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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가 기다리는 첫 차 - 정태춘의 음반 리뷰

  • 작성일 2006-09-06
  • 조회수 315

양아치가 기다리는 첫 차

정태춘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음반 리뷰 - '아치의 노래'를 중심으로

 

 

정태춘과 박은옥, 두 부부의 노래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때로는 걸어서 가고 돈이 좀 생기면 자전거라도 사서 타고 정동진을 향해 가는 기차에 오를 때도 있다.  ‘오토바이 김씨’를 따라서 선릉과 삼성에 이르는 테헤란로를 질주할 때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도 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다가 선운사의 동백꽃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깊은 철학에 잠기기도 한다.  언제나 그의 노래는 우리의 삶이고 민중의 고백이다.  그런 그의 고백들이 다시 한 장의 음반으로 나왔다.  최근에 발표한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가 그것이다.

정태춘의 작업은 1990년대를 시작하며 숨차게 앞으로 차고 나갔다.  첫 시작은 ‘아 대한민국…’이었다.  첫 번째 음반에서 그는 우리가 지금 살고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속 깊은 문제의 깊이를 제시했다.  서태지가 인기를 끌고 룰라가 천사를 찾아 싸바싸바 라고 외치고 있는 그 명랑하던 시기에 정태춘은 우리 사회의 껍데기를 열고 그 안쪽을 보게 된 것이다.

썩어 있었다.  어떤 사회든지 조금씩 썩지 않은 사회가 어디 있겠냐마는 정태춘의 눈과 가슴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현실로 다가왔다.  그는 즉시 노래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회 장소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의 음반은 검열이라는 호된 매를 맞아야 했다.  정태춘은 곧바로 불법적이지만 음반을 발매했고 사전심의제도에 대해서 당당히 맞서서 할 소리를 했다.  표현의 자유, 노래할 자유마저 주어지지 않는 사회였다.  하물며 대중들이 잘 살아가야할 자유와 권리는 어떨까.  너무 높은 곳에 걸려있는 환상일까?  그림의 떡일까?  정태춘은 노래로도 혁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깊은 성찰을 가지고 묵직한 노래를 만들어갔다.

그 이후 ‘92년 장마, 종로에서’와 ‘정동진’ - 2개의 음반을 연이어 발표하며 그가 애초에 제시했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들을 노래했다.  무조건 사회가 썩었다고 노래하는 것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태춘은 왜 그렇게 사회가 썩어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썩은 사회를 다시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 음반에 포함되어 있는 그의 노래 ‘정동진’과 ‘건너간다’는 우리가 이제부터 가야 할 길과 철학에 대해서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성찰이 없는 혁명을 갈구하고 있는 것으로부터의 생겨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데모하는 사람들은 붉은 띠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고 머리를 삭발한다.  미선이 효선이의 억울한 죽음에 사람들은 연일 광화문 거리를 채우며 촛불을 밝혔다.  평택의 문제, 북한의 미사일 문제, FTA문제, 문제, 문제, 또 다른 문제들….  우리 각자가 이런 문제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이전에 얼마나 깊은 성찰을 하였는가에 대한 질책이다.  이것들은 목소리 높여서 혁명을 외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아치의 노래’를 생각해본다.  우울한 곡조의 이 노래에서 화자는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기도 하는’ 잉꼬 한 마리를 새장에다 키우고 있다.  물론 가게에서 잉꼬를 팔 때는 두 마리를 한 쌍으로 주었지만 ‘그와 함께 온 친구는 바로 죽고, 그는 오래 혼자’다.  새장 속에서 잉꼬 한 마리는 외롭게 서서 부리를 다듬고 한쪽 다리씩 길게 기지개를 피거나 사료를 먹는 게 일상의 전부다.  그런 일상은 곧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고립된 이 사회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밥 먹고, 화장실 갔다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한다.  거기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파김치가 되어 포장마차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것을 귀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다가 회사에서 보너스라도 받게 되면 그게 그렇게 즐겁고 그 돈을 모으고 모아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어딘가에 작은 아파트라도 사고 싶은 꿈을 꾼다.  그게 바로 ‘양아치의 노래’다.  철학이 없는 삶이고 성찰이 없는 삶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철학이 되어 굳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계속해서 잉꼬가 될 것을 강요하며 합리화시킨다.

