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 작성일 200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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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화이트울프
“이 나무는 품종이 뭐지?”
여느 중년 남자처럼 김 씨도 쓸데없는 말이 많았다. 창욱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워낙 희귀한 나무여서 품종은 불분명합니다. 십 년 전 아버지에게 모종을 팔
았던 아프리카의 상인은 환생의 나무로 명명했습니다. 스와힐리어 명칭이 있긴
한데, 기억나지 않습니 다. 저는 아프리카 선인장으로 부르고, 어머니는...
...”
창욱의 어머니는 이 나무에 자신만의 독특한 애칭을 부여하고 있었다. 선인장 선생이라는 애칭은 그럴 듯 했다. 선인장 선생은 창욱의 아버지의 별명이기도 했다. 창욱의 아버지는 선인장처럼 가시로 무장한 성격 탓에 남과 충돌이 잦았다. 인세 수입만으로 먹고 살게 되자, 아버지는 절필을 선언한 뒤 구름처럼 떠돌아다녔다. 네팔에 가서 네팔어를 배우기도 하고, 아프리카 사막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프리카 여행의 기념품으로 사온 것은 특이하게도 나무 모종이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모종은 쑥쑥 자랐고, 아버지는 이 모종을 정원에 옮겨 심으며 뿌듯해했다. 아프리카 사막의 유목민들이 신성시한다는 이 나무는 얼핏 보면 아프리카 사막에 자생하는 선인장의 일종과 유사했다. 바오밥 나무처럼 배가 불룩했지만, 높이는 4 미터에 그쳤고 비쩍 말랐다. 비비 꼬인 나뭇가지와 끝이 뾰족한 잎은 영락없는 조슈아 나무의 짝퉁이었다. 그 잎은 가시처럼 날카로웠기 때문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생채기 투성이군. 누가 일부러 칼집을 낸 것 같은데.”
나무줄기의 껍질이 벗겨진 흔적을 손끝으로 건드리며 김 씨는 의아해했다. 창욱은 못들은 척 나무 아래 잔디를 툭툭 찼다. 선인장의 몸통에 셀 수 없는 생채기를 낸 범인은 어머니였다. 정원의 나무와 화초를 애지중지 아끼는 어머니가 어째서 선인장 선생만 괴롭히는지 영문 모를 일이었다. 김 씨의 호기심은 좀처럼 후퇴할 기미가 없었다. 그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환생의 나무라는 명칭에 특별한 뜻이 있나?”
“이 나무 밑에 시신을 묻으면, 죽은 자의 영혼이 나무로 환생한다는 전설이 있
대요. 보나마나 아버지가 꾸며낸 거짓말일 거예요.”
창욱이 입을 비쭉이며 투덜거리자, 김 씨는 세차게 도리질하며 반박했다.
“자네 아버지는 괴벽스러울 뿐, 거짓말을 하지 않아. 고교 동창인 내가 잘 알
지.”
“그럼, 아프리카의 상인이 장난친 건가요?”
창욱의 주머니에 든 휴대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창욱은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떠났다. 김 씨가 슬그머니 어머니 곁으로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세무사 사무실을 경영하는 김 씨는 최근에 홀애비가 됐다.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려고 안달했다. 어머니도 그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아버지가 환갑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지 일 년이 넘었다. 50대 중반의 어머니가 연애사업에 골몰한다고 해서 창욱이 비난할 권리는 없었다. 선인장 선생의 그늘 아래 다정히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창욱은 집 건물 뒤편으로 돌아갔다.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하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이번에도 불합격 통보였다. 취업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고, 창욱은 고등 백수로 전락했다. 고생 끝에 획득한 해외 졸업장은 휴지조각이 됐고, 미국 유학 시절의 고생담은 백일몽이 됐다. 스무 아홉 살의 나이에 때 이른 흰머리가 생긴 창욱을 보며 어머니는 가슴 아파했다. 아버지와 친분 있는 교수들에게 시간강사 자리라도 부탁하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창욱은 귓전으로 흘렸다. 다수 문학상을 휩쓴 유명 소설가 안 지상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아버지의 외모와 재능, 그 어느 것도 물려받지 못한 창욱은 열성 유전자의 집합체였다.
휘파람 섞인 새 울음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에 창욱은 멈칫했다. 새 울음소리는 창욱의 귓전에 메아리를 남기고 멀어져갔다. 1월의 바람은 칼날처럼 매서웠다. 창욱은 황량한 고원에서 길을 잃은 듯 고립무원감에 사로잡혔다. 몇 미터 근방의 선인장 선생이 고개를 외로 꼬고 몸을 움츠렸다. 김 씨는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는 현기증이 나는 듯 선인장 선생의 몸통에 기대 있었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된 창욱은 황급히 달려갔다. 어머니는 말없이 땅바닥을 가리켰다. 김 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창욱은 당황했지만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하는 창욱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전화를 끊었을 때 어머니가 뜬금없이 물었다.
