 말고. 허허허 .이제 뭔가 통하는구만. 자 잔들 비우고 고기들 많이 먹게. 오늘은 내가 사는것이니까. 허허허."
시태아버지가 그래도 마을의 유지인지라 ,가끔 이렇게 바른말을 하고, 마을의 대소사도 죽은 김노인과 의논하며, 마을을 위하여 돈 써야할때 김노인과 같이 가장많이 지갑을 터는지라 성만호나 성식이가 아니꼬운 생각이 들어도 감히 대놓고 따지려 들지 못한다.
장씨가 방문을 열고 돼지삼겹살이 든 접시를 들어온다. 손이 붉으니 얼어 있다. 밖에 나가서 설움에 눈물이나 뒷간으로가 말갛게 눈두덩이를 씻고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환환 낮이다.
"어서 이리 놓고, 여기 아랫목에 손좀 녹이소 .바깥이 그렇게 춥소."
"춥기는 형님, 오늘 밤은 초봄처럼 선선하니 견딜만하오."
"그래도 손이 붉으니 몹시 추어뵈네."
"아니예요. 고추장으로 맞있게 버무렸으니 어서 거기 타들어가는 놈들 잡수세요."
"형님 ,나오기전에는 돼지갈비를 굽더니, 내가 오니 왜 돼지삼겹살로 메뉴가 바뀌었소. 이것 사람 차별하시는거요. 나 그냥 가겠소."
성만호가 못마땅한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서려다 ,다시 엉덩이를 내리고 뭉그적 거린다.
"아, 자네, 돼지갈비도 이렇게 남았잖아. 여기 접시보라고,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고, 그리고 자네 읍내 나가선 돼지삼겹살만 시켜 먹지 않나.난 그래도 자네 입맞을 생각해설라머니."
"형님,그러지마오. 내가 돈이나 많으면야 돼지갈비아니라,소갈비는 못먹겠소."
"어허,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아니했지. 장씨 그러면 이것은 물르고 ,돼지 갈비로 가져오소."
"아니요,장씨 수고스러울테니 그냥 먹읍시다."
성만호가 그나마 자존심을 굽히는지 장씨의 손에서 젓가락을 치우게 하고는 제 손으로 돼지삼겹살을 불판에 한장 한장 넓게 펴서 올려 놓는다.
"그런데 형님 이왕지사 말이난김에 장씨, 과부신세 이제 고만 스톱시킬 의향은 없소."
성만호가 너구리답게 능청이다.
성식이 잠자코 있으려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든다.
"만호형님,이제 장씨 아주머니 그만 놀리세요. 이러다 고기점도 못먹고 이 방에서 쫗겨나겠소."
이 마을의 짓굿은 남정내들의 술책들이라 귀가 아프게 듣고, 또 심하게 더듬거리는 손들에 이골이난 장씨라 오늘밤 술과 고기나 잔뜩 팔고서 본전이나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자들이란 다들 너구리에 능구렁이 심뽀들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웬간한 말씀들엔 이제 중독이 되었소. 자 내 술 한잔씩 받으시오. 고기점도 어서 드시고. 우리집 냉장고가 텅텅 비도록 오늘밤 ,취하여나 봅시다. 모처럼 시태아버지도 오셨고, 성식이도 술이 몹시 고픈 모양이니 술잔 쭉 비우고, 성씨도 어서 쭉 들이키고 내 잔도 채워주세요."
"아주머니 여기 얼마요."
바깥 평상위에 낚시꾼들이 얼큰하니 취하여, 장씨를 찾는다.
"예 나가요. 이 손 좀 치워요. 자주 이럼 성씨 마누라 귀에 들어가요."
장씨는 성만호의 손바닥이 귀찮은듯 짜증스럽게 뿌리치고 얼른 방문을 열고 나간다.
"많이 잡수시었소."
