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잡던 날
- 작성일 201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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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초복이라고 합니다.
복날이 되면 개는 못 먹어도 닭이라도 한 마리 먹어줘야 하는데
산골에 사는 실업자 주제에 언감생심입니다.
그래서 지금 키우는 닭들을 슬쩍 살펴보았지만
워낙 야외활동을 많이 시킨 탓인지 살은 없고 근육질만 돋보입니다.
닭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 처음으로 닭을 잡았던 때가 기억납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지요.
당시에는 동네 골목에 종종 노란 기계병아리를 수북하게 쌓아두고 팔곤 했는데
어쩐 일로 그 병아리를 몇 마리 사다 기른 적이 있습니다.
대개는 빌빌거리다가 죽게 마련인 그 기계병아리들이
의외로 중병아리로 성장하자
아버지께서 뒤뜰에 아담한 닭장을 마련해주셔서
본격적인(?) 양계를 시작했습니다.
그래봤자 서너 마리였을 겁니다.
저는 그애들에게 모이도 주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파리도 숱하게 잡아줬지요.
그때 우리집 화장실은 재래식이어서
입구 주변에 파리며 구더기들이 제법 푸짐했습니다.
닭들은 의외로 구더기들을 잘 쪼아먹더군요.
닭들 덕분에 화장실 주변이 산뜻해지니 제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부엌칼을 건네시더니
닭 한 마리를 잡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남자는 이런 것도 해봐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명령 사유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도 잡기 껄끄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위로부터 오는 권세에 순종하는 성향이 강했기때문에(믿거나 말거나)
군말없이 부엌칼을 받아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시장에서 닭들을 직접 잡아서 팔곤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서 닭을 살 때면
닭 잡는 아저씨가 아주 쉽게 단칼에 닭을 처치하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그런 장면을 몇 번 봤으니 학습능력이 좋은 제가(물론 믿거나 말거나)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요.
그 믿음이 불신을 넘어 경멸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모이를 주던 제가 닭장에 다가가면 막 달려들던 닭들이
그날따라 닭장 문을 열자 화다닥 도망가는 순간부터
이미 닭 잡기의 수난은 예상된 일이었지요.
저는 아주 어렵사리 닭 한 마리를 부여잡고 수돗가로 끌고 왔습니다.
닭이 날개를 퍼득거리지 못하게 꽉 눌러 잡고는
시장에서 본 닭집 아저씨를 머릿속에 그려보았습니다.
분명 두 가지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아저씨를 모가지를 비틀었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또 어떤 아저씨는 단칼에 닭의 숨통을 끊었지요.
저는 평화주의자답게 먼저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모가지를 비틀자.
그래서 닭의 목을 한 바퀴 돌렸습니다.
어떻게 비틀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비트는 것이 돌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목을 살짝도 아니고 한 바퀴나 회전시켰으니
불쌍한 닭은 곧 사망에 이르리라 생각했습니다.
차마 닭이 죽는 것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닭의 목을 돌려놓고 올려다본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더군요.
이젠 닭이 더 이상 이승에 머물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불쌍한 닭에게 조의를 표하려고 내려다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닭은 자신의 목이 삼백육십도 회전한 후에도 여전히
눈을 말갛게 뜨고는 저를 올려다보고 있더군요.
게다가 깜빡거리기까지 하는 겁니다.
마치 나는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하는 듯한
제법 그럴듯한 표정까지 지으면서 말이죠.
아,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공연히 순종적인 아들인 척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려다가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구나 싶어서
어차피 이젠 평범한 인생을 살기는 틀렸으니 모질게 살아보자 마음을 다잡고는
한 바퀴를 더 돌렸습니다.
그런데도 닭은 여전히 눈을 깜빡거리며 저를 올려다보더군요.
저는 그때 저를 올려다보던 닭의 그 말간 눈망울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모가지를 비트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은 저는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부엌칼을 들었습니다.
시장에서 본 아저씨처럼 해보자.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닭의 목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과감히 찔렀습니다.
칼이 닭의 목을 뚫고 들어가는 과정이,
그 느낌이 저는 지금도 선명하게 살아있습니다.
목을 찔렀으니 닭은 죽어야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니까요.
하지만 닭에게 조의를 표하려던 저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경험이 없던 제가 칼을 들어 찌른 것은 닭의 숨통이 아니라
닭의 모이주머니였습니다.
닭은 방금 전 자신이 삼킨 모이랑 흙이랑 모래 따위를 왈칵 쏟아놓았을 뿐
예의 그 맑은 눈망울을 유지한 채 저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더군요.
저는 도저히 그 눈빛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더 이상 이전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 손엔 칼을, 또 한 손엔 완전히 잘라낸 닭의 피 흐르는 목을 든 채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이 컸던 탓에 학교 친구에게 그 얘기를 힘들게 꺼냈더니만
그 친구가 한 마디 하더군요.
"야, 넌 그래도 잘한 셈이야.
난 엄마가 닭 잡으라고 해서 돌아다니는 닭 모가지를 낫으로 쳐버렸거든.
그랬더니 닭이 피를 뿜으면서 온 마당을 뛰어다니더라고.
그 후론 닭을 못 먹는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이 기른 닭이라도 어떻게든 처단해야만 하는
그런 시절말입니다.
어떤 까닭인지 저는 그 이후로 닭을 잡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더 이상 닭을 잡으라고 시키시지도 않았구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충격으로 닭을 못 먹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지요.
다만 저는 아직도 그때 그 닭의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내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아야만 하는
생명의 아이러니를
어린 시절 닭의 그 해맑은 눈빛을 통해 절실하게 배웠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요?
어쨌든 초복입니다.
말복이 오기 전까지 저는 제가 기른 닭들 중 몇 마리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맑은 눈빛을 마주해야겠지요.
부디 그 날처럼 청명한 하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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