“창욱아, 너도 그 소리 들었니?”
창욱은 어리둥절해하며 반문했다.
“새 울음소리 말예요? 정원에 휘파람새가 날아왔나요?”
어머니의 히스테릭하게 갈라지는 웃음소리는 흐느끼는 듯 했다.
“그렇게 청아한 휘파람을 부는 사람은 네 아버지뿐일 거야.”
어머니는 충격으로 헛소리를 했다. 창욱은 귀담아듣지 않고 김 씨의 맥을 짚었다. 맥은 뛰지 않았다. 김 씨의 오른쪽 뺨엔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가시 같은 것에 깊이 찔린 듯 피 몇 방울도 맺혀있었다. 창욱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려 선인장 선생을 주시했다. 선인장 선생은 짐짓 시치미를 떼며 먼산을 봤다.
김 씨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창욱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영안실에 문상 갔다. 상주인 김 씨의 큰아들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부친은 심장 수술을 앞둔 상태였다고. 심장이 약한 사람은 죽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고인의 뺨에 난 상처를 염두에 두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창욱만이 못내 마음에 걸려 집에 와서도 선인장 선생 주위를 맴돌았다. 김 씨가 쓰러진 자리를 세밀히 관찰했지만, 수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선인장 선생은 꼿꼿이 고개를 쳐든 채 알싸한 향기를 풍겼다. 그전의 향긋한 향이 변질된 듯 독한 향이었다. 혹시 선인장 선생에게 병이 생긴 건 아닐까 창욱은 의구심이 생겼다. 창욱이 잎을 만지려고 하자, 선인장 선생은 움찔하며 몸통을 뒤로 뺐다. 착각이겠지. 바람결에 선인장 선생의 나뭇가지가 흔들린 모양이다. 선인장 선생이 슬며시 감추려는 나뭇가지 하나가 창욱의 시선을 끌었다.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손이 닿지 않았다.
창욱은 정원 창고에서 갖고 온 2단 사다리를 선인장 선생 밑에 놓았다. 창욱이 사다리를 올라가자 선인장 선생은 문제의 나뭇가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고 했다. 창욱은 냉큼 나뭇가지를 낚아챘다. 나뭇가지의 잎에 붉은 얼룩이 묻어있었다. 창욱이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순간, 섬뜩한 전율이 일었다. 얼룩의 정체는 피였다. 희미한 피비린내가 배인 잎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창욱의 손을 벗어났다. 경악한 창욱은 중심을 잃고 사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창욱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창욱의 허리를 감싸안은 것은 다름 아닌 선인장 선생의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였다. 창욱의 입에서 뒤늦게 비명이 터져나왔다. 선인장 선생이 창욱을 안전하게 땅에 내려놓은 뒤에도 창욱은 비명을 질렀다.
“놀라지 마라. 널 구하려고 그런 거야.”
어느새 나타난 어머니가 창욱의 등을 토닥거리며 달랬다. 창욱은 핏기 가신 얼굴로 악을 쓰며 대들었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군요. 왜 내겐 말하지 않았죠?”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난감한 미소로 얼버무렸다.
“네가 나를 치매 전문 요양원에 보낼까봐.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일
이거든.”
어머니의 손은 계속해서 창욱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창욱은 은근히 짜증이 났다.
“대충 만져요. 닭살 돋잖아요.”
“내가 그런 게 아냐.”
어머니의 말에 창욱은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그의 등을 살살 쓰다듬는 손은 선인장 선생의 나뭇가지였다. 창욱이 화들짝 놀라 뿌리치자, 선인장 선생은 무안한 듯 나뭇가지를 오므렸다. 창욱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숨을 가다듬었다.
“네 아버지는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했어. 자신이 죽으면 선인장 선생 밑에 매
장해달라고. 나는 네 아버지의 화장한 유골 가루를 환경분해용 봉투에 담아 선
인장 선생 밑에 묻었지.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묘에 묻힌 것은 빈 관이었다.”
어머니는 변명하듯 맥이 빠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난 잘못 한 게 없어. 요즘은 수목장이 유행이잖니.”
창욱은 기가 막혀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수목장이 합법화됐지만, 엄연한 법적 절차가 있어요. 자기 땅을 사용하는 경
우 관할 시장에게 신고해야 해요. 어머니처럼 혼자만의 비밀로 하는 건 불법이
예요.”
“네 아버지의 당부 때문이야. 주위 사람들에겐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거든.”
