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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idden Sky-금지된 하늘

  • 작성일 2006-08-09
  • 조회수 341

 

Forbidden Sky-금지된 하늘



1.


  언제나 하늘은 신(神)과 새들의 영역이었다. 신은 물고기에게는 헤엄칠 바다와 강을, 인간과 네발짐승에게는 발 딛을 땅을, 날개달린 새들에게는 하늘을 주어 그 곳에서 살게 했고 그 자신은 새들보다 더 높은 별의 하늘에 살았다. 바다는 물고기의 것, 땅은 인간과 동물의 것, 하늘은 신과 새의 것. 주어진 영역에서 살며 그 곳에서 주어진 할 일을 하는 것. 정명(正明). 그것이상 간단하면서도 위대한 것이 있던가? 물론 예외는 있다. 닭은 날개가 있지만 그것이 살아야 할 곳은 땅이다. 닭이 발을 잠시 하늘에 들여놓았다 해서 사는 곳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런 예외는 예외 나름대로 알아서 할 바를 찾아 하면 될 터이다. 허나 수십 수백만의 닭이 태어나고 죽어가다 보면 한두 녀석쯤은 날개가 있지만 하늘에 살지 못하는 자신에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하늘을 나는 매나 제비, 참새 같이 나도 날개가 있는데 난 왜 못 날지?


그리고 이런 호기심 많은 녀석들을 수천마리 정도 모아두면 이 중에서도 한두 마리는 의문을 넘어서 동경을 가질 법도 하다.


-나도 저 새들처럼 하늘을 날며 하늘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 저런 닭이 사람 중에 있다면 정신 나갔거나 미쳤다고 소리 듣겠지. 운이 좋다면 몽상가라는 소리로 충분할 테고. 분명한 것은 이번은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것. 하필 그 미친 녀석이 한 왕국의 왕자라는 이야기니까.



2.

 

  선왕에게는 세 명의 왕자가 있었다. 유약하고 우유부단하며 몸이 약했던 장남 이린, 명석하고 이지적이었던 차남 비리딘, 형들과 10살 넘게 차이나 이제 막 청년기로 들어설  소년의 3남 뷰트린. 듣기로는 뷰트린이 태어나기 전 장남과 차남 사이에 누굴 후계자로 둘 것인가에 대한 계파간의 분쟁도 알게 모르게 있었다고 하지만 장남 이린이 싱겁게 병으로 죽어버리자 이야기는 너무 쉽게 끝났었다. 차남 비리딘은 왕이 되어 비교적 무난하게 왕국을 이끌어 갔던 것 같다. 그의 귀여운 동생이 그 사건을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왕과 형 중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에 서있었고, 결국 왕을 택했다.



3.


  왕국의 3번째 왕자-뷰트린-에 대한 판결은 사형이었다. 그의 죄목은 신성 모독. 왕자라는 직위에서 본다면 이것보다 더한 죄와 판결은 없겠지. 그건 왕자 자신이 왕국의 이념 자체를 파괴, 왕국의 기둥을 흔드는 거니까. 그의 재판에는 이례적으로 왕이 직접 나왔었다.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뷰트린에게는 조금 너그로운 판결이 내려지리라 생각했었다. 그야 직접 왕이 나온 이유라면 극형이 아니면 사면일 테니까. 아직도 그의 재판에서 들었던 대화들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4. 


-뷰트린, 너는 너의 죄를 인정하나?


-아니오. 전 왜 여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 누구를 다치게 하거나 피해준 적도 없고, 속인 것도 없으며 훔친 것도 없습니다.


-그럼 다시 묻지. 네가 하고 있던 일은 하늘을 날려는 뭔가를 만들려는 일이었지?


-네. 제가 한 일은 그것뿐입니다.


-하늘은 새와 신의 영역. 너는 그것을 침범하려 했다. 실제로 넌 뭔가를 만들어서 잠시 동안이었지만 나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었지. 넌 신의 영역에 발 들여 놓았다. 인간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하늘에 말이다. 그것은 곧 신을 모독함이고 신에게 도전함이며 인간의 욕심과 오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죄가 없다고?


