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서 나온 남자[96-100]
- 작성일 201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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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안하다고 하나 ,이틀사이에 그 긴장된 도주의 순간 순간들이 얼마나 혜수씨를 피로하게 했는지 ,모텔 4014호실 객실의 창에 햇살이 들어오고 ,옆방에서 밤새 신경쓰이는 정사를 벌리던 젊은 남녀가 요란하게 복도를 뛰어 내려가고, 또한 모텔의 조바가 몇번이나 객실문을 노크하다가 슬그머니 열고서, 엿보고 가도 피곤에 쩔은 얼굴로 곤히 잠만 자는데, 이번엔 전화벨이 요란하게 혜수씨의 귀를 잡아당긴다.
몇번에 걸친 전화벨 소리에 겨우 눈을 뜬 혜수씨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문의 햇살이 너무 밝다는것을 확인하고는 ,그제서야 옆이 허전함을 느끼고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혜수씨는 귓바퀴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듣고는, 설마 일호가 도주할것 같다는 생각은 못하고, 아니 그토록 열불나게 서로 사랑을 했으니까, 남편, 자식들도 버리고, 일호를 따라 나섰으니까, 화장실에서 일이나 보고 있겠다.
뿌르틍한 어께가 혜수씨를 다시 침대에 벌렁 두러 눞게 한다.
다시 전화벨이 울려서야 혜수씨는 반갑고 두려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일호야, 지금 어디야, 나 불안해서 한시도 혼자 못있겠어. 빨리 들어와."
"여보세요.여기 일층 현관의 카운터인데요, 오늘 열두시까지만 계실 수 있거든요. 그 이후로는 다시 하룻치 요금을 계산하여 주시고 묶으셔야 돼요.."
"탁."
속사포처럼 모텔의 규정을 말하고 전화기를 놓는 카운터의 몸집이 작은 아가씨는 옆에 조바 아줌마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세상에 유부녀가 남편 몰래 바람 피우네. 지금쯤 그 여자 젊은 애인 멀리 멀리 ,아주 멀리까지 도망쳤을텐데, 순진하긴 그 아줌마."
"애인은 무슨 그럴때는 정부라고 하는거야. 아니지 제비라고 해야돼. 미스 박."
"그나저나 아줌마 ,또 시끄럽게 생겼네. 이 여자 내려 올때가 됐는데, 불쌍해서 어떻해."
"남편 가정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소란을 피워봐야 얼마나 피울라고. 미스 박은 사실대로 말만 해주면 돼. 우리가 뭔 잘못을 했다고. 그런 년보다야 우리는 순결한 백조지."
조마가 막 웃으려고 하는데, 계단이 쿵쾅 쿵쾅 울려온다.
"온다. 아줌마."
"쉿."
미처 잠바도 못입고 손에 쥐고선 숨가쁘게 계단을 뛰어온 혜수씨는 카운터에 앉아서 손톱소제하는 여유를 보이는 미스박과 그 앞에서 비질을 하는 조바 아줌마를 번갈아 보면서, 일말의 불안으로 핏기가 가시고 어쩔 줄 모른다.
"순 아마츄어 내. 제비에게 물려도 혼까지 배았겼었구나. 얼굴하난 반반해서 난 꽃뱀인 줄 알았는데. 뒈려 반대네."
"아가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여기서 같이 묶었던 남자 손님 어디간지 알아. 4014호 실에 같이 묶었던 남자말이야."
"새벽에요. 그러니까, 두시 반경에 오토바이 점검한다고 나갔는데 여태 안왔어요."
"이 아가씨가 누굴 놀리는거야. 들어오고 안들어 오고는 아가씨가 알야야되는 의무 아닌가."
"아줌마, 분명히 오토바이 점검하고 온댔으니까. 열두시까지 그 아저씨 못찾으면 객실 비워주세요. 바람난 주제에 어디다 큰 소리야, 얼굴이 반반하다 했는데, 휀한데서 보니 순 시골태생이잖아."
혜수씨는 모든것이 끝장난 상태라는것을 생각하고는 ,그 자리에서 기우뚱한다.