“왜요? 아버지의 팬들이 몰려와서 추도의 눈물을 흘릴까봐서요?”
창욱의 가시 돋힌 대꾸에 어머니는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부자지간에 원진살이 끼인 게 맞구나. 둘 다 이해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
어.”
아버지가 가시로 찌르듯 도발하는데, 어떻게 양순한 아들 노릇을 할 수 있느냐. 그 말이 창욱의 입밖으로 나오려다 말았다. 선인장 선생을 힐끔거리던 창욱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하필이면 환생의 나무 밑에 수목장을 하다니, 어쩜 그렇게 단세포적인 사고를
하죠?”
창욱이 핀잔을 주자 어머니는 버럭 신경질을 냈다.
“환생의 나무? 그 따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누가 믿겠니. 네 아버지의
허풍으로 여겼다.”
씩씩 콧김 뿜는 소리가 요란했다. 선인장 선생이 불만을 토로하듯 아랫가지로 땅을 긁고 있었다. 어머니가 눈짓을 하며 창욱의 팔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정원 구석의 목련 나무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보송보송한 털로 덮인 목련의 겨울눈이 앙증맞았다. 창욱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온몸이 욱신거렸다. 목련나무도 정해진 수명에 맞춰 사는데, 자연의 섭리를 위배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독선적이고 이기적인가.
“그 유언을 내가 들어준 진짜 까닭은......”
어머니는 계면쩍어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선인장 선생을 네 아버지의 대용물로 삼고 실컷 괴롭혀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의 복수 방법은 황당하다 못해 유치했다. 창욱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네가 유학을 구실 삼아 해외에 나가있었던 것도 아버지 때문이지? 그 심정 알
고도 남는다. 나도 너만 아니었으면 이혼했을 거야.”
어머니의 말은 진심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명세를 부담스러워했다. 아들과 남편의 사이가 틀어져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도 어머니의 골칫거리였다. 창욱이 습작들을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을 때 아버지는 숫제 같잖다는 듯이 비웃었다. 작가의 꿈은 접고 고3 수험생답게 입시공부에 전념하라는 아버지의 엄포에 창욱은 주눅이 들었다. 아버지가 창욱의 습작들을 쓰레기통에 버리자, 창욱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그저 그런 대학의 학생이 된 창욱은 병역 의무를 마치자마자 유학길에 올랐다. 아버지와 상종하지 않으려면 도피처가 필요했다.
뉴욕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받았을 때 창욱을 압도한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해방감이었다. 일등석에 앉아 뮤지컬을 관람하며 창욱은 아버지의 죽음을 축하했다. 홀로 집을 지키는 데 지친 어머니는 창욱에게 귀국할 것을 종용했다. 창욱으로서도 귀국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이야말로 창욱의 꿈이었고, 그 꿈이 이뤄진 셈이다.
“네 아버지는 철저한 에고이스트였어. 우리 부부는 남남처럼 살았다. 네 아버
지가 묻힌 선인장 선생은 그동안 내 가슴에 쌓인 원한을 풀기에 안성맞춤이었
어. 그 날도 선인장 선생의 몸에 칼집을 내고 있는데, 신음소리가 났어. 선인장
선생은 내 손목을 잡고 휘파람을 불었지. 선인장 선생으로 환생한 네 아버지와
는 화해하기로 합의를 봤다.”
어머니가 털어놓는 사연은 터무니없었다. 창욱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선인장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아버지가 환생한 나무라
는 증거는 없어요. 아프리카의 정령이 붙은 나무이거나 거대한 식충식물일 가능
성이......”
확신이 서지 않는 듯 창욱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재수 없는 휘파람새가 또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창욱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들어봐. 네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다. 귀가 밝아서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을 거
야.”
영화‘황야의 무법자’의 삽입곡인‘방랑의 휘파람.’서부영화 매니아였던 아버지의 애청곡. 그 애수 어린 멜로디가 휘파람으로 흘렀다. 창욱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저것 좀 보렴. 네 아버지는 나무로 환생한 후 복식호흡의 대가가 됐다.”
어머니는 귀여운 애완동물의 재롱을 대하듯 탄성을 뱉었다. 창욱은 어머니를 따라 선인장 선생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선인장 선생의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선인장 선생은 잎을 진동시키고 잎끼리 마찰시킴으로써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 기세등등한 모습을 대하며 창욱은 위축감을 느꼈다. 죽어서 훨씬 위압적인 존재가 된 아버지는 여전히 가족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다.
“선인장 선생의 잎에 김 씨의 피가 묻어있었어요.”
창욱이 비난하듯 말하자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사고였어. 김 씨가 엉큼하게 내 손을 잡더니 재혼 얘기를 꺼내지 뭐니.
