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실소(失笑)
- 작성일 200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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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꾼은 만 가지 근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통 가진 게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천석꾼과 만석꾼이 구태여 왜 그다지도 많은
근심의 먹구름에 휩싸여 있는지를 알 길이 없다.
물론 재물이 많으면 우선은 도둑 걱정에
밤에도 잠이 잘 오진 않을 터이겠다.
다음으로 자신의 사후는커녕 버젓이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새끼들이 자신의 재산을 유산으로서 나눠 갖고자
입에 게거품을 물며 이전투구의 추태를 보이는 경우에도
필경 그건 근심의 정점일 것이리라.
아무튼 천석꾼이든 만석꾼이든 그건 나와는
하등 관계없는 ‘강 건너 불’이기에 나의 경우만을 피력코자 한다.
능력이 부족하여 늘 그렇게 사는 형편이 빈궁하다.
그러한 까닭으로 아내와 두 아이에게도
생활비와 용돈을 펑펑 주는 ‘번듯한’ 남편과
아빠의 노릇은 별로 해 보지 못 했다.
그런 건 관두고 허구한 날 술이나 ‘빨며’
날 속이는 엄한 세상의 탓이나 한 적이
비일비재한 나날이 더 많았다.
누구라도 결혼을 하면 자녀를 두기 마련인데
나는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내가 못 받고 자란 부모의 사랑이 얼추 한(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음에 나는 진실로
두 아이를 사랑과 칭찬으로만 키웠다!
스물다섯 살과 스무 한 살이 된 자녀를
매 한 번 안 대고 키웠다고 하면
너무 ‘오버’한 과장의 호언(豪言)일까?
그렇지만 난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다.
보기만 해도 아까운 보물처럼 그렇게 말이다.
하여간 재작년, 딸이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갔을 적부터 나의 경제적 고민은 가중되었다.
평소 돈을 잘 벌지도 못 하는 주제였음에
딸과 아들의 교육비 부담 외 이런저런 지출비의 부담은
때론 나 자신을 몽땅 망가뜨리는
어떤 부끄러움의 부메랑으로 다가오기도 일쑤였다.
단 돈 1천원의 시내버스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간 적도 수 차례 있었으며
절실한 담배를 빌어 피우기도 다반사였다.
그렇지만 내 사랑하는,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에겐 단 한 번도
녀석의 예금통장에서 잔고가 제로(0원)로
남게까지 하진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늘 뉴스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팀은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대학교육까지 시키는데
총 2억 3천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맞는 말이라 여겨 금세 고개를 주억거렸다.
딸은 얼추 1년 후에, 내년에 복학하게 될 아들은
2년 후면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그렇다면 2년 후면 나도 명실상부(?)한
5억 대의 부자가 되는 셈인가?
나도 모르게 실소(失笑)가 나온다.
정말이지 서민이 살기엔 갈수록 험준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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