막 쓰러지려는것을 조마 아줌마가 간신히 부축하고는 카운터의 미스박을 심하게 꾸짓는다.
"미스 박, 어디서 그따위 말을 함부로 지껄여. 같은 여자 입장에서 동정은 못해주고."
그리고는 혜수씨를 부축하여 카운터 맞은편 등걸이 의자에 앉힌다.
"여봐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녀석은 이제 나타나긴 그른것 같소. 그러니 가정으로 돌아가서 남편되시는 양반에겐 친정에 가있었다고 하고, 그것도 불안하거든 친구, 친한 친구가 있겠지요. 친구내 집에서 하룻밤 자고 왔다고 거짓말이라도 남편되시는 분이 믿게끔 연극을 잘하란 말이요 .나도 이런데서 이십년을 넘게 일해 보아서 이럴때 해결방법이란 그 길밖에 없어요. 처음엔 우리도 그냥 즐기러 오는 손님들인줄 알았죠. 아주머니가 이렇게 달려오고서야 일이 났다는것을 알아차렸다니까. 세상에 한달엔 한번꼴로 이런 일이 터지니 ,어디 여자가 마음 놓고 ,놀기나 할 세상이요. 그래도 이 모텔의 구십구퍼센트 손님들은 다 알아서 즐길것 다 즐기고 ,요령껏 빠져 나가는 분들이니까. 여기 모텔이 러브호텔인것은 아시죠. 들어올때 휘황하게 네온 간판에 그렇게 써있으니까. 설마 모르고 투숙했다고는 말하지 않겠죠."
혜수씨는 이제 모든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는것을 조바아줌마나 카운터의 아가씨 말을 듣고서 인정하고, 체념의 하소연을 한다.
"내가 눈에 헛것이 쒸어 갔고, 이렇게 쫄닥 망해도, 남편과 아이들까지 거리에 나앉도록 만들었으니, 세상에 이 일을 어떻게 해. 그 놈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날 속였을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 간이라도 빼내서 줄것 같더니, 멀리 도망가서 한 세상 오순도순 믿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자 약속했건만. 내가 천벌을 받을 년이야. 세상에 배반이란걸 당하고 보니, 등에 비수가 꼿힌듯이 아프고 쓰리요. 이제 나는 어떻하라고. 집으로 돌아갈 동전 한닢 남겨 놓지 않고 싹 쓸어 갔단 말이야."
[25.혜수씨를 찾아나선 성씨형제]
"이렇게 찾아다녀도 년놈들은 어디로 잠적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어떻하냔 말이요. 형님."
성씨 형제는 고속버스터미널로 되돌아왔다. 혜수씨의 최근 사진인 작년 가을 속리산 관광 갔을때의 사진과 일호의 효성 스즈끼 오토바이에 타고 폼나게 찍은 사진을 들고 다니며 ,거리의 음식점, 다방, 여관, 모텔, 신문가판대, 구두닦이, 노점상, 심지어 근처 파출소까지 보이는곳이라면 어느곳 가리지 않고 들어가 수소문 했으나 연 이틀째 헛탕이다.
날씨는 춥고, 심신은 지치고 피곤하여도, 마냥 집에서 경찰이 찾아주기만을 기다릴수도 없는일, 이틀동안 이 터미널을 기점으로하여 이태원, 용산, 노량진, 영등포, 신사동, 영동을 이잡듯이 했으나 소득이라곤 풀이 죽어 돌아서는 두 형제의 등뒤에서 쑤군대는 소리들, 비웃음을 산들 대수랴. 그렇지만 한편 마누라 간수 못한 못난 놈이라는 생각도 들어 인생이 허무하고 살맞이 떨어져 점점 어께가 쳐쳐가는 성준호와, 형 성만호는 아직은 희망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남편인 성준호는 안중에 없는 혜수씨라도 토끼같은 어린 두 아들이 목이 메어 엄마를 찾고 있을것을 반드시 후회하고 집으로 귀가하지 않을까하는 그 실날같은 바램과 소망이 가슴 한켠에들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는것이다.
