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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친구

  • 작성일 2005-05-23
  • 조회수 545

술친구 


네 잔째 소주를 마시고 나자 뱃속이 따뜻해지면서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좀 천천히 마셔.” 
윤석은 내 술잔에 소주를 8할 정도 채워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난 픽 웃고는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입 안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예전에는 소주가 참 썼었는데 말이야. 요즘에는 소주 말고 다른 술은 마시기가 싫어.” 
“아무리 좋아해도 너무 자주 마시면 몸에 안 좋아.” 
윤석은 이렇게 말하고 자기 잔을 비웠고 그것을 보고 있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잔에 술을 따랐다. 
“한 병 더 시킬까?” 
비어 버린 술병을 보고 그가 말하자 나는 더 마실 수 있을까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주인이 소주를 가져와 탁자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뭐 부족한 건 없으세요.”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은 친절하고 정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주인은 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내 앞에 놓인 빈 안주 접시를 가져가면서 말했다. 
“이거 다시 가져다 드리죠.” 
주인이 사라지고 나서 내가 윤석에게 말했다. 
“인상 좋은 아저씨지 않아?” 
“응. 그러네. 그런데 손님이 없는 게 이상하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술집 싫어해. 게다가 여기가 좀 외진 편이고.......” 
“음.” 
내 말이 윤석이 긍정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한 잔 들어 그와 잔을 부딪치고 비운 뒤에 안주를 집어 들었고 때마침 주인이 돌아와 안주 그릇을 탁자위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말야.” 
내가 술을 따라주며 이렇게 말하자 윤석이 뭔데 하고 되물었다. 
“요즘 유행하는 Sex-Doll 말야. 어떨 것 같아?” 
“뭐가 어떻다는 거야?” 
“뭐 여러 가지 의미지......” 
“그런 것에 의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난 그의 대답이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내보이지 않고 다시 말했다. 
“회사 동료 중에 산 사람이 있는데 꽤 쓸 만하다고 하더라고.” 
“...... 사려는 거야?” 
“아니.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는 않았어.” 
나는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아 머뭇거렸다. 
“그런 걸로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아. 여자라도 만나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윤석이 이렇게 말하고는 술잔을 비웠고 난 그런 그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건 좀 피곤할 것 같아. 시간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여자와 사귄다는 걸 그런 것으로 계산하려는 거야. 사람과의 만남은 그런 것으로 계산 할 수 없어. Sex-Doll 같은 걸로는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음.” 
난 그의 말을 들으며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술집 주인이 다시 가져왔던 마른 안주 하나를 입안에 집어넣고 말했다. 
“좀 취하는 데.” 
“많이 마셨어!” 
“그런가?” 
내가 이렇게 말하자 윤석이 탁자 옆의 빈 병을 가리킨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은데……. 몇 시지?” 
“11시 36분.” 
윤석이 이렇게 말했지만 난 손목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말했다. 
“더 마실까?” 
“난 괜찮은데. 너 좋을 대로 해.” 
“그럼 다음에 또 하자. 내일 회사 일 때문에 일찍 나가봐야 하거든.” 
난 이렇게 말하고는 일어서서 카운터로 걸어갔다. 
카운터 에서는 그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드셨어요?” 
“네! 계산해 주세요.” 
내가 카드를 내밀자 주인이 받아 들면서 말했다. 
“가져오신 데이터 CD 복사 좀 해도 될까요?” 
“그게 제 친구를 기본으로 한 데이터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맞을텐데요.” 
“아 아까 손님이 대화하시는 걸 잠깐 들으니 저랑 맞을 것 같아서요. 요즘에는 이렇게 정교한 데이터를 보기 힘들거든요.” 
주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아직도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안드로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내가 허락하자 주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계산서와 카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CD 를 복사하는 동안 기다리고 있던 내가 물었다. 
“장사가 잘 안되나 보네요?” 
내 물음에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주인이 멋쩍은 듯 말했다. 
“요즘에 이런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 술집은 잘 안 찾아오죠. 새로 신형 안드로이드를 갖춰놓은 가게 같은 데로들 가니까요. Sex-Doll 같은 걸 구비해 놓은 가게 말이죠. 말상대만으로는 성에 안찬다는 거겠죠.” 
난 그의 말에 미소 지었다. 잠시 뒤 주인이 “윤석”이라고 적혀 있는 CD를 내밀자 난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안녕히 가시라는 주인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술집을 나와 술기운에 잠시 휘청거리며 걷던 나는 문득 아까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안드로이드에게 들었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한참 멍하니 서서 술기운을 즐기던 주머니에서 데이터 CD를 꺼내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 이었는지 바닥에 집어던지고 구둣발로 밟아 깨버린 뒤에 미친 듯 킥킥 거리며 집을 향해 휘청 이며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