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들 11 ( 세헤라쟈데 97 )
- 작성일 200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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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이 말하길, 누가, (그 누구란 씨발택시를 말하는 거다 ) 자기한테 생리대 가진 거 있냐고 했다는 거야.
그러면서 씨발택시가 내 얘기를 했다나봐. 내가 가보라고 했다고.
어...그거어...
하고 그제서야 내가 웃어보였어.
아, 그 얘기 하는 거였구나아...난 또 뭐라고...
응, 그 애 말이 맞아..내가 그렇게 말해줬거든.
순간, 매력이 호오..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거다. 일종의 놀랍다는 표시.
바짝 다잡아 캐묻는 투가 되다.
어떻게 알았니? 내가 그 기간이라는 거...
기간? 아니...네가 생리 중이라는 건 몰랐어... 넌... 항상 가지고 다니던 거 아니었니?
뭐?
내 말에 매력이 민감하게 반응하더라구?
순간 난 깨달았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천박한 호기심과 선망 어린 질투심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다른 아이들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나.
매력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럽고 상냥했지만 그 속엔 뭐랄까...
돌연한 적의 같은 게 느껴졌었어. 약간의 신경질마저 섞여있는 듯 했다.
네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았지? 하면서 추궁하는 것처럼말야.
아...사실은 그게 아닌데 말야...
나의 내부에서도, 자존심이 발끈했다...
오해하지마! 난 다른 애들 하고는 좀 다르다구...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어.
차근차근, 그러나 별 거 아니라는 듯, 나대로 해명하다...
우리가 같은 반이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 아이가 쉬는 시간에 생리대 가진 거 있느냐며 이 애, 저애 한테 묻고다니더군.
그때 나도 그 기간이었지만 딱 내가 쓸 거 밖엔 가지고 다니지 않았거든.
그런데 저쪽에 앉아서 다 보고 있던 매력이 일부러 그 앨 부르더라.
그러면서 친절하게 가방에서 하나 꺼내주더라구.
매력이란 아이에 대해 그 전부터 이런 저런 말들을 소문으로만 듣다가
처음으로 한 반이 되어 그 광경을 보게 되니 웬지 인상 깊게 내 기억 속에 남은 거...그 뿐이었어.
아, 쟤도 생리 중인가 보군... 뭐, 그랬던 거였지...그러다가 한 이주일 쯤 지났나.
또 다른 어떤 애가 생리대 있냐며 제 앞, 뒤, 옆자리 애들한테 소곤거리는 거야.
앞으로 몇 십년을 이렇게 살아야 할 걸 생각하니 여자로 태어난 게 너무 억울하다 어쩌다 그런 푸념 해가면서.
그 때도 매력이 지나가다 그 소릴 듣더니만 살짝 그 애 어깨를 치면서 나 좀 볼래? 하는 동작.
이번에도 역시 제 가방에서 살짝 꺼내 그 애한테 주더라구.
상냥하고 포용력 있는 미소를 띠면서.
그래서 알았지...아, 쟤는 비상용으로 항상 가지고 다니는 거였구나...라고.
뭐, 그다지 특이한 습관도 아닌 거지.
내 언니도 저런 애들 중 하나니까. 물어보면 불안하다는 거야...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른다고.
내 언니는 시민 회관에서 하는 음악회에 갔다가 갑자기 초경을 맞은 경험이 있어.
자기 말로는 그때 마침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을 연주 하고 있었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교향곡 제 2악장 중 피아니시모 이후 갑자기 팀파니와 더불어 느닷없는 포르테시모와 동시에
언니 인생에 있어 제 2의 싸이클이 쾅 터져버린 셈이다.
얼마나 극적인 폭발인 거냐...역시 우리 언니다운 타이밍이다.
언니는 잘 살거야...꽉 짜여진 한편의 교향곡처럼...웅장하고 품격있게...
그에 비해 나의 초경은 그저 그랬어.
중학교 들어가서 어느 쓸쓸한 가을, 시월의 마지막날이었을 걸?...
무용시간이었다. 선생이 늙은 여자였는데 걸핏하면 남편한테 맞고 산다고 소문이 쫘아했다.
한쪽 눈탱이가 시퍼래져서 출근한 적도 있어.
누가 묻지도 않는데 자기가 먼저 놀이터 지나가다 야구공으로 맞았다는 소리나 하고.
그러면 우리끼리 그런다.
야, 어떻게 해야 지나가다 야구공으로 눈탱이 맞아보냐...키득키득.
혹시 남편 주먹을 야구공에 비유 한 건 아닐까? 킥킥...등등.
그런 여자였는데 무용실수업 중에 나를 보더니 축하한다...그러면서 머리를 한대 툭 쥐어박는 거야.
왜 저래? 기분 나쁘더라고...뭐가 축하라는 거야...했다가 그때, 주위의 애들이 알려줘서 알았어.
화장실 가서 보니 그새 속옷을 적시고 겉옷까지 번져 있더라구...제길!
아니 아까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때까지만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게 뭐람.
