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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

  • 작성일 2008-03-04
  • 조회수 448

뒤늦게 알게된 이야기였지만, 조셉 콘래드의 소설 'Heart of Darkness'가 의외로 많은 영화감독들이 영화소재로 탐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학교 도서관에서 예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게 됐던 이유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작가의 성 '콘래드'의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난 정말 대부분, 책을 볼 때의 동기가 참 쓸데없다.) 책은 뭐랄까, 참 심심했다. 단지 마음에 드는 것은 질 좋은 상아를 매번 공급해 주지만 정작 모습은 공개하지 않는 커츠의 모습이 궁금해 주재소 선원인 윌라드가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정과 후반부 쯤 가서야 처음 등장하는 병에 걸린 커츠가 윌라드에게 해 주는 이야기 정도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책을 봐서 내용은 기억 나지 않는데, 이 말은 기억난다. 이 말 때문에 후반부는 멋지다고 기억에 남아있다.

 

"무섭구나..! 무섭구나..!"

 

오손 웰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쟁쟁한 감독들이 소설을 각색하거나 감독직을 해 보려고 했으나 다들 성공하지 못 했다. 결국 이 작품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 것은 좀 다른 방식으로 됐던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아귀레, 신의 분노>였다. 책과 비슷한 점이라고는 엘도라도를 찾아나선 곤잘로 피사로가 부하들을 데리고 '정글로 들어간다'는 것과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정도다. 출연인원도 적은 편이었고 스케일도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면 우린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정말 거대한 영화라는 것을. 원작이 너무나 거대하기에 다들 각색, 감독할 엄두를 내지 못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때 쯤에 코폴라는 이 영화를 연출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존 밀리어스가 '도전'해서 '성공'한 각본을 가지고 말이다. 다소 '사나이스러웠던' 밀리어스의 초기 각본에서 그런 요소들을 삭제했고, 원작이 제국주의 시절의 아프리카였는데 영화판은 베트남 전으로 배경이 바뀌었다. (<코난 더 바바리안> DVD의 음성해설에서 "안녕하세요, 존 밀리어스 대왕입니다." 로 해설을 시작하는 존 밀리어스는 반골 기질이 투철한 건 좋다고 쳐도 너무 마초적인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마초 분위기 물씬 풍기는 판타지 <코난 더 바바리안>은 정말 걸작이었지만 진 해크먼이 나오는 <지옥의 7인>은 너무 유치했다.) 처음 내정된 감독은 조지 루카스였다. 코폴라의 회사인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는 워너 브라더스와 함께 조지 루카스의 장편 데뷔작이자 그의 진정한 걸작 <THX 1138>을 준비하면서 워너에게 후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가 될 <대부>, <컨버세이션>, <지옥의 묵시록> 시나리오를 건네줬는데 워너도 처음엔 이 영화들의 제작에 동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옥의 묵시록>을 아직 한창 전쟁 중이었던 베트남 전의 현장에 직접 가서 찍겠다고 하자 워너 브라더스는 결정을 미루기 시작했고 <THX 1138>이 흥행과 비평 면에서 철저하게 실패하자 조에트로프가 내놓은 시나리오들을 모두 거부하기에 이른다. 결국 코폴라는 파라마운트 사로 가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파라마운트만 좋게 된 셈이다.

 

이 영화는 <드라큘라>와 더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폴라의 영화다. (<대부>는....좋아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에 대해 다룬 영화들은 걸작들이 여럿 있다. <디어 헌터>, <플래툰>, <풀 메탈 자켓>, <7월 4일생>, <귀향> 등등... <디어 헌터>와 <플래툰>은 뭔가 서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풀 메탈 자켓>과 <7월 4일생>, <귀향>은 리얼했고. <지옥의 묵시록>의 영화 자체는 서정적이지도 않고 리얼하지도 않다. 대신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거대한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스케일도 스케일이겠지만, 이 영화는 '암흑의 핵심'으로 보는 이들을 발려 들어가게 만들어진 거대한 블랙홀 같은 영화였다. 관객에게 이렇게 느껴졌다는 것은, 영화를 만든 감독과 제작진에게도 동일하게 느껴졌다는 것일게다. 감독이 배우에게 총을 겨눴다는 후문이 있었던 <아귀레, 신의 분노>처럼 코폴라 역시 신경쇠약과 이혼까지 갈 뻔한 결혼생활 등, 이 영화 하나때문에 미치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 뒷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또 보게 된 이 영화는 내게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 대한 글은 잘 써지지가 않았다. 글로 감상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게 너무도 어려웠다. 내가 이걸 몇 번을 썼다가 찢고 멈추고 했더라? 아마 한 다섯 번은 했을 것이다. 2년 동안. 몇십장의 종이가 찢겨져 나갔다.

