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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손님

  • 작성일 2008-11-18
  • 조회수 362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는 여름손님.

오늘에야 우리 집에 머물렀던 그 여름 손님이 댁으로 돌아가셨다. 나의 여름손님은 어머님의 남동생 되시는 분. 즉, 나에게는 시외숙부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어머님과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통화를 하시며 서로의 정을 나누시는 참으로 우애 깊은 남매간이시다.

3녀 2남. 그 중에서 맏이셨던 어머님과 남매 중에서는 셋째가 되시지만 장남이셨던 시외숙부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동생들에겐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셨던 분들이시다. 남편보다도 마음으로 남동생을 더 위하셨고 아내보다도 마음으로 누님을 더 생각하시는 두 분은 내가 알기에도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그런 남매간이시다.

 

외숙부님은 칠순을 갓 넘기셨는데 직장을 정년퇴직 하신 뒤로도 가까운 친지 분의 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올해 봄 퇴직하셨으니 칠십 평생에 처음 갖게 되는 시간의 여유가 오히려 힘이 드셨던 것 같다. 지난 유월에 우리 집으로 누님 뵈러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정말 잠깐 다녀가시는 줄로만 알았었다. 산본에서 일산. 1시간 반이면 도착되는 거리라 설마 며칠씩이나 머무르실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은 특별한 귀띔도 해 주지 않으시다가 갑자기 외숙부님이 오신다고 하시더니 오시기 바로 전에야 며칠 계시다 가실 거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본능적으로 나는 `싫다'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남자어른 분을 며칠씩 모신다는 것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데 그렇게 내 생각은 안 해 주실까? 안 그래도 시부모님 모시고 나름대로 힘들게 사는 나에게 너무 배려를 안 해 주시는 것 아닌가?' 미리 힘들 거란 생각으로 억울해 하다 보니 정말로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하지만, 어른들 앞에서 어찌 싫은 내색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마음을 고쳐먹으며 잠시 눈을 감고 도 닦는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를 조절했었다.

`남매간의 정이 저리도 애틋하신데 내가 싫다고 내색하면 그건 도리가 아니지, 어머님의 연세도 일흔을 훌쩍 넘어 일흔 일곱 노인이시고 외숙부님조차 일흔 넘기신 분이니 앞으로 이럴 기회를 또 만들기도 힘들 텐데... 그래, 한 번만 눈 딱 감고 정성껏 잘 해 드리자. 한 번만...'

이렇게 맘을 고친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는 밝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두 분의 맘을 편하게 해 드렸었다.

 

외숙부님은 나에게 참 다정다감하게 잘 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나의 변변찮은 음식솜씨에도 애썼다, 맛있다하시며 나를 편하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니 어느새 나도 고단함을 잊고 그래도 넉넉한 맘으로 며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댁으로 돌아가시는 날 나는 인사말로 또 오시라는 말씀을 드렸고 외숙부님도 웃음으로 답하시고 가셨다. 정말로 나는 앙큼하게도 그것을 그저 인사치레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댁으로 돌아가신 외숙부님은 도착인사 때문에 전화를 하셨는데 어머님께 정말로 다시 오신다고 하시며 날짜까지 말씀해 주신 것이다. 공휴일을 끼워 5일간 계실 것으로 일정까지 잡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한 번일 줄 알았는데... 아무리 수월하게 해 주시는 분이지만 그래도 어찌 어려움 없고 신경이 안 쓰일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정말 속이 상했다.

 

차라리 어머님이나 외숙부님께서 나를 힘들게 하시거나 배려라곤 전혀 하실 줄 모르는 분이시라면 둘러 둘러서라도 나의 힘듦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은 나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계셨고 또 그 미안함이 내게도 읽히는 터라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외숙부님께선 그런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누님 곁에서 많은 날을 계시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셨던 것이다.

 

노년이 되면 부모형제 생각이 더 애절하다던가?

내가 헤아려드리자면 어찌 못 헤아려드릴 것인가마는 그래도... 그래도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억울함은 내 옹졸한 못된 마음이 떨군 것인지 나를 계속 고통스럽게 한다. 이번에는 채 도를 닦기도 전에 외숙부님이 오셨고 한여름 날씨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열을 뿜으며 부엌을 후덥지근하게 만들었다. 외숙부님이 우리 집에서 또 며칠 머무르고 계신다는 것을 아신 친지 분들은 한결같이 내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어머님은 넌지시 나에게 그런 말씀을 꺼내시며 그래도 그렇게 힘든 것은 없지 않으냐고 조심스레 눈치도 보시는 듯 했다. 그저 내 짐작일 뿐이지만...