양호실 가서 생리대 받아와서 그냥저냥 그렇게 넘겼다...그게 다야.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밤을...어쩌구하던 그날이었어.
체육복을 버려놨기 망정이지, 옷에 뭐 묻었으면 어쩔 뻔 했냐...그 생각만 들었던 거 기억해.
하긴 그 무렵 종종 느닷없이 초경 터지는 애들이 심심찮았다.
옷을 버려서 체육복 바지 빌려 입고 집에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참.
그다지 창피할 것도 아니고 호들갑 떨 일도 뭐 아니잖아?
나는 그때까지 배워놓았던 지식을 총동원해서 내 싸이클을 관찰하고 기억하려 애썼다.
내 주기는 길지도 짧지도 않고 딱 정상치,
화장실 가면 휴지통에 버려진 다른 아이들의 피묻은 생리대와 내 것을 비교했다.
양이 가장 많은 날과 양이 적은 날...나의 출혈도 평균치였어.
나는 안심했고 또 기간 중 나의심적 상태도 그다지 유별난 게 아니란 사실에 만족했다.
불순하지도 않더라구...따라서 그만하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거라 믿었다.
믿는 바대로...그다지 불안하지 않더라구...
그에 비해 나의 언니의 경우, 한번은,
국민학교 남자 동창생들과 만나는 모임에서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허둥댔다며
집에 돌아와서 엄마 보는 앞에서 창피해서 어쩌냐고 징징 울었던 적 있었고.
그 후론 꼭꼭 비상용으로 한두개씩 필수품처럼 소지하고 다닌다.
참나...인력으로 안되는 일에 뭐가 창피하다는 거야? 그 때도 나는 속으로 그랬어.
갑자기 터지는 일에는 속수무책인 거야... 속수무책으로 태어난 우리들이지않아?
그러니 갑자기 쾅, 터지는 일에는 그것이 설령 남의 일이라 할 지라도 맘 속 깊이 예의를 지켜서
당사자가 창피함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구,
예기치 않은 출혈의 흔적을 비난해서는 안돼는 거 아니냐구...
이것봐요...내 언니야...우리가 정말 창피해야 할 일들은 따로 있어.
언니는 그걸 모르는군...
.
.
.
그래서 쟤도 우리 언니 같은 데가 있나보군...그랬던 건데...
졸지에 내가 무슨, 꽤나 남 말 하기 좋아하고,
아니면 쓸데없이 남 하는 일에 잔뜩 관심이나 그런 애가 되어버린 거잖아.
이것봐, 나는 염탐꾼이 아니야...
미쳤니? 내가 비열하게시리 남이 뭐하나 그렇게 기웃거리기나 하는 앤 줄 알아?
나는 진실로 나한테만 충실하고픈 그런 인간이야...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그건 그가 어떤 식으로든 이미 나와 남이 아니기 때문일 거라구!
나는 씨발택시 같은 애도 아니라구...
물론 그런 애들하고도 곧잘 스스럼 없이 입섞어 얘기 잘하지만...
그건, 그런 애들과는 얘기도 안한다는 것으로,
마치 자신이 무척이나 고상한 줄로 착각하는 그런 부류의 애들하고도
또 내가 다르다는 걸 내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 뿐인 거고.
아무튼 그렇다는 걸 이 애가 알아줬음 좋겠어...
하는 내 마음이었다.
간략하게 하는 내 얘길 다 듣고나자 매력이 비로소 아아...그런 거였구나... 그러는 거야.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뾰족한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금새 누그러지더라구.
나는 이 애를 안심시킬 말을 찾았다.
.
.
.
우리 언니도 그래...항상 가지고 다녀...불안하대...
뭐, 여자라면 그게 정상 아니겠니? 하고 말하고 피식 웃어봤어.
그애도 내가 하는 말에 피식,하더라.
언제 어느 때 터질지... 모르는 거잖아...
아, 그래...인제 나도 갑자기 터지거나...뭐 그런 일 생기면 너한테 말하면 되는 거니?
뭐어?
하하하...
킥킥킥...
매력이 자기가 들고 있던 보온병으로 내 어깨를 치면서 크게 웃었다. 나도 웃었어.
애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변덕스럽고, 민감하고, 과장되고, 또...장난기가 있더라구.
그러면서 단순한 구석도 있고 말야.
음... 애가 좀 여리구나...그런 생각 들더라구.
매력이 학교에서 그토록 쎈 애만 아니라면 내가 먼저,
우리 서로 친해보자 그렇게 적극적으로 밀어부쳐볼 욕심마저 생기던걸.
애가 여렸다...그날 처음 얘기하면서 내가 그걸 알아봤다.
.
.
.
이런저런 말 몇 마디씩 주고 받는 사이, 별관 가까이 헛간에 다왔어.
각 교실에서 물 받으러 나온 당번들이 주전자 하나씩을 들고서 줄지어 서 있더라.
우리가 맨 나중에 온 거더라구.
줄 끝에 가서 둘이 서서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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