"오늘은 이제 다리도 움직일 수 없게 지쳐있고 해도 이제 뉘엿하니 중국집에가서 짬봉이나 먹고, 일찍 여관에 가서 잠이나 푹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영동쪽으로 한번 나가보세."
"그래요. 형님. 아무래도 오늘은 안돼겠소 .참말로 년놈들이 이 서울에 있을까 모르겠네."
"암 있고 말고, 그 년놈들은 가슴에 허영이 들어찬거야. 서울 아니면 그 허영을 만족 시켜줄 유흥가와 백화점들이 어느 도시에 있을까. 동생, 이 서울이야 말로 허풍이든 시골 촌놈들이 집팔고 논팔고 무턱대고 올라와서는 한 이삼년 살다가 쫄딱 망해서 거리에 나않아 오도가도 못하고, 거렁뱅이가 되지 않으면 ,창피를 무릎쓰고 고향으로들 다시 내려와서 또 농사나 붙여 먹고 살아가게 만드는곳이니까. 암튼 어디 허름한 중국집이나 찾아 보자고."
"형님, 나는 포기할까해요. 이미 업질러져도 주어담을 쪽박도 없는데, 더 고생해가면서 찾아 헤메면 뭘하겠소. 난 그년 잊고 살아가겠소. 보란듯이 새장가도 들고 ,그렇게 그년을 잊고, 아니 도망간 년에게 보란듯이 잘살테니까 형님도 제 걱정 하지마시고 이제 맘 놓으시요."
성만호는 동생의 이렇게 당찬대가 있었나 새삼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쉽게 포기하는 성격에 또 실망스러운 맘을 어쩌지 못한다.
"바람 한번 시원하게 부는구나. 이 바람이 뉘 가슴에 들어와선 젊은 놈팽이에게 혼까지 빼앗기게 하고, 뉘 가슴에 들어와선 퍼런 멍자국을 낸다냐. 참말로 인생이란게 이렇게 바람앞에 다 흔들리는 삶이로구나."
[26.혜수씨의 귀가 길]
밤이 깊도록 혜수씨는 상저리로 향하여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영동의 모텔 조바에게서 만원 한장 구걸받아 택시를 타고 의정부 친정으로 향하다 갑자기 마음이 바꾸어 택시를 세워 내리고는 ,상저리로 돌아갈 생각을 했던 것이다.
친정이라야 양친 모두 이승에는 없는데다 오빠라고 한분있는것, 제 가솔 먹여 살리기도 벅차게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것이 마음에 자꾸 걸려 도저히 친정에는 가면 안된다는, 아니 못가는 형편이 된 처지이니, 갈 곳이 지금 상저리밖에 더 있으랴.
다시 영동으로 버스를 타고 와서는 터미널 앞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바로 지금 성씨 형제들이 푸념을 하고 있는곳 시외버스 정거장에서 한 시간전에 혜수씨가 상저리를 가기위해 읍내로 가는 버스에 탔던것이다.
혜수씨는 읍내에 대낮부터 얼굴을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까 차마 걸어다니지 못하고, 더구나 상저리가는 버스는 탈 생각은 도저히 못하고, 읍내에 들어가는 초입인 군부대 앞에서 내려 젊은 군인들이 우글대는 다방에서 기다리다 밤이 되자 나와서 읍내로 걸어가는것이다.
춥고 으스스하게 떨리지만 죄지은 년이 춥다고 불평하고 발이 아프다고 뉘를 잡고 하소연하겠는가.
오히려 이런 쓴 고생이라도 하면서 집으로 찾아가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가는 길 도중에 트럭이 몇대 지나가고 승용차며 버스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차창을 열고 혜수씨의 초라한 귀가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읍내로 들어와서는 경찰과 지서가 무서워 또 멀리 우회로를 찾아서 한번도 걸어본적이 없는 아스팔트 길에서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고, 달이 밝은 하늘을 바라보며 터벅 주저 않았다.
하루종일 굶고, 이럻게 몇십리길을 걸었더니 더는 걸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것이다.