재혼 생각이 없다고 단언했는데도, 김 씨는 끈질겼다. 유난히 질투가 심한 네
아버지가 격분했지. 당장 윗가지를 내려뜨려 김 씨의 뺨을 때렸어. 김 씨는 대
경실색해서 기절했지.”
선인장 선생의 휘파람 소리가 그치고 새들이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창욱은 귀를 의심했다. 선인장 선생이, 아버지가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에서 죄의식은 전혀 표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완전범죄를 자랑하듯 우쭐대는 웃음소리였다.
“신기하군요. 이토록 생소한 선인장의 변종은 본 적이 없어요.”
식물원의 남자 직원은 선인장 선생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 선인장 선생을 식물원에 기증하려는 창욱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창욱은 선인장 선생이 생전의 아버지처럼 독재적인 횡포를 부리게 해선 안된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는 할 말이 있는 듯 우물거렸지만, 결국은 동조했다. 창욱이 식물원 남자 직원의 비위를 맞추는 동안, 어머니는 방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선인장 선생의 잎에 남았던 핏자국은 옅어졌다. 선인장 선생을 귀양 보내듯 식물원에 유폐한다면, 창욱과 어머니의 삶은 정상을 되찾을 것이다. 갑자기 식물원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창욱은 뜨끔했다. 타의에 의해 결정된 운명을 거부하듯, 선인장 선생이 항의의 외침을 보냈다. 사이렌 소리 같기도 하고, 뱃고동 소리 같기도 했다. 창욱은 허둥지둥 둘러댔다.
“집밖에 응급차가 지나가는군요.”
거짓말에 서툰 창욱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인장 선생의 배에 손을 얹고 있던 식물원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맙소사! 이 나무가 울고 있어요.”
창욱은 그럴 리 없다고 우기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식물원 직원은 선인장 선생의 배에 귀를 바짝 대고 환호성을 질렀다.
“해외토픽감인데요. 방송국에 제보해야겠어요. DNA 검사를 하면 이 나무의 미
스테리를 밝힐 수 있을 거예요.”
창욱의 머리 위로 하늘이 노래졌다. 주도면밀하게 추진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은 저 수다스러운 식물원 직원의 입을 막는 게 급했다. 창욱이 어쩔 줄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동안 집안에 있던 어머니가 뛰쳐나왔다. 어머니는 선인장 선생의 고함소리를 듣고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한 것이다. 바로 그 때 선인장 선생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 무시무시한 포효에 놀란 듯 식물원 직원이 주춤 물러섰다. 선인장 선생은 가장 긴 나뭇가지를 휘둘러 식물원 직원의 목을 졸랐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어서 막을 길이 없었다. 선인장 선생의 나뭇가지는 괴물 문어의 다리처럼 우람하고 강력했다. 식물원 직원은 숨이 막혀 캑캑거리며 발버둥 쳤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창욱은 완전히 얼이 빠져버렸다. 아버지는 인간의 삶을 마감한 뒤 더욱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와중에 어머니의 대처능력은 민첩했다. 어머니는 쏜살같이 창고로 달려가더니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어머니의 손에는 커다란 삽이 들려있었다. 식물원 직원의 목을 휘감은 선인장 선생의 나뭇가지를 어머니는 그 삽으로 찍어내렸다. 선인장 선생이 신음하는 동시에 나뭇가지도 느슨해졌다.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까의 동작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선인장 선생의 나뭇가지가 툭 끊어졌다. 가까스로 풀려난 식물원 직원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창욱이 일으켜주려고 했지만, 식물원 직원은 혼자 힘으로 일어나 줄행랑을 쳤다. 어머니가 삽을 내던지고 주저앉았다.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은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창욱아, 인터넷에서 선인장 요리의 레시피를 검색해보렴. 이왕이면 선인장 뿌
리를 달여먹는 레시피로.”
어머니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했지만, 창욱은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어머니가 사용하던 선인장 선생이라는 애칭은 선인장 마피아로 바뀌었다. 어머니와 창욱은 선인장 마피아가 휘파람을 불든 오페라를 부르든 아예 상대를 안했다.
비디오폰의 화면에 비치는 여자는 씩씩한 태도로 신분증을 들이댔다.
“TV 속 별난 세상이라는 프로 아시죠? 전 그 프로그램의 담당 PD입니다. 이 집
에 괴물 나무가 산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요. 취재를 허락해주실래요?”
아마도 제보자는 식물원 직원일 테지. 창욱은 괴물 나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머리 뚜껑이 열렸다. 여자 뒤에 있는 방송국 스탭들이 수군거리며 기웃거리는 것도 불쾌했다. 창욱은 수화기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허락 못합니다. 엉터리 제보에 놀아나다니, 댁은 아이큐가 두 자리인가요?”
