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쥐어 잡을 법
- 작성일 201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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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죽었다. 항상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던 나의 친구가, 평소에는 웃음만 헤실거려 아픈 구석 하나 없을 줄 알았던 내 친구가 죽어버렸다. 실감이 나지 않아 볼을 몇번이나 꼬집어보아도 빨갛게 부어오르고 아플뿐 이것이 꿈이라던가, 환상이라는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의 장례식장은 아주 소소하게 차려졌다. 하루에 열댓명의 사람만 왔다갔다 할 뿐이였다. 소소한 만큼이나 장례식장은 또한 조촐했다. 나는 그 장례식장을 지키면서도 내가 왜 여기있나 하루에도 수십번은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친구의 영정사진에 고개를 다시 한 번 끄덕인다. 네가 죽어서, 내가 여기있구나. 그래 그런거지. 수긍하고, 그 다음 아파하며 우는것이 너의 죽음의 여파였다. 친구의 어머니는 몇일째 빈소를 지키며 한번도 울지 않은 날이 없으셨다. 첫째날은 원통하게 우셨고, 둘째날은 그보다 더 원통히 우셨고, 마지막날 친구네 어머니는 그 세상 어느 누구의 울음보다 원통하고 비통하게 우셨다. 그 옆을 지키고 있던 친구의 동생도 덩달아 울음을 터뜨려서 마지막 친구를 보내는 그 날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었다. 장례식장이 끝나고 모든것이 돌아오는듯 했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건 그때 뿐이였다. 그 누구도 지금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불쌍히도 친구는 자꾸만 잊혀져가는것 같았다. 그런 친구를 걱정하고 생각하는것은 오직 나뿐인듯했다. 지금 친구의 빈자리에는 하얀국화가 자리잡았고, 아무도 반애들은 친구에 대해서 일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너희들은 그래도 소속감을 가졌던 한 아이가 죽은것에 대해 이제 아무렇지도 않냐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 궁금했다. 사람을 머릿속에서 지우개처럼 슥삭 지워내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것이. 그러나 이런 나의 물음에 반 아이들은 하나같이 짜증을 표해냈다. 모두다 같은 표정이였다. 친구가 죽었을때도 같은 표정이였다. 같이 울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표정이였다. 같이 화를 냈다. 왜 화를 내는거지. 나는 눈 앞에서 막아서있는 투명한 현실의 벽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뚫고 나가려고만 했다. 내 앞에 친구의 죽음이라는것만 보고 있어서 다른것을 보지 못했다. 지금 나의 위치가,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그런걸 왜 물어보는데?”
“그야…, 궁금해서.”
“죽었으니까 잊혀지는건 당연하거야.”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은 반응이였다. 반장에게 물어도, 축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같은반 남자들에게도 물어도, 수다를 떨고있는 여자아이들에게 물어도 하나같이 다른 반응은 없었다. 왜 그걸 지금 묻느냐는 표정이였다. 나는 궁금했을뿐이다. 네가 죽었는데도, 너는 너무나 빨리 잊혀져 가는것 같아서, 죽고 싶다. 어떻게 죽으면 가장 쉽게 죽을까. 너는 알아? 죽는게 좋을 수도 있어. 아 죽고 싶다. 라고 웅얼거린것에 대해서 모두다 궁금해서 나는 물어봤을뿐인데 돌아오는것은 죽은 사람을 앉아서 그리워나 하는 바보천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몰랐던걸 수도 있다. 너는 죽었는데, 지금와서 이딴 미련을 갖는것이 아이들에게는 우스워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너는 죽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몸소 깨닫는듯 했다. 아직도 귓가에는 우스겟 소리로 죽고 싶다는 너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떨어지는건 못하겠어. 너무 무서우니까. 숨참는것도 그렇고, 물에 빠져 죽는건 내가 너무 불쌍해.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각나 파편이되어 내 머릿속을 뚫는듯 했다. 왜 죽으려고 했을까. 너는 왜 죽었을까.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죽은 너도 말이 없었다. 너는 없고 너를 닮은 국화꽃만 너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였다. 정말 그 뿐이다.
너는 정이 많았다. 그래서 정주는것을 좋아했고, 정을 받는것 또한 좋아했다. 그런 네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너는 항상 밝았고 쾌활했으며 특별히 우울한 일도 별로 없는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친구들도 다 그랬다. 너처럼 밝은 애는 처음본다고, 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너는 수긍하는듯 했다. 그러나 너는 죽었다. 도대체 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내 발걸음을 너의 집까지 오게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오게 된것이 너의 집이라 기분이 묘하기도 했고, 생소하기도 했다. 초인종을 눌러 답이 없으면 바로 뒤돌아 갈 터였다. 사실 없길 바랬다. 내가 너의 집에가서 또 한번 무너지고, 또 한번 현실의 벽을 느끼기엔 나는 어리고 너도 어리고, 우리는 어렸기 때문이다. 초인종을 두세번이나 눌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답이없었다. 너의 어머니가 없으신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내가 바란 일인데도 마음 한구석이 영 찝찝했다. 그리고 이런 찝찝한 마음을 대변해 어느샌가 비가 꽤나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죽은 날도 딱 이러했다. 발을 빨리 놀렸다. 네가 생각날 것 같았다.
