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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국밥집 아줌마

  • 작성일 2011-03-03
  • 조회수 456

그리운 국밥집 아줌마
 
 대학교 때 나는 지금의 남편과 같은 과 커플이었다. 우리는 둘 다 시골출신이어서 남과 다른 데이트 장소를 즐겨 찾았다. 대학생들이 자주 가는 호프집이나 찻집, 레스토랑이 아닌 천원 커피가 있는 다방, 시장 안 국밥집, 터미널 옆 막걸리 가게가 우리의 데이트코스였다.
 나와 박(성씨로만 표기)이 일주일에 서너 번 꼴로, 자주 들락거렸던 장소는 s시 중앙시장 안쪽에 자리 잡은 돼지국밥집이었다. 값도 저렴하고,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을 시키면 양이 많아서 둘이 먹어도 늘 뱃속이 든든했다. 국밥집 아줌마와는 무척 가까워져서 박과 결혼하고 큰 아일 낳고 다시 그곳을 찾아갔을 정도였다.
지금은 대도시로 이사를 와서 소식이 끊겼지만, 시장 골목을 지나다가 구수하고 알싸한 돼지국밥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면 국밥집 아줌마 얼굴과 푸근한 미소가 가끔 떠오른다.
 그 시절 초겨울, 시장 어귀에 좌판을 벌려놓고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은 천 원짜리 시래기 국밥으로 점심 한 끼를 때우곤 했다. 가끔 할머니들의 국밥 그릇 속에는 신 김치 몇 쪽, 나물 몇 가닥이 얹혀있기도 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김이 설설 나는 국물을 들이키는 모습을 볼라치면 나 또한 금방 배가 고파지곤 했다.
 한번은 내가 수업이 늦게 끝나 박이 국밥집에 먼저 와 기다리던 날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온 듯 늙수그레한 택시기사가 박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건네고 있었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었다. 국밥집 아줌마는 그 아저씨 국 대접에 뜨신 고기국물을 한 국자 떠 부어주고 있었다. 그네들 뒷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풍경처럼 느껴졌었다.
 국밥집 아줌마는 데이트하는 우리를 위해 식당 안쪽 둥그런 탁자를 따로 내준 적도 있었다. 시장 안, 생선을 파는 바로 옆 가게여서 오가는 사람도 많았고 통로 쪽은 기다란 나무의자만 놓여있을 뿐, 테이블은 달랑 두 개였다. 국밥인심도 푸짐해서 삼천 원짜리 국밥 속에는 돼지고기 내장과 두툼한 살덩이가 늘 먹음직스럽게 둥둥 떠다녔다.
 가끔 막걸리에 국밥을 안주삼아, 새콤한 겉절이와 생채를 반찬삼아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여느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먹은 것보다 배나 더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다.
 몇 년 전 시골 시댁 살 때, 음력설을 앞두고 시장에 나오는 길에 남편과 아이 손을 잡고 국밥집을 찾아갔다. 시장 속옷 집에서 양말 한 상자를 포장해 싸서 들고 아줌마를 찾았다. 조금 살집이 붙은 아줌마 얼굴은 예전보다 더 좋아보였다. 양말만 전해주고 가려고 하니까 기어이 남편을 탁자에 앉히고 이것저것 챙기느라 분주했다. 큰 아이 손에는 이미 빨대가 끼워진 요구르트가 들려있었다.
 국밥집 아줌마는 국밥 대신 양념장을 뿌린 구운 꽁치 두 마리를 접시에 내왔다. 그 옆에는 깨를 뿌린 봄동 겉절이가 맛깔스럽게 곁들여 한 쟁반에 담겨왔다. 우리는 막걸리 한 대접에 생선구이와 겉절이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줌마께 선물로 건넨 양말 한 상자에 비하면 너무 과한 대접이었다. 아줌마는 몇 년 전 추억을 되새기면서, 그 당시 박이 군대 가 있던 아들 또래여서 늘 정이 가고 아들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매번 시켜먹은 돼지국밥 일인분의 양이 좀 많다고 느끼면서도 무심코 그냥 지나쳤었다.
 요즘도 가끔 남편과 시장 국밥집에서 돼지국밥을 사 먹곤 하지만 왠일인지 그 때,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입맛이 변했는지, 먹고 나면 배만 부를 뿐 푸근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 시절, 박과 국밥을 게 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었던 것은 국밥집 아줌마의 진한 정이 국물 속에 넉넉히 녹아있었던 때문인 것 같다. 올 봄엔 그리운 국밥집 아줌마의 웃음을 되찾으러 시골 고향, 시장 골목에 한번 꼭 들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