"예 ,매운탕 끊이는 솜씨도 대단하고 돼지고기도 맞이 좋읍디다. 아주머니 덕분에 배부르게 먹었어요."
"계산이 얼마나 나왔소."
세 낚시꾼중에 키가 휀칠하게 크고 준수하게 생긴 사내가 얼굴이 시뻘것게 익어서 숨가빠한다.
벌써 댓시간을 장씨내 매운탕집와서 앉았으니,계산도 계산이려니와 먹어치운 술병이며, 공기밥이며 쏘가리 매운탕이며 돼지갈비접시가 수북하니 많이도 쌓였다.
-이런 손님들만 오면 금방 부자가 돼겠다.-
장씨는 입으로 중얼대며 ,술병과 접시의 숫자를 세고는
"모두 육만원 인데요."
"그래요. 맞과 양에 비하면 적게 나왔읍니다. 우리같이 뜨내기 손님한테는 많이 불러도 좋은데, 참 아주머니 심성도 곱습니다. 하하하."
키 큰 낚시꾼이 지갑을 벌리며 웃자 두 낚시꾼도 따라서 웃는다.
"맞있게 드셨으면 제게는 그 이상 기쁜게 없지요. 이제 또 낚시를 할것인가요."
"아니지요.우리 셋이서 잉어 월척을 했으니 가봐야지요. 가게를 오래 비워두면 안돼니까요."
"서울에서 장사를 하시나요."
"예,저는 서대문에서 전자대리점을 하고, 여기 키가 작달만한 친구는 체육사를 하고, 저 친구는 동평화시장에서 원단장사를 하고 있지요."
"어머 사업도 크게 하시네요."
"크게 하지요. 짬나는대로 이렇게 전국의 낚시터를 찾아 다니며 여가를 보내는 정도는 되니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예, 살펴서들 가세요."
장씨는 싸립대문으로 나가는 세낚시꾼들을 보면서 참 젊잖다는 생각을 한다.
평상에 난로를 끄고, 빈상에 술잔과 빈술병이며 빈접시를 올리고는 ,마른걸래로 쓱쓱 평상을 훔치는데, 또 성만호가 어느새 나왔는지 장씨의 등뒤에 서서 나즈막히 속삭인다.
"장씨 아주머니, 독수공방 십오년짼대, 이제 성수는 머리속에서 없어지지 않았소. 이 긴긴 밤 적적하니 어떻하게 지내요.부끄러워 말고 용기를 내어 생각나면 나를 부르오. 내 잠자리는 끝내주는 사람이니까."
"괜한 말씀 하시지 말고. 오줌보 터지겠소. 어서 뒷간에나 가보시오. 그러다가 성씨 마누라가 가위질할까봐 겁나네. 오죽 성깔이 사나워서 얌전하다가도 불같이 달겨드는 마누라 아니요. 나도 몸이 사려지네."
장씨는 과장되긴 했으나 능글맞은 성만호의 말에 소름이 오싹 끼쳐 되는대로 줏어 내뱉았다.
술장사 십오년에 이런저런 남자들의 끈적거리는 농담아닌 농담을 들어왔는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성만호를 나무란다.
"어험,"
성만호는 헛기침을 하고는 정말 오줌보가 터지겠는지 뒷간으로 부리나케 걸어간다.
-이제 큰 일 났네. 성씨가 자꾸 저러면, 나중에라도 어쩌란 말이야. 애들 서울 이모내로 보내고 나면 이 외딴집에서 성씨 무서워 어떻게 살까.-
장씨는 몇년전부터 계획 세워온 두딸들의 서울 유학을 내년에는 반드시 이룩하겠다고, 벼르고 별른 끝에 ,동생 미숙이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했더니 오히려 너무 늦게 보낸다고 타박을 들었다.
