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팩터
- 작성일 200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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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factor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남자애가 오백원만 주면 한줌의 흙을 먹어보겠다고 했었다. 나는 오백원이 없었기에 그 제안을 거절했고 아이는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 오백원을 주었더라면 그 애는 정말 흙을 먹었을 것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도, 사내애들이란 터무니 없는 일에도 의지를 불태우곤 하니까.
얼마 전 미국의 한 방송을 본 후, 어쩌면 그때 그 남자애는 정말로 돈이 필요해서 흙을 먹으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고집이 아니라, 적나라한 솔직함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충격을 받은 동시에 고민에 빠지게 했던 ‘피어팩터’라는 미국의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해 말해보겠다.
우선 나는 이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못했음을 밝힌다. 엽기적인 방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주요장면만 보았을 뿐이다. 인터넷을 통해 지난 방송을 다운 받아 볼 수도 있었으나, 나는 놀이공원에 가도 롤러코스터는 타지 않는, 자극적인 모험은 삼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혹여 나중에 다시 그 방송을 접하게 되더라도 사뿐히 리모컨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누를 것이다.
‘피어팩터’는 도전자가 도전과제를 성공할 시, 삼만 달러의 상금을 주는 도전 리얼리티쇼이다. 겉보기에는 유익해 보이고 감동도 있을 것 같지만 쇼의 본질은 그와 무관하다.
아직 이 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피어팩터’의 진행방식을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도전자가 등장하기 전, 진지한 얼굴의 잘생긴 진행자가 카메라 앞에 등장한다. 그의 앞에는 정사각형의 불투명한 상자가 놓여 있다. 그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말을 몇 마디를 한 후, 상자에 든 것을 공개한다.
사회자는 그것을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꼬리만 잡고 있다. 그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능숙하게 과제 내용을 말한다.
이제 이것을 믹서기에 넣을 것입니다. 이번 주 도전과제는 바로 특색 있는 죽을 마시는 것입니다.
나는 맥 풀린 눈으로 아마 코미디 프로이거나 몰래 카메라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믹서기에 바위덩어리 같은 쥐가 들어가고 그것이 형체를 잃고 쥐색 쉐이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동안 내 입가는 반쯤 굳고 반쯤 웃음을 머금었다.
잠시 후, 도전자 두 명이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등장한다. 그 둘은 늘씬하고 아름다운 금발 미녀들인데 중요한 운동경기를 앞둔 선수들처럼 긴장돼 보였다. 그들은 정말로 아름답고 일상적인 사람들이었다.
도전에 성공할 시 삼만 달러의 상금을 드립니다!
공정한 시합을 위해 초시계까지 준비한 사회자의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두 금발 미녀가 그릇에 담긴 죽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다.
오른쪽에 섰던 금발미녀는 반쯤 마시다가 포기하지만 왼쪽의 금발미녀는 끝까지 해치운다. 사회자가 상금의 주인공이 탄생했다고 발표하고 나서야 금발미녀는 이제 토해도 되냐고 묻는다.
잠시 후, 말끔히 속을 게워내고 돌아온 금발 미녀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삼만 달러 수표 모형을 품안에 안고 있다.
이것 외에도 벌레가 든 초밥을 먹는 도전과제도 있었다. 이번엔 금발 미남 두 명이 나와서 애벌레와 바퀴벌레가 꿈틀대는 초밥을 먹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려서 곧장 채널을 바꿨기 때문에 누가 우승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피어팩터’는 시청자들의 관심은 물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이 방송을 보게 되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토록 비도덕적이고 자극적인 방송이 제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옆에 얘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면, 웃음기 어린 어조로 물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삼만 달러 때문에 방송에 나가서 바퀴벌레 먹을 수 있어요?”
질문을 받은 사람은 대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숭을 떠는 것도 아니다. 바퀴벌레는 먹을 수 있다고 쳐도, 바퀴벌레를 먹는 자기 모습이 방송에 나온다면 도무지 용기가 안 날 것이다.
카메라가 없다면?
성인이 된 지금, 누군가 한 손에는 꿈틀거리는 바퀴벌레를 들고 한 손에는 돈뭉치를 들고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쉽게 결정을 못 내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방송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이보다 더 엽기적이고 끔찍한 뉴스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에 굴복한 도전자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어제 본 뉴스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어제 저녁, 열 아홉 살 아이가 열 여섯 살 아이를 총으로 쏴 죽였답니다. 단돈 백 달러 때문에요. 이게 더 끔찍하지 않나요?
승진을 위해서 직장 상사와의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여직원이 방송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할 지 모른다.
나라면 저런 식으로 안 산다. 이성이 있는 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가 있지?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저건 인간이길 포기하는 거야.
어느 쪽이 더 끔찍한지는 각자 판단을 내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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