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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지렁이가 웃는 날

  • 작성일 2006-04-12
  • 조회수 515

 

                 지렁이가 웃는 날




  따르릉.. 따르릉...

  창석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전화기를 받으니 아빠입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아빠는 창석이가 일어나야 할 시간에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일어나라, 사랑하는 아들.”

  “음, 너무 졸려 아빠...”

  “그만 일어나서 유치원 가야지. 어제도 유치원 버스 놓쳐서 못 갔다며... 빨리 안 일어나면 아빠가 집으로 쫓아간다.”

  “치, 아빠가 어떻게 와? 일하러 버스 타고 먼데 갔는데...”

  아빠는 오늘도 공사장 일을 하러 새벽에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창석이를 깨우고 씻기고 밥 먹이고 옷 입혀 유치원에 보내는 일은 5분에 한번씩 전화로 잔소리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그 동안 아침마다 돌봐주셨지만 한 달 전부터는 아주머니도 아침 일찍 일을 나가셔서 창석이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석이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이불 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창석이네 집은 지하 방이라 햇볕이 잘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전화를 해주지 않는다면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언제까지고 자버릴 수 있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또 아빠입니다. 창석이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전화를 받았습니다. 만약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나, 걱정이 되어 아빠가 달려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았어. 일어났다구. 으아아암”

  하품을 크게 하고는 세수를 하고 아빠가 미리 머리맡에 놓아둔 티셔츠와 바지를 입습니다. 차려놓은 상에 밥도 먹고 가방을 들고 나가니 골목에 하나씩 둘씩 창석이네 유치원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늘은 여름을 알리러 푸르게 빛을 내니 창석이는 이내 어깨를 펴고 걷다가 아빠를 생각합니다.

  ‘오늘 너무 더우면 아빠 또 새까맣게 타겠다.’

  “창석아, 너 옷 거꾸로 입었다.”

  뒤에 오던 유진이가 창석이의 팔을 잡으며 하는 말에 창석이는 깜짝 놀라 옷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티셔츠 앞뒤를 뒤집어 입고 있었습니다. 창석이는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그만 울음이 날 것 같아 큰소리로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이 옷은 거꾸로 입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뭐야! 난 너한테 알려주려는 건데 왜 화를 내니?”

  ‘그럼 작은 소리로 말해줘야지.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창석이는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에 뒤돌아 집으로 달려가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마음 아파할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까불고 있어!”

  오히려 큰소리로 유진이에게 화를 내고는 버스를 타러 앞으로 가버렸습니다.

  유진이는 기가 막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거 거꾸로 입는 거야? 아니지? 그치? 창석이는 진짜 이상한 애야!”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를 지르는 유진이를 엄마는 달래며 버스에 태웠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유진이는 창석이를 째려보며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창석이 티셔츠요 거꾸로 입은 거죠? 그쵸?”

  창석이도 질세라 “너 조용히 해! 시끄러워서 유치원 가기 전에 머리가 터지겠다.”

  “유진이, 창석이 조용히 해라. 계속 떠들면 유치원 가서 간식 안줄 거야. 그런데 창석이는 머리가 터진다는 말은 어디서 들었니? 그런 말하면 못써.”

  “앞집 아저씨가 맨날 그러던데요. 마누라하고 돈 때문에 머리가 터지겠다고요.”

  선생님은 창석이의 말에 웃음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아저씨가 그렇게 말씀 하셨다고 창석이도 따라하면 못써. 아저씨는 아마 너무 고민이 돼서 그러셨을 꺼야.”

  “저도 유진이 때문에 고민이에요. 왜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냐구요.”

  “넌 어디서 그렇게 어른스러운 말만 배웠니? 관심이라니.. 이제 7살인데, 창석아 어린이다운 말 좀 써봐.”

  창석이는 이유를 설명하려다가 “예”라고 조용히 말하고는 차창 밖만 보았습니다. 이런 말은 길게 말하면 선생님께 또 야단을 맞을지 모르니까요.

 

  유치원에 도착한 후에도 유진이는 분이 나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성희야 창석이 티셔츠 거꾸로 입은 거지? 그치? 근데 아니라고 막 소리 지르잖아. 엄마가 없으니까 옷도 거꾸로 입지! 창석이는 진짜 못됐어!”

  창석이는 유진이가 결국 엄마 얘기까지 하고 말자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말았습니다.

  “유진이 너는 못생겨서 꼭 똥 돼지 같이 생겼어! 너네 엄마도 그래! 알아?”