여자 PD는 화를 내기는커녕 생긋 웃었다.
“안 지상 씨의 자제분이군요. 댁의 아버님이 쓰신 작품 중‘나무 가족’이라는
단편 소설 읽어보셨죠? 죽은 남자가 나무로 환생한 스토리인데......”
“나는 아버지의 작품을 읽지 않습니다.”
창욱은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비디오폰의 화면이 꺼졌다. 망할 놈의 식물원 직원, 주제 파악도 못하는 선인장 마피아. 얼굴에 철판 깐 여자 PD. 창욱을 둘러싼 세상은 가히 요지경이었다.
어머니는 대전의 친구 집에 놀러가고 없었다. 어머니의 화장대 서랍에는 담배와 라이터가 감춰져있었지만, 창욱은 모르는 척 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도둑 담배를 피우던 어머니의 습관이 재발한 것은 순전히 선인장 마피아 탓이었다. 선인장 마피아를 처치하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조만간 골초가 될지도 모른다. 창욱은 쭈뼛거리며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갔다. 거의 십 년 만이었다. 책장의 한 칸은 아버지가 쓴 소설책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소설책들은 수백 개의 촉수를 살랑살랑 흔들며 합창했다.‘안 창욱, 네게서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빼면 뭐가 남지? 넌 아버지의 명성을 질투하지?’소설책들 중 단편집은 세 권 있었다. 책마다 목차를 살펴본 창욱은‘나무 가족’이라는 단편을 찾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정원에선 선인장 마피아가 영화‘대부’의 주제가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아버지의 단편 소설‘나무 가족’은 끔찍한 얘기를 담고 있어요. 죽은 남자가
나무로 환생해서 가족을 살해하고, 그 가족 역시 다른 나무로 환생해요. 인간이
었을 때 서로 반목했던 가족은 나무 가족으로 재탄생한 후에야 화합에 도달하게
됩니다.”
흥분한 창욱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어머니는 어이없고 혼란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말도 안돼. 네 아버지의 소설 나부랭이가 무슨 예언서라도 된다는 거야?”
“아버지의 소설이 현실로 재현되고 있어요. 아버지는 자신의 사악한 음모를 실
현하기 위해 환생한 거예요. 우리를 살해할 기회만을 엿보며 능력을 비축하는지
도 몰라요.”
“네 아버지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예비 살인자가 될 만큼 악독하지는 않
아.”
“어머니, 정원의 예비 살인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선인장이예요. 아버지 안의
또 다른 인격체가 선인장의 모습을 빌어 활동하는 거예요.”
어머니의 얼굴에서 썰물 빠지듯 온기가 사라졌다. 어머니는 유령처럼 텅 빈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난 시간을 끌려고 무진장 애썼다. 네 아버
지를 못 본 척 하고 정원을 한참 쏘다녔지. 내가 119를 부른 것은 30분 후였어.
의사는 몹시 안타까워 했다. 일찍 왔으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고.”
어머니의 고백이 암시하는 의미는 명백했다. 창욱은 머릿속이 암전된 듯 말문이 막혔다. 창욱이 그 상황에 처했어도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했을까. 자신에게도 예비 살인자의 본성이 내재해있음을 알고 창욱은 착잡해졌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하게 된 심리적 동기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미운 남편이라고 해도 죽음을 방치하는 행위는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네 아버지는 내게 복수하려고 환생한 걸까?”
어머니가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창욱의 입이 실룩거리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관상용 선인장이 환생의 나무로 등극한 것도 모자라 복수의 매개체로 둔갑하다니.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 잎을 가시로 바꾼 선인장처럼 그들 가족은 기괴한 양상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창욱은 진절머리가 났다. 선인장 마피아와의 심리전은 창욱의 내면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끝장을 내지 않는 한 어느 쪽도 평화를 누릴 수 없으리라.
쓰나미가 덮쳐오듯 악취는 집안 구석구석을 휩쓸었다. 가스 냄새와 알콜 냄새가 혼합된 역겨운 냄새였다. 냄새의 진원지는 선인장 마피아였다. 선인장 마피아는 생채기로 뒤덮인 목피를 벌름거리며 악취를 발산했다. 창욱과 어머니는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닫고 집안에서 꿈쩍도 않았다. 때마침 초인종이 울리고 남자 택배원이 방문했다. 창욱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상품이 도착한 것이다. 창욱은 마스크를 쓰고 나가서 대문을 열어줬다. 택배원은 악취에 질겁하며 옷깃으로 코를 막았다.
“하수구가 막혀서 뚫는 중이예요.”