그러시면서 작은 외숙부 님 내외분이 형님 뵈러 주말에 오신다고 하셨다는 말씀도 함께 하신다. 어머님은 보셨을까? 그 때 짜증 묻은 내 얼굴을...

 

주말에 오신 작은 외숙부 님 내외분은 양손에 고기 세트와 과일을 잔뜩 들고 오셨다. 널찍했던 냉동실은 고기로 가득 채워진다.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작은 외숙부님이 농담 삼아 한 말씀 하신다.

"그래도 선경에미가 착하니까 형님이 이렇게 계속 며칠씩이나 계실 수 있지요, 다른 며느리 같음 절대 이리 못 계시지요."

음식을 담아내던 나는 그냥 민망스러워지면서 맘이 불편해진다. 큰 외숙부님은 겸연쩍어 하시면서 나에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옆에 계시던 어머님은 그런 동생이 또 안쓰러우셔서 손사래를 치시며 뭐 얻어먹으러 온 것도 아닌데 그런 말하지 말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에서 오히려 어머님의 불편한 마음을 읽고 말았다. 반대로 내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졌다. 어른들의 말씀에서 나를 배려하시려는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든 해 드리면 잘 드시니 힘이 든 줄 모르겠어요. 절대로 그런 생각하시지 마세요. 외숙부 님."

나는 듣기 좋아하실 말씀을 술술 잘도 한다. 내 마음의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로써나마 편안함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5박6일의 누님과의 생활을 마치신 외숙부 님께서는 댁으로 돌아가시기 위해서 전철을 타러 가신다. 이것저것 싸주고 싶은 누이의 마음과는 달리 허리 불편하신 외숙부 님은 짐이 싫다하시면서 다 거절하신다. 그래도 이것만이라도 하시면서 넣어 주신 것이 외숙부 님 들고 가시기엔 조금 무거운 무게가 되었다. 어머님은 나에게 짐을 들어 드리라고 하신다.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외숙부 님과 나란히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7,8분이면 족할 거리를 외숙부 님은 두 차례나 지친 다리 쉬어 가신다. 그런데 갑자기 복권판매대를 보신 외숙부 님은 로또복권을 사신다고 하셨다.

"외숙부 님, 여기서 사신 복권이 당첨되면 제게도 좀 나눠주셔야 해요."

나는 친숙한 맘으로 감히 장난도 걸어 본다.

"그래, 얼마나 나눠주랴?"

"10퍼센트요"

"140억이면 14억이나 되는데?"

외숙부님은 놀란 눈을 하시면서 허허 웃으신다.

"걱정하시는 것 보니 꼭 사셔야 하겠어요."

그렇게 산 복권을 나에게 건네시며 번호를 고르라고 하셔서 난 처음으로 로또복권에 숫자 6개를 정해 까맣게 줄을 그어보았다. 그리고 지하철역 안 개찰구에서 외숙부 님께 짐을 건네 드렸다. 외숙부님은 계단을 향해 걸어 가셨다. 양손에 짐을 들고 쩔뚝거리며 걸으시는 뒷모습을 뵙는 순간 나는 맘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말을 기어이 꺼내게 된다.

"외숙부 님, 꼭 또 오셔야 해요. 꼭요"

손 흔드시는 외숙부 님 뒷모습 사라질 때까지 뒤에서 기다리던 나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름 손님이 가셔서 그런지 내 발걸음은 참 가볍기도 하다.

가벼운 발걸음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외숙부님은 나를 좋아하시고 편하게 생각하시나 보다... 내가 조금만 힘들면 모두 저리도 행복해 하시는데... 잘 해 드리자. 앞으로 그럴 기회가 얼마나 더 있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렇게 내 맘 돌리기 도 닦기 작업에 들어간다. 복도 싫고 칭찬도 싫고 그저 지금 이 순간 남들처럼 맘껏 돌아다니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어쩜 내 진심이리라. 그러나 이왕 속내를 다 드러내 놓고 살지도 못할 못난 사람이라면 차라리 복이나 받고 말자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꾸며 얄미운 웃음 하나 슬쩍 흘려보낸다. 속으로 힘들다고 소리치며 미운 맘도 먹고 억울한 맘도 먹는 나를 세상이 그렇게 욕하지는 않으리라 여유부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