  “뭐야? 우리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엉엉엉”

  유진이가 고개를 쳐든 채 엉엉 울고 있자 선생님이 뛰어왔습니다.

  평소 때는 재미있는 노래도 잘 하시고 끝나면 모두를 한번씩 안아주시는 밝고 예쁜 선생님이시지만 이번엔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유진이, 창석이 둘 다 첫 시간인 ‘재미있는 만들기’ 시간부터 복도에서 손들고 벌을 서게 하셨으니 까요. 유진이는 창석이가 미워서 계속 울다가 퉁퉁 부은 눈을 끔뻑이며 콧물까지 훌쩍거렸습니다. 창석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 밖의 나뭇가지를 보았습니다.

  ‘뭐? 엄마한테 이른다고? 너네 엄마는 네가 말해줘야 알지만 우리 엄마는 벌써 다 알고 있다. 너 오늘밤에 혼났어, 우리 엄마가 니 꿈속에 찾아갈 거야.’


  창석이 엄마는 1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창석이에게 맛있는 저녁을 해주시려고 시장을 봐오시다가 자동차에 치여 머리를 많이 다치셨었습니다. 그런데 차는 그대로 도망을 가버려 엄마의 치료비는 아빠 몫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금도 깨고 가게 세며 집세까지 빼어 여러 차례 수술도 해보았지만 엄마는 끝내 사고 난 지 8개월 만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엄마를 불에 태워 산에 뿌릴 때, 창석이는 하늘로 날아가는 엄마의 하얀 뼛가루를 보며 엄마는 바람이 되어 하늘로 가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엄마가 창석이 곁에 있다는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 혼이 난 후에도 영어 노래시간이나 이야기 책 시간이나 창석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더 큰소리로 따라 부르고 따라 읽었습니다.  유진이는 이제 창석이와 떨어져 제일 멀리로 앉아 입을 꼭 다물고 있습니다. 유진이는 아마 일주일 정도 창석이에게 말도 걸지 않을 것입니다.

  쉬는 시간, 유진이를 찾으러 밖으로 나와 보니 화단에 못 보던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습니다. 어제 선생님들께서 화단정리를 새로 하셨나봅니다. 창석이는 동네에서 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구불구불한 골목마다 쓰레기가 쌓여있고 벽들에 낙서만 가득한 동네에는 이런 꽃들이 살기에 너무 더러웠습니다. 장미, 팬지, 나팔꽃, 들국화라는 이름표를 읽으며 창석이는 밝고 환한 꽃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게요.

  “장미야 넌 분홍색이구나. 팬지야 넌 이름이 침팬지 같다. 큭큭큭. 나팔꽃 너는 너무 시끄럽게 큰 입을 벌렸어. 들국화는 들에만 피는 건가? 그런데 유치원에도 피었네. 유치원은 들판이 아니라 집이야. 아이들이 많은 집이라구. 바보 같으니라고.”

  혼자서 꽃잎을 살펴보고 잎도 자세히 보니 색깔만 다른 게 아니라 조그만 것 모두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석이는 신이 나서 유진이 찾는 일도 교실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일도 잊고 화단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버렸습니다.

  흙을 파서 꽃 밑도 보고 싶었습니다. 돌멩이를 찾아 흙 속에 묻혀 있는 꽃의 다리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흙을 파보니 털실 같은 뿌리가 잔득 보였습니다. 그런데 꾸물꾸물 시커먼 벌레들이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회색빛에 다리가 많은 작은 벌레는 손으로 잡으니 공처럼 동그래져버렸습니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굴려보니 조금 있다 펴져서 도망가고 있습니다. 개미도 있고 작은 구멍으로 숨고 있는 지렁이도 보였습니다. 창석이는 이 더럽고 못생긴 녀석들이 예쁜 꽃들의 다리를 물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모기처럼 말이지요.

  “너네들 다 죽었어! 감히 이 예쁜 꽃들의 다리를 깨물어서 피를 빨아먹고 산다 이거지! 깜깜한 곳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창석이는 한 마리 씩 잡아 돌멩이로 죽였습니다. 그런데 잡아도 잡아도 흙 속엔 더 많은 녀석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지렁이는 정말 잡기도 힘들었습니다. 미끄러워서 잘 잡히지도 않는데다 땅속으로 금방 기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화가 난 창석이는 이 녀석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 그거야!”