창욱이 진땀을 빼며 거짓말을 늘어놓는 동안 선인장 마피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창운은 분에 겨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택배원이 돌아간 뒤 창욱이 택배 박스를 방안으로 옮기자, 어머니가 빼꼼히 내다봤다. 창욱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원예도구를 샀어요. 잡초를 제거하려고요.”
다행히 악취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정력을 소모한 탓일까, 선인장 마피아도 피로에 지친 듯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다음 날 아침, 겨울치곤 포근한 날씨였다. 창욱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선인장 마피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창욱의 무기는 전기톱과 맹독성 농약이었다. 삼류 공포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을 연출해야하다니, 창욱의 입가에 피식 실소가 번졌다. 창욱이 어설프게 전기톱을 들었을 때, 어머니가 쫓아나와 창욱의 팔을 잡으며 만류했다.
“안돼. 네 아버지를 두 번 죽이는 일이야.”
“아버지는 이미 한 번 죽은 몸이예요. 이 선인장은 허상에 불과해요. 모든 인
간의 삶은 한 번 뿐이예요. 아버지처럼 환생을 추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요. 인생엔 덤이 없다는 것을 아버지도 배워야해요.”
창욱이 눈을 치켜뜨고 단호한 표정을 짓자, 어머니의 손에 힘이 빠졌다.
“네 표정이 아버지의 복사판이구나.”
어머니는 침통한 어조로 말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창욱은 전기톱을 작동시켰지만, 손놀림이 부자연스러웠다. 선인장 마피아가 수동적으로 당할 리 없었다. 나뭇가지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반격을 시도했다. 나뭇가지에 세게 얻어맞은 창욱은 전기톱을 놓쳐버렸다.
“창욱아, 엄마가 도와줄게.”
원더우먼인 양 의기충천하여 달려오는 어머니의 손에 분무형 방향제가 들려있었다. 치매 초기 증세가 발병했구나. 창욱은 어머니가 불쌍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선인장 마피아를 향해 방향제를 분무했다. 그 일격만으로도 선인장 마피아는 발작을 일으켰다. 선인장 마피아는 나뭇가지를 한데 모으며 연신 콜록거렸다. 어머니의 현명함에 창욱은 감탄했다. 방향제는 온갖 유해물질의 덩어리였고, 그 효과는 대단했다. 주술적 위력을 발휘하던 선인장도 화학적 조제물의 독성에는 속수무책이라니, 창욱은 씁쓸했다. 쉬지 않고 방향제를 뿌리던 어머니가 창욱을 돌아보며 재촉했다.
“난 쇼를 하는 게 아니야. 얼른 해치워!”
다시 주워든 전기톱으로 선인장 마피아의 몸통을 그어대는 창욱의 눈에 핏발이 서렸다. 선인장 마피아는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선인장 마피아의 몸에 난도질당한 상처가 나자, 창욱은 그 상처마다 농약을 뿌렸다. 농약이 스며드는 순간, 선인장 마피아가 단말마를 내질렀다. 창욱은 빈 농약병을 던져버리고 귀를 막았다. 어머니가 혀를 차며 측은해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모진 양반 같으니. 두 번째 저승길이라면 익숙할 법도 한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선인장 마피아가 단말마를 그치고 온몸을 뒤틀었다. 선인장 마피아의 몸으로 흘려들어가던 농약이 역류하듯 솟구쳤다. 사색이 된 창욱은 뒷걸음질치며 물러섰다. 선인장 마피아는 끙끙거리며 농약을 토해냈다. 어머니는 겁에 질려 방향제를 떨어뜨리고 창욱의 등 뒤로 숨었다. 선인장 마피아의 본색이 완연히 드러났다. 휑한 눈구멍이 뚫리고 귀까지 입이 찢어진 그 얼굴은 창욱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학교 가기 싫어 꾀병 부릴 때 침대 머리맡에서 히죽거리던 얼굴. 여자친구에게 바람맞았을 때 카페의 맞은편 빈자리에 앉아있던 얼굴. 기대했던 소설 공모전에서 낙선했을 때 컴퓨터 옆에서 빤히 바라보던 얼굴. 창욱의 두려움의 대상은 아버지가 아닌 세상 그 자체였다. 선인장 마피아는 아버지로 위장한 세상의 수백 가지 얼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의 근원을 직면하자, 기나긴 세월 창욱을 속박하던 유아적 강박관념이 너울너울 춤추며 날아가 자취를 감췄다. 창욱은 저도 모르게 발돋음을 하며 어깨를 쭉 폈다. 마음의 키가 훌쩍 커지고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발밑의 땅이 요동쳤다. 흡사 지진이 난 듯 했다. 선인장 마피아가 뿌리를 들썩이며 지반을 흔들고 있었다. 선인장 마피아의 얽힌 나뭇가지는 산발머리 같고, 반쯤 돌출된 뿌리는 똬리를 튼 뱀 같았다. 창욱과 어머니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선인장 마피아가 뿌리로 파헤친 땅속에서 돌멩이들이 튀어나왔다. 발밑에 구르는 돌멩이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는 순간, 다른 돌멩이들이 우박처럼 밀려 내려왔다. 돌멩이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창욱은 어머니를 업고 집안으로 대피하려고 했다. 이를 본 선인장 마피아의 눈구멍이 가늘어졌다. 선인장 마피아는 기합을 넣듯 괴성을 뿜어냈다. 선인장 마피아의 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표창처럼 날아왔다. 창욱의 뒷목덜미가 따끔거렸다. 창욱은 손으로 더듬거리며 뒷목덜미에 박힌 잎을 빼냈다. 표창 세례를 피해 엎드린 창욱은 엉금엉금 기며 겨우 현관에 도착했다. 선인장 마피아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창욱의 뇌리에 떠올랐다.
