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 작성일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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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디 아프신데 없이 잘 계시는지요.
저는 이곳에서 부족함 없이 몸 성히 잘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늘 어머니의 안부가 걱정입니다.
요즘도 식당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오셔서 술을 드시는지요.
어머니는 잠을 이룰 수 없다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드셨지요.
할머니 살아계실 때는 할머니 모시랴, 언제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버지 달래주랴,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늘 제 걱정만
하셨지요. 이제 저도 어엿하게 서른을 넘긴 나이인데도 말입니다.
어머니는 술에 취하면 제게 미안하다고 하셨죠.
예전에 저희들을 버리고 떠나는 게 아니었다며, 그런 상처를 주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하시며 눈물을 보이셨죠. 그러면 저는 지나간 일인데 뭣 하러 자꾸 이야기
하냐며 어머니 술 드시는 것만 탓했지요. 오히려 차라리 돌아오지 않는 것이
어머니의 삶이 더는 불행해지지 않는 길이었다고 했지요.
하지만 그런 제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어머니의 미안함이 반감되도록 일부러 한 거짓말입니다.
어머니, 기억하시는지요. 어머니와 제가 만나던 날이요.
그날은 중학교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유난히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지요. 저는 빈병이나 고철을 주우러 동네를
쏘다니다가 어른들이 찾는다는 말에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지요.
집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무서워서 얼굴 한 번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던
아버지가 와 계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저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함께
거여동에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지 않았나,
가슴을 졸이며 아버지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버지는 거여동에
도착하자마자 옷가게에 들러 셔츠를 사 주는 것이었습니다.
오천 원짜리 싸구려 노란 줄무늬 반팔 셔츠였는데 난생 처음
있는 일이기에 저는 내심 불안했습니다. 뭔가 큰 잘못을 했을 때 아버지는 애써
부드러운 척하며 저를 무지막지하게 혼내셨거든요.
물론 술을 드셨을 경우는 전혀 사정이 달라졌지만 말입니다.
그런 날은 오히려 가슴에 남을 만한 몇 마디 욕설과 함께 몇 대쯤 맞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주눅이 든 채 언제 아버지의 주먹이 날아올까 걱정하며
아버지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극장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딱 멈춰 섰습니다. 그러더니 누군가를 가리키며 너희 엄마다, 라고 하고선
돌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의심했습니다.
"너희 엄마다."
이 한 마디에 제 심장은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그리던 엄마였던가, 얼마나 불러 보고팠던 엄마였던가.
길에서 엄마와 함께 손잡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하지만 이젠 꿈에서라도 보이지 않던 얼마나 무정한 엄마였던가.
얼마나 미웠던 엄마였던가. 저는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어머니가 앉아계신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어머니 앞으로 가서
아! 어머니..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겨우 여덟 살이었던 제가 몇 년이나 지나서
이렇게 훌쩍 커버렸는데 저를 알아보십니까, 라는 영화대사와 같은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멍청하게 어머니의 얼굴만 뚫어지게 볼 뿐이었습니다.
어른들 모르게 숨어서 보던 사진 속에 있는 그 얼굴이 맞는지 보고 또 봤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팔을 벌리며 제게 말했지요.
"용성아, 엄마야..엄마 맞아.."
그러나 저는 선뜻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키가 컸고 안경도 쓰지 않았으며 세상에서 제일
예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새장가를 들고서 나를 속이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멋쩍게 서 있으니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죠.
"용성아..너는 엄마가 밉지?"
아! 저는 그 말에 그제야 엄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워했던 엄마,
나중에 어른이 되면 기필코 찾아내 왜 날 버렸느냐며 따지고 싶었던 엄마,
그러면서도 사무치게 그리웠던 엄마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어머니와 저는 서로 서먹하게 지냈지요. 어머니를 부를 적마다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저.., 저기요.."라고만 했지요.
그러나 그 무렵 저는 부끄러움이 많아 그러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신 기쁨이 컸기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뻐하면 혹여 라도 꿈에서 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실은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와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학교성적도 하위권에서 단박에 중상위권으로 오른데다가 교회도 다니며 친구들도
사귀게 된 걸요. 어머니가 돌아오셔서 저는 얼마큼 좋았는지 모릅니다.
계신 것만으로도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제게 미안하다니요.
부모노릇도 못하고 제게 늘 짐만 지운다고 하시다니요.
어머니,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일보다 지금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저를 낳아주시고 힘들었던 시기에 돌아오셨는걸요.
저는 단지 제 길을 가고자 해서 어머니 곁에 있지 못하는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언젠가 저 혼자 바로 설 수 있는 날이 오면 찾아뵙겠습니다.
뵈올 그날까지 모쪼록 건강하시길 소망하겠습니다.
- 불효자 서운 올림. -
아차..! 부끄러워서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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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이번에 운전면허 떨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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