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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 작성일 2010-09-04
  • 조회수 266

 자판 위를 무작정 뛰어다니다 보면 결론이 보일 것 같았다. 언제 뒤돌아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흐름이 끊기면 안 되었다. 나는 춤을 추고 있었다. 자판의 두드리는 소리에는 리듬이 있었다. 돌아보는 것은 흐름을 멈추는 것이었다. 흥을 깨는 일이었다.

그렇게 일관되게 3년을 뛰었다. 말이 3년이지 30년 동안 숙성시킨 포도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착각인지도 모른다.) 이제 저장 창고에서 부조리란 라벨이 붙은 포도주를 찾아 코르크 마개를 뽑는다. ‘뽕’

 

 

 3년 전 나는 평범한 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때는 막힘이 없었으니까. 막힘이 없어서 막힘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외적 세계의 형태는 동일했었는데 그 3년이란 시간동안 다른 세상을 보았다. 우주는 여전히 깊어서 그 속이 보이지 않았지만 내 자신 속 세상은 닫혀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닫힌다. 생각이 닫힌다.

 

그 시절 나는 사람을 불러 놓고는 말을 하지 않아 무안하게 만들었다. 마주 볼 수도 없어서 얼굴이 있던 위치를 대강 기억하고 그 주변에 눈을 멈추었다 굴렸다 했다. 사람은 너무 보고 싶은데 말을 하려고 생각을 하게 되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상대의 얘기를 유심히 들어 주지 못했다. 아니 의미조차 파악 못했다. 나는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임으로 이 위기를 모면하기 바빴다. 그나마 이건 다행이었다.

말이 없는 사람도 쉽게 피로해지는 입을 억지로 벌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끊기게 되면 무거운 침묵이 우리 주위를 휘감았다. 무엇으로든 깨뜨려야 하는데 내 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민망했다.

말 빠르고, 성미가 급한 사람부터 시작해서 하나 둘씩 떠나갔다.(아니 내가 거북하여 피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새로운 화제 거리를 바랬지만 내겐 없었다.

집회가 있어서 모이게 되면 나는 어두운 곳 가장 뒷자리에 앉는 게 편했다. 그럴 바에야 나가지 않는 게 낳지 않냐? 고 묻기도 했지만 반대편에서 사람을 보고 싶은 갈증이 너무 심해서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투명인간, 공기가 되어갔다. 그러던 중 어렵게 친구를 만들었다. 앞집 할머니였다.

 

 우리 동네는 다닥다닥 집이 많이 붙어 있다. 맞은편 집사이로 높은 계단이 놓여 있다. 집에서 홀로 티브이 보고 있을 때면 밖에서 소리가 들였다. 한 두 번은 지나갔는데 중얼거리는 소리가 여러 날이어 계속되니 신경 쓰여 참을 수 없었다.

 

- 아이고 어머니요 내가 왜 이리 사는교

   이렇게 할머니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할머니는 나를 경계했다.

 

-할머니

-누요?

-앞집 사는 청년입니다.

 

할머니의 방에 들어가 둘러보니 밥상 위에는 생선 뼈, 밥풀, 잔반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냉장고 안은 끓였던 라면, 유통기한이 지나간 음료, 상한 고기 접시위에 랩도 쌓지 않은 김치가 놓여 갖가지 냄새가 악취가 되었다. 쓰레기 통 같았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찡그리면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치우기 시작했다.

 

-야, 야 하지마라

-할머니 금방 끝나요

-아이고 고마바라 고마바라

 

싱크대가 너무 낮아서 거리를 많이 굽혀야 했다. 할머니는 방문을 열고 부엌에서 설거지 하는 나를 안쓰럽게 보시며 이리 들어 온나 하셨다.

 

-할머니 쉬고 계세요. 곧 들어 갈게요.

 

 나는 착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한 번씩 가식적인 모습이 아니냐는 생각이 지나갔는데 내 양심이 던진 말인지 반대편에서 던진 말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불이 오지 않으면 전구를 갈아주고,가스레인지에 불을 끄지 않고 켜 놓았는지 보러 갔고,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르시면 들어가서 눌러 주었다.

그 모든 일들이 어떤 때는 귀찮기도 하였지만 지나고 나니 뿌듯했다. 평안을 내 가슴에 쌓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재벌이었는지도 모른다. 갈 때마다 내게 평안을 양손에 쥐어 주고 보내셨으니까.