창욱이 어머니의 화장대 서랍에서 꺼낸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나올 때, 선인장 마피아의 허밍 같은 노래 소리가 울려퍼졌다. 루이 암스트롱의‘What A Wonderful World’였다. 자신이 파괴한 정원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삶을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다니. 그 잔인함에 창욱은 몸서리쳤다. 발코니에는 어머니가 동네 수퍼 갈 때 애용하는 쇼핑카트가 있었다. 창욱은 쇼핑카트를 밀고 아버지의 서재로 쳐들어갔다. 창욱이 쇼핑카트에 아버지의 소설책들을 닥치는 대로 싣자, 소설책들은 촉수를 활짝 펴고 아카펠라를 불렀다.‘우리는 수많은 분신이 있어. 우리를 죽여도 네 아버지의 존재감을 뛰어넘지 못해.’창욱은 쇼핑카트를 질질 끌며 정원으로 나갔다. 쇼핑카트 안에서 책들이 팔딱거리며 공중제비를 돌았지만, 창욱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요동을 멈춘 정원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목련은 허리가 꺾여있었고, 라일락과 개나리는 뿌리가 뽑혀있었다. 노래를 그친 선인장 마피아는 두 개의 나뭇가지를 교차해 팔짱을 낀 채 창욱을 노려봤다. 창욱은 마음속으로 선인장 마피아의 새로운 호칭을 주워섬겼다. 선인장 소인배. 선인장 야바위꾼. 선인장 개그맨. 그 중에서 적절한 호칭은 선인장 개그맨이었다. 위용을 상실한 선인장 개그맨은 먼지 쌓인 동화책에서 빠져나온 나무귀신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창욱은 쇼핑카트를 놓고 뚜벅뚜벅 선인장 개그맨을 향해 걸어갔다.
“당신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어요. 그만 돌아가세요!”
그 말을 내뱉으며 창욱은 라이터를 켜고 선인장 개그맨의 몸통에 불을 붙였다. 불길이 확 치솟으며 선인장 개그맨을 집어삼켰다. 선인장 개그맨이 지르는 비명 소리는 이내 불길에 묻혀버렸다. 선인장 개그맨은 찌그러지며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창욱이 쇼핑카트의 책을 하나씩 꺼내 불길 속으로 던졌다. 그 책들은 선인장 개그맨의 저승길 노자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품에 안긴 책들이 상여꾼들의 만가를 불렀다. 야릇한 승리감에 도취된 창욱은 울고 싶었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아버지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폭군. 위선자. 이중인격자.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인간.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피어올랐다. 언젠가는 창욱도 미래의 자식에게 결함 많은 아버지로 경원시될 것이고, 그것이 모든 아버지들의 숙명이었다. 창욱이 어머니를 흔들어 깨울 때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들은 쑥대밭이 된 정원을 목격하자 아연실색했다. 거짓말 실력이 향상된 창욱은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썩은 나무뿌리에 생긴 개미집을 퇴치하려고 불을 놓았는데, 불길이 심하게 번진 것 같다고. 정신을 차린 어머니도 옆에서 거들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두더지가 정원을 어질러놓고 가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됐다고. 소방관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구구절절 잔소리를 하고 돌아갔다. 숯덩이로 변한 선인장 개그맨은 그루터기만 남아있었다. 순리에 역행한 벌을 받은 결과를 입증하듯 처연한 최후였다. 어머니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우리가 임종을 지켜봤으니, 저 양반도 소원성취했군.”
창욱과 아버지 사이의 감정의 앙금은 공중을 떠도는 재가 되어 소멸해버렸다. 한때는 아름답고 아늑했던 정원이 이제는 을씨년스러운 묘지처럼 비쳤다. 여태까지의 창욱의 삶도 그 묘지에 묻힌 듯 일단락을 맺었다. 창욱은 홀가분했다. 세상을 향한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창욱에게 정원은 과거의 유물이었다.
