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작성일 200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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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뉴스를 통해 애완견들에게 이름표 부착을 의무화해야하고 또한 애완견을 학대했을 경우에 기존에 벌금 30만원에서 최고 500만원까지로 상향 조정되었다는 법 개정안이 발표되었다. “어이쿠, 개의 격이 꽤 높아졌네?”하고 우스갯소리를 한 마디 했지만, 이 뉴스만 봐도 우리사회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대중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무슨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혹자는 대꾸할지도 모르겠으나 어차피 세상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동물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야하거늘.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준 주인공들 중의 하나가 바로 다름 아닌 강아지들과의 인연이다. 흔히들 집안에 호랑이띠가 있으면 개가 잘 안 된다는 얘기를 한다. 다행히도 우리 가족 중에는 호랑이띠가 없어서인지 유난히 개들과의 인연이 많았고 또한 우리 집에 온 개들은 모두들 우리 가족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 아마도 우리 식구들 중의 누군가는 전생에 개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우리 가족 모두는 개와의 생활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소중히 여긴다. 같이 밥을 먹고 사니 그저 한 식구랄 수밖에.
그 중에서도 현재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하는 강아지 ‘제키’와의 인연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품종은 요크셔테리어와 미니핀사이의 잡종이다. 비록 순종의 품격 높은 개는 아니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 어느 품격보다도 더 고상한 개이다. 지금 제키는 진통 중이다. 5년 전 첫 출산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출산이다. 혹시나 아기 예수처럼 강아지들이 크리스마스 날에 태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좀 늦어지는 것 같다. 안쓰러운 신음 소리에 마음이 짠하다.
7년 전, 우리는 옥탑 방에서 살았다. 아래층은 학원으로 사용했다. 어느 뜨거웠던 여름 날, 옥상에서 나의 생일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해가 질 무렵에 주부 영어 반 아줌마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삼겹살에 닭 꼬치까지 맛있는 파티가 익어갈 무렵에 아줌마 학생의 남편이 왔다. 부부가 모두 미술을 전공한 분들인데 40대 중반에 만나 결혼을 하여 아이도 없이 조촐하게 그러나 예술적으로 살고 있는 부부였다. 그는 나에게 생일 선물이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생일 축하 드려요. 이것은 생일 선물!!!” 하고 꺼낸 것은 까만 생쥐 같은 강아지 한 마리였다.
“이제 태어난 지 40일된 강아지예요. 애 엄마가 얼마나 이쁘고 영특한지, 이 강아지도 지 엄마 닮았으면 아주 이쁠거예요. 집사람이 강아지 키우는 것을 좋아하면 우리가 키울 텐데 워낙 싫어해서...”
“내가 언제 싫어한다고 했어? 단지 한 번 정이 들면 끊기 어려우니까 아예 안 키운다는 거지.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너무 좁아서 키우지도 못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거와 똑같지.”
이렇게 해서 그 강아지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그때 강아지를 거부했던 부부는 7년이 지난 지금은 세 강아지의 엄마 아빠로 살고 있다. 자식이 없는 관계로 세 강아지를 마치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동물과 대화한다는 사람의 책을 읽은 후로는 자신도 훈련하여 강아지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것이 인연이란 걸까? 그 집으로 갈 뻔했던 제키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이미 그 당시에 우리 집 옥상에는 개 다섯 마리가 바비큐 파티에 합류하고 있었다. 과수원을 하는 학부형이 풍산개 순종이라고 가져다준 봉구, 오빠 네가 기르다가 도저히 집안에서 못 기르겠다고 내쫒은 일명 쭈구리인 샤페이종의 난이(너무 못생겨서 못난이의 난이), 다리에 상처를 입고 떠돌아다니던 개가 어느 날 학생을 따라 우리 학원으로 들어 온 발발이 종의 루키, 역시 학부형 네서 준 똥개와 진돗개 사이에 태어난 달구, 아버지가 비오는 날 떠돌아다니던 개가 불쌍하다고 주워 오신 발발이종의 미키가 그들이었다.
예전 마당이 넓은 집에 살았을 때도 여러 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모두들 선물로 받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강아지라도 집안에서 키우는 경우는 없었다. 처음부터 밖에서 자라도록 길을 들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달랐다. 처음 주머니에서 꺼냈을 때 이 강아지는 완전히 생쥐였다. 징그러워서 어떻게 만질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너무 애처로워 밖에서 자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이 강아지에게는 럭키, 초키, 루키, 통키, 미키에 이어서 ‘키’자 돌림의 제키라는 이름이 주어져 우리 집 개 족보에 오르게 되었다. 그 당시에 우리 딸은 집을 떠나 인근 도시에서 대학생 조카와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외로움도 덜어줄 겸 데려가 키우면 되겠다싶어 어느 정도 우리 가족과 적응이 된 이후 제키는 자취방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주말에 집에 데리고 올 때는 가방에 쏘옥 집어넣어 버스를 타고 오곤 했다. 워낙 얌전해서 한 번도 버스기사에게 들킨 적이 없었다.