 

첫 장면부터 오프닝 타이틀 없이 도어즈의 'The End'가 흘러나오고 베트남의 정글엔 폭탄이 떨어진다. 폭바로 인한 붉은 화염이 생명을 불태운다. 그리소 손을 떼고 싶어도 이미 너무 깊게 들어와버린 윌라드란 남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나레이션과 술에 취해 거울을 깨고 울부짖는 그의 행동을 보면 (이젠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윌라드 역을 맡은 마틴 쉰은 거울을 실제로 깼다. 침대에 묻은 피도 실제 피다. 촬영현장에서 술 먹고 난동부리기도 했었다던데 오프닝의 이런 장면들도 술 먹고 찍은 것일까...) 그는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천장에 매달려 돌아가는 선풍기처럼 그는 빠져나가지 못한 채 맴돌기만 한다. 거부하지 못 하던 윌라드는 또 어느샌가 임무를 받으러 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맡은 임무는 (원작소설과 유사한) 정글에 들어가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커츠 대령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상관은 말한다. 그는 미쳤으니 다시는 그런 짓 못 하게 막으라고. 암살 임무다. 윌라드는 살인을 해야한다. 전쟁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빠져나가고 싶어했던 윌라드에게는 꽤 찝찝한 임무가 아닐 수 없다. 팀을 이뤄서 가는 이들도 자신에 비하면 한없이 순수한 이들이라 그의 불안감은 더해만 간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순수했던 코폴라와 그를 모시는 스탭들에게서도 그런 불안감이 느껴졌을까? 베트남이 아닌 필리핀에서 시작된 영화촬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캐스팅부터 오래 걸리더니만, 코폴라는 자신의 영화적 스승인 로저 코먼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큰 판단착오를 벌이고 만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준비를 했으니 미루기엔 너무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필리핀에서 촬영을 마친 로저 코먼은 코폴라에게 지금 가면 곧 우기가 시작되니 나중에 가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준비를 이미 다 해 놔서 코폴라는 결국 필리핀으로 가고 말았다. 필리핀의 상황은 코먼의 말 대로였다. 40년만의 허리케인이 몰아쳐 필리핀엔 비가 쏟아졌고 세트는 비 때문에 모두 망가졌다고 한다. 스케줄은 6주나 지연되기 시작했다. 코폴라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코폴라가 요구하면 요구 그 이상으로 준비를 했지만, 정작 아무도 코폴라에게 예산초과에 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고 조감독은 회고했다. 원래 이 작품은 대형급 영화는 아니었다는 거다. 코폴라는 불어난 제작비를 감당해내기 위해 본인이 직접 담보를 제시하면서 빚까지 지며 3천 2백만 달러라는 돈을 감당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는 촬영을 진행하면서 자주 재수정 됐고 영화 스탭들은 촬영 도중에 현실도피 하고 싶었는지 마약을 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글로만 봤을 때는 이런 이야기들이 경악 그 이상의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거기서 더 이상 느끼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스탭들이 마약을 한 것은, 베트남 전에 참전한 병사들이 공포와 불안을 잊기 위해서 마약을 하는 것과 같을테니까. 우드스탁, 히피, 60년대를 지나며 젊은이들이 부르짖은 사랑과 평화... 전쟁에 참전한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죄인이 되는 심정으로 그 곳에 있어야만 했다. 스탭들은 실제 베트남 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의 아내인 엘레노어 코폴라가 촬영현장을 찍은 다큐멘터리 <Heart of Darkness : A Filmmaker's Apocalypse> 에서 "베트남 그 자체" 라고 말 했던 것 처럼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진 그들의 모습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베트남 전을 '재현' 하는 것과 같았다.

