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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밤과 도토리

  • 작성일 2011-03-26
  • 조회수 255

쥐밤과 도토리
 
 
내 책상 앞 맑은 유리컵 속엔 작년 늦가을부터 주워 모은 것들이 수북이 담겨 있다. 작은 도토리 열매 쉰여덟 개, 쥐 밤 서너 톨, 은행 두어 알, 그리고 마른 대추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일찍 잠에서 깬 새벽녘에 책상에 전등을 켜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새삼 도토리와 밤의 안부가 몹시 궁금해진다.
 아파트 뒷산을 오르내리면서 주워 온 도토리와 쥐 밤들, 처음에는 파란 빛이 돌던 작은 도토리들이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채 까지지 않았던 밤송이도 슬그머니 입을 벌려 제 속을 다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그저 하나 둘 주워 모았던 것들이 모으다 보니 꽤 알찬 수확이 되었다.
 유난히 무덥던 작년 여름, 더위가 슬그머니 물러가는 시점에서 운동 삼아 시작한 아침산행이었다. 산중턱쯤 이르러 잠시 쉬려고 바위틈에 앉았는데 내 눈길을 잡아끄는게 있었다. 설익은 가을처럼 채 여물지도 않아 떨어진 작은 도토리들. 고깔모자를 푹 눌러쓴 채 수줍은 듯 풀이 죽은 세 개의 웅크린 도토리가 보였다.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에 얼른 그것들을 집어 들었다. 예전에 시골에서 살았을 때 주워 모았던 굵은 대추알만한 도토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잘디잔 도토리들을 하나 둘 주워오는 재미도 나름 괜찮았다.
 시골에서는 간밤에 바람이 조금 심하게 불었다 싶은 이튿날이면 아침 일찍 아이들 데리고 상수리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또르르 또르르’ 도토리 굴러가는 대로 잰걸음을 치며 그것을 줍는 아이모습에 흐뭇했었다. 나는 나대로 보물찾기하는 것 마냥 풀숲에 감춰진 도토리를 찾아내는 일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그 도토리들은 이웃집 할머니의 손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말았지만, 소슬한 찬바람을 피해 가며 도토리 줍기에 열을 올리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호호 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추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친정어머니는 살아 계실 적에 밤 한 톨도 그냥 허투루 버리지 않으셨다. 벌레를 먹었거나 작아서 먹을 수 없는 밤들은 햇볕에 잘 말려 두었다가 껍질을 벗긴 다음 자루에 넣어 보관하셨다. 그것들은 겨울에 찰밥을 지을 때 설탕과 같이 진득하게 조려 요긴하게 쓰였다. 생밤이 가질 수 없는 꼬들꼬들하면서도 뭐랄까, 깊은 맛이 느껴지는 밤을 골라 먹으며 긴 겨울 밤 찰밥 한 덩이로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던 기억이 난다.
 ‘쥐 밤과 도토리’ 물론 가을열매치고는 그다지 크게 대접받을 일 없는 딱딱한 것들이다. 단감에서부터 홍시, 다디단 대추 등 우선은 먹기 편하고 화려한 것에 먼저 손이 간다. 도토리는 묵을 쑤어야 제 맛이고 밤은 껍데기를 벗겨 생으로 먹거나 쪄서 먹고 밤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데, 이 일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 뿐이다.
 홍시나 대추처럼 단박에 입으로 가져갈 수 없는 단단한 껍질로 제 몸을 감싼 밤과 도토리는 약간 씁쓸하고 떨떠름한 맛까지 지니고 있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시던 도토리묵과 찰밥을 간식으로 먹고 자라서인지 가끔은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다. 며칠 전 도토리 가루를 구해다 묵도 조금 쑤고 밤과 대추를 넣어 달지 않게 약식을 만들어 보았는데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 입맛을 전해주는 일조차 쉽게 느껴지진 않지만, 꾸준히 먹여보고 어릴 적 내 입맛을 지니게 해주고 싶은 게 작은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