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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잔치

  • 작성일 2009-07-03
  • 조회수 395

 

“밥 맛 없는데 오늘 점심은 시원한 열무김치에 국수 말아먹을까?”

“엄마, 난 콩국수.”

“난, 비빔국수.”

“완전히 백화점 차리겠네. 국수 삶아서 줄 테니까 각자 알아서 취향대로 요리해 먹기!”


밥이 주식인 우리민족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별미요리는 아마도 국수요리일 게다. 영양분면에서는 밥과 거의 비슷하지만 넣는 재료에 따라 혹은 요리방법에 따라 그 멋과 맛은 끝이 없다. 얼마 전 TV를 통해 방송된 “누들로드”를 보면 동양권에서는 그야말로 누들, 즉 국수 요리를 빼놓으면 음식의 '음'자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국수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물이 있는 것에서부터 국물이 없는 것, 시원한 것에서부터 뜨거운 것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수십 아니 수백 가지. 게다가 요즘은 면에 넣는 재료가 다양해져 면 자체의 색깔과 맛이 천차만별이다. 중화요리로 알려진 다양한 중국식 면 요리에서부터 일본의 우동문화, 서양의 스파게티, 파스타, 마카로니, 그리고 우리나리의 칼국수, 기계국수, 수제비, 냉면, 쫄면, 심지어 국제적인 인스턴트 라면에 이르는 국수 세계, 과연 그 끝은 어딜까.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주말이면 하루 세끼 밥을 주식으로 하는 메뉴에서 한 끼 정도는 분식으로 대신한다. 반찬을 많이 필요로 하는 밥에 비해 면 요리는 그 자체로 일품요리가 가능하니 주부들이 선호하는 요리 중의 하나다. 더우면 더운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맘대로 골라서 요리법과 부재료를 달리하여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계절에 관계없이 날 궂은 날에는 칼국수나 잔치국수가 제격이다. 칼국수는 원래 손으로 반죽하여 잘 치대서 칼로 썰어 면발을 빼야 제 맛이겠지만, 요즘은 마트에서 쉽게 생면을 구할 수 있어서, 오히려 육수에 더 많이 신경을 쓴다. 대부분 멸치, 다시마, 무로 기본 맛을 낸 육수를 쓰지만 지역마다 집집마다 색다르니 각자의 취향대로다. 해물칼국수, 닭 칼국수, 사골칼국수, 팥 칼국수 등등.


면 종류를 즐기던 아버지 덕에 어릴 적 일주일에 서 너 번 정도는 국수를 먹었다. 특히 여름에 말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는 토장국에 장칼국수를 끓여주었고, 더운 날이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맷돌에 콩을 갈아 고소하고 시원한 콩국수를 해주었다. 열무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싶으면 신 열무김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주기도 했다. 엄마를 따라 결혼식 피로연에 가서 먹는 잔치국수의 맛 또한 기가 막혔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예식장 식당에서 나오는 잔치국수를 꼭 두 그릇, 국물 째 다 비운다. 잔치국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수는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잔치에서 준비하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쉽게 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 이다. 적당히 삶아진 국수사리를 진하게 우려낸 멸치육수에 여러 번 토렴하여 국물을 붓고 그 위에 호박 볶은 것과 송송 썬 신 김치, 그리고 계란지단을 올리면 끝이다. 후루룩 후루룩 뚝딱! 국물까지 단숨에 들이키면 끝. 아, 잘 먹었다! 


대학시절, 여름방학을 이용해 농활을 갔었을 때, 더운 날씨에 논에서 피사리를 한 후에 논두렁에 걸터앉아 막걸리 한 잔을 들이 킨 후 새참으로 먹던 열무비빔국수의 맛은 정말로 잊을 수 가없다. 새참은 역시 가볍게, 빨리 먹을 수 있어야하는 음식이어야 한다. 열무김치는 열을 식혀주는 역할까지 하니 더운 날 논두렁에 앉아 먹는 새참으로 열무비빔국수만한 것이 또 있을까. 남도 며느리가 된 후에 처음으로 먹어 본 시어머니의 팥 칼국수 맛도 어찌 잊을쏘냐. 팥물에 쌀을 넣어 쑨 팥죽 외에는 먹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진하게 우려낸 팥물에 어머니가 손수 밀어 만든 칼국수를 넣어 끓인 팥 칼국수는 내 입맛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입안에 착착 달라붙던 그 걸쭉한 팥물과 조화를 이룬 굵직한 칼국수의 맛은 환상의 궁합이었다. 이제는 어머니의 비법을 전수받아 여름철 고향에 형제들이 모이면 내가 직접 솜씨를 발휘하여 뒤란에 걸린 가마솥에 팥 칼국수를 끓이곤 한다. 강원도 장터에서 먹었던  올챙이국수 맛도 역시 잊을 수 가없다. 강원도에서 흔한 옥수수로 반죽을 하여 익혀서 틀에 넣어 찬물에 떨어지는 올챙이 모양의 노란 국수, 양념장을 넣어 열무김치에 먹었던 올챙이국수, 한 그릇에 1,000원짜리였지만 그 맛만큼은 어디 만 원 짜리에 비할까. 경춘선 기차를 타고 MT를 가던 중, 기차가 잠시 멈춘 역 플랫폼에서 급하게 한 젓가락씩 나눠먹던 퉁퉁 불은 가락국수의 맛은 또 그 무엇에 비할까.


