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우수작입니다.
- 작성일 200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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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님의 [공생]에서 다룬 신들과 인간들의 개념은 재미있군요. 의미있는 사고실험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말 그대로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그게 화자의 캐릭터와 맞을지는 몰라도 파악님의 '현학'은 늘 이야기의 재미를 조금씩 까먹는 경향이 있어요. 조금만 시치미를 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스토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이런 스타일은 굉장히 나이브하게 보이죠. 제 말을 믿으세요.
나만의 신화님의 [발렌타인데이 이야기]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를 목적으로 하고 있죠. 하지만 막판의 클라이막스에 그 사건을 직접 언급하는 건 좀 그렇네요.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긴 한데, 지나치게 손쉬워서 이야기의 가능성을 날려버리는 게 탈이죠.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마지막에 방송 뉴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설정하고 그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게 더 좋을 것 같지 않아요?
티아마트님의 [Amethystine heart]는 몇몇 이야기의 논리가 조금 걸리는군요. 아직 어린아이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자기 아들의 반란을 걱정하는 왕의 심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동기와 설정 사이에도 조금씩 간극들이 보이고요. 동화에도 동화의 논리는 필요하죠. 아니, 오히려 실제 세계의 논리보다 더 명쾌해야 해요.
가짜 유럽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은 이름들을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이즈는 혹시 Yseut인가요? 그렇다면 이곳은 불어권인가요? 그럼 왜 남자주인공 이름은 제미니죠?
황당무계님의 [곱다]는 그냥 황당무계한 농담인데, 이렇게 길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고 설정이 그렇게 농담을 살린다는 느낌도 받지 못하겠군요. 화장실 농담은 현실의 경험과 가까울 때 더 잘 먹히죠. 진흙탕에 젖었다가 마른 스타킹에서 발냄새의 악취를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걸요.
문영1님의 [프록시마견문]은 완결된 글인가요? 일단 그렇다고 치죠. 일단 이 글은 꼭 2,30년대 쯤에 발표된 구식 SF처럼 보입니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그렇지만 과학을 다루는 방식도 그래요. 작가가 테라포밍과 같은 기술에 대해 공부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혜성 충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못 믿겠군요. 전체적으로 엄밀성이 떨어져요. 행성의 이름인 프록시마부터 그렇습니다. 대부분 이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켄타우르스 자리의 프록시마를 떠올리겠죠. 설마 거긴 아니겠죠? 토착어 이름은 더더욱 아닐 거고.
노유님의 [냉장고]는 일상세계의 사물을 괴물로 그렸다는 점에서 에이브럼 데이비슨의 [Of All the Seas with Oysters]를 연상시키는군요. 재미있는데 소재의 가능성이 최대한으로 활용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주인공이 조금 덜 냉정하고 조금 더 깊이 사건에 말려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군요.
티아마트님의 [너무 늦었다]는 판타지 세계의 하드보일드 탐정 이야기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인기 있는 설정이죠. 얼마 전에도 뱀파이어와 인간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다룬 뉴질랜드 탐정 영화가 나오지 않았던가요? 이야기를 만들기 쉬워서 그런 게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하여간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자기도취적인 나레이션과 설정에 빠져 정작 이야기가 허술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인공 탐정이 자기도취에 빠진 것 처럼 보인다고 해도 잘 쓰여진 하드보일드 물은 대부분 주인공의 장단점과 설정에 엄격해요. [너무 늦었다]는 넋두리 반, 설정 설명 반이군요. 충고 하나. 이런 식의 하드보일드 물의 견본으로는 해미트가 챈들러보다 낫습니다. 심지어 챈들러식 소설을 쓸 때도 말이죠.
황당무계님의 [침입]은...글쎄요. 전 이런 소재의 농담을 읽고 웃을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군요. 그 이상을 느끼기엔 글이 너무 가볍고요. 감수성의 차이겠죠.
쿠키님의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한 송이의 꽃]에서 마지막의 [소나기] 패러디는 없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처음부터 [소나기] 패러디를 품고 있었다면 설정이 지나치게 커진 것이겠죠. 인형에게 '아빠'라는 이름을 지어준 건 지나치게 명백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야기 속에 녹아든 엘렉트라 컴플렉스의 분위기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집어낼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고요.
