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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영화평)

  • 작성일 2011-02-18
  • 조회수 575

(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영화 '놈 놈 놈'으로 낯익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를 보러갔다. 이 영화를 굳이 고집한 이유는 근래 우리나라 평단에서 혹평을 받은 작품일수록 해외에서 영화상을 휩쓴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두 톱스타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원빈 주연의 '아저씨'에 밀려 흥행하지 못했다.
약혼자의 억울한 죽음을 백배, 천배로 갚아주겠다는 일념으로 정보 수사요원인 주인공(이병헌 분)은 사이코패스인 장경철(최민식 분)를 끝까지 쫓는다. 약혼녀를 살인한 최종 범인으로 장경철을 지목한 주인공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가하며 그를 계속 추적한다. 그 와중에 장경철의 연쇄 살인은 계속되고, 경철은 주인공의 약혼자 가족을 찾아가 살해를 시도한다. 주인공은 결국 장경철을 붙잡아 처참하게 고문하고 사형의식을 행한다. 영화 마지막에 장경철의 가족들이 그의 죽음(동강난 머리)을 직접 목격하고, 주인공은 그곳을 빠져나오며 길거리에서 울부짖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복수를 끝마친 주인공의 일그러진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는 순간 내 앞의 한 남자는 그를 향해 "씨발 새끼!"란 욕을 지껄였다. 그 관객의 말투는 해도 해도 너무 심했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장경철이 살인마에 흉악범일지라도 그의 가족이 그의 처참한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한 주인공의 자의적 처형의식은 정말 잔인했다.
 영화 막판에 대개 범인과 주인공이 일대일로 맞장을 뜨는 경우, 어디선가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건을 종결짓고 두 사람 중 누군가 경찰차에 태워지는 게 의례적 코스인데 이 영화는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다.
평범한 한 사내가 살인자를 쫓으며 복수하는 동안 점점 사이코패스로 변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경찰과 주변인들을 무력화시키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한다. 영화는 개봉 뒤 잔혹함의 정도가 지나쳐 외국의 스너프필름(살인 장면만을 모아놓은)을 연상시킨다는 등, 서사와 줄거리는 없고 난도질만 넘쳐난다는 등 말이 많았다.
 이 영화는 보통의, 상식적인 영화문법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제목이 의도한 대로 주인공을 악마로 내모는데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살인자를 맡은 배우의 연기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근래 신문지면을 달군 흉악범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약혼자를 대신해 잔인하게 복수하는 주인공의 폭력과 살인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장경철은 그렇게 고문해서 풀어줄 게 아니라 아예 죽어 없애버려야 할 놈이라며 자꾸만 주인공의 폭력과 살인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드는 이 몹쓸 합리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옛날 법이 형성되기 전 인간은 자력구제를 통해 죄를 응징했다.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였다. 흑백이 선명하게 나뉘었던 옛날에는 법의 존재유무를 떠나 죄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명확했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면서 범인을 찾아내 처벌하는 데는 예전보다 많은 돈과 힘이 소모된다. 현실에서의 자력구제는 한국의 조폭들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법칙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경철(최민식 분)이 주현(이병헌 약혼녀)의 가족을 복수하는 대목에서 왜 주현의 여동생은 이쯤에 나와 장경철의 칼에 맞지 않지? 라고 난 생각했다. 그리고 수현(이병헌 분)이 경철의 팔목과 발의 힘줄을 끊어놓는 대목에서도 왜 그를 단번에 죽이지 않지? 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더구나 사이코패스 경철이 여자들(아가씨, 여중생, 간호원 등)을 차례로 폭행하거나 난도질하는 장면에서도 눈 한번 끔벅거리지 않고 영화장면을 주시했다. 내 안에는 좀더, 자극적이고 잔인한 영상을 원하는 또 하나의 악마적 근성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인간이 인간을 정죄(단죄)할 수 있는가? 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법과 권력기관을 통하지 않은 개인적 처형(사형)의식에 대해 이 영화는 자세히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에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며 장경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가는 주인공을 향해 "이제 제발 그만 둬요. 복수는 영화에서나 하는 일이죠." 라고 그를 말리던 여자의 대사가 떠올랐다.
'악마를 보았다'는 다른 영화와 달리 권력기관이나 경찰을 통한 복수가 아닌, 약혼녀의 죽음에 대해 주인공이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죄를 응징하고 개인적인 사형의식을 거행한다. 공공의 법 이전에 개인의 복수를 어디까지 인정해주어야 하는가에 이 영화는 무척 관대한 편이다. 인간이 인간을 정죄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 물론 문학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영화나 소설에서 대놓고 떼죽음을 다룬다. 특히, 근래의 영화(이끼), 소설 (하성란의 알파)은 광신도들의 집단자살로 관객과 독자의 이목을 끈다. 신문이나 뉴스에 사람 한 둘쯤 죽어 나가는 것은 예사고 우리 사회 내부의 도덕적 불감증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정신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현대인은 영화나 매체를 통해 일시적인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복수, 살인, 불륜, 동성애 등 자극적인 소재에 관객이 몰린다. 사회적인 병폐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미덥지 않은 구석이 많다. 일부 청소년들이 조폭영화를 보고 사조직을 결성해 폭력과 범죄를 저질렀던 경우도 가끔 보도된 적이 있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빠른 것, 자극적인 것을 쫓지 않고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 올레 길을 걸으며 자연과 작은 생명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일은, 어둠 속 딱딱한 의자에 앉아 두 시간 가까이 영화를 관람하는 일보다 지루하고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봄 햇살에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지상을 향해 내딛는 당신의 발걸음은 우리 안에 내재된 포악한 악마적 근성이 아닌 잠자는 천사의 영혼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