  화장실로 급히 뛰어가서 비누와 청소 약을 찾았습니다. 청소 약은 선반 위에 높이 올려져 있어 손이 닫지 않았습니다. 의자를 가져다가 겨우겨우 청소 약을 꺼내고 비누를 들고 나왔습니다. 화단에 다시 앉아 비누로 꽃들을 문질러주고 청소 약을 흙에 골고루 뿌려주었습니다.

  “이제 깨끗해졌네. 너무 고마워할 거 없어. 너네들이 예쁘게 펴야 엄마가 좋아하신다구. 선생님들도 맨날 예쁘다고 보실 테고....”

  창석이는 자기가 한 일이 뿌듯해서 파란 하늘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꽃들도 방긋 웃는 것만 같았습니다. 뿌린 약 때문에 지렁이가 제멋대로 꿈틀대며 더 빨리 흙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창석이는 흙을 더 파서 약을 뿌리며 외쳤습니다.

  “이 나쁜 지렁이 놈아! 죽으라구!! 우리 예쁜 꽃 아프게 하지 말고!!”

  그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창석이를 보더니 얼굴이 하해 지셨습니다.

  “한창석!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교실에 안 들어와서 뭐하나 했더니 꽃을 다 죽이고 있잖아!!”

  창석이는 놀라서 선생님만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꽃을 죽이려는 게 아니고 살려 주려고 그러는 건데.... 선생님은 알 수 없는 말만했습니다.

  “너 정말 매일 말썽만 피울 꺼야? 그제는 주연이 머리에 껌 붙이고, 어제는 문수 엉덩이에다 물감 칠을 하지 않나, 오늘도 유진이랑 싸우더니 이게 무슨 짓이야? 이 꽃 심느라고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생했는데 다 죽이고 있잖아! 너 오늘 선생님한테 아주 혼날 줄 알아!!”

  창석이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너무 많이 화가 나서 할 수 없었습니다. 손목을 잡힌 채로 교실로 들어가 선생님 책상 옆에 무릎 끓고 손을 들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창석이는 남아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창석이 아빠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님, 창석이가 갈수록 장난이 심해서 큰일이에요. 매일 한 가지라도 말썽을 안 피우는 날이 없지 뭐예요. 오늘도 아침부터 싸우질 않나, 비싸게 심어 놓은 꽃들에다 비누를 바르고 락스를 뿌려서 다 죽이고 있지 뭐예요. 아버님 망가진 화단은 물어 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창석이가 앞으로 한번만 더 말썽을 피우면 다른 유치원으로 옮겨 주세요. 다른 학부모님 원성이 대단합니다, 아버님.”

  전화기 저편으로 죄송하다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창석이는 자기가 뭘 잘 못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창석이는 선생님의 꾸중을 뒤로한 채 버스에 혼자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파트촌을 지나 창석이가 사는 동네에 들어서니 바로 시큼한 쓰레기 냄새가 납니다. 빽빽이 들어선 집들 중에도 골목 끝 녹슨 파란색 철문 집 지하로 내려가면서도 내내 창석이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빠까지 혼이 나서 아빠한테 무척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조용히 숙제하고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오셨습니다. 먼지가 가득 묻어있는 모자와 옷을 털며 작업복이 들어있는 가방을 내려놓은 후 한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를 문턱에 놓으셨습니다. 씻고 난 아빠는 찌개를 데우고 밥상을 차려 창석이 앞에 놓았습니다. 다른 날과 다르게 아빠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창석이 뺨에 뽀뽀도 하시고 오늘은 뭐했냐고 물으실 텐데 아빠는 입을 꼭 다문 채 창석이를 보지도 않으셨습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소주를 꺼내신 아빠는 밥도 드시기 전에 소주부터 드셨습니다. 창석이도 아무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렇게 화가 나서 소주를 드시는 날에는 한없이 아빠가 무서웠습니다. 취해서 비틀대는 아빠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물건을 던지고 창석이에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입니다. 평소 때 그렇게 다정한 아빠가 창석이를 한없이 미워하는 사람처럼, 정말 다른 사람처럼 말이지요. 아빠 눈 가득 하얗게 빛이 나면 창석이는 여기저기 찢겨지는 장판만 보며 구석에서 떨기만 했습니다.

  아빠는 커다란 물 컵에 소주를 부어서 단숨에 마시고 창석이를 노려보았습니다. 창석이는 오늘도 구석으로 구석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아빠가 변했으니 엄마만 다시 올 수 있다면 예전처럼 우리 세 식구 행복할 텐데.....