-저는 단지 하늘을 날고 싶었습니다. 거기다가 하늘이 신의 영역이라는 것은 누가 정한 것입니까?


-잠자리는.


한 순간의 정적.


-잠자리는 겨우 몇 십일을 하늘을 날기 위해 땅 속에서 몇 년을 보냅니다. 그럼 잠자리의 영역은 땅입니까? 하늘입니까? 무엇이 살 곳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살게 되고 나서 살 곳이 정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땅 바다 모두의 영역입니다. 아무나 누군가가 어디에 있다면 그곳이 바로 그의 영역입니다. 인간이 있을 곳은 땅이라고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뭐, 이 뒤로는 평행선을 긋는 두 사람의 말들뿐이니 생략하자. 이런 논쟁이 지겨워질 때 쯤 먼저 손을 들고 나선 것은 왕이었다. 그 때 그의 목소리가 떨린 것을 느낀 것은 나뿐이었던가?


-나는 아직 아들이 없다. 뒤늦게 얻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커 준다는 보장도 없지. 네가 네 죄를 인정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여기서 모든 이 앞에서 맹세를 한다면 가벼운 죄로 끝내주겠다. 나아가 너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여기 모든 이 앞에서 공표하겠다.


나에게 왕의 말은 회유라기보다는 선고로 들렸다.


『여기까지가 형으로서의 한계이다. 더 이상은 왕만이 네 앞에 있을 뿐이다.』


-제가 있고 싶은 곳은 왕좌가 아니라 하늘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리하여 재판은 끝났다.



5.


  뷰트린의 사형식에는 형은 없고 왕만이 있었다. 왕에게서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왕은 뷰트린의 마지막 유언을 물었다.


-죽은 후 화장하여 가루로 만들어 하늘에 뿌려 주십시오. 언젠가 땅에 먼지로 내려앉더라도 잠시라도 하늘을 날 수 있겠지요.


예상된 왕의 노성(怒聲)대신 고요한 선언과도 같은 말이 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형을 집행하라. 그리고 하늘에 뿌려달라는 소원 정도는 들어주지. 그것 역시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지만 먼지 따위가 날아봐야 나무만큼도 못 날아오르고 땅에 내릴 테지.



6.


  하늘은 신의 영역이었고 인간에게 금지된 곳이었다. 나는 그 금지된 영역을 발을 내딛은 한 왕자를 보았다. 앞의 닭 이야기로 생각하면 그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닭이 되고자 했던가, 아니면 닭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길 원했던가? 아니 애초에 그에게 날개가 있긴 있었던가? 그것은 어찌되어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으나 그는 적어도 나의 약혼자였다. 비록 정혼자였으나 그와는 겨우 몇 번 얼굴을 맞대고 만찬 몇 번을 했을 뿐이다. 그는 품위 있고 권위 있는 왕자라기보다는 재미있는 광대나 혼자 골방에 박혀 연구하는 연금술사 같은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아마도 마지막 만찬을 마치며 그와 나눈 대화는 이러했을 것이다.


-제가 싫으시다면 약혼을 취소하실 수 있게 해드리죠. 실은 결혼보다 더 저에게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 그걸 마치기 전까지는 약혼은 가능해도 절대 결혼은 할 수 없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우회적으로 내가 싫다고 돌려대는 말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일을 하시는 거죠?


-하늘을 날아보려 합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실한 진담임은 그의 곧은 눈길에서 드러났다. 그는 만찬실의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며


-가까운 사람들은 미쳤다고들 하죠. 말리는 사람도 많지요. 하지만 꼭 날아보고 싶어요. 저 하늘을.


-그래서 하늘을 날면 당신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죠? 그건 신성 모독으로 당장 잡혀가서 사형당할 일인데요?


아직 그의 미소는 잊지 못한다. 그건 의도되지 않고도 안으로부터 기쁨과 환희가 넘쳐 나와 겉으로 주위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빛과도 같은 미소.