-하늘이 천벌을 내리실려고 하는거야. 이렇게 마을에 들어가서 용서를 받으면 무었하나. 차라리 여기서 세상을 그만 하직하고,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더러운 아내, 엄마라는 오명이라도 조금 덜어내주어야 할텐데. 그렇게 하는것이 백번 천번 용서를 받는것일거야.-
아스팔트위의 가로수들이 길게 늘어서서 길은 어둡고 마음을 이제 겁잡을 수 없이 죽음에의 생각으로 가득차 결심이 굳어질수록 다시 차근차근 그동안 산 세월을 뒤돌아보게 하는데, 처녀시절부터 지금껏 산다는것에 보람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었을까, 너무 찟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세살 위의 오빠의 손을 잡고 이렇게 밤중에 길위에 나와 돈벌러 막일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생각이 제일 먼저 머리속에 스치고 지나간다.
그 때 아버지는 병중에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아버지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위해 서울로 매일 새벽에 나가 이르면 저녁에야 ,늦으면 가끔 하루 걸러 이렇게 또 밤늦은 시간에나 저녁에 집으로 귀가하여, 오빠가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리고, 그리고 아버지 약수발을 드리는것을 지켜 보면서 ,앙탈스럽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병중의 아버지에게 때쓰던 철부지 다섯살 혜수는, 엄마가 멀리서 힘겹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오빠보다 앞서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겼다.
그러면 엄마는 손에 든 보따리에서 박하사탕이랑 카랴멜, 껌등을 얼른 꺼내서 혜수의 작은 손에 쥐어주고," 아껴서 먹어라, 그리고 추운데 왜들 이렇게 나오긴 나와. "그러한 엄마의 얼굴이 어두운 밤인데도 힘에 겨워한다는것을 두 남매는 느낄 수 있었지만 ,오빠 문수나 동생 혜수나 이렇게 엄마가 사온 군것질감에 목이 메어 혹시 엄마가 일을 쉬기라도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더 커 "엄마 ,내일도 이렇게 맞있는것 사올거지, 약속해 엄마,"그리고 엄마의 약지손가락을 잡아 펴서는 자기의 약지 손가락으로 꽉 걸고는 마구 흔들었던 기억이 혜수씨를 설움에 복받치게 했다.
"크 크 큭...."
혜수씨는 그자리에 두팔로 무릎을 감싸않고, 쭈그러 앉아 한참을 설게 운다.
간혹 지나가는 트럭들이 있어 혜수씨 앞에서 속력을 늦추다 달려갈뿐 이 낮선 길위에서 혜수씨가 누군지 알아보려는 사람들조차 없다.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고 몰인정한 사회이다.
그래도 만식이 정식이나 먼 발치에서 보고나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고, 또 평생에 자식들 마음에 그늘이 될 자신의 불륜이 너무 죄스럽단 생각도 죽을 결심을 되돌려볼 마음으로는 바꾸지 않는다.
그것이 또한 혜수씨의 강한 면모이기도 하다.
혜수씨가 한참을 그렇게 무릎을 두팔로 감싸고 쭈그려 않아 울고 있는데 타이탄 한대가 헤수씨 옆을 지나치다 끽하고 선다.
이내 발자국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주머니, 저 상저리 사는 만식이 어머니 아니세요. 어디 얼굴이나 들어 보시오. 나 박명호요. 바로 상저리 박이장."
혜수씨는 깜짝 놀라서 더욱 얼굴을 무릎사이에 파묻고는 죽은듯이 꼼짝 않는다.
"이거 왜이러세요. 만식이 어머니.'
박이장이 두손으로 혜수씨의 굳게 웅크린 손을 잡아 든다.
달빛에 혜수씨의 눈물 범벅이된 얼굴이 처량하게 드러나자 박이장에 깜짝 놀란다.
"만식이 어머니가 맞는구려. 이거 추운데 꽁꽁 얼었구려. 자자 길거리에서 이러지 말고 내 차에 어서 탑시다. 상저리로 가서 만식이 정식이도 만나고,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눈꼽아 아주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줄 아시요. 모두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요. 다들 가족같고 친척같은 이웃분들이니 이제가면 따뜻이 맞이하여 주리다. 그깟 일쯤 다 눈감아줄 준호니까. 준호 성격 아주머니가 더 잘알잖아요. 어서 제차에 타시구려. 이 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스러웠소."