노래속의 화자는 새장속의 잉꼬에게 말한다.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하는 일이라고는 ‘그의 똥을 치우고, 물을 갈고 또, 배합사료를 준다.’  하지만 잉꼬는 날고 싶어 한다.  그에게 달려있는 멋진 날개는 그가 높은 창공을 하염없이 날아다닐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의 몸은 지금 새장 속에 있다.  우리의 철학이 새장 속에 갇혀있는 것과 똑같다.  과연 우리는 작은 돈이라도 모아서 아파트나 하나 살까 마음으로,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실적인 꿈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가끔 우리의 꿈은 좁은 새장 안에서도 퍼덕거리며 날기를 원한다.  노래 속 화자가 키우는 잉꼬 역시 ‘어떤 날 아침엔 그의 털이 장판 바닥에 수북하다.’  그럴 때 화자는 잉꼬에게 충고한다.  ‘날지 마, 날지 마 그건 자학일 뿐이야.’  그것이 현실이다.  새장 안에서 아무리 날아봤자 그가 닿는 곳은 새장 속일 뿐이다. 이상을 꿈꾸는 우리의 마음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또 현실적인가.  사회라는 새장에 우리 자신을 가둬놓고 가끔이라도 일탈을 꿈꾸는 우리의 머리에 따끔하게 충고를 한다.  ‘그건 자학일 뿐이야.’  라고 말이다.  그리고 화자가 잉꼬에게 말하듯 우리 자신에게 설명한다.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 낼 뿐이야.’

노래 속의 잉꼬는 그러나 그가 정말 날고픈 하늘을 전혀 본 적이 없다.  가끔 화장실에서 들리는 폭포수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며 오스트레일리아 초원을 적시는 굵은 빗소리를 상상한다.  그것이 환희의 노래처럼 또는, 신음처럼 새장 꼭대기에 매달려서 소리 지른다.

“이건 헛된 꿈도 이념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외침조차도 결국은 현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새장 주위로만 뱅뱅 돌고 있다.  현실은 그렇게 냉혹한 것이다.  그러나 새장 속의 잉꼬가 그렇게 목 놓아 외치듯이 우리가 이 사회에서 이루고 싶은 무언가는 결코 헛된 꿈도 복잡한 이념도 아니다.  명품이나 사며 돈을 펑펑 쓰지는 않아도, 여름이면 해외여행을 한두 달씩 다녀올 정도는 아니어도, 서초동이나 목동에 있는 높고 넓은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거기서 풍요마저도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싶은 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마음속에 평화를 누리며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기쁘게,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 - 그것을 어떻게 꿈이나 이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처럼 거대한 무언가는 아니다.  사회의 전복도 아니고 유혈 사태는 더욱이 아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면 집에 가서 따뜻한 밥에 구수한 된장국을 먹고 싶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정태춘의 노래는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시작으로 청담동과 압구정, 삼성과 선릉을 지나, 성남을 지나 정동진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끝도 없이 펼쳐진 태평양 - 그것을 마주보고 서있는 바하 캘리포니아 연안까지 닿았다.  비록 로또나 긁어대는 헛된 꿈의 유혹은 매일 밤마다 쌍무지개로 나타나 괴롭히지만 그 모든 것은 우리가 동일하게 겪고 있는 아픔이고 답답한 현실이다.  우리의 현실은 밀감 조작이나 쪼아 먹으면서 이게 과연 가장 안전한 현실이라고 믿고 사는 잉꼬일지 모르지만 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거친 숨소리는 거기까지 닿아야 한다.  그의 노래 ‘건너간다’에서 버스를 타고 건너가는 우리 모두의 갇혀진 현실을 정태춘은 우울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현실은 꿈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같은 음반에 포함된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에서  노래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작은 꿈을 꾸어야한다.  그 꿈이 흐르고 모여서 커다란 강을 이루고 한데 합쳐 바다에 이를 때까지, 정동진 바닷가에 출렁이는 동해바다가 되기까지 ‘아치의 노래’는 계속 되어야 한다.  정태춘과 박은옥 두 부부는 이렇게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서 오늘도 어느 집회장에선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