 

윌라드 일행이 킬고어 중령을 만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전까지의 장면은 뭔지 모르게 즐거운 여행길처럼 느껴진다. 네이팜 냄새가 좋다고 말 하는 킬고어 중령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커츠 대령과 더불어 짧지만 굵게 가는 인물이다. 원래 거대한 영화였지만 관객들에게 다시금 그것을 인식시켜주려 했는지 (리덕스 버전으로 치면) 영화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지점에 영화의 가장 압권 중 하나인 헬리콥터 폭격 장면을 등장시킨다. 사실 '헬리콥터 장면'이란 것 자체가 흔한 장면이 아니라서 그런지 충분히 기억에 남겠지만, 이 영화가 헬리콥터 장면 그 이상으로 보여지게 하는 것은 바로 'Ride of the Valkyries' 덕도 있다. 음악이 절정에 다다를 때 헬리콥터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폭력이 미학으로 승화되는 순간'이 아닌 '미학이 폭력으로 승화되는 순간'이 보여지는 대표적 장면이다. 그 웅장한 곡이 어떻게 전쟁의 참혹함과 맞물려 사람을 총알받이로 만드는 폭력과 죽음으로 승화되는지를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시각적 쾌감이라는 이름 하에 둔갑하여 관객에게 전달된다. 정말 거대한....시각적....쾌감.... 이 싹쓸이 장면이 끝나고 난 뒤, 난 사람들의 이상한 반응을 봤다. 다들 이 장면을 영화의 절정으로 여기고 그 뒤의 이야기는 지루해서 못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럴리가! 비록 초반부가 조금 조용하긴 했지만 킬고어가 등장하고 나서부터 커츠가 죽을 때까지 <지옥의 묵시록>은 계속 관객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들을 선사한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리덕스의 추가장면 중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윌라드가 킬고어의 서핑보드를 훔치는 장면이었다. 솔직히, 내내 심각한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은 참 뜬금없이 사람을 웃기는 장면이다. 팀원인 랜스는 서핑선수, 윌라드와 팀원들은 재밌다는 듯 웃는다. 아직까지는 웃음이 나오지 이것들아...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에게 슬슬 '똘끼'가 보이기 때문에 앞에서 이런 장난기 어린 장면을 담는 것이 후반부에 광기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듯 하다. 특히 랜스의 변화를 눈여겨 볼만한데 태풍 때문에 촬영을 완료하지 못 했다고 삭제했지만, 결국 추가 삽입된 플레이보이 걸들과의 정사 장면에서 광기에 물들어가는 과정이 좀 더 구체화된다. 전쟁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파괴적인 본능을 일깨운다. 발정난 개 마냥, 'Suzie Q'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여자들을 보고 열광하는 병사들, 하지만 여자 중 한 명은 그런 시선을 괴로워 한다. 그는 랜스에게 그 점에 관해서 얘기한다. 그러나 랜스는 아무런 대답 없이 여자의 옷을 벗긴다. 인격적으로 대화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여자는, 그저 드럼통 하나에 든 기름과 바꾼 대가일 뿐이다. 이성은 마비됐다.