개들을 여러 마리 키우다 보니 우리 부부는 자격증 없는 수의사가 되어버렸다. 웬만한 질병은 거의 우리가 진단해서 동물 병원에 가서 약이나 주사기를 사다가 직접 치료를 하곤 했다. 애완견들의 진료비는 상당히 비싸다. 기본 진료비가 만 원에서 이만 원 정도이다. 언젠가는 애완동물들도 의료보험 수혜 대상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들에게도 사람이 걸릴 수 있는 질병이 거의 다 걸린다고 한다. 유방암에서 당뇨병에 이르기까지. 제키는 선천적으로 아토피성 피부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서 증상이 더하거나 덜 한다. 문제는 사람 먹는 음식은 안주고 개 사료나 간식을 주어야 하는데 식사할 때 옆에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면 도저히 안주고는 못 배긴다. 그러다가 가끔씩 고기를 주게 되면 그 종류에 따라 몸에 심한 발진이 돋게 되는 것이다. 아토피 피부질환에 좋은 치료 방법은 햇볕을 자주 쐬어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키 때문에라도 우리는 함께 산책 또는 등산을 자주 다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완견의 꼬리를 일부러 잘라준다. 꼬리에 성장 판이 있어서 생후 5일 이내에 고무줄로 묶어 놓으면 저절로 피가 안통해서 떨어진다. 그리하면 크게 자라지 않고 작은 상태를 유지한다. 개에게 있어서 꼬리가 생명인데, 어찌 그런 잔인한 일을... 인간의 잣대에 맞추어 꼬리를 자르고, 아파트에서 키우는 개들은 시끄럽게 짖는다고 성대를 제거하는 등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제키의 모습은 화려한 긴 꼬리에 당나귀같이 큰 귀, 늘씬한 허리에 기다랗고 늘씬한 다리가 있다. 산에서 뛸 때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꽃사슴이다.
이제는 제키가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던 얘기를 해볼까 한다. 개들은 보통 생후 7-8개월이 지나면 가임 시기가 된다. 제키가 2년째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만장일치로 제키에게 엄마가 될 기회를 주기로 합의했다.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암컷 개로 태어나 한 번쯤은 엄마가 되어 보는 것도 꼭 해봐야 할 일이라 여긴 결론이었다. 애견 센터에 데려다 주고 드디어 신방을 차리던 날, 아빠 될 개는 요크셔테리어 순종이었다. 그 날은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기 엄마가 될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 제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제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임신이 확인된 후 약 65일 만에 출산을 했다. 그동안 밖에서 키웠던 개들 중에 새끼를 낳았던 개들이 있어서 이미 산관 경험이 있었다. 자신들이 모든 걸 다 알아서 새끼도 잘 낳고 잘 기르고 하는 걸 알지만 애완견의 경우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 우리 가족들은 출산 예정일이 다가 올 무렵에 모두 분주해졌다. 인터넷을 통해 또한 이웃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토요일 오후,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나에게로 제키가 달려와 무릎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제키가 새끼 낳았어!!!” 부랴부랴 달려가 보니 자기 집에서 제키는 이미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 놓고 있었다. 어찌할 줄을 몰라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세 시간에 걸쳐 다섯 마리를 다 낳은 후에 밖으로 나와서 우리에게 꼬리를 쳤다. 아마도 다 낳았다는 신호였나 보다. 암놈 두 마리에 수놈 3마리. 인터넷에 의하면 탯줄 자르는 것도 도와주고 해야 한다는데, 심지어는 새끼가 나올 때 수건으로 잡고 빼줘야 한다는데 제키는 우리의 도움 없이 너무나도 기특하게 다섯 마리를 모두 정상으로 낳아서 탯줄관리부터 모든 처리를 직접 했다.
제키의 강아지들 다섯 마리의 모습은 각각 개성이 뛰어났다. 엄마의 젖무덤을 파고들어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제키가 가엾기까지 했다. 어찌나 엄마노릇을 잘 하던지, 정말 여느 사람보다 더 낫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제키가 나은 강아지들을 우리가 다 키울 수는 없는 형편이라 한 마리씩 나눠주기로 결정하고 나니 왜 그리도 마음이 짠하던지. 한 마리는 엄마와 두 딸이 우리 학원에 다니는 집으로 가서 ‘별이’라 불리고, 한 마리는 우리에게 ‘봉구’를 주었던 집에 보내어 ‘사랑이’로 불리고, 또 한 마리는 학생 네 집으로 보내어져 ‘독구’라 불리게 되었다. 남은 두 마리는 수놈과 암놈 한 마리씩. 왕초와 똘마니로 이름 지어져 우리 집 개 족보에 올랐다가 도저히 세 마리의 개를 키우는 것은 무리이다 싶어 그 둘은 함께 우리 학원 강사네 집으로 보내졌다.
이렇게 제키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크나큰 기쁨을 주면서 지난 7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했다. 한 달에 한번 시댁 가는 천리 길에도 동행하고, 아침저녁으로 분당에서 여주까지 출퇴근하는 길에도 동행한다. 어찌 가족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엄마를 닮아 개 키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 키우는 개들마다 우리에게 많은 사랑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와의 소중한 인연들이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자기 새끼 챙길 줄 알고 또한 주인에게 충실하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아는 개들과의 소중한 인연들... 내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행복이다. 이제 곧 제키의 2세들이 세상에 나온다. 그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가족과 살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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