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 삼간을 지어서
- 작성일 200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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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삼간을 지어서 / 최 봉 희
가슴에 고이 품은 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노년이 되어서 자연과 벗하면서 초가 삼간을 짓고 농사도 지으며 글을 쓰고픈 욕심이다. 아직은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젊은 나이라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릴 공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가슴에 꿈을 품고 살고싶은 것이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간 지어내니 /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 한간 맡져두고 /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 宋純 1493~1583)이 그의 말년에 정자 '면앙정'을 짓고 노래한 시조다. 어쩌다 이 시조를 흥얼흥얼 읊조리다보면, 어느새 면앙정의 주인인 듯 그냥 그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살고 싶은 속마음 때문이리라. 눈에 그려지는 풍류적인 모습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세상의 시름을 벗어나서 고즈넉한 자연 속에 그 여유로운 삶을 가슴에 담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저 10년이나 걸려 초가 삼간 한 채 지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이 마냥 부럽다. 더욱이 한 칸은 자신이 쓰고 다른 두 칸은 달과 바람에게 맡기겠다고 하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더욱이 집 앞에 강산은 들일 곳이 없으니 그대로 둘러두고 보겠다는 심사이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여유로운 삶이 부러운 것이다.
얼마전 지인들과 함께 창덕궁 비원에 간 적이 있었다. 왕실도서관인 주합루 뒤에 서고인 서향각을 찾았다. 그곳엔 별채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라 불리는 정자다. 대개 누정 뒤에 오는 명칭이 '각(閣)'이나 '당(堂)'임에도 볼관(觀)자를 쓴 것이 이채롭다. 이름 하나하나에도 나름대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일반적인 의미로 ‘각(閣)’은 석축이나 단상에 높게 지은 집으로 다소 격식이 있는 건물을 말하고, ‘당(堂)’은 주거형식의 건물로 방이나 대청이 있는 건물을 말한다. ‘정(亭)’은 정자의 약어로 포괄적인 의미로 쓰인다. ‘대(臺)’는 높이 쌓아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정자 형태다. 그렇다면 관(觀)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책을 통해 세상을 보다 멀리 내다보고 깊게 바라보고픈 소망에서 이 명칭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제월광풍(霽月光風)'이란 명칭은 중국 송나라 때 시인 황정견(黃庭堅 : 1045-1105)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그린 <송사(宋史)> "주돈이전"에 실린 글에서 유래되었다. "흉회쇄락 여광풍제월(胸懷灑落 如光風霽月)"이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가슴 속에 품은 뜻이 맑고 깨끗해서, 마치 비온 뒤의 햇빛과 청량한 바람 부는 맑은 날에 밝게 비추는 달빛"이란 뜻이다.
전라남도 담양 소쇄원(瀟灑園)에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이라는 누정이 있다. 아마도 창덕궁의 제월광풍관에서 연유된 이름인듯 싶다. 소쇄원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팔작지붕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비 갠 뒤 해뜨고 청량히 부는 바람'이라는 뜻을 지녔다. 여름에 통풍이 잘 되도록 문을 들어올릴 수 있는 한옥의 문짝 설계로 지혜로운 선인의 풍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음과 양, 비와 맑음을 대비한 절묘한 이름의 배치가 아닐 수 없다. 이들 집들은 궁궐 안에 혹은 자연 속에 있는 집이기에 살림집은 아니다. 부엌이 딸리지도 않았다. 정자에 방을 들인 모양으로 보나 방안에 벽장까지 꾸며 놓은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 거처했던 곳이다. 아궁이를 들여다 보니 솥이 걸리지 않았지만 불을 땔 수 있는 함실아궁이였다. 장작을 지피는 백성들의 아궁이와는 사뭇 다르다. 궁궐에서 하던대로 화로에 숯을 피워 구들 밑에 밀어 넣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주합루 뒷 편 높은 언덕에 이처럼 폐쇄된 작은 정자를 지어 놓았을까? 조선 정조 원년(1777)에 지어진 주합루는 원래 용도는 연회장으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때 아래층은 규장각 서고로 사용한 적이 있다. 주변에 과거 시험장이 있었기에 이곳은 장원급제한 유생을 왕이 친견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유생들을 위해 축하 연회를 열면서 왕이나 백관들이 자주 들러 책을 읽던 장소였으리라. 주합루와 서향각에는 주로 임금이 읽는 중요 책자가 보관되어 있다. 주로 서향각이 공동 열람실 구실을 했다면, 제월광풍관은 나랏일에 불철주야 수고한 모범 관리들에게는 독서 휴가를 준 곳이 아닐까?
