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박
- 작성일 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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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박
조 신 호
나무로 만든 것이면 과반(果盤), 함지박, 바리, 제기(祭器) 등 어느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좋아 한다.
구례 화엄사 기념품 상점에서 괴목(槐木)으로 만든 나룻배 모양의 과반 하나를 사게 된 것이 첫 인연 이였다. 그로부터 목기가 마음 속 한 구석을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은 목기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마음 한 구석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목기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옳다. 한참 잊었다가도 다시 대면하면 여전히 반가운 심정이 물결치는 것이 목기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목기와 천생연분이 새겨진 모양이다.
작년 가을 우리 가족이 가야산 해인사를 찾았다. 입구의 상가에 여러 가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나의 시선은 계속해서 목기 진열대 쪽으로 쏠려 있었다.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과반, 함지박, 필통 등이 각기 특이한 모습으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바로 오동나무의 하얀 속살을 파내고, 겉과 속을 불 인두로 약간씩 문질러 구운 다음, 투명한 도료를 칠해서 만든 함지박 이였다. 모양이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것이 흡사 어느 농촌 마을 돌담 위에 덜 익어 말라버린 조롱박 같았다. 만져 보니 흡사 종이로 만든 공처럼 가벼우면서 촉감이 다정했다. 어물거리다가 사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 후 오랜 세월동안 그 어눌한 모습의 오동나무 함지박이 눈에 아른거린다.
지난 여름에 남원 광한루 앞 상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기 명산지에 왔으니, 한 가지 꼭 찾아보고 값이 적당하면 사려고 마음먹었다. 서둘러 이집 저집을 다니며 기웃거렸다. 운이 좋게도 세 번째 집에서 바리때 한 벌을 찾게 되었다.
“이 근처 어느 집에도 없는 겁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낮은 미소를 지으며 바리때 한 벌을 내밀었다. 은행나무를 곱게 파고 다듬어 만든 은근한 곡선, 불그레 둥근 모습이 마치 달마의 미소를 보는 듯하다. 두껑을 열고 차분히 겹쳐진 그릇 세 개를 하나씩 뽑아드니 붉은 옻칠 냄새가 진하게 다가왔다. 매우 정교한 솜씨로 만든 부드러운 작품이었다. 웬만하면 사고 싶어서 값을 물어 보았다. “좀 비싼 겁니다.” 하고, 잠시 대답을 멈추더니 “30만원은 받아야 합니다.”하면서 웃었다. 그만한 돈이 수중에 없었다. 마음에 드는 걸 살 수 없는 야속한 심정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이 목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목기들의 나뭇결이 좋다. 천년이 넘게 살 수 있다는 홰나무, 즉 괴목(槐木)에는 차분하게 안정된 흐름의 세로결, 희끗한 덧니 같은 여유가 비치는 가로결, 이 두 가지 문양이 굽이치는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다. 물푸레나무의 시원시원한 나이테는 서늘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지친 가슴을 어루만져 준다. 흐르는 물결을 한참동안 손끝으로 만져보고 손바닥으로 문질러 보아도 도무지 싫증나지 않는다. 박달나무의 엷은 밤색 칠한 모습을 보면 달콤한 석감주 한 잔이 생각나고, 투명 도료를 입힌 모습에는 젊은 새악시의 모시 적삼 속살 같은 느낌을 준다. 이렇듯 나무의 재질에 따라서 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목기의 매력이다.
그리고 목기들의 다양한 모양이 좋다. 만드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원형, 타원형, 장방형, 또는 나무가 자란 모습 그대로 깎아서 가장자리가 구불구불한 모양도 있다. 그러니까 목기는 특정한 원칙도 정해진 원형도 없이 손끝에 스며드는 생각으로 만든다. 모양과 크기를 구애 받지 않고 빗어내는 여유가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이는 수필의 자유분방한 형식과 감동적인 느낌과 닮은 듯하다.
연한 밤색 칠 함지박은 나무결의 명암이 중첩되어 고요한 연못에 산그늘이 숨어 비치는 은근함을 주어서 좋고, 짙은 옻칠한 바리는 견성(見性)을 위해 명상하는 구도자 같아서 좋다. 본래의 나뭇결에 투명한 도료를 칠한 것은 밝은 햇살이 분망하게 스며드는 냇가에 서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좋다. 또한 같은 나무로 만들어도 타고난 재질과 칠하는 방법과 농도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색깔의 미소를 짓는다.
모양, 크기, 색깔, 재료, 그리고 종류가 어떠하던 간에 목기는 수수하고 서민적이어서 좋다. 금이나 은이 아니더라도, 금속으로 만든 그릇은 잘 닦으면 찬란한 빛을 발산하여 보는 이를 눈부시게 하여 부담스럽다. 도자기는 목기에 비해서 어딘가 귀족적인 냄새가 난다. 아름다운 문양(文樣)과 대가(大家)들의 서화(書畵)를 비단옷처럼 입고 연회장을 찾아드는 화려한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는 것이 도자기류이다. 이와 다르게 어께가 턱 갈라진 밤나무 제기(祭器)를 보면 어느 산기슭 구수한 황토 냄새가 나고, 풀을 먹던 황소가 먼 하늘 흰 구름 보며 이빨 드높이 웃는 풍경이 떠올라서 좋다.
목기는 투박하고, 소박하고, 수수하다. 목기는 막걸리 한 잔을 꿀꺽 마시고 젖은 입을 쓱 닦으며 돌아서는 아저씨의 미소 같기도 하고, 방금 쪄낸 옥수수의 손목 같기도 하고, 듬성듬성 칼자국이 보이는 손국수를 안반 위에 펼쳐 놓은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을 늘 준다. 호비칼 자국이 손국수처럼 가득 들어있는 큰 함지박을 양지쪽에 두고 보라. 그 안쪽이 햇살에 번득이는 은어(銀魚) 때의 비늘이 번득이는 강물처럼 아름답다.
이러한 이유와 함께, 무엇보다도 내가 목기를 좋아하는 점은 “무엇”을 담을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 때문이다. 모든 그릇은 무엇인가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과반(果盤)에 과일이나 과자를 담을 수 있어서 좋지만, 아무 것도 담지 않은 텅 빈 모습이 더 좋을 때가 많다. 빈 그릇에도 침묵과 가능성 그리고 무한한 자연이 가득 담겨 있잖은가?
구례 화엄사에서 사온 박달나무 함지박을 옆에 두고 내 자신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형상의 그릇인가? 어떤 색채로 무엇을 담아 어떻게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 앞에서 사온 목기에는 오랜 세월 수도하던 승려들의 화두가 담겨있어 좋다. 통도사 앞에서 사온 둥그스름한 얼굴의 자작나무 함지박이 미소를 머금고 신라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처럼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텅 빈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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