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手)
- 작성일 200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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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 들어,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고생한 손을 깨끗이 씻고 핸드크림을 바르며 마사지해주는 일이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얼굴도 마사지하는 일이 없는 내가 손을 마사지하게 된 것은 아주 큰 변화이다. 음식점을 하는 나로서는 아침부터 일어나서 영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물 놀음을 한다. 어디 물 놀음 뿐 이랴.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특히 주방 일을 하는데 있어서 손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도구이다. 물 놀음 외에도 식재료를 다듬고 썰고 무치고,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내 손, 별난 주인 만나서 참 별걸 다 한다.
내 손은 좀 특이하게 생겼다. 우선 크기 자체가 보통 여자들의 손 보다는 크고 두툼하다. 두꺼비 손이라고들 한다. 좋게 말하면 복 손이요, 나쁘게 말하면 일손이다. 엄지는 소위 말해 뱀 대가리 모양의 단지(短指)요, 이와 조화롭게 나머지 손가락도 짧다. 남들과 악수를 나눈 후에 듣게 되는 말은 “손이 참 두툼하네요.” “아기 손 같이 보드랍네요.” “손을 보니 부지런하게 생겼네.” 등등이다. 외모적으로 손이 크다는 말 외에도, 음식을 할 때, 양도 많이 하고 남 주기를 좋아하는 탓에 ‘손이 크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손이 큰 여자’하면 좀 긍정적인 것 같은데, ‘큰손’하면 왠지 검은 냄새가 나니 언어의 마술이라고 할까?
악세사리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나의 양 손은 밋밋하다. 그 흔한 반지 하나 없고 손톱은 흰색 부분이 안보일 정도로 짧다. 나는 특히 내 오른 손을 사랑한다. 오른손잡이 이다보니 거의 오른손이 모든 일을 다 한다. 왼손은 그나마 좀 예쁜 편인데, 오른손은 모양도 좀 휘었고 가운데 손가락에는 펜을 많이 써서, 아니 힘을 너무 많이 주고 써서 굳은살이 깊게 배여 있다. 1980년대, 대학생 출신들이 노동운동을 위하여 소위 위장취업이란 이름으로 공장으로 들어갔다. 회사 측에서 제일 먼저 위장취업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보는 것이 바로 연필을 쥐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밴 정도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소위 가방 끈이 길다는 것과 연필 쥐는 손가락에 밴 굳은살이 비례한다는 것이다. 굳은살이 심하게 밴 나로서는 위장취업은 아예 꿈도 못 꾸었을 일이다.
어릴 적 내가 본 엄마의 손은 분명코 마이다스의 손이었다. 손만 대면 모든 물건을 금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손은 무엇이든 잘 만들고, 잘 고치는 재주꾼이었다. 맛깔스런 음식은 두말 하면 잔소리요, 생활 속에서 불편한 것을 절대 못 참는 성격 탓에, 엄마의 손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였다. 평범한 엄마로서의 손뿐만 아니라, 소위 맥 가이버 손 역할을 하느라 고도 바빴다. 남의 집 구들이 시원찮아 방이 따뜻하지 않다고 하면 기꺼이 달려가 엄마 손으로 아궁이를 뜯어내고 고쳐주어 방이 절절 끓게 만들었고, 무슨 일이든 남이 불편하게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걸 편하게 고쳐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 손이었다. 동네에 가난한 새댁들에게 엄마의 손은 아기를 받아주는 산파의 손이었고,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아픈 배를 들이대면, 엄마 손은 또 씻은 듯이 아픈 배를 낫게 하는 약손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8년이 지난 지금, 안타깝게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엄마 손의 모습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이 툭 불거져 나와 휘어있는 손이다. 마이다스 손을 가진 엄마는 정작 그 손으로 당신 자신의 인생을 편하게 하는 능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젊었을 때의 엄마 손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 손이 엄마 손을 닮았지 않았을까하며 손을 쳐다본다. 불에 데고 칼에 베고 뭔가에 찔린 상처로 어수선하다. 순간 엄마의 손이 겹쳐진다. 두 손을 맞잡고 열심히 문지른다.
“이제 손이 엉망이어서 남들 앞에서는 손도 못 내밀겠네.”
“일한 손이 가장 아름다운거야. 그 손이 어때서?”
남편의 말이다.
복 손이던 일 손 이던 간에 두꺼비 같은 내 손이 마이다스의 손이었으면 좋겠다. 음식이던 글이던 내 손을 거쳐 나오는 모든 것들이 나와 더불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그런 마법의 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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