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아범
- 작성일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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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 넘었지만 아직 찌그러진 전세집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게 오래도록 잘 될 일인지 내가 보기엔 참 믿음성 없는 선택의 일 중 대표적인 종류의 일이지만, 깨 볶을 마누라도 구해놓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일 하나는 참 열심히 한다. 자재 하나를 놓아도 차에서 내려와 요리조리 각을 보고 자로 잰듯 놓고, 자재 놓고도 바람 불면 날아갈까 요모조모 단속한 품새가, 마치 자기가 투자한 공사를 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럼 뭐하나? 진정 그가 주력하고 단속해야 할 창성한 집은커녕, 여우같은 머시기도 토끼 같은 거시기도 없는데..., 아. 창성한 게 하나 있긴 하다. 개를 좋아하여 숙소로 얻은 시골집 행랑채에 조그만 잡종견 암놈을 하나 길렀는데, 이놈이 창성씨 출근한 사이 어떤 수캐랑 눈이 맞았는지 새끼를 배어 새끼를 두 마리를 낳았다고 나에게 자랑을 해대는 것이다.
내 참,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시방 자네 밥 세 끼도 갠신히 챙겨먹는 주제에, 다 큰 개야 출근 때 밥 잔뜩 줘 놓고 오면 된다지만, 새끼 있으면 자주 줘야 하고 강아지도 단속혀야 하는디, 자네 출근한 사이 새끼들은 누가 돌보나? 괜찮아유~ 쥔집 할머니께 부탁을 단단히 드려 놨응께 잘 보살펴 주실 거구만유~
허이고~ 단단히가 될 게 따로 있지, 그게 어떻게 단단히가 되나? 허리 다 꼬부라지신데다가 치매에 정신마저 오락가락 하시는 그 할머니께서 이토록 추운디 이건 또 웬 호빵이랴? 하고 강아지를 난짝 안 잡숴야 할텐디..., 그러고 두세 주 흐른 어느 날, 우리의 그 부지런한 호프 창우씨가 지각을 했는데, 예의 그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왔다.
저 위인 또 강아지 자랑하러 데리고 왔구먼, 하고 있는데, 표정을 가만 보니 자랑하는 얼굴이 아니다. 왜 그려, 창우씨? 뭔 일 있어? 어미 개가유. 엊저녁만 해도 꼬랑지 치고 멀쩡혔는디, 오늘 아침에 일어나질 않길레 보니까 죽었드라구유.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대체 이걸 워째야 한다요? 성님. 이 눔들을 당분간 여기서 기르면 안 될까유?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거친 자갈에 철물 천지에 그와 비슷하게 생겨먹은 건설 현장 인력들의 무자비한 안전화들이 난무하는 이 현장엔,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이 작은 강아지들이 발붙일 데가 없다. 안 뒤야~ 큰 개라도 모르것는디 이 쫴깬한 강아지가 저 위대하신 현장맨들 눈에 보이간디? 필경 밟혀서 반 빙신 안 되면 다행일텐디...
개집 맹글어놓고 단단히 묶어 놓을 게요. 성님은 에미 잃은 야들이 불쌍도 안 허요? 이런 젠장. 자네가 시방 내 인간성 시험 하는겨? 착한 창우씨. 내 답은, 암만 그려도 안 뒤야~여. 곰곰 잘 생각혀봐 인간성 좋았으면 내가 시방 이 촌골짝 현장에 처백혀 있을 군번이것어? 진즉에 국회 의사당 앞에 돗자리 깔고 좋은 말만 나불거려서 구전 받아먹고 배나 두드리며 살고 있것지. 그러나 개 걱정에 코가 닷자나 빠진 창우씨는 일도 안 하고 한사코 개타령이다.
이 보라우 창우씨. 시방 시간이 개 야그할 시간이여? 일 할 시간이여? 그 때서야 개타령 뚝 그친 우리의 호프 창우씨. 일 할 시간이지유. 한다. 아니 다행이네. 일단 강아지 두 마리는 오늘은 여그 공구실 옆 창고에 두고 자재 빨리 날라. 현장 사람들 일하기 싫어 똑 죽것는디 마침맞게 자재 없어 놀게 생겨 잘 되얐다고 띵까띵까 하는 소리가 여그까지 들리네. 개는 누가 봐 줘얄텐디유?내가 저 코딱지 만한 강아지 잡아 묵을까봐? 걱정 말어. 오늘은 내가 개아범 해 주지. 때 맞춰 우유에 개밥 말아주고 개똥 치워주께. 그럼 됐제? 그런데 그 말한 내가 죽일 놈이었다.