술집 환경도 좋지 않고, 다 자란 딸들을 계속 집에 두기가 불안하고, 큰 딸 동희가 학력고사시험을 잘보았다고, 서울에 있는 대학은 무던히 입학할 수 있겠노라 자랑을 늘어 놓기에, 늦었지만 서울에 사는 동생 미숙이에게 한달에 딸들의 밥값이며 부대비용을 후하게 쳐주기로하고 두딸들을 보내기로 엇그제 약속이 됐다.
그런한편, 일이 이렇게 잘되가 또한 다행스러운 일은 남편 조성수가 저수지에서 십오년만에 살아나 나타났다는것을 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비밀스런 바램이 있기도 하다.
그래야만 남편이 좀더 과감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것이라는 믿음이 장씨의 소원이자 기대이기도 하다.
그 긴긴 세월 저수지 물속에서 썩지 않고, 더구나 혼백도 온전히 떠나지 않고서 잠을 잤을까. 또 어떻게 십오년만에 깨어 났을까. 그리고 목소리 또한 십오년전 젊은 시절을 그대로 간직한 굵으면서도 톤이 높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신비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귀신이라 무섭고 두려웠으나 이제는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살아난 남편을 확인하고 싶은 맘속 준비가 되어있다.
빈술병을 쪽마루옆에 빈박스에 담고는 빈접시와 술잔을 부엌의 고무다라에 쏟아넣은 장씨는 안방의 기척에 잠시 귀기울이며 한숨을 돌리고 쭈그려 않아 솔담배를 피운다.
몇일전부터 부엌의 찬장 깊숙히 숨겨놓고 한가치씩 피우기 시작한것이 오늘은 두가치나 된다.
정말 마음이 불안하여, 참을 수 가 없었던 지난 한달의 시간이다.
안방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성만호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세사람이 함께 웃는 웃음소리도 난다.
그렇게 십이월의 밤은 깊도록 취하고, 손님이 다나가고 없어진 허전함에 또 한차례 적적한 기분이 드는데.
장씨가 이렇듯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며 십오년의 세월을 견뎌온 이유는 남편 조성수가 없는 독수공방에 드센 남자들이 그래도 무료함과 적적한 기분을 달래주고, 딸들이 남의 집 딸들보다 예쁘게 성장하는 모습에서 살아가는데 보람을 찾았다고 말해야 될것이다.
창가에 감나무가 휘영청 밝은 달을 그 큰 가지로 껴않고 졸고 있다.
저 큰 고목의 음산함과 그림자가 창가에 가지를 틀면 어떤땐 겁나게 무서워 베어내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오늘 밤은 운치 있는게 달과 감나무가 네모낳게 뚫린 창문과 어울려 동양화를 보는듯 장씨는 기분이 좋다.
동희가 아침에 읍내로 나가 학생잡지의 입학사정표를 사들고 와서는 자신의 점수와 맞쳐본다, 동생 명희에게 자랑스레 중위권 대학은 넉넉히 붙고도 남고, 이왕이면 상위권 대학에 운을 걸어볼까 의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장씨도 어였한 대학생의 어머니가 된것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 마을에서 아직까지 대학에 간 총각들과 처녀들은 없는 마당에 동희가 떡하니 대학에 붙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장씨는 그래도 마음 한켠에 아직은 남들에게 자랑을 삼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홍씨가 들러서, 동희의 점수를 물어봐도 손님들이 또 동희의 점수를 물어봐도 괜잖게는 나왔다는 한마디로 대신하고는 입을 다문느지라 동희가 자기 자랑 안해준다고 뿌등하니 골이 나있다가 내일 찍어둔 대학교 캠퍼스를 구경하고, 이모내도 들러 앞으로 사년간 살 방도 구경하고 겸사겸사 동생 명희와 서울로 올라간다고 그래도 한껏 부풀어서 저녁내내 우쭐하더니, 초저녁부터 내리 자는게 그동한 정신적인 피로가 아직도 안풀렸는가 보다.
