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승부하시려고요?
- 작성일 200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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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승부하시려고요
우리학과 카페에 사월말일 경에 ‘아니 벌써, 라고 말하고 싶은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수업시간은 물론 시험 때마다 전전긍긍 앓던 기억밖에 없는데 어느새 졸업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 야외 촬영을 오월 이십팔일에 찍는다는 내용이었다. 푸른색 의상은 가급적 입지 말라며, 시간을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한 달 가량 남았으니, 뱃살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리라는 다짐을 했다. 개인 사진이야 기계가 거짓말 할 리 만무해서,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예쁘고 싱싱한 젊은 학우들과 단체사진, 그 그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걸 생각하니 심히 염려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고상한 이미지가 잘잘 흘러서, 교수님으로 착각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건 꿈에서나 있음직한 착각이다.
얼굴을 비롯하여 사대육신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렇다고 결혼 전에도 자연훼손(성형)을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임자 있는 몸, 게다가 환갑이 저만치서 쪼그리고 앉아서 손짓을 하는 마당에 뜬금없이 돈 들여가며 자연훼손을 하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이라고 마음을 다스린다.
본향으로 돌아갈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괜히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 고치고 살다 가면, 높으신 그분께서 이승에서 내가 걸어간 발자국을 몰라보시고, 지옥으로 보내시면 몹시 억울할 것이고, 천에 하나 실수로 천당으로 보내주시면, 그 또한 양심에 걸릴게 뻔하다.
아버님, 어머님 욕되게 하는 표현일지 몰라도 칠남매 맏이 첫 작품이라 그런지 온통 실수투성이다. 약간 튀어나온 넓은 이마를 빼고는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다. 무슨 조화인지 오뚝한 어머니 코를 닮지 않았다. 입술은 어머니 아버지 중간을 닮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전직 전모 대통령 영부인을 닮았다는,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눈이 쌍꺼풀져 큰 애기 시절에는 눈은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가장 취약점인 게 코다. 냄새를 맡으라는 기능은 백점 만점이다. 그러나 사용도와 상관없이 얼굴중앙에 자리를 꽉 잡고, 전체적인 이미지 관리하는 위치는 분명 코다. 클레오파트라 코가 한 치만 낮았어도, 세상이 어쩌고 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콧대가 세다느니 높다느니, 하는 소리 말고도 웃기는 이야기로 형부의 코가 커서 언니는 좋겠다는 노랫가락을 남우세스럽게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코는 사람의 인물을 평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듯 얼굴은 애초부터 형편무인 지경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몸매를 갑자기 에스 라인으로 가꾸는 것, 그 역시도 무리다. 뱃살이라도 조금 줄여 보리라 다짐했던 걸, 깜빡하고 아예 잊어버렸다. 요즘 내 시간은 바퀴를 달고도 모자라서 날개를 달고 쏜살같이 앞으로만 전진이다. 한 달이나 남았으니, 하고 느긋하던 날이 바람결에 저만치 뒤도 안돌아보고 멀어져갔다.
달력에 붉은 색연필로 ‘졸업사진 야외 촬영’ 이라고 큼직하게 써 놓아서, 들면 날면 지나치며 보았으련만, “내가 왜 이럴까?”를 연발하며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오월 이십팔일 월요일 아침에 웬일로 제대로 달력에 시선이 꽂혔다. 부지런히 머리를 감고, 화장을 했다.
직장을 다니는 제 어미를 대신하여 손녀를 돌보는 입장이라 수업을 학기 초에 모두 야간신청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있을 손녀가 염려되었다. 부지런히 손녀 등교준비를 시키고 부산을 떨었다. 학교에서 끝나면, 바로 학원차를 타고 학원으로 가라고 신신당부하기를 열 번도 더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학교 후 곧바로 학원을 가라고, 한마디만 해 주십사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로 부탁을 드렸다. 애초에 손녀담임선생님과 상담할시 내 사정을 말씀드렸던 터라, 염치불고하고 전화를 드리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학원에도 전화를 하여, 이만저만 여차저차 하니, 잘 좀 보살펴 주시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라도 재삼 부탁을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내 일은 끝이 아니다. 사진촬영은 오후 세시부터다. 한시쯤 집을 나서야 한다. 저녁밥이야 아침에 지어서 밥통에 넣어두었지만, 하다못해 감자볶음이라도 해 놓고 가야, 손녀가 저녁밥을 먹는데 지장이 없다. 손 놀릴 사이 없이 감자 한 개를 채쳐서 볶아 놓았다. 미장원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들긴 들었다. 그러나 좀처럼 시간을 쪼갤 틈이 없었다.
바쁘게 내가 할 일들을 분류하여 마무리를 지어놓고 학교로 갔다.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누가 듣거나 말거나 큰소리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찍 들어와서 학원에서 돌아오는 손녀를 잘 챙기라고 명령에 가깝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손녀의 한시적 학부모역할을 자처한 후로는 시간이 나에게는 일분일초가 아깝고 새롭다.
나이가 들어가는 전초, 징후인지 모르지만, 때론 괜한 노파심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에 늦는 것보다, 조금 일찍 야외 촬영장으로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낳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나이든 연장자인데, 늦어서 허둥대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가 싫은 까닭이다. 우리학과가 사진을 찍기 거의 삼십분 전에 미리 도착했다. 다른 과 학생들이 사진 찍는 모습을 나무그늘에 기대어 서서 보았다. 개인 프로필 사진과 단체 사진, 조별 사진, 등 총 다섯 컷을 찍는다. 학사모 촬영은 미리 해둔 터다.
그런데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싱싱하고 아름다운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학생들은 모두가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듯, 모두 새 옷을 장만하여 입은 것처럼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머리모양들도 하나같이 미장원을 다녀온 티가 자르르 흘렀다. 얼굴화장 역시도 신부화장을 방불케 속눈썹까지 달았다. 안 예쁜 여학생은 하나도 없고, 인조 미인들이 즐비했다. 어떤 학생은 여행용가방에 옷을 여러 벌 준비해서 사진 한 컷, 한 컷 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유난을 떨어 보였다. 나는 속으로 큰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다.
나는 파마머리도 아닌 생머리를 아침 일찍 서둘러 감고 온 것만 다행이라고 여기고 왔는데, 대략 난감하기까지 했다. 그때까지 우리학과 학생들은 학생들이 한명도 오지 않았다. 상각해 보건데, 그들 역시 미장원에서 칠보단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영락없는 개밥의 도토리 꼴이 되게 생겼다. 어떻게 상황수습을 해야 할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마침 우리학과 여학생 중에 나이가 좀 되는 학생이 왔다.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얼굴이 오목조목 예쁘게 생겼다. 웃으면 살짝 보조개가 들어가는 귀여운 얼굴이다. 나는 하소연 비슷하게 미장원에라도 다녀올 걸 그랬나보다고, 이미 지나가버린 차 뒤꽁무니에 손을 흔들어 보이듯, 투정어린 말투를 늘어놨다.
“언니, 미장원이나 다녀오시지 그랬어요?”
“그러게 말이야. 옷매무새도 형편없고, 졸업사진 작품 망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다른 여학생들은 눈썹도 달고 오고 난리인데.”
혼자 계속 주절거렸더니, 그녀가 한마디 한다.
“언니, 됐어요. 현역 젊은 친구들은 졸업 후 취업, 이력서 사진으로 사용하려고 거지반, 저렇게 연출을 해요.” 그러면서 신경 쓰지 말란다.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깔끄럽게 달라붙는다.
“언니, 인물로 승부하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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