그 날 오후 늦게 자재 일 다 마친 창우씨는 희희낙락 어디 가서 개밥을 아주 큰 포대로 한 포대를 사 왔다. 이 보라우 창우씨. 내가 아주 미치고 환장하고 폴짝 뛰겠구만. 여기서 저 똥강아지들 기를 수 있다고 혔어? 못 기른다고 혔어?다쳐도 원망 않을께요. 젠장~ 원망해도 그 원망 내 배는 못 째고 들어옹께 겁나진 않는데, 다치면 서로 맴이 그게 아니잖어? 그냥 유기견 보호소에 갖다 줘. 갖다주기 그럼 슬쩍 놓고 오던가... 안 되유. 불쌍해서 그런 짓을 어떡헌데유~ 아이구, 귀 따거라. 내가 이래서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그 다음 날부터 이 종자 불분명한 암놈 숫놈 강아지 두 마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우리 식구가 되었다.입이 귀에 걸린 창우씨는 또 내게 묻는다. 성님. 야들 이름을 뭘루 하면 좋을까유? 왜? 개 이름을 사주 봐서 지어달라고? 그게 아니구유~ 좀 그럴싸한 이름이루 말이예유. 그럴싸한 되게 좋아하신다. 개 이름 그럴싸해봐야 개팔자지 사람 팔자 될라고? 암눔 숫눔인께 젠장, 그냥 간단허게 자네 이름 첫자 따서 창식이와 창숙이로 혀!
그렸어? 그람 내가 그 자초지종을 다 말해줄텡게 잘 들어봐봐. 옛날 옛날 한 옛날 호랑이가 개뼉다구로 골프를 치던 시절. 저 짝 어디에 동방삭이란 사람이 살았대. 그 그래서유? 그 양반이 원래 개를 엄청 길렀었는디, 아마도 개략 한 삼천마리 정도 길렀나 봐? 그 그렇게나 많이유? 그런데 어느 날 그 옆을 지나던 저승사자가 개 짖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대짜고짜 동방삭이 보는 앞에서 개를 한 마리 후르륵 했다는 거여~ 저런. 그래서유?
그래서 동방삭이가 개 안 잡아 믹힐라고 저승사자를 엄청 잘 대접을 하고 술도 거나하니 멕였다는 거여. 그래서 워떻게 됐슈? 어떻게 되긴, 그래서 한 잔 거나해진 저승사자, 그날 자재일보에 적힌 동방삭이란 이름 옆에 체크를 하고 오늘 겪은 내용의 전모를 다 적을라는디, 아~ 글씨 술이 너무 취해 글자가 자꼬 도망을 댕겨서 못 적고, 비틀배틀 저승으로 그냥 퇴근혔다는 거여.
가자마자 장부를 기록원에게 던지고 네 다리 쭉 뻗고 잘라는디, 피곤에 찌들려 짜증나던 기록원이 와설랑 홧김에, 몇 갑자나 더 키우실라우? 이렇게 물었는디, 아~ 글씨, 귀 꼬부라지고 혀 먹은 저승사자가 그 말을 잘못 들어, 몇 마리나 키우던가요? 이렇게 들어, 잠결에 한 사 삼천? 이러고서 잠 들었는디, 아~ 그 바람에 동방삭이는 삼천 곱하기 육십년인께, 이게 대체 몇 년이냐? 삼육 십팔, 긍께 도합 십팔만 년을 살았다는 것인디, 염병~ 세상 우에 추상화 그릴 데가 없었것다.
그래서 아~ 글씨. 동방삭이는 누구나 다 삼천갑자동방삭이라 하지 않겠남? 그 말씀 참말이라요? 참말 아니면 노친네들 치성들일 때 뭐땀시 전부 삼천갑자동방삭이만 줄창 찾것남? 그 그렇다면 성님~ 오늘 뭐 자시고 싶은 거 없어유? 어라? 창우씨, 또 왜 이려? 자시고 싶은 거 있으믄 언능 얘기혀유. 그래야 저 없을 때 개 좀 봐 주시구 할 거 아녜유?
창우씨, 이거 왜 이려? 내가 시방 하는 일이 한 삼천 가지 되는 줄 뻔히 알면서 고 따구 얌퉁머리 없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남? 좀 봐 주세요. 뭘 봐줘? 강아지가 성님한테 꼬랑지 치면서 되게 좋아하잖아요? 나 좋아하든 말든 그건 내가 쟤들이랑 말이 안 통해서 잘 모르겠고, 난 일단 개아범 소리 듣는 거 무지 싫거든? 그래도 좀..., 어허 싫다는데 진짜 왜 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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