당시 기록에 의하면, 주로 품계가 높은 관리에게 안식년 비슷하게 6개월이고 1년간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권면했다. 말하자면 위로휴가인 셈이다. 이때 휴가를 받은 관리들이 집이나 향리에 내려가서 소일하기도 했지만, 주합루 서향각에 있는 책을 빌려서 제월광풍관에 쌓아놓고 읽었는데 바로 그 벽장이 책을 보관해 두었던 곳이다. 말하자면 벽장이라기 보다는 서가요 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독서 휴가를 받은 당상관들의 전용독서실인 셈이다. 특히 제월광풍관은 임금님도 쉬면서 책을 읽었던 곳이라고 전하니 그 의미가 사뭇 정겹다.
제월광풍관은 요즘으로 말하면 도서관이요 서재라 할 수 있다. 심신이 힘들 때 가서 책을 읽고 쉬고 싶은 그런 곳이다. 책을 대하고 학문을 대할 때마다, 맑은 날 바람처럼, 비갠 뒤 달과 같이 하지 않았다면, 뒷날 그 학식이 아무리 높다한들 십중팔구 탐관오리가 되었을 것이 뻔하다. 제월과 광풍을 현판에 걸어 마음을 다스린 옛 선인들의 고매한 정신이 돋보인다.
가슴에 고이 품은 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노년이 되어서 자연과 벗하면서 초가 삼간을 짓고 농사도 지으며 글을 쓰고픈 욕심이다. 아직은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젊은 나이라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릴 공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가슴에 꿈을 품고 살고싶은 것이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간 지어내니 /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 한간 맡져두고 /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 宋純 1493~1583)이 그의 말년에 정자 '면앙정'을 짓고 노래한 시조다. 어쩌다 이 시조를 흥얼흥얼 읊조리다보면, 어느새 면앙정의 주인인 듯 그냥 그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살고 싶은 속마음 때문이리라. 눈에 그려지는 풍류적인 모습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세상의 시름을 벗어나서 고즈넉한 자연 속에 그 여유로운 삶을 가슴에 담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저 10년이나 걸려 초가 삼간 한 채 지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이 마냥 부럽다. 더욱이 한 칸은 자신이 쓰고 다른 두 칸은 달과 바람에게 맡기겠다고 하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더욱이 집 앞에 강산은 들일 곳이 없으니 그대로 둘러두고 보겠다는 심사이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여유로운 삶이 부러운 것이다.
얼마전 지인들과 함께 창덕궁 비원에 간 적이 있었다. 왕실도서관인 주합루 뒤에 서고인 서향각을 찾았다. 그곳엔 별채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라 불리는 정자다. 대개 누정 뒤에 오는 명칭이 '각(閣)'이나 '당(堂)'임에도 볼관(觀)자를 쓴 것이 이채롭다. 이름 하나하나에도 나름대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일반적인 의미로 ‘각(閣)’은 석축이나 단상에 높게 지은 집으로 다소 격식이 있는 건물을 말하고, ‘당(堂)’은 주거형식의 건물로 방이나 대청이 있는 건물을 말한다. ‘정(亭)’은 정자의 약어로 포괄적인 의미로 쓰인다. ‘대(臺)’는 높이 쌓아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정자 형태다. 그렇다면 관(觀)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책을 통해 세상을 보다 멀리 내다보고 깊게 바라보고픈 소망에서 이 명칭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제월광풍(霽月光風)'이란 명칭은 중국 송나라 때 시인 황정견(黃庭堅 : 1045-1105)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그린 <송사(宋史)> "주돈이전"에 실린 글에서 유래되었다. "흉회쇄락 여광풍제월(胸懷灑落 如光風霽月)"이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가슴 속에 품은 뜻이 맑고 깨끗해서, 마치 비온 뒤의 햇빛과 청량한 바람 부는 맑은 날에 밝게 비추는 달빛"이란 뜻이다.