박이장이 혜수씨를 간신히 일르켜 어께를 감싸 부축하고는 자신의 타이탄 트럭으로 걸어간다.
혜수씨의 흐트러진 머리칼이 달빛에 춤추는 버들가지같다는 생각을 해보는 박이장은 타이탄의 문을 열고는 혜수씨를 태운다.
"아흐흑.."
더욱 이 가련한 여자 혜수씨가 불쌍해 보여 박이장은 눈물을 글썽인다.
마음씨가 좋기로는 상저리에서 두번째라면 서러운 박이장이다.
그리고 또 약한 여자들에게는 더욱 마음씀이 후덕한 박이장이다.
타이탄을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박이장은 맘껏 혜수씨가 울도록 내버려 둔다.
울고 싶은때 이렇게 울어야 가슴에 맺힌 원망이 가슴에 맺힌 한이 다 풀리는것이란걸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는 박이장이다.
그리고 이럴때 다른생각 품지 않도록 여러가지 좋은 말도 자꾸 해주어야 마음이 풀어지고 현실적으로 돌아와 새 출발할 생각으로 돌아선다는것도 알고 있는 박이장이다.
혜수씨가 목놓아 울고 있는 동안에도 왼손으로는 핸들을 굳게 쥐고 오른손으론 혜수씨의 잔등을 토닥여 주는 박이장이다.
혜수씨를 이렇게 길거리에서 발견하여 차에 태우고 상저리로 가니 한마디로 더없이 기분이 좋기는한데 또한 앞으로 있을 준호와의 대립이나 갈등이랄지 아뭍튼 혜수씨가 두손을 모아 싹싹 빌어야 준호의 얼어붙은 마음이 풀릴지 말지 ,성격이 착하고 무뎌서 사람 성질은 참으로 좋아 어떠한 화도 삼일이면 언제였냔듯 풀리고 마는 준호는 준호지만 그렇다고 제 아내가 바람을, 그것도 마을의 새파란 건달 녀석 일호와 바람을 피운것에 얼마나 치욕스러울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박이장은 진심으로 혜수씨를 돕고 싶다.
"아주머니 내가 생각해도 일호 그 놈이 나쁜놈이지 아, 아주머니야 무슨 죄가 있소. 새파란 놈이 얼마나 사기근성이 크고 ,입은 또 얼마나 간사하고 사람을 속이고 놀려 먹는데 도가 튼 놈이요. 경찰서에서 혼쭐이 나고부터 한 몇년 성실해 뵌다 했더니 행실이 더 나빠졌구려. 나도 놈에게 몇번 속았지. 다 그런놈이란것 알고도 속았으니 어디 나만 그러했었소 .시태아버지도 당했었다니까. 사람 좋고 마음좋은 우리마을 사람들만 골라서 보증서달라 돈 좀 차용해 달라 살살 애간장 녹이는 말만 어떻게 그리 골라서 해대는지 그 놈에게 안 넘어가곤 못백였지요. 우리 상저리에서도 이 일로 인해 그 놈이면 다 혀를 내두르고 있소."
"박이장님 나 이제 어떻하면 좋아요. 아무리 얼굴낮짝이 철판 같이 두툼하더로소니 이 꼴로 어떻게 남편에게 용서를 받겠다고 상저리로 들어갈까. 애들도 못된 엄마 차라리 없어져야 장래가 부끄럽지 않게 올바르게 자라지요. 내가 그 녀석들 휀한 앞날을 부러트려 놓는 짓거리를 했으니, 차라리 확 목 매달아 죽어 버렸으면 좋겠소. 원이요 .박이장님 나 여기서 내려주오. 저 포플라 나무에 목이라도 매야 내 죄 조금이라도 씻겠소. 어서 차 좀 세워 주시구려."
박이장은 잠바 주머니에서 88담배갑을 꺼내서 한가치 불을 붙여 혜수씨에게 건넨다.