네가 항상 죽고 싶다고 했을때 나는 그것이 장난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장난으로 목매달아 죽는게 가장 안아프게 죽는거래 라며 보태기도 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의 죽고 싶다는 그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여 장난으로 맞받아쳤다. 맞받아친 장난에 너는 좋아라했다. 정말 좋은 죽을 방법을 찾은듯한 얼굴이였다. 왜 그때는 너의 그 표정이 안보였는지 나는 질책하고 또 질책했다. 네가 죽고싶다고 했을때부터, 너의 얼굴에 어둠이 선연한 밤같은 그늘이 깔리기 시작했을때 부터 알아차려야 할 사실을 외면하고 외면해버려 이 사태까지 오게 한것 같았다. 우산이 없기때문에 발을 빨리 놀려봤자 다 젖을거라 생각한 나는 너의 아파트 단지 주변 놀이터에 들어섰다. 목적은 놀이터 안의 정자에 들어가 비를 피함이였지만 막상 다른 목표가 생기어 버려 나의 원목적은 취소가 되어버렸다. 거세게 투닥거리는 비를 맞으며 그네에 몸을 앉혔다. 그러자 옆에있던 네가 물었다.
‘죽고싶다. 비오는 날엔 더 죽고 싶다니깐.’
늘 그렇듯 너는 내게 물었다. 너를 안이상 내게선 더이상 장난의 답이 나오질 않았다. 왜 죽으려고 하니 라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뱉고 싶었지만, 너의 표정이 너무나 쓸쓸해보여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희뿌연 목소리가 공기를 메꾸었다. 가라앉은 쇳소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너는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내가 약하게, 하지만 강하게 물었다. 왜 죽을려고 해. 너. 내 물음에 너는 그저 웃기만했다. 예전처럼 목매달아 죽는게 좋다고 말했을때 처럼 평소의 너처럼 너는 웃고 말았다. 그런 너의 웃음에 장례식장에 가도 터지지 않던 울음이 이제야 터지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콧등이 시큰거렸고, 눈가가 따끔거렸다. 소맷단을 조용히 눈두덩이에 대었다. 거센 비에 맞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일정한 비의 리듬에 나의 눈물이 끼어들었다. 리듬이 깨졌다. 나의 뜻밖의 울음에 너는 놀란건지 아니면 예상하고 있던건지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상현아. 그렇게 부르면 응당 나와야 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너는 또 나를 한번 더 불렀다. 상현아, 너 내 친구맞지? 또 부르면 내가 대답을 안할것을 알았는지 이제는 문장을 덧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물기 어린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그럼. 너랑 나랑 친구지. 우리 반 애들이랑 다 친구잖아. 나중에 애들끼리 모여서 축구도 가기로 했잖아. 떨리지만 담담하게 최대한 잔잔하게 말하려고 무단히도 애를 썼다. 나의 말에 너는 희미하게나마 입꼬리를 올렸다. 상현아, 너는 살아. 그게 너의 마지막 말이였다. 그 뒤로는 너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내 그네 옆은 텅 비었다. 애초에 아무도 없었던거다. 내가 너를 만들었는지, 네가 나를 만들었는지 모를 환영에 갖혀 나는 그렇게 울고, 너는 그렇게 웃었던거다. 결국은 없었는데, 너도, 나도 우리가. 이제는 눈물을 뚝 그치고 그네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거세게 내 어깨를 내려치던 비가 느끼지 않아 고개를 올렸을 터였다. 보이는것은 초인종을 누르면 상심한 표정으로 나오셨을 너의 어머니셨다. 검은 우산으로 나를 막아주고 계셨다.
“상현이니? 비도 오는데 여기서 왜 다맞고 있어.”
“아… ….”
“다 젖었네. 안되겠다. 아줌마 집에 들렸다 가. 그대로 가면 감기 걸리니까.”
예상보다 너의 어머니는 꽤나 괜찮아 보이신듯 했다. 얼굴은 여전히 거대한 슬픔을 집어 삼키고 계셨지만 꾸역꾸역 잘 살아나가고 계신 것 같았다. 아주머니를 따라 너의 숨결이 느껴질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주머니는 장을 보신건지 한 손에 든 봉지를 부엌 테이블에 풀어 이것저것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감기걸리니 씻고 나오시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욕실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것은 칫솔이였다. 너의 집에 많이 와서 잤던 나였기에 항상 칫솔이3개 여야 하는 집에 4개가 있었다. 익숙한 칫솔을 집어들어 먼저 이를 닦았다. 이 똑바로 닦아. 제대로 안닦으면 입냄새 난다니까. 또 다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네가 거품을 내며 치카치카 양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웃겨 살풋이 웃으니 너는 왜 웃냐며 버럭 화를 냈지만 입꼬리에는 웃음이 걸쳐져있었다. 유년기의 우리는 이러했다. 친구로서의 삶을 걸어나갔다. 때로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도움받았던 우리는 이러했어야 했다. 네가 죽는건 아니였다. 그게 아니였다. 정신을 차리고 입을 헹구고 있을때엔 언제그랬냐는듯 너는 없었고, 거울 속의 나는 피폐하기만 했다. 온갖 잡생각으로 몸을 씻고 나왔을때 부엌에서는 된장찌개 냄새가 퍼져나왔다. 평소 네가 그토록이나 자랑하던 너희 어머니의 된장찌개였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킁킁 냄새를 맡아대는 네가 보였다. 우리 엄마 된장찌개 짱이야. 반한다니까. 자랑스러운듯 말하는 네가 나또한 자랑스러웠고 너의 또래에 맞는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너는 죽고싶다 타령할 나이가 아니였으니까.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고 있을 무렵, 문득 보이는 너의 방에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부엌에서 파를 썰고계시는 너의 어머니께 나는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방에 들어가도 되요?”