“창욱아, 정원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가는 게 어떠니? 난 노쇠해서 정원을 돌볼
여력이 없어.”
어머니의 제안에 창욱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소설을 출판하던 출판사 대표인 한 씨가 집을 사겠다고 나섰다. 그는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서글서글한 성격이었다. 한 씨는 폐허가 된 정원도 흡족해했다. 이 정도로 넓은 공간이라면 텃밭을 일구고 연못을 만들기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한 씨에게 집을 판 후, 창욱과 어머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갔다. 창욱은 소규모 회사에 취직했고, 틈틈이 습작에 몰두했다. 글이 막힐 때마다 선인장 개그맨의 마지막 노래인‘What A Wonderful World’를 읊조렸다.
5월의 화창한 일요일, 한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씨는 서재의 책상에서 우연히 찾은 아버지의 유품을 가져가라고 요청했다. 한 씨가 서재의 책장과 책상을 탐내자 어머니는 선물하듯 줘버린 것이다. 창욱이 옛집을 방문한 날, 한 씨 부인은 외출 중이었다. 창욱은 감회에 젖어 정원을 둘러보았다. 한 씨 부부가 복원에 애쓴 덕에 정원은 예전보다 뛰어난 풍광을 창출했다. 한 씨는 창욱에게 정원을 구경시켜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원의 정령이 있다면 자신에게 감사를 표할 것이라고. 건성으로 듣던 창욱은 검게 그을린 선인장 개그맨의 그루터기와 맞닥뜨려졌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루터기에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었다.
“불에 타죽은 나무가 회생하다니, 행운의 징조가 아니면 뭐겠어? 난 이 나무를
잘 키울 작정이야.”
한 씨는 빅 뉴스를 통보하듯 쾌활하게 말했다. 창욱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선인장 개그맨을 과소평가한 것이 실수였다. 선인장 개그맨은 부활을 꿈꾸며 재생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벌써 창욱의 머릿속에선 선인장 개그맨의 휘파람 소리가 쟁쟁히 울리는 듯 했다.
“이 나무가 아프리카 선인장이라고 했지?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
군.”
한 씨가 혼자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창욱은 장단을 맞출 수 없었다. 창욱을 집안의 거실로 안내한 한 씨는 보관하고 있던 유품을 건네줬다. 한 씨 부인이 책상 서랍을 빼고 청소하다 맨 아래 서랍 밑 공간에서 발견한 것으로, 창욱의 가족사진이 담긴 미니액자였다. 사진 속의 창욱은 뽀송뽀송한 소년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둘다 흰머리가 생기기 전의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맨 아래 서랍 속에 은밀히 간직해온 것이 서랍의 틈으로 빠졌을 거라고 한 씨는 추측했다. 창욱은 마지못해 미니액자를 주머니에 넣었다. 창욱의 뚱한 표정을 읽은 한 씨가 넌지시 말했다. 창욱을 다독거리는 어조였다.
“자네 아버지는 자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설까봐 노심초사했어. 작가처럼 자신
을 소진하는 직업이 없음을 몸소 체험했으니까.”
창욱의 내면에서 고목이 쓰러지듯 뭔가 무너져내렸다. 창욱은 한 씨를 외면하며 거실 밖의 정원을 보는 시늉을 했다. 창욱의 시선은 거실의 유리문을 뚫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아 선인장 그루터기 근처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까. 미니액자를 몰래 꺼내보며 가족의 정을 그리워했을까. 창욱은 아버지가 나무로 환생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환생을 통하여 사랑을 갈구한 것이다. 비록 막무가내식 표현이었지만, 아버지의 목마른 절규는 어머니와 창욱에게 생생히 전해졌다. 아버지의 환생의 삶은 지극히 짧았지만,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선인장 개그맨은 기꺼이 죽음을 수용한 것이다. 창욱은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메었다.
“아, 참. 새싹이 돋아난 그루터기 말이야. 그 밑에 우리 초롱이를 묻었어.”
한 씨가 스스럼없이 꺼내는 얘기가 창욱의 귓전에 와 닿았다.
“초롱이는 내가 키우던 애완뱀이야. 알비노 콘스네이크인데, 감기에 걸려 죽었
지. 자동온도조절기가 고장났거든. 어디에 묻을까 고민하다 그 자리를 택했어.
죽었다 살아난 나무 밑이라면 풍수가 좋을 것 같아서. 우리 초롱이도 편하게 쉴
수 있을 테고. 자네, 안색이 창백하군. 어디 아픈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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