전라남도 담양 소쇄원(瀟灑園)에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이라는 누정이 있다. 아마도 창덕궁의 제월광풍관에서 연유된 이름인듯 싶다. 소쇄원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팔작지붕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비 갠 뒤 해뜨고 청량히 부는 바람'이라는 뜻을 지녔다. 여름에 통풍이 잘 되도록 문을 들어올릴 수 있는 한옥의 문짝 설계로 지혜로운 선인의 풍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음과 양, 비와 맑음을 대비한 절묘한 이름의 배치가 아닐 수 없다. 이들 집들은 궁궐 안에 혹은 자연 속에 있는 집이기에 살림집은 아니다. 부엌이 딸리지도 않았다. 정자에 방을 들인 모양으로 보나 방안에 벽장까지 꾸며 놓은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 거처했던 곳이다. 아궁이를 들여다 보니 솥이 걸리지 않았지만 불을 땔 수 있는 함실아궁이였다. 장작을 지피는 백성들의 아궁이와는 사뭇 다르다. 궁궐에서 하던대로 화로에 숯을 피워 구들 밑에 밀어 넣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주합루 뒷 편 높은 언덕에 이처럼 폐쇄된 작은 정자를 지어 놓았을까? 조선 정조 원년(1777)에 지어진 주합루는 원래 용도는 연회장으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때 아래층은 규장각 서고로 사용한 적이 있다. 주변에 과거 시험장이 있었기에 이곳은 장원급제한 유생을 왕이 친견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유생들을 위해 축하 연회를 열면서 왕이나 백관들이 자주 들러 책을 읽던 장소였으리라. 주합루와 서향각에는 주로 임금이 읽는 중요 책자가 보관되어 있다. 주로 서향각이 공동 열람실 구실을 했다면, 제월광풍관은 나랏일에 불철주야 수고한 모범 관리들에게는 독서 휴가를 준 곳이 아닐까?
당시 기록에 의하면, 주로 품계가 높은 관리에게 안식년 비슷하게 6개월이고 1년간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권면했다. 말하자면 위로휴가인 셈이다. 이때 휴가를 받은 관리들이 집이나 향리에 내려가서 소일하기도 했지만, 주합루 서향각에 있는 책을 빌려서 제월광풍관에 쌓아놓고 읽었는데 바로 그 벽장이 책을 보관해 두었던 곳이다. 말하자면 벽장이라기 보다는 서가요 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독서 휴가를 받은 당상관들의 전용독서실인 셈이다. 특히 제월광풍관은 임금님도 쉬면서 책을 읽었던 곳이라고 전하니 그 의미가 사뭇 정겹다.
제월광풍관은 요즘으로 말하면 도서관이요 서재라 할 수 있다. 심신이 힘들 때 가서 책을 읽고 쉬고 싶은 그런 곳이다. 책을 대하고 학문을 대할 때마다, 맑은 날 바람처럼, 비갠 뒤 달과 같이 하지 않았다면, 뒷날 그 학식이 아무리 높다한들 십중팔구 탐관오리가 되었을 것이 뻔하다. 제월과 광풍을 현판에 걸어 마음을 다스린 옛 선인들의 고매한 정신이 돋보인다.
나 역시 이처럼 맑은 날의 바람을 만나고 비갠 뒤의 달을 만나는 독서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물론이고 노년에도 선비들처럼 맑고 밝게 살고 싶다.
언젠가 불편함을 짐짓 즐길 줄 아는 때가 온다면, 한 10년은 작정하고 내 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더도 말고 초가 삼간 한 채 지어 살았으면 한다. 너른 들이 펼쳐진 곳에서 달도 보고 청풍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초가 삼간에서 말이다. 더불어 무쇠 문고리와 경첩은 아니더라도 작은 책장도 하나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성 싶다. 면앙정 송순 선생님에 비하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언젠가 불편함을 짐짓 즐길 줄 아는 때가 온다면, 한 10년은 작정하고 내 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더도 말고 초가 삼간 한 채 지어 살았으면 한다. 너른 들이 펼쳐진 곳에서 달도 보고 청풍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초가 삼간에서 말이다. 더불어 무쇠 문고리와 경첩은 아니더라도 작은 책장도 하나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성 싶다. 면앙정 송순 선생님에 비하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연일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어느덧 그치고 초복이다. 이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리라. 오늘도 초가 삼간을 지어서 독서삼매경에 푹 빠지는 시원한 꿈을 다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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