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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40대 마지막 생일의 미역국 단상

  • 작성일 2007-01-20
  • 조회수 377

오늘은 나의 40대 마지막 생일이다.
즉 올해만 지나면 나도 지천명의
명실상부한 중늙은이가 된다는 얘기다.

오늘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거실에 있는
연탄난로의 연탄불을 갈았다.
그러나 고심이 깊었기에 영 그렇게 후속 잠은 오지 않았다.

하기야 두 시간만 지나면 출근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음에 굳이 더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되기는 했다.
하지만 주책없이 배가 고팠기에 아내를 깨웠다.

"여보, 눈 떠 봐. 미역국 좀 끓이라구~"
아내는 엊저녁처럼 끙끙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몇 일 전 아내는 퇴근하는 밤에
슈퍼에서 봉지호떡을 사 왔었다.
근데 그 호떡을 먹던 중에 그만 아내는
그 호떡이 목에 걸리는 사단, 즉 급체에 걸리게 되었다.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지만 말도 못 하고
꺽꺽거리는 모습을 본 아들은 대경실색하여
서둘러 아내의 등 뒤로 달려갔다.

그리곤 의무소방원(군 복무를 여기서 마쳤다) 출신답게
어찌어찌 아내를 두드리며 주무르는 등으로
사경으로부터 구하긴 했다.
하지만 그 때 평소 약하디 약한 아내의
갈빗뼈에 그만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병원을 다니는가 하면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생각 같아선 내가 손수 미역국을 끓였으면 했으나
불행하게도 나는 미역국을 잘 못 끓인다.

또한 아무리 내가 미역국을 좀 끓인다손 쳤더라도
명색이 가장인 나의 생일날에 내가 직접
미역국을 끓인다는 건 왠지 그렇게
격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작용한 때문이었다.

하여간 겨우 일어난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미역국을 끓였고 그 미역국에 김을 두 장 구워
밥과 함께 버무려 양념간장에 찍어먹었다.

오늘은 출근(아르바이트 직장)을 안 하는 아들이었기에
깨워서 함께 아침을 먹으려 했으나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걸 본 터였기에 내버려두었다.
이따 저녁에 우리 식구끼리 간단한
외식이라도 하면 될 터였기에.

아무튼 미역국을 먹었으니 나는 오늘부터
'꽉 찬' 마흔 아홉의 중년이 된 셈이다.
근데 미역국을 먹고 덩달아 나이도
한 살을 더 먹었으되 실은 쓸데없이
나이만 먹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남들은 이미 다 장만했다는 집도 한 칸이 없으며
두 아이의 교육비 마련조차도 힘에 겨워
허덕이는, 참으로 무능하고 한심한 가장이란 게
나의 엄연한 초상인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금 안 붙는다고 나이만 허투루 먹은
허릅숭이의 전형이란 얘기다.

아무튼 그저 자위하고 보람으로 생각하는 게 있다면
조강지처랑 여전히 사랑하고 아끼며
살고 있다는 것과 불우한 가정형편에도 굴하고 않고
심신이 모두 건강한 자녀가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근데 생일이 되어 미역국을 먹자면 늘 그렇게
'나의 형편도 저 미역처럼 물에 불리기만 하면
금세 10배 이상으로 불어날 순 없는 것일까?'란
자문자답을 하곤 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앞만 보며 뛰어왔다지만 여전한 빈곤의 숲은
무성하기만 할 따름이다.
오늘이 정규직은 모두 쉰다는 토요일이라지만
비정규직인 나로선 남의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오전 여섯시에 집을 나서
출근한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사십대의 마지막 생일을 맞은 오늘의
내 생각과 각오, 그건 바로 올해는 어떡해서든
당면한 빈곤에서 탈출해야겠다는 것이다.

비록 미역처럼 현재의 형상과 실체보다
무려 열 배의 몸집으로 키우진 못 할지언정
최소한 약하디 약한 아내를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내보내는 일만큼은 최우선으로 막아야겠다.

다음으로 서울서 공부하고 있는 여대생 딸에게도
용돈을 풍족히 보내주려면, 또한
우리집의 가정경제난으로 말미암아 작년에 복학한
대학의 휴학까지를 결정한 아들을 복학시키자면
내가 더 열심히 뛰는 외는 딱히 방법이 없다.

돈(money)이란 녀석은 대체 나와 무슨 전생의 원수가 졌길레
지금껏 역시도 나의 러브 콜을 뿌리치며
하늘에서만 둥둥 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처럼 걍팍한 녀석일지언정
언젠가는 나의 정성과 노력에 감동하여 결국엔
내 곁에도 잠시만이라도 머물 날은 있으리란
믿음만큼은 버리지 않으련다. 

미역국처럼 일약 열 배 이상으로 부풀어오르는
재물의 증가는 기실 로또복권에의 당첨 내지는
부동산 투기 따위로서의 불로소득만이 어떤 첩경일 것이다.

고로 그러한 바람은 바람만으로도
충분히 불순한 동기라고 생각한다.
하여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렇게
성실하고 근면한 삶을 견지할 작정이다.

이따 퇴근하면 아내와 아들도 데리고
가까운 중국집이라도 가련다.
탕수육에 자장면을 시켜 소주라도 마시며
더욱 황혼이 붉어져오는
내 40대 마지막 생일의 능선을
자축인지 자괴인지를 여하튼 하려 한다.

사노라면 좋은날은 반드시 오리니... 란 믿음을
소줏잔에 함께 담아 마시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