"피어요. 마음이 가라않을거요."
"고마워요. 박이장님."
혜수씨가 박이장이 건네는 담배를 받아 숨 넘어가듯이 깊숙이 빨아들이고는 휴하고 크게 내쉰다.
"그깟일은 다 잊어버려요. 세상살아가는데 크고 작은 허물 없는 사람들이 어디있겠소. 다만 밣혀지지가 않아서 모르는것뿐이잖소."
박이장은 문득 장씨와의 하룻밤 연정이 생각난다.
지금 그 얘기를 해준다면, 혜수씨가 살 의욕과 용기가 생기리라.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을 남자들이 농담삼아 뉘 예편네 거웃이 없었다라. 뉘 예편네는 젓통에 콩알만한 검은 점이 세개씩 있었더라. 그렇게 자기들의 무용인양 마을 사랑방에 않아 그럴듯한 농지꺼리들을 할때면, 과연 이 말들이 농담일까.
박이장 자신의 한때의 충동이 죄스럽기도 하여 은근슬쩍 딴 화제로 옮기는데, 꼭 그 참에 주인공 남편들이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와 여지꺼니 히히낙낙하던 남자들이 찬물을 맞은듯이 조용해지고, 그렇다면 이 남자들이 사실은 사실을 꺼내고 있었겠다. 박이장 자신도 입이 근질거려 참을수없었을때도 여러번 있었는데 ,용케 여지까지 참고 있었던것이다.
사내들이야 애들이 됐던 어른이 됏던 여자얘기라면 사죽을 못쓰고, 더구나 자신이 건드렸거나 어떻게 섬씽을 만들었다치면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습성이 있는지라. 여자는 결국 남자들과 비밀리에 연애질이나 통정을 하면 당연히 여자쪽이 모르고 피해를 당하는것이 이 불륜의 세계라고도 말할수있겠다.
박이장은 끄르륵 치오르는 신물을 되 삼켜며 다시 혜수씨의 왼손등을 쏙 잡아주고 주물러준다.
"아주머니,기운이 나요. 밥이라도 먹고 가십시다. 조 언덕만 넘으면 고등리니까. 이제 십여분이면 마을에 도착해요. 그안에 내가 맞있는 설렁탕이라도 사드릴테니 ,쉬었다 가십시다."
[27.자포자기]
비몽사몽 헤메이는지 성준호가 자꾸 헛소리를 해 성만호는 옆에 누워 거의 잠을 들지 못하고, 성준호가 깊이 잠들어 코를 드렁드렁 고는 새벽녁에야 잠들기 시작했는데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실잠을 자다가 그만 벌떡 일어서서 창문의 커튼을 걷었다.
창밖에 하늘이 시원하게 푸르니 , 손으로 잡고 싶다는 생각에 창문을 여니 바람이 또한 시원하니 찌뿌둥한 정신을 맑게 해주고 멀리 터미널 가로의 차들의 길게 늘어서서 가는것을 보며 ,상저리와는 다른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다는 생각으로 "나도 서울로 이사와 살았음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라, 집팔고 가지고 있는 논밭 팔아도 어디 두산이가 살고 있는..."엉뚱한 욕심이 동하는지라 마음뒷편에 다시 우수가 덮히고 쓸쓸해 한다.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다 벌써 오전 열한시다 .
-열 다섯시간을 퍼질러 잤구나. 난 잠도 드는둥 마는둥 했지만 동생은 얼마나 심고생이 컷으면 아직도 저렇게 곤하게 자고 있을까. 사람의 인생살이라는게 한치 앞도 예측할수없는 위험한 고비들이 수없이 많이 닦치는데, 이고비를 어떻게 넘겨줄래나. 동생. 나야 혈육이니까 당연히 이렇게 내일 접어두고 따라 나섰지만 그 상저리 인심도 야박하다. 번연히 놀고 먹는 양반들이 수태게 많은 상저리에서 한 놈도 돕겠다고 따라 나서는자가 없으니 이것이 사람사는 정이야. 개많도 못한 상저리 놈들. 내가 상저리를 위하여 발벗고 나서서 일꾼이 되겠다고 이장선거에 출마하려고 했는데, 이젠 내 열정을 다른데 쏟아뿌려야겠구나. 이장은 박명호 당신이나 계속하라고. 더러워서 나는 떠받들어 그자리에 앉히지 안는한 사양할것이다. 배도 출출하니 너무 잠만자도 오히려 머리만 아프고 않좋다.-
"동생 이제 일어나라고. 벌써 점심때가 됐어. 밥을 나가서 먹을텐가, 여기서 시켜 먹을텐가."