 

리차드 도너가 <슈퍼맨>을 만들 때 겪었던 문제들 중 하나는 말론 브란도의 캐스팅 비용이었다.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그를 캐스팅 하는 데   370만 달러가 들었다. 70년대에 제작자인 일야, 피에르 솔카인드가 제작한 <슈퍼맨> 제작 다큐멘터리 (<슈퍼맨> DVD의 네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에서 말론 브란도가 자신의 출연비용에 관해서 아주 차분하게 인터뷰 하는 부분을 보고는 '와.. 아무리 자기 출연료하지만 감독도 처음엔 기가 막혀 했다던데 어찌 저리 태연하게..' 란 생각이 들었다. <지옥의 묵시록> 때도 브란도의 캐스팅은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됐으며 당시로서는 큰 액수인 100만 달러가 그를 캐스팅하는 비용으로 지불됐다. 코폴라 감독과 커츠의 캐릭터에 관해 의논할 때, 코폴라와 브란도는 합의점을 찾지 못 한 듯 보였다. 마침내 브란도가 깨달았다며 촬영장에 나타났을 때, 그의 머리는 빡빡 밀려져 있었고 그의 몸매는 불어나 있었다. 의상이 맞지 않아 그의 모습은 대부분 상반신 위주로 찍어야만 했다. 코폴라는 <대부> 때를 생각해서 계속 브란도를 밀었는지도 모르겠다. <슈퍼맨>의 경우, 출연진에 말론 브란도가 있었기에 투자자들이 '진지한 영화'로 받아들이고 많은 제작비를 조달해줬다. 그렇다면 <지옥의 묵시록>은? 짧은 출연 시간 내에 이렇게 멋진 연기를 해 낼 수 있는 배우는 아마 드물 것이다. (<파리, 텍사스>의 나스타샤 킨스키 정도?) 킬고어 역의 로버트 듀발과 더불어 말론 브란도의 커츠는 정말... 최고다. 이들 때문에 전쟁에 지겨울 정도로 찌들어버린 연기를 정말 훌륭하게 소화해 낸 윌라드 역의 마틴 쉰이 밀려버렸구만. 훗.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비토리오 스토라로와 말론 브란도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순간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다. 커츠는 정말로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다. 커츠의 주둔지에 도착해서 미국인 종군 기자의 도움을 받아 (주둔지를 보고 순간적으로 다시 <아귀레, 신의 분노>가 떠올랐다. 큰 상관은 없다만.) 커츠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어둠의 공간에서 그는 시체처럼 똑바로 누워있다. 윌라드가 들어가자 커츠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진 채 등장한다. 어떻게 커츠를 어둠 속에 가릴 생각을 했을까? 얼마 보이지 않는 빛으로 신체의 일부만 보이는 그는 너무나도 신비롭다. 그리고 그가 어디서 왔냐고 처음 말을 하는 순간, 그의 목소리 하나로 영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결정되어진다. (T.S.엘리엇의 시 'The Hollow Man'을 읽을 때는 최고!)

 

"그의 정신은 말짱한데, 영혼이 미쳤어."

 

처음 커츠를 본 윌라드의 말은 '그에겐 방식 자체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윌라드와 커츠는 어떤 접점을 찾질 못 한다. 윌라드는 다시 감옥에 갇힌다.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이는 바로 미국인 종군 기자이다. 그는 윌라드에게 여러가지 많은 말들을 해 준다. 그의 말은 너무도 철학적, 형이상학적이라 보는 사람은 그 종군 기자를 통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그의 말이 이해됐어? 아주 간단한 변증법이야. 숫자처럼 혹시라던가 추측, 일부는 없어. 우주로 여행하거나 우주로 갈 수는 없어. 부분적으로 어디에 착륙하지? 4/1이나 3/8로 금성 같은 곳을 어떻게 가? 이게 변증법적 물리학이야. 변증법 논리에선 사랑 아님 증오야. 사랑 안 하면 증오하는 거지."


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야. 우리 꼴을 봐! 그저 흐느끼고 있어."