빈말이 아니다. 할머니는 신세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한 일들을 기억하였다가 우리 집 앞에서 나를 부르곤 하셨다.

 

-호세야, 호세야

문을 여니 할머니가 서 있었고, 곧 손에 쥔 검은 봉지를 내 앞에 내밀었다. 봉지 안에는 전병과자가 있었다.

 

-할머니, 난 괜찮아. 할머니 잡사

할머니가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받아들이고 말았다. 우리세대의 미각은 적응하기 힘든 과자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 먹고 나니 한 번씩 슈퍼에 찾아가 내 손으로 전병과자를 들고 나오는 때가 생겼다.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우리 집 문을 두드렸고, 내 이름을 불렀다.

 

-호세야, 호세야, 호세 없는교.

할머니는 했던 얘기를 또 자주 하는 경향이 있었다.

 

-호세야, 내 나이가 몇이고?

-할머니, 아흔 다섯이요

-내가 벌써 그렇게 됐나.

 

아이고 많이도 먹었다. 하시면서 웃으셨다. 자신의 옛 시절에기도 하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십년을 예배당에 다녔는데 이젠 눈이 보이지 않아 못 간다.

선반을 가리키며 보라고 하셨다. 그 위에는 수료 상장이 놓여 있었다.

 

-귀가 안 들리고 눈이 보이면 좋은데 아이고 답답아라.

 

말을 하지 못하는 나는 사람을 피해 다녔다. 그건 장애며 짐이며 걸림돌이었다. 할머니도 장애가 있었고, 누군가 자신의 귀와 눈이 되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내가 그 역할을 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없을 땐 복지회관에서 와서 해 주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봉사 아주머니가 나왔다.

 

-이집 할머니는 양반이네. 다른 집에 가면 똥, 오줌 다 받아내야 하고, 사람들이 까칠한데 이집 할머니는 점잖네.

 

할머니는 손등을 앞뒤로 돌리면서 사람이 이래 이래 해선 안 된다. 하셨다. 한결같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가족처럼 항상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구토하고 병이 심해지자 병원에 실려 가서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

 

 난 또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동안 나의 세계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 믿음은 약해졌다. 처음엔 곧 말하게 될 줄 알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급하고, 강하게 한 번에 확 엎어 버렸으면 했다. 그러나 그건 기나긴 터널과 같이 지겹고, 권태로웠고, 희망을 잃게 만들었다. ‘눈을 뜨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겠지’ 하는 꿈도 멀어져만 갔다.

현실은 꿈도 기적도 아니었다. 과학이며 수치였다. 가능성이었다. 말을 할 수 있는 수치는 그렇게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져갔다. 나는 수없이 질문했었다.

 

-도대체 언제. 그때가 언제지?

하늘은 무심했다. 입을 닫고 너무나 화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거 같은데. . .

-도대체 언제, 언제니?

여전히 말이 없었다.

 

부르짖고, 통곡하며 나는 말라갔고, 굳어갔다. 눈물도 말랐는지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첫 질문도 쌓이고 쌓이다 바닥나 버리고 그 자리에 대신 공백이 채워졌다.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그 세상을 빠져 나와 지나간 시절의 글들을 꺼내어 읽어본다.

 

냄새도 나지 않고,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세계

 

동기도 목적도 없이 표류하던 그 시절,

흘러가는 세계를 규명할 수도 없던 그 시절,

선과 악이 섞이어 분간 할 수 없었던 시절

 

그 시절을 살아가는 방법은 믿음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 내 믿음이 말라갔고, 죽었다. 그와 함께 내 정신이 죽었고, 내 영혼이 죽었다. 나는 침묵 속에 묻혀 죽어 있었다. 그런데 죽었는줄 알았는데 분명히 죽었었는데 오늘날 나는 기적처럼 살아나 말을 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의 질문을 감정을 이입하여 읽어본다.

 

-도대체 언제, 언제지?

 

그때 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지나간 시간의 답을 찾았다. 앞으로도 그런 질문을 던져야 될 상황이 온다면 나는 의식적으로 답을 할 것이다.

-확실히 봤잖아. 그때도 안 올 줄 알았는데 찾아 왔잖아. 확실해 이번에도. . .

나는 그 뒤에 이어질 대답을 지금은 맹세할 수 없다. 그러나  바라기는 ‘찾아 올 거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