  창석이가 고개를 숙인 채 처다만 보고 있는 방바닥에 밥상이 엎어졌습니다. 밥상 위에 있던 음식들이며 그릇들이 나뒹굴자 아빠는 그릇을 집어 벽에 던졌습니다. 그 소란한 소리들에 창석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아빠는 소주를 병째 마시며 창석이에게 다가왔습니다. 창석이는 더 무서워 온 몸을 떨기만 했습니다. 아빠는 창석이의 양어깨를 부서질 듯 잡아 흔들며 물었습니다.

  “너 왜 그랬어? 엄마 없이 아빠가 얼마나 널 힘들게 키우는지 몰라? 아무리 어려도 그렇게 모르냐고? 이 자식 너 오늘 아빠한테 제대로 혼나볼래? 응!”

  창석이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냐, 아빠. 나 잘못 안 했어. 아빠 힘든 거 나도 안담 말야. 나 잘못 안 했어. 정말이야, 아빠.”

  “니가 뭘 잘 못했는지 몰라? 응? 이 자식이 얼마나 혼나야 알 수 있겠냐?”

  아빠는 창석이의 눈물 속의 눈을 노려보았습니다. 이 때 옆집 아줌마가 소리를 듣고 달려왔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래. 창석이 아빠, 이러다가 애 잡겠어! 그만 좀 해!! 평소 때는 그렇게 사람 좋다가 술만 마시면 왜 이러는 거야. 창석아, 빨리 아줌마네 집으로 가라, 빨리!!”

  창석이는 아줌마 뒤쪽으로 피해 아줌마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던 아빠가 저렇게 변할 수 있다니 창석이는 몸이 떨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저앉는 창석이를 아줌마의 딸 현아 누나가 안아주었습니다.

  “창석아 괜찮아? 이 물 좀 마셔.”

  현아 누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고등학생인 현아 누나는 평소 때 창석이에게 떡볶이도 만들어주고 재미있는 이야기책도 읽어주곤 했습니다. 서로 얘기도 많이 했지만 요즘엔 대학가는 공부를 하느라 창석이와 만나지 못했었습니다.

  창석이가 물을 마시며 눈물을 닦아내자 창 밖으로 아빠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집들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이라 옆집 큰소리는 아주 잘 들렸습니다.

  “여보, 나도 당신 따라가려네. 창석이도 제대로 못 키우는데 이렇게 살아서 뭐해. 여보, 빚은 언제 다 갚고, 언제나 제대로 살아보려는지 모르겠어. 아주머니, 제가 죽일 놈이지요. 마누라도 못 살리고 아들놈이나 때리면서 이렇게 살아 뭐합니까. 저 같은 놈은 죽어 야해요.”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야. 죽긴 누가 죽어. 이 사람아 창석이를 생각해서 이렇게 약해지면 안 돼. 이제 7살인데 창석이는 어떡하라고... 창석 아빠가 힘내야지! 젊은데 그까짓 빚 못 갚을까. 술이나 마시지 말고 더 열심히 살아야지. 창석이 봐서, 불쌍한 창석이 봐서 이 사람아. ”

  아줌마도 눈물 닦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새 현아 누나도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창석이는 아빠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아빠는 불쌍해.’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습니다.

  아줌마가 돌아와 창석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가라. 어린것이 얼마나 놀랐을까.”

  현아 누나가 밥상을 차려 창석이 앞에 내주었습니다.

  “밥 안 먹었지? 어서 먹어.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맑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떠먹는 창석이를 현아 누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너 오늘 유치원에서 말썽피웠니? 그래서 아저씨 화 나신거지?”

  창석이는 고개를 숙인 채 밥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리자 눈물이 뚝하고 국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누나가 혼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하는 거거든. 네가 잘못했다고 했으면 아빠가 그렇게 화내시진 않았을 거 아냐.”

  “나 잘못한 거 없어.”

  “그럼 아저씨가 왜 화나신 거야?”

  현아 누나는 창석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습니다.

  “유치원에서 꽃을 다치게 하는 벌레를 죽여주었는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괜히 화를 내잖아. 그리고는 아빠한테 전화해서 막 화냈어. 또 이러면 딴 데 가라고...”

  “꽃을 다치게 하는 벌레가 뭐야?”

  창석이는 현아 누나를 빤히 보았습니다.