 

커츠는 그를 얼간이라고 부른다. 그를 믿었던 나 역시 얼간이였다. 저런 말은 필요가 없다. 타인에 대한 자기 멋대로의 판단을 옳다고 볼 수 있을까? 커츠가 그를 얼간이라 부르는 건, 그가 커츠의 폭력을 하나의 철학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커츠에 관해서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 중에서 귀담아 들을만한 건 이것 뿐이다. 정신은 말짱한데 영혼이 미쳤다는 것. 단지 이것 뿐. 그이 말, 그의 정신은 사랑이나 증오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전체의식이라 할 수 있는 '공포'에서다. 난 커츠가 공포에 관해서 윌라드에게 얘기 해 주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이 장면에서의 영상 스타일은 정말 극단적이다. 어두운 화면, 말 그대로 어두운 화면에서 어둠에 묻힌 커츠의 얼굴이 몇 분 동안 계속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앞에선 조셉 콘래드의 말에 나름대로 충실했었던 것 같다. 자연 앞의 우리는 난쟁이에 불과하다는 말 말이다. 그 자연에 압도되어 점점 지쳐가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이젠 아니라고 선언한다. 커츠는 이성 없이 원시적 본능에 따른 살인을 설명하며 자신의 특수부대원들이 한 마을에 들어가 그 곳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했었던 일화를 얘기한다.

 

"예방접종을 하고 나서는 그 곳을 나오는데 웬 노인이 우리에게 달려와서는 울부짖더군. 우리가 다시 가보니 아이들의 예방 접종을 받은 팔을 잘라내고 있었어. 통 속에 팔들이 쌓여있었어. 수북하게... 군대를 만든다면 우리에겐 이런 군대가 필요해."

 

자연은 자연을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 있다. 너무도 쉽게 말이다. 킬고어가 폭격하는 장면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더 있다. 헬리콥터 중 한 대가 착륙했을 때 한 베트남 여인이 슬쩍 오더니 헬리콥터 안에 수류탄을 집어넣는다. 헬리콥터는 폭발하고 여자는 죽는다. 미군이 접종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팔이 잘린다. 군인들은 미쳤다. 이념도 미쳤다. 전쟁은 미친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자신의 광기를 드러낸다. 그들의 정신은 멀정하다. 그럼 왜? ...영혼이 미쳤으니까. 미친 인간들이 세운 문명이 정상일리가 없다. 커츠라는 인물은 그 사실을 꽤 빨리 깨달았다. 이젠 자연보다 인간이 훨씬 위협적이라는 것, 그런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은 광기,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는 윌라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에게서 도움을 얻으려 했던 윌라드가 오히려 도움을 줘야 할 입장이다. 그리고, 도어즈의 'The End'가 다시 삽입되며 소의 도살 장면과 교차되는 커츠의 인상적인 죽음 장면이 등장한다.

엔딩을 보면 전쟁의 어둠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윌라드가 커츠의 어둠을 이어받아 (커츠를 죽인 후, 커츠처럼 어둠에 묻힌 윌라드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더 큰 '암흑의 핵심'으로 빠진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윌라드도 나름대로 구원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살인을 하고 난 후 그 공포를 받아들이다. 그리고 그 공포와 '친구'가 된다. 어둠 속으로 더 깊이 파묻힌 덕에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안식을 얻는 것에 성공한다. 애초부터 그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대신 그 대가로 그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봤던 지옥의 주변장소들과 마침내 보게 된 '지옥'을 평생 기억하며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 가며 살아야만 한다. ...우린 이것을 보지 못 하고 살아가니 어쩌면 행운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코폴라는 보고 말았다. 이 영화는 그 결과물이다.

 

<지옥의 묵시록>은 어렸을 적에 비디오로 본 것이 첫 감상이었다. 하지만 워낙 어렸을 적이라 비디오로 발매된 극장판은 몇 장면 제외하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영화를 '처음' 제대로 보게 된 것은 리덕스 버전을 봤을 때라고 할 수 있겠다. <지옥의 묵시록>은 최종 촬영 분량이 250여 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코폴라 감독은 여러 명의 편집자들을 동원해 편집을 시작했고 77년에 7시간, 78년에 5시간으로 길이를 만들었다. 편집 도중 '관객을 이해시키려면 나레이션을 넣는 게 좋다'는 월터 머치의 의견에 따라 나레이션을 삽입하고, 그게 코폴라의 승인을 받는다고 1년이란 기간이 더 걸렸다. 칸 영화제에 미완성 편집본을 출품하고 그 후에야 2시간 33분의 극장판이 등장했다. 이 극장판과 50분 가까이 추가된 리덕스 판을 비교했을 때 내 기억으로는 극장판이 '생략의 미학'이 있었던 것 같다. 극장판은 리덕스 보다는 생략과 암시로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다. 묘하게, 그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됐다. 원인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덕에 극장판은 '미국의 폭력'을 넘어 인간문명의 폭력을 인상적으로 경고했다. 그리고 현재 난 극장판을 볼 수가 없어서 (사실 이럴 때마다 집에 있는 리덕스 타이틀을 보면서 'The Complete Dossier' 버전 DVD를 살 걸 하는 후회도 든다.) 기억이 가물가물한지라 정확히 맞는지 모르겠는데 극장판은 커츠의 주둔지가 폭격을 당해서 초토화 되는 엔딩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 장면은 마치 피를 피로 씻는 듯한 느낌이었다.