가끔 면 요리 혹은 밀가루음식을 싫어하는 어른들을 본다. 옛날 가난하던 시절에 쌀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밀가루를 사다가 국수나 수제비등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했던 고단하고 가슴 아픈 시절이 떠올라서 일게다. 밀가루음식이 뱃속에 들어가면 불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니, 입이 여럿인 가난한 집에서는 이보다 더 경제적인 음식이 또 있을까. 자취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라면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게다. 싸다는 이유로 요리하기 간편하다는 이유로 질리도록 먹었으니까.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꼭 들르는 곳이 있었으니, 그 곳은 다름 아닌 국수공장이었다. 큰 길을 놔두고 일부러 돌아가는 골목길에 있는 국수공장은 오후의 출출한 배를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마치 하얀 기저귀를 널어놓은 듯 가느다란 국수가닥이 길게 나란히 늘어져있는 모습은 반듯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시선을 빼앗았다. 주인 몰래 국수 가닥을 가능한 한 길게 잘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집에 오는 길 내내 톡톡톡 끊어먹는 맛은 그 어느 과자에 비하랴. 짭조름한 맛이 어느새 고소한 맛으로 변한다. 때로는 아끼고 아껴서 집에까지 들고 와 연탄불위에 노랗게 구워먹을 때도 있었다. 기다란 국수 가락이 일정한 길이로 잘려져 누런 종이에 싸여 꺼내먹기도 좋게 늘 부엌 찬장에 있었는데, 그것은 굳이 손대고 싶지 않았다. 어디 훔쳐 먹는 국수 맛에 비할까.


여름철에는 특히 메밀을 주원료로 하는 메밀국수를 즐겨먹는다. 메밀자체가 찬 성분으로 되어있어 무더위를 식혀주기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살얼음 낀 장국에 고추냉이와 무즙 그리고 송송 썬 대파를 넣고 그 소스에 국수를 담궈 먹는 일본 식 메밀국수부터 메밀국수 삶은 물을 구수한 육수로 만들어 수육과 함께 먹는 막국수, 갖은 채소와 새콤 매콤 달콤한 소스에 비벼 여럿이 나눠먹는 쟁반막국수,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메밀냉면 등은 더위를 삭혀주는 일품요리들이다. 칡냉면, 녹차냉면, 야콘냉면 등 면에 어떤 재료를 첨가하느냐에 따라 냉면의 종류도 다양하다.


외국에서는 어떤 국수요리를 즐겨 먹을까. 한국에서 토착화된 중화요리의 대표 격인 자장면 한 그릇에 행복감을 느끼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매일 주식으로 먹던 밥이 아닌 다른 메뉴를 먹는 것에서 오는 별미감은 아이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매번 중화요리를 먹을 때마다 자장면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고맙게도 1인분에 반반씩 나오는 짬짜면이란 게 등장했다. 자장면과  짬뽕이 중국식 면 요리의 전부인줄 알았던 내가 홍콩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의 면 요리 또한 화려하다. 면발의 굵기와 모양에 따라 부재료에 따라 각양각색의 맛을 내지만, 내가 가장 즐겨먹었던 것은 우리나라 면 요리에 없는 볶음면 종류이다. 굴 소스를 주 양념으로 하여  국수에 마늘과 청경채, 버섯을 넣어 센 불에서 살짝 볶아 낸 중국식 볶음면은 깔끔한 맛이 있다. 태국의 기본 맛을 담은 볶음면은 매운 칠리와 각종 허브 그리고 풍부한 해산물로 맛을 낸 독특한 향이 특징이다. 코코넛의 부드러운 맛과 매콤한 커리가 어울리는 말레이지안 커리국수도 독특하다. 베트남 쌀국수는 깊은 맛을 내는 육수에 숙주나물을 살짝 익혀 얹어 칠리와 허브로 맛을 더해 깔끔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진한 허브 향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게다. 지중해음식의 대표 격인 스파게티, 파스타, 마카로니 등도 면의 주재료와 소스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크림소스, 해물소스, 토마토소스, 미트소스 등등...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장수를 의미한다. 아마도 긴 모양새 때문일 게다. 국수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생일이나 회갑연 고희연 등에 국수를 나눠 먹곤 했다. 가난한 시절에는 적은 양으로 포만감을 주는 경제적인 음식으로, 요즘은 매 끼 먹는 밥을 대신하여 어쩌다 먹는 별미음식으로, 그리고 손쉽게 준비하여 여럿이 나눠 먹는 나눔의 잔치음식으로 국수는 우리의 식생활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국수를 삶았다. 딸은 아침에 갈아 놓은 콩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콩국수를 만들고, 아들은 매콤한 양념장에 오이채와 양배추 채를 얹고 고소한 참기름을 한 방울 쳐서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어디보자. 나와 남편은 열무국수로 해야겠다. 마침맞게 익은 열무김치 국물에 약간의 설탕으로 감칠맛을 더해주고 국수를 넣은 후 고소한 통깨를 살짝 뿌렸다. 푸짐한 국수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