뭐여 ,벌써 때가 그렇게 됐소. 형님."
성준호가 부시시 눈을 뜨며 입을 쩍 벌리고 기지개를 켠다.
"일어나 앉으라고. 내가 볶은밥 시키고 있을께 먼저 세수나 시원하게 하라고."
성만호가 까만 구식전화기의 버튼을 누른다.
"아, 프론트요, 여기 이천이호실이데 가까운 중국집에 연락하여서 볶은밥 곱배기로 두그릇 배달시켜 주시요."
"형님 나, 내 예편네 찾는것 포기할래요. 밥먹고 나하고 상저리로 돌아가십시다. 더 찾아 헤메봤자 이미 애들에게까지 정떼고 달아난 년이 잡는다고 마음이 돌아서기나 할려고. 제 발로 돌아온다면 모를까. 나 그 년이 제발로 걸어 돌아와 두손이 닳도록 싹싹 빌고 눈물 콧물 한강많큼 흘려도 받아들일 생각 손톱의 때많큼도 없어요."
그러면서도 성준호의 눈동자가 축축하게 젓어든다.
-못난 놈, 결국에 그렇게 용서를 하겠다고. 설마 제수씨가 마음이 변하여 돌아나 올까 .나도 이렇게 마음이 여려졌다는것 처음으로 알았네. 나이가 드니 마음이 다 순해지는군. 이제 겨우 불혹의 나이인데. 순박한 살림살이가 행복스럽다못해 눈물 겹구나. 젠장. 그래도 ...내가 천하에 성만혼데 아직까지는 죽지 않아. 죽을 나도 아니고-.
형님 뭔 생각을 그리 하시요."
"아니야, 동생은 그 눈물이라도 이럴땐 참고 감추고 하라고.사내가 되어서 아무때나. 츳츳."
"미안해요. 형님. 나같은 못난 팔자도 없을거요. 그래도 그 예편네가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으니 머리가 좋고 성격이 영악하긴 하오."
"아이고, 동생아. 이 철없는 어른아. 그것이 무엇을 염두해두고서 하는말이냐. 동생은 더 이상 고생해가며 제수씨 찾을 생각은 말고 어서 점심이나 먹고 상저리로 돌아가게나."
"그럼, 형님은 또 볼일이 남아있는거요."
"내가 잠깐 들러볼곳이 한군데 있는데 나 거기가서 일보고 동생 뒤따라 상저리로 귀가 할터인즉 그리 알고.어서 세면장에 가서 세수나 깨끗히 하시리고, 참말로. 속이 타들어가네."
성준호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힘없이 들어가고 성만호는 바지주머니를 뒤적이다 옷걸이에 걸어둔 잠바 주머니에서 88담배를 꺼낸다.
라이터를 켜고 담배가치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물고는 길게 빨아들인다
머리가 찡하고 어지러워 오는것이, 이제껏 쌓인 고민이 다 불타없어지는듯한 기분이 든다.
[28.혜수씨를 위로하는 일심회 회원들]
혜수씨가 어린 두 아들, 만식이 정식이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자식들에게라도 차마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두 아들들이 밥먹는 모습을 보면서 연신 두 아들들의 머리만 쓰다듬고 있는데. 대문밖에서 여러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아이들도 신경이 쓰이는지 밥숟가락을 들고는 엄마 혜수씨의 눈치만 살펴보는데. 그 애처롭기가 혜수씨의 마음을 미어지게 한다.
"어서 밥이나 먹어. 신경 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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