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미련
- 작성일 200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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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주었던 그 사람을,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다고 말해주던 그 사람을.. 이제 보낼 준비를 한다.
나는 우울을 이기지 못했었다. 죽음을 결정했었다. 철 없이 어린 나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죽기에 아까운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다시 잘 살아볼 용기를 가지라고 짓거리던게 나라는 인간인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우울이 막상 나의 일이 되고 나니 견디기에는 벅차다는 것을 실감했다. 슬슬 준비를 시작했다. 해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카메라만 들고 어릴적 추억이 깃들여 있는 곳도 찾아가 보고,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곳도 가보았다. 내 생에 첫 방랑이였다. 자유였다. 비록 혼자였지만 그렇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교실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였다.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우울을 나의 방랑을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우울하고 곧 외로워졌다. 그 무렵 나는 그를 만났다. 서로 다른 도장, 같은 사범님 밑에서 배웠던 조금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만남이였다.
명절 연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절의 흥겨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형식적으로 연휴를 보내고 있던 우리집. 숨이 막혔다. 농담삼아 그가 보낸 문자.
" 나올래?ㅋ"
농담인 걸 알고 있었다. 새벽 3시. 고등학교 2학년짜리 여자애가 선뜻 나올 거라고는 예상도 못하고 보낸 문자란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도 없이 나갔다. 어차피 동이 트고 버스가 다니면 비린내 풍기는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이였기 때문에 2시간 빨리 나서는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단지 한 시라도 빨리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루 종일 돌아 다녔다.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 싶다. 아마 없던 것 같다. 나의 얘기를 털어놓은 것은 처음이 아니였나 싶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사이. 잘 알지도 못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내 얘기를 털어놓아도 곧 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쉽게 얘기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우울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나를 달래주었다. 의외였다.
공감대가 성형되었기 때문일까? 급속도로 친해진 그와 나는 愛人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몇 달을 참 잘 지내왔다. 내가 정했던 나의 제삿날이 지나가고, 살아있다. 지금 웃으며 살아있다.
그가 군대를 갔다. 기다려달라며 눈물을 삼키던 그가 떠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가 오고 편지가 왔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 걱정하는 마음에 그는, 그의 부모님께 부탁하여 가끔 나에게 전화를 해서라도 보살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안한 사람. 그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였다.
그가 휴가를 나오고 다시 복귀를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3일을 울었다. 그의 미니홈피를 간 것이 실수였다. 그가 다른 누군가에게 쓴 방명록을 훔쳐본 나는, 벌을 받았다. 방명록에는 휴가 때 만나서 즐거웠다, 전화해줘서 위로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 눈물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게하는 글들이 있었다. 어깨가 떨릴만큼 울었다. 울다, 울다, 울다가.. 가슴 한 켠이 아플 때까지 울다가 문득 그에게 미안해졌다.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은 그였지만, 몰래 방명록을 뒤져본 것은 나. 미안했다. 다른 사람이 걱정하게 하고 챙겨주게 해서 미안했다. 옆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위로 받게 해서 미안했다. 그는 나에게 큰 도움이였는데 나는 짐이였던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든다. 너무 이기적이게도, 하찮은 이유로 그를 붙잡고 있는 것만 같아서 미안했다. 그리고 지금도 미안하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훈련 끝나자마자 전화했다는 그의 목소리가 참 밝다. 오랜만에 밝은 그 목소리에게 나는 잔인하게도 이별을 생각해보잔 말을 꺼냈다. 목소리가 변했다. 당황했을 것이다. 이유를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말해주었다. 그 사람과는 원래 알던 사이였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만났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를 잡은 손 안 놓을 거라고 미안하지만 못 놓겠다고 말해주었다. 기뻤다. 하지만 이게 끝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서 말해주었다. 미안해요..
내 욕심이다. 알고 있다. 욕심에 그 사람을 잡고 있었다. 그 사람이 없으면 나는 다시 죽음을 생각하게 될지 모르니까, 불안했다. 버팀목이 없으면 다시 기울어 버릴테니까,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그가 없어도 나는 살 수 있다. 시간은 그가 없어도 흐르니까, 살 수 있다.
내일이면 다시 그의 전화가 올 것이다. 전화한다고 했으니까, 꼭 해줄 것이다. 머리는 말해준다. 그가 무어라 하던간에, 나는 더 이상 그를 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 가슴은 말한다. 잡고 싶다고.. 나는 아직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인가보다. 며칠을 울고서도 가슴은 그를 찾는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제대로 놓아주지도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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