 

리덕스는 못다한 이야기를 한다. 그 못다한 이야기를 통해 코폴라 감독의 의도는 확실해진다. 그가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인간문명이 아닌 미국이다. 리덕스의 추가장면들은 그 나름대로 힘을 발휘한다. 사진 기자와의 대화 장면도 그렇고 여자들과 기름을 맞바꾼 정사장면도 그렇고... 커츠가 윌라드에게 타임 지를 읽어주는 장면은 극장판에선 어둠 속에서 살던 커츠를 밖으로 불러내어 신비감을 떨어뜨린 단점이 있지만 (더불어서 후덕한 말론 브란도를 보는 단점도..) 그의 목소리로 듣는 정신 나간 정부와 군수산업의 폐해는 보는 사람의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된다. 그리고 코폴라의 메세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프랑스인 농장 장면이 있다. (<Heart of Darkness : A Filmmaker's Apocalypse> 에서 코폴라는 이 장면이 별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삭제 했었다고 하는 것 같던데.. 음..) 프랑스 농장의 여인으로 나와 자신의 출연분량이 잘려 나가는 걸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오르 클레망이 다시 찾아와서 후시녹음을 할 정도로 정성을 들인 듯한 이 장면에서 나는 프랑스인들을 미국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유령처럼 묘사했다는 코폴라의 설명을 보고 '별 관련도 없는 장면같은데 너무 긴 거 아닌가?' 란 생각을 거뒀다. 프랑스는 베트남 내에 있는 카톨릭 신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1858년, 베트남을 침공하여 40여년 간 식민지 정책을 벌이다 1899년에 인도차이나 연방을 이룬다. 1930년부터 호치민이 홍콩에서 공산당을 조직하여 프랑스에 대항하기 시작하고, 50년대엔 활주로를 탈취하고 보급을 차단해 베트남은 마침내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냈다. 프랑스에게는 그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전쟁이 바로 베트남 전이다. 이 프랑스 농장 가족은 '자신의 땅'을 '침공'하는 베트남 인들을 살해한다. 그들은 윌라드에게 자랑스러운 듯이 그들이 죽인 사람들의 수를 보여준다.

 

"우린 2차 대전 패자지만 당신네 미국이 승자는 아니야! 우린 디엔 비엔 푸에서도 졌고 알제리에서도 졌어! 인도차이나에서도! 여기서만은 질 수 없어!"

 

모두가 떠나간 뒤에도 그 일가족은 여전히 그 곳에 남아 과거의 적과 싸우고 있었다. 이 장면이 윌라드가 꾼 꿈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거기 있었는지는 모호하게 처리되어져 있다. 베트남 여자는 헬리콥터에 수류탄을 넣고 원주민들은 아이들의 팔을 자르고 프랑스인은 외로운 사투를 계속하고 있다. 참 잔인한 자존심이다. 리덕스 버전은 감독의 의도를 확고히 하며 인류문명의 야만성을 미국의 행위로 확실히 규정지었다. 극장판의 초월적인 면에 비하면 느낌이 축소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지만, 두 버전의 느낌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 버전 차이의 재미를 느끼려면 이 정도는 만들어야지. <지옥의 묵시록>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주제를 향해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도 리얼해서 소름이 다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