  “그거 있잖아. 꽃 밑에 흙 파면 있는 못생긴 그 벌레들. 공처럼 똘똘 마는 벌레랑, 개미도 있고, 발 많이 달린 벌레도 있고, 지렁이도 많았어. 꽃을 막 물 거 아냐. 모기처럼... 그렇게 예쁜 꽃을 물면 어떻게 해. 그래서 내가 벌레 죽으라고 약도 뿌리고 비누로 닦아주었는데.. 선생님은 꽃 죽는다고 소리 지르잖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현아 누나는 창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었습니다.

  “창석아, 꽃이 그렇게 좋았어? 벌레까지 잡아주게?”

  “엄마가 나 만나러 올 때 꽃이 이뻐야 엄마가 좋아하지.”

  “엄마가?”

  “엄마는 바람이라서 내가 어디 있든지 올 수 있지만, 엄마는 꽃 좋아했어.”

  현아 누나는 창석이의 꽃잎 같은 양 뺨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그래. 엄마는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이런 사실을 아빠는 왜 모르시는지 몰라. 그렇지 창석아?”

  창석이는 히죽 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창석아, 꽃 밑에 벌레들, 죽이는 거 아냐. 정말 착한 벌레들이거든.”

  “착한 벌레?”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처럼 나쁜 벌레들도 있지만 세상엔 꽃을 피우는 벌레들도 있단다.”

  현아 누나는 말했습니다.

  꽃 밑, 그 어두운 곳에서 끝없이 좋은 영양분을 날라다 주는 고마운 벌레들이 있어 꽃들은 그렇게 아름답게 필 수 있다고요.

  “특히 지렁이! 지렁이는 정말 착한 벌레란다. 모두들 지렁이가 징그럽다고 밟아 죽이는데 지렁이는 아무에게도 나쁘게 대하지 않아. 지렁이가 먹었다 뱉는 흙은 곧 좋은 흙이 되어 꽃도 자라고 나무도 자라게 되는 거야. 그리고 누군가 지렁이 몸을 반으로 자르면 지렁이는 자른 사람을 물지도 않아. 그냥 지렁이는 두 마리로 각각 살아낸단다. 정말 멋진 벌레지?”

  “그러게. 그런 것도 모르고....”

  “창석아, 세상엔 지렁이 같은 사람들도 많아. 모두들 별 볼일 없다고 비웃어도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 누군가가 못되게 굴어도 미워하지 않고 마음 넓게 용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창석이도 그런 사람 될 거지? 꽃도 좋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더 멋지게 사는 지렁이 같은 사람.”

  “우리 아빠도 지렁이야?”

  “그럼.. 지금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창석이까지 아프게 했지만 아저씨는 지렁이 같은 분이셔.”

  환하게 웃는 현아 누나를 보니 창석이는 아픈 게 다 나은 듯 했습니다.


  날이 밝아도 창석이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빠는 일도 나가지 않고 창석이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했지만 창석이는 마음을 풀 수 없습니다. 유치원으로 도망치듯이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풀이 죽은 채 구석에 앉아 창 밖만 보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어제 아빠한테 많이 혼났니? 창석아 이제 장난 좀 그만 쳐. 그럼 아빠도 용서해 주실 테니까.”

  “선생님, ......”

  창석이는 한참동안 망설였습니다. 선생님이 못 알아들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왜 불러놓고 말이 없어?”

  겨우 입을 뗀 창석이가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착한 벌레 아세요?”

   “착한 벌레? 알지. 지렁이나 개미 같은 거 잖아.”

  창석이는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예, 맞아요! 전 그게 착한지 모르고 어제 많이 죽였어요. 많이 아팠겠어요. 너무 미안해요.”

  선생님은 어제 꽃밭을 망친 일에 대해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저런. 나도 네가 착한 아인지 모르고 혼냈구나. 이를 어째... 너도 많이 아팠겠다. 미안해.”

  “우리들은 모두 오해 했어요.”

  창석이의 또박또박한 말에 선생님은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이제 아빠의 오해도 풀어줘야겠구나.”

  선생님의 말에 창석이도 슬며시 웃었습니다. 

 

  파헤쳐진 화단에 물을 뿌려주자 지렁이가 더 잘 보였습니다. 지렁이가 웃고 있는 것을 창석이는 이제야 보았습니다. 밝게 웃는 웃음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창석이는 흙을 잘 덮어주며 지렁이의 웃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은 오랫동안 머물러있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