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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부자

  • 작성일 2007-08-01
  • 조회수 319

 

사거리 횡단보도 앞 ‘완전폐업’이라는 글씨가 어지럽게 흔들린다. “양말이 200원 푹푹 삶아도 괜찮아, 아이들 야광 빤스가 500원 바닷가에서 잃어버려도 걱정없어, 조여주고 받쳐주는 브라자가 2,000원 와! 싸다 싸”

염천의 대낮 시멘트 바닥만큼이나 달아오른 장사꾼 아저씨의 목소리가 길가는 아낙들을 붙잡는다. “어! 거기 할머니 빤스 하나 사가셔 할아버지 런닝구도 하나 사고” 넉살 좋은 아저씨 입담에 신호대기하던 사람들 해님만큼이나 밝게 웃는다.

안 사면 손해인 양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들었다 났다 하는 손에 식구들 얼굴 올려져 있다.

오메! 왜 이리 싼겨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 쪼그리고 앉아 요리보고 조리보며 참말로 물건도 흔하다 한다. 할머니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릴적 추억 슬그머니 떠 오른다.

아침에 교복을 입고서 양말을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어젯 저녁에 분명히 하얀색 양말을 봤는데…… “엄마 양말 없어요”하니 이상하다 하시면서 아무거나 신고 가라고 한다. 버스 시간은 다 되었고 맨발로 갈 수 없어 누런 양말을 찾아 신고는 누가 볼세라 발을 숨기던 생각이 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할머니가 교회에 가실 때 신고 가려고 몰래 감춰 두었다고 한다. 식구들은 많았고 양말은 귀했다. 먼저 챙겨놓지 않으면 구멍난 양말을 신을 수 밖에 없었고 그것도 없으면 맨발로 다녀야 했다. 아침마다 양말 때문에  전쟁 아닌 전쟁이 일어났다.

그렇게 귀했던 양말이 헐값에 팔리고 있다. 200원이면 아이들도 받지 않는 돈이다. 할머니 말대로 물건이 흔한 세상이다. 헐값에 팔리는 양말이지만 그것도 양만큼 못산다.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맘에 꼭 드는 물건을 사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땀 흘리며 뒤적거린다.

색깔별로 다 사도 몇 푼 안되는데 참 이상도하다. 200원짜리 양말 하나 사면서 바느질은 제대로 됐는지 껄그럽지는 않을지 색상은 괜찮은지……

전봇대에 붙여진 ‘공장매매’ 전단지 헐값에 나부끼거나 말거나 싸게 더 싸게 깍고 또 깍으며 덕분에 저녁상에 꽁치 한 마리 올릴 수 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깡마른 아주머니 얼굴 위로 늘어진 햇살 공짜라고 슬금슬금 내려앉는다.

나 역시, 푼돈을 푼돈으로 쓸수 없는 가난에 길들여진 사람들 틈에 끼여 이것 저것 한 보따리 사 들고 무슨 수지나 맞은 양 만면에 웃음 가득하다.

비록 헐값에 팔리는 속옷만큼이나 헐한 생을 살고 있지만 결코 헐하지 않은 삶의 철학이 봉지마다 가득 담겨져 있어 마음만은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