내가 물은 큰 목소리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러렴, 이라는 목소리는 확연히 귀에 꽂히긴 했다. 너의 바은 텅 비었다. 침대 하나에, 장롱하나에, 책상 하나에 그게 다였다. 네가 죽었을떄나 살았을때나 방은 똑같았다. 공허하게 텅 비었었다. 나는 너의 책상에 앉았다. 네가 항상 앉아 공부를 했을 이 책상, 혹은 죽음에 대해 몇번이나 갈팡질팡 했었을 책상에 나는 앉아있었다. 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예의가 아닌걸 알지만 나는 너의 죽음에 대한 단서를 찾고 싶었다. 네가 그냥 죽어버렸을리 없다. 너의 죽음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는 죽을 나이가 아니였다. 두번째 서랍까지 빠르게 뒤적거리고는 세번쨰 서랍을 열어 보이는 작은 일기장에 나는 서둘러 그것을 집어들었다. 애통하게도, 애석하게도 일기장의 첫문장은 꽤나 암담하게 시작했다.
나는 죽고 싶다. 이것이 너의 일기장 첫 문장이다. 두서가 없었다. 뜬금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목울대에 간당간당히 걸쳐져있는 울음을 참기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는 왜 죽고 싶었을까. 도대체 왜, 얼마나. 일기장을 쭉 읽어내려갔다. 별다른건 없었다. 죽고싶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너는 교우관계과 공부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았떤걸로 기억한다. 너는 모든것이 원만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삶도 원만할 줄만 알았다. 일기장이 거의 끝을 달릴 무렵에 나는 네가 삐뚤히 써놓을 글씨를 보고 기어이 울고야 말았다. 목울대의 쓰라림을 삼키며 겨우 참아내었던 울음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죽고싶다. 너무 죽고 싶다. 그냥 삶이 너무 싫다. 죽으면 편하니까. 편한게 좋다. 나는 정말로 죽고 싶다.
너의 일기장 마지막은 그렇게 끝이나고 말았다. 그래, 너는 편한것을 좋아했다. 공부도 게임도 모든것을 편함으로 추구했다. 복잡한것도 싫어했다. 단순한것이 좋고 편한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너는 죽었나. 죽으면 편하니까. 죽으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지니까. 그러한 이유때문에 죽었다는말이야? 네가? 한번 터진 울음은 걷잡을 수도 없이 퍼져나갔다. 마치 큰 건물을 집어삼키는 뜨거운 화염처럼 말이다. 얼마나 죽고 싶었던걸까. 죽음이 그렇게 쉬웠나. 죽으면 정말 편하다고 생각했을까. 네가 죽은 이유가 고작 그 사소한것 하나때문에?
나는 그날 너의 집에서 나간뒤로 다시는 교실에서의 너의 빈자리도 보지 않았고, 너의 집이 보이는 길로는 다니지도 않았다. 더이상 너의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에게 너에 대해 일절 꺼내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서 너를 잊으려고 애를 썼다. 너의 편함을 위해서. 너도 원했을것이다. 더이상 친구가 친구의 죽음때문에 하루를 온전히 보내지 못하고 사는것이 너로서는 딱했을것이고 그래서 원했을것이다. 내가 너를 잊기를. 너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였다. 자살이였지만 너의 행복을 바라는 기원이였다. 너는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웃었다. 죽음은 너에게 만큼은 비극적인 단어가 아니였다. 그리고 , 후에야 안건데 내가 그날 너의 집에 갔을때 파를 송송 썰고계시던 너의 어머니는 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동생과 함께 너를 따라갔다고 했다. 너는 빛을 쥐어잡고 싶어했다. 희미하지만 강한 빛을 쥐어잡아 살아나가기를. 그러나 어려웠던것이다. 빛을 쥐어잡는 법이 너무나 어려워서. 표면으로는 어렵지만 속은 너무나 쉬운것을 너는 다만 꺠닫지 못한 것 뿐이다. 나는 살아가고 있다. 이따금씩 우정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치솟을때면 네가 저절로 피어오르곤 하지만 그때뿐이다. 나는 살아가고 있다는것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살아가고 있으니까, 너또한 살아가고 있기를. 나는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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