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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무>를 읽고.

  • 작성일 2011-06-18
  • 조회수 305

소설 <나무>를 읽고.
 
 올 봄 뒷산에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재밌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한 할머니가 작은 나무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봄을 맞아 새순이 돋은 작은 나무를 보더니 “기어이 살아나는구먼. 사람 같았어봐, 지난겨울 벌써 얼어 죽었지.” 하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겨우내 눈보라와 추위 속에 겨울잠을 잔 나무가 봄에 싹을 틔운 게 할머니는 대견한 모양이었습니다. 그 나무를 마치 당신의 손자 바라보듯 하시며 나무 등걸을 주름진 손으로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보니 봄의 나무들은 연초록의 잎사귀를 무수히 매달고 서 있었습니다. 산 속 나무들에게 새롭게 시선이 가면서 그네들의 생명력이 새삼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서양의 짤막한 소설 중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한 소년을 사랑한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소년에게 그네가 되어주고, 열매와 나뭇가지, 나무기둥까지 다 내어준 나무가 결국엔 그루터기만 남아 늙은 소년의 의자로 생을 마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소년에게 내어준 나무는 그래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짧은 이 소설은 나무의 일생보다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나무라는 듯 보입니다.
 나무에 대한 호기심과 나무들의 일생이 궁금하던 차에 접하게 된 책이 이순원님의 소설 <나무>였습니다. 이 책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도 채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소설 <나무>는 할아버지 밤나무와 손자인 작은 밤나무가 나누는 대화로 시작해 눈 오는 날 할아버지 밤나무가 깊은 잠에 드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습니다. 한 해 동안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나무의 도움으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이 소설 속에는 밤나무의 한해살이뿐 아니라 매화, 자두, 대추, 닥나무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다채롭게 펼쳐갑니다. 나무얘기와 함께 냉이 꽃과 벌과 어치(새)의 이야기도 주목을 끕니다. 이 책 속의 할아버지 밤나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은 나무와 자연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고 어른들은 새삼 인생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책을 덮고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몇 장면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작은 밤나무의 고집을 꺾기 위해 태풍이 불던 날 할아버지나무가 자신을 희생해 손자나무를 지키던 모습이 가슴 아프게 와 닿았습니다. 열매욕심을 부리다가 귀중한 나뭇가지를 부러뜨릴 뻔한 작은 나무를 할아버지나무가 지켜주는 모습이 꼭 철없는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졌습니다. 태풍이 지나가자 할아버지 나무는 작은 나무를 감싸주며 “내 몸의 큰 가지 하나보다 앞으로 네 몸의 작은 가지 하나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란다.”고 앞으로는 작은 나무 스스로가 제 몸을 지킬 것을 신신당부합니다. 그리고는 큰 가지를 부러뜨려 살 수 없게 된 할아버지나무는 결국 깊은 겨울잠에 빠져들어 깨어날 수 없게 됩니다.
 책을 읽다가 둘의 대화에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작은 밤나무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싫다며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다며 할아버지 나무에게 응석을 부립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나무는 작은 나무에게 은근히 겁을 주면서 그렇게 되려면 나무 분재가 되어 화분에 담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작은 나무는 한껏 수그러들어 작은 그릇엔 담기기 싫다며 그냥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열매를 하나라도 더 맺기 위해 비바람에도 꽃을 피우며 악착같이 버티는 작은 나무의 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소설 <나무>에는 밤나무 말고도 나무 친구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눈보라 속에도 굴하지 않고 멋지게 봄을 여는 매화나무가 등장하는가 하면 세 번을 찾아가 어렵게 얻은 자두나무가 성장해 아이들의 과일로 대접받는 모습도 나옵니다. 나무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란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입니다.
 한그루의 감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고욤나무에 접을 부친 감나무의 아픔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과 열매를 지키는 건 나뭇가지가 아닌 든든한 뿌리 덕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종이가 열리는 닥나무와 참나무 숲을 일구는 어치도 책에서 만난 친구입니다.
 그 중 작은 밤나무와 냉이 꽃의 말싸움은 재미가 있었습니다. 냉이 꽃은 작은 밤나무에게 “사람들이 다 떠나고 십 년이 되어 마당의 사정이 아무리 고약스럽게 바뀌어도 우리는 우리가 뿌리 내린 땅을 절대 떠나지 않아.”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밤나무는 한껏 풀이 죽어 넌 정말 대단하구나 라고 냉이 꽃을 인정해줍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기도 하지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냉이 꽃의 따끔한 말 한마디에 힘과 끈기가 느껴졌습니다.
 하얀 눈 속에서 겨울잠을 푹 자고 난 작은 밤나무는 내년엔 할아버지 밤나무와 마주보고 대화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작은 밤나무는 이제 제 스스로 자신을 지키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겨울의 세찬 눈보라와 여름의 태풍을 겪으면서 한층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몸으로 한 해를 잘 날것입니다.
 소설 <나무>를 읽고 나니 아침마다 뒷산을 오르는 일이 더 쉽게 느껴지고, 예전에 무심코 지나치며 보았던 나무들이 한 그루, 한 그루 새롭게 달리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밤나무와 할아버지의 밤나무가 나누었던 따듯한 대화들이 되살아나면서 나도 나무에게 뭔가 해줄 말이 있게 느껴졌습니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에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났다며 작은 나무를 쓰다듬으며 사람처럼 나무에게 말을 건네던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뒤돌아보아졌습니다.
 이순원님의 소설 <나무>에서 할아버지 나무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크게 성장했던 작은 밤나무를 떠올리니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와 점차 단절되어가는 지금의 아이들의 처지가 정말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이야기를 들으며 낮잠을 청하던 유년의 따뜻한 기억을 우리 아이들도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