백촌님의 [이스의 세계]와 [시공간의 처음과 끝에 그 자신이 하나]는 둘 다 독립된 이야기보다는 이야기의 배경을 깔기 위한 배경 설정 같군요. 그 자체로서는 이야기의 재미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니그라토님의 [고양이와 엘리베이터]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설정을 이정애의 모 만화에서 본 적 있지요. 니그라토님의 글이 더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풍기지만요. 지금 이대로의 글에 만족하시나요? 르시(Lucy입니까?)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떠난 뒤로는 화자의 심리묘사가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은데? [노래하는 도시]에는 아서 C. 클라크의 [도시와 별]의 영향이 느껴지는군요. 전 허풍이 조금 더 심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당무계님의 [경호원]은... 재미있네요.
티아마트님의 [구 - 9번 구역의 청소부가 바라는 것]에서 아이디어는 분명 흥미로운데, 스토리의 주제와 연결된 주인공의 전염성에 대한 공포감은 별로 와 닿지가 않네요. 이 경우는 차라리 작정하고 생물학을 팠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아니면 병명을 바꾸거나.
쿠키님의 [공주님의 아내]는 순진무구한 동성애 소재 동화이군요. 제가 이런 이야기들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시죠? 판타지 하드보일드처럼 이것도 은근히 인기있는 장르란 말이죠. :-) 역시 쓰기 쉽고 독자들에게 접근하기 수월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은 귀엽고 깔끔하네요.
知永님의 [Turn Back Time]에서는 환생이라는 초현실적인 요소와 타임머신이라는 SF 장르를 혼합하고 있는데, 이건 반전으로 그냥 넘기기엔 좀 아까운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정공법으로 치고 반전 너머의 드라마를 모색하는 게 더 실속 있을 거예요. 반전의 설정 역시 그렇게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예를 들어 지금도 여자들의 '남장'은 남장이 아니죠. 아르마니지. 6세기 뒤의 미래에 '남장'이 그렇게 큰 정치적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물론 그 미래가 지금보다 고루한 곳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설명이 필요합니다.
5월에 올라온 황당무계님의 글들 중엔 [농구화]가 가장 재미있더군요. 페이스 적절하고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도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고. 하지만 여전히 소설보다는 만화나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보여요. 그게 꼭 나쁘다는 법은 없지만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어차피 액션과 대사 위주이니 처음부터 시나리오로 작업해도 괜찮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마쵸맨님의 [원숭이 섬]은 이번 달에 올라온 단편들 중 가장 성실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디테일도 풍부합니다. 단지 기반하고 있는 몇몇 개념들이 은근히 위태로워 보이고 이야기를 맺는 방식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손쉽군요.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음 칸으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전 주인공의 주체적인 행동과 선택을 기대합니다. 그게 극도로 재수없는 행동이라고 해도요. 재수없는 건 괜찮습니다. 작가가 그걸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여담이지만 전 나이 차도 별로 나지 않는 남편에게 극존칭을 올려붙이는 여자들은 꼴보기가 싫더군요. 텔레비전과 책 밖에서 그런 사람들을 본 적 있나요?)
동현맘님의 [이상한 나라의 동화책 시즌2]는 기본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들의 결말 바꾸기 게임인데, 이런 식의 순정만화 판타지보다는 보다 뻔뻔스럽고 날카로운 배경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나 요정 모두 조금 더 심술궂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두 설정이 그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군요. [서기 3000년] 역시 마찬가지죠. 일처다부 판타지와 여자들이 터무니 없이 부족해진 남성우월 사회는 얼핏 아귀가 맞을 것 같지만 전혀 맞지 않아요. SF 설정은 판타지의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게 법규이기 때문이 아니라 독자들이 그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5월의 우수작은 마쵸맨님의 [원숭이 섬], 니그라토님의 [노래하는 도시], 노유님의 [냉장고], 파악님의 [공생]입니다. 전 [원숭이 섬]과 [공생] 중 한 편을 뽑고 싶은데, 이번엔 [원숭이 섬]으로 하겠습니다. 파악님은 4월에 이미 받으셨죠. [공생]도 괜찮지만 전 님이 [달은 너의 눈으로]의 방향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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