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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 마 ( 落 馬 )

  • 작성일 2008-08-21
  • 조회수 365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8월의 무성한 녹음을 자랑하는 느티나무는 나를 말없이 반겨준다. 나는 가방을 열람실에 내려놓고 '정각원'으로 향했다.'정각원'의 그 높은 계단을 쉼없이 올랐다.숨이 턱에 까지 차 올라왔으나 호흡을 가다듬고 참배했다. 타들어가는 향내가 감미로왔다. 법당에 앉아서 바깥을 보았다. 학교 운동장위로 남산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법당을 빠져 나왔다. 저멀리 남산타워가 성냥개비를 세운듯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무더운 여름날의 태양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시계는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험은 30분후에 시작될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시험장소로 향했다. 시험장소에는 많은 응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웅성대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곁을 스치며 아는체 한다. 자세히 보니 '박상진'이다. 그는 내자리 몇 칸뒤에 앉았다. 시험공부를 제대로 다하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포기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보는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감독관인 듯한 남자 두명이 두툼한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한사람은 삼십대 중반정도 되 보였고,나머지 한사람은 사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시험지가 배부 되었다. 시험지가 바람에 날려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재빨리 주웠다. 감독관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기분나쁜 웃음이다.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시험이 시작 되었다. 우리에겐 백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시험문제는 모두 네 문제 였다. 여기저기서 글쓰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나는 쉼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 듬었다. 1번 문제를 보았다. 열줄정도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어려운 영어단어는 없는듯 했다. 나머지 세 문제들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1번 문제를 번역해 나갔다. 그러나,그 중에서 단어 몇개는 그 의미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고 머리속에서 빙빙 맴돌았다. 나는 네 문제 전부에게 각각 시간을 이십분씩 배분했다. 그 다음 문제를 보았다. 다소 쉬워 보였다. 나는 번역을 최대한 잘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답안지 뒷면에다 연필로 2번 문제부터 대략적으로 번역한 후 답안지에 볼펜으로 옮겨쓸 생각이었다. 어디선가 헛기침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는 죽은듯 조용하다. 다만 여기저기서 다급하게 글씨를 써내려 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장충단 공원 쪽에서 비둘기 한마리가 날아와서 창가에 앉았다가 다시 날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4번 문제를 써 내려갈 무렵,감독관이 종료시간 30분 남았음을 알려 왔다. 누군가가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초조해 졌다. 시간이 부족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연필로 초고를 작성하던 것을 그만두고 답안지에 바로 번역해 나가기 시작했다. 손에서 땀이 흥건히 배어나서 볼펜이 자꾸 미끄러졌다. 뒷쪽에서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손끝이 떨려왔다. 글씨가 잘 씌여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침작해라...침착해야한다." 나는 나에게 소리쳤다. 자리가 좁고 불편했다. 나는 감독관에게 맨 뒷자리가 비어 있으니 빈자리에 가서 시험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자리를 옮기자 마자 곧바로 연필로 번역한 2.3.4 번 문제를 답안지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글씨체가 마구 흔들렸다. 글씨가 자꾸 칸을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감독관이 십분 남았음을 알려 왔다.

 

 나는 마지막 4번 문제를 답안지에 옮기면서,무언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간자리에 젊은남자 한 사람과 나 뿐이었다. 나는 가쁜숨을 몰아 쉬었다. 감독관이 내게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나는 비어있는 1번 문제를 답안지에 번역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가온 감독관이 이제 작성을 그만하고 빨리 답안지를 제출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 졌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번역해 나갔다. 감독관이 2차 경고를 발했다. 지금 제출하지 않으면 답안지를 회수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강경했다. 그리고 사뭇 위압적으로 들리기 까지 했다. 나는 더 이상 번역하지 않았다. 세번째 단락에서 그만 두었다. 더 이상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써내려 간다면 그는 답안지 회수를 중단하고 퇴실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에게 답안지를 순순히 제출했다. "시험이 어려우신가요..."그는 낮은 어조로 내게 말했다. "이정도의 시험은 시간만 넉넉하면 얼마든지 번역할수 있어요...". 나는 그에게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그와 그의 동료는 수거한 답안지를 정리해서 강의실을 나가 버렸다.

 

 텅빈 강의실에 혼자 남았다. 창밖을 보았다. 장충단 공원쪽에서 날아온 회색 비둘기 한 마리가 창가에 내려 앉았다. 유리창을 부리로 마구 쪼아 대었다. 그 바람에 유리창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심하게 흔들렸다. 이번 시험에 떨어진다면 다시 한 학기를 기다려야 한다.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꼈다. 나는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아~아 오늘도 남산자락 어디쯤엔가 걸려있을 구름 조각들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 로부터 약 한달이 지난 어느날 이었다. 아침을 먹고난 뒤 였으므로 의례적으로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다. 창가쪽에서 무엇인가가 유리창을 톡톡치는 소리가 났다. 자세히 들어 보면 그것은 날카로운 물건으로 유리를 긁어 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소리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방문을 열자 창가에 시커먼 물체가 앉아 있다가 휙 하고 날아갔다. 회색 비둘기였다. 나는 멍하니 서서 비둘기가 건너편 아파트 너머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간 나는 '박상진'에게서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 "형님... 미안해요! 저만 졸업시험에 합격해서...꼭 합격하실줄 알았는데...조만간 한번 찿아 뵙겠습니다.<상진> ". 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목덜미를 핥고 지나갔다.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가을이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2008년 08월 21(목)

 

김 동 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