장씨는 몸을 뒤척이며, 억지로라도 잠들려고 머리속에 생각들을 먼저 잠재운다.
[9.서울로 떠나는 박두산과 그의 가족들]
두산이 내외가 아침부터 세간을 내놓고, 부산을 치른다.
그의 아들은 막대사탕을 두개씩이나 입에 넣고선, 좋아라 빨고 있다.
혜수씨가 홍씨내 가게에서 두부와 북어채를 한봉지 사들고 너털대며 골목을 들어서다 이 장면을 보았다.
"아니 ,두산씨. 어연일로 세간은 다 내놓고 있어요. 이것은 뭔 보따리요."
혜수씨가 이불보따리를 손으로 툭툭치며 묻는다.
"혜수누님, 우리가족 서울로 이사가요.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아니 이사를 간다니. 소문도 없이 별안간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요. 그리고 이사를 가더라도 따뜻한 봄철에 이사를 가야지 ,오늘아침 대게 쌀쌀하니 손시럽지 않아요. 정말 성질도 급하네."
"장갑을 겹으로 끼고 있어서 손 시리운것은 모르겠구요. 쇠뿔도 당긴김에 뽑으랐다고. 이왕지사 결심한것 ,빨리 이사가서 자리부터 턱하니 잡아야지요. 저 김노인내서 밀린 세경도 받고, 그동안 제 마누라가 나몰래 돈도 많이 모아났더군요. 글쎄, 제 마누라의 소원이 서울에서 자그만 슈퍼를 갔는것이 평생 소원이었었지요. 어렵게 살다가 마누라 소원성취해주니 나도 마음이 엄청 기쁘군요."
"이집은 누가 산다는 사람이라도 있었소. 내가 보기엔 거저나 주어야 누가 살러들어올까. 도무지 이 냄새나고 좁은 헛간같은 집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대체 얼마에 파셨수."
"네, 읍내에 복덕방 영감이 사주었어요. 땅값이나 받았지요. 앞으로 반듯하니 양옥집을 지어서 낚시도 할겸 별장으로 쓰겠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받았는데, 이사 간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집을 그래도 팔았으니 다행이요. 수단이 좋으셔요."
"헤헤."
두산이 칭찬의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 헤벌쭉 웃는다.
"그럼, 용달차는 불러 놓고 세간은 내 놓는거요."
"그럼은요. 닷새전부터 읍내로 나가서 이삿짐센터를 물색하고선, 오늘 오전에 오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틀림없이 오전에 오겠다는 운전수의 확답을 듣고서 이렇게 짐을 내놓고 있는것이죠."
"좋기는 좋겠어. 동생."
"좋다마다요. 이 구석전 촌구석에서 살아봤자 가난한 신세 면하지 못하고, 우리 아들 재석이 대학도 못모낼것이 뻔한데 정말로 오늘 기분이 삼삼하니 좋으네요."
"동생,구구단은 다외어갔고 가는거야 .난 불안해서 당췌."
"그깐 구구단 인젠 다외우고 쓸줄도 알아요. 몇달동안 밤을 패가며 죽어라 외우고 우리아들 다쓴 공책이 다 닳도록 쓰고 또 쓰고 했더니 이제는 술술 나오는데요."
"그럼 서울 어디로 가는데. 집은 사났소. 두산씨."
"서울 구로동으로 아시가는데요. 집은 내 집이 아니고 가게 딸린 방두개짜리 전세방이구요. 한 오년만 고생해서 버는대로 저축을 하면은 고만한 집은 살수있다고 복덕방에서 그러데요. 내가 그 집을 오년안에 내집으로 만들 각오예요."
"그 집주인이 팔기는 한데."
.......
"그렇구만요. 어쩌지. 난 그 집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쯧쯧, 어쩔까.내가 뭔가 도와주기는 도와주어야겠는데, 우리 얘 아버지 아침밥을 차려주어야겠고."
"아니예요.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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