-도달하지 못할 곳을 향해 도달하려는 것이죠. 그것으로 전 완성됩니다. 그 때, 제 앞의 분에게 청혼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기다려주신다면 말이죠. 하하.


이 사람은 무얼 완성한다는 거지? 왕자로 태어나 부귀영화도 얻었고 3남이란 위치로 국정에 힘을 쓸 필요도 없이 귀여움만 받고 자란 막내 왕자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었단 말야? 그에게 부족한 것은 현모양처 아내와 왕좌뿐일 텐데?


-완성하신다는 의미를 모르겠어요.


-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길 한 가운데 움푹 파인 웅덩이가 있으면 마차와 사람을 위해 채워야겠죠. 그런 기분이랄까요. 저에게 부족한 걸 채워서 완성하는 겁니다.


이해하지 못해 아리송한 얼굴을 짓고 있었던 나를 보며 그는 말했었다.


-아시다시피 전 막내왕자로 원하는 건 다 가져 왔어요.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겁니다. 부족한 것 없이. 항상 채워져 있으니까 부족한 부분을 몰라요. 하지만 채워진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부족한 것도 있었던 겁니다. 저는 분명히 봤습니다.


-무엇을요?


-나 그리고 당신, 그리고 모든 이의 미래를요. 부족한 부분은 채워야 되요. 하지만 채울 부분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것 역시 다른데서 가져오는 거죠. 그럼 다른 곳이 부족해지죠. 이런 순환이 계속 됩니다. 거기서 싸우고 다투는 거죠. 그래서 전 생각했어요.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지금 이곳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고. 바다 속이든 저 별하늘 위로든. 바다보다 하늘을 택한 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요. 하하.


-하지만 그것 역시 하늘과 바다에서 가져오는 거니까 전체로 보면 뺐고 채우는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철없는 왕자님에 대한 가시 같은 나의 반론에 너무나 쉽게 나온 대답.


-네, 맞아요. 그러니까 더욱 더 훨씬 더 멀리 높이 깊게 사람은 나가야 하는 겁니다. 전 그게 사람.....우리 인간의 숙명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 첫 걸음을 제가 나가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부족한 게 많아 자기 일에 바쁘시니 좀 여유 있는 제가 해야죠. 다른 사람들이 몰라줘도 전 그것으로 좋습니다. 다만 제 앞의 분은 예외로 해두죠. 만약 저와 결혼하시게 된다면 같은 길을 걸어가셔야 할 테니까요. 물론 그건 그 때까지 기다려주신다는 가정 아래서 말이죠. 하하.


그 사람은 좀처럼 웃지 않는 사람이라 그 날은 희한한 날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만은 그는 아직 다른 이는 해보지 못한 도달하지 못한 어떤 것을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기쁨에 찬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해는 못하지만 걱정과 동정에서 나온 나의 말.


-어떤 이유라도 그건 사형감이에요.


-알아요. 아니깐 나아가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는 더 이상 이 화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만찬을 마치며 말 한 마디 정도는 던져줘도 괜찮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야기해주었다.


-날게 되면 청혼해주세요. 기다릴 테니까. 저 당신 같은 사람 싫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바보 같아서 보살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니까.


대답은 듣지 않고 돌아왔다. 결말은 알고 있었으니까.


7.


  지금이야 아무나 날틀 하나 가지고 바람 좋은 날 날리면 되는 때이다. 때때로 날틀로 채워진 하늘풍경을 보며 지금에 와서 생각하곤 한다. 하늘을 난 후의 그로부터가 아니라, 그 만찬의 끝에 내가 먼저 청혼했어야 했었다고. 그는 날개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아무도 날지 못한 하늘을 날아보려는 사람이었다. 그 무모함과 그 성실함과 그 이상에 뒤늦게 반한 자신을 다그치며 저 멀리 사람의 영역이 된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같이 날아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도 곧 하늘로 날아갈게요.


아마 내일이 되면 왕궁 안은 평생 혼자 방에 틀어박힌 쭈그렁탱이 할망구 고집불통 막내공주가 죽었다고 소란스러울 테지. 뭐, 그래도 그 사람 사형식만큼 소란스럽지는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