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려!
- 작성일 200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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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이는 명우라는 아이에게 돈을 뜯겼다. 명우가 수현이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궁해지면 자기 살이라도 뜯어 먹는 것이 사람이니까. 명우는 상당히 싹수가 보이는 녀석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벌써부터 자신의 터인 초등학교 내에서 ‘용맹회’라는 폭력조직을 결성해 활동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매체들이 병적인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었다. 아이는 일찍부터 만화영화 속의 악당조직들을 보며 열광했다. 특히 그 또래에서는 다소 매니악한 취향이기는 하지만 브로켄 백작의 철십자 군단을 동경했다. 녀석은 꽤 체계가 잡힌 조직을 운영했다. 세부적인 면, 예컨대 등급심사를 강화한다거나 보스로서 어느 정도는 도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면에서는 미숙했지만 외양적인 측면에서는 나치의 군복처럼 조직원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고 있었다. 아이는 때때로 전리품들을 이용해 주기적인 ‘회의’를 열어 조직원들과 자신의 정신을 세뇌하는 일 또한 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들은 무시무시한 어둠의 힘으로 아이들의 돈을 갈취했다. 덤으로 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쨌든 수현이도 이 정형화된 악행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수현이는 복받치는 서러움에 울면서 집에 왔다. 모든 것이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무서웠다. 마치 벌거벗고 광장에서 모욕과 조롱으로 정신을 고문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수현이가 방금 살아난 시체처럼 느리고 장중한 걸음으로 길바닥에 눈물을 떨구며 현관문으로 다가오는 것을 목격한 수현이의 엄마는 마시던 차를 뿜으며 경악했다. 엄마는 맨발로 뛰쳐나와 아이를 붙잡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고 닦달했다. 엄마의 흐트러진 태도가 아이의 공포심을 더욱 자극했다. 그래서 아이는 계속 울었다. 엄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발 울지 말고 뭐라도 말하란 말이야!’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도 울분이 터져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명우 패거리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보복에 대한 걱정은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수현이의 등 어딘가에 꼭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이 자신의 내장을 후벼 파 내고 있는 느낌이 괴로웠다. 날 것. 생생할 날 것의 느낌이 인간의 귓속으로 들어오려는 거대한 지네와도 같았다. 수현이는 그 힘에 불가항력적이었다. 그것은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불가사의한 외계에너지의 침입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강했다. 수많은 닦달과 학교에 직접 전화해서 알아내겠다는 식의 협박 끝에 엄마는 수현이의 닫힌 입을 여는데 성공했다. 엄마는 다음 날 곧장 학교로 찾아갔다. 수현이는 집에 놔두고서. 선생은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무기력했거나 귀찮아서 묵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은 수현이의 엄마가 따지는 내용을 적당히 들어주며 속으로는 매우 피곤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이 여자는 아무런 대안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시끄럽기만 해.’ 선생은 이 여자에게 삶의 진리를 하나 전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교육자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분이니까. 선생이 한 말은 대략 다음과 같다. 물론 축약본이다. 선생도 자신이 한 말을 이런 형태로 기술하는 것을 더 반가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진리는 감정이 아닌 이성의 영역이며 감정을 진동시키기 위한 수사를 걷어낸 명확한 서술로 쓰여져야 마땅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하지만 명우의 어머니는 이 학교 교장입니다. 이 학교 교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곳 학군에서 가장 입김이 센 인사입니다. 나이도 어린데 벌써부터 교장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 보세요. 얼마나 빽이 막강한지 아시겠죠?”
선생의 이런 뜻은 수현이의 엄마에게도 여실히 전달되었다. 수현이의 엄마도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자기는 잘못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선생의 태도에 화가 나기는 했어도 선생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수현이의 엄마는 이 두 개념에 대한 인식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였다. 수현이의 엄마는 매우 슬펐지만 자신이 슬퍼도 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엄마는 이것저것 생각하는 골치 아픈 과정을 생략하고 검고 큰 혈전처럼 응어리진 감정을 풀기 위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현이도 무섭고 서러워서 같이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 안은 곧 울음바다가 되었다.
콜론이 일관되게 고수하는 졸린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모자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다. 수현이는 거대한 산처럼 속세의 더러운 것들과는 유리되어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콜론에게 뛰어가 그 품에 안겼다. 그리고 소매로 연신 흘러내리는 콧물을 훔치며 더듬더듬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호소했다. 명우가 자꾸 자기 돈을 뺏어서 슬프다고. 사실 명우가 수현이의 돈을 뺏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명우는 분명 다음번에도 수현이의 돈을 뺏을 궁리를 하고 있었으므로 콜론은 이 거짓말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콜론은 수현이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명우에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고 올게.”
콜론은 즉시 움직였다. 토끼는 명우의 집에는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지만 명우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가물가물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오랜 숙고와 도보 끝에 분홍 토끼는 명우의 커다란 단독주택 앞에 서 있게 되었다. 집은 이미 너구리굴이 되어 있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 혹은 대마초 연기가 몽실몽실 연기의 혼령처럼 창문 틈에서 여린 형태로 새어 나왔다. 아마 돈 있는 집 자식들 중 일부가 얼마나 쉽게 대마초를 접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토끼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중한 태도로, 명우와는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명우의 집 문을 노크했다. 순식간에 집 안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실제로 목격했다면 그다지 유쾌한 광경이 아니었겠지만 소리로만 듣는 토끼에게는 꽤나 희극적으로 느껴졌다. 소리로 봐서는 안에 있는 것은 한두 놈이 아닌 듯 했다. 하긴 명우 정도의 사회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놈이 혼자서 방에 틀어박혀 궁상스럽게 마약을 태우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곧 집 문이 열리고 토끼가 찾던 사람이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명우였다. 방금까지 손에 들고 태우던 것은 머릿속에서 휘발시켰는지 경악스러울 정도로 단정하고 태연한 모습이었다. 토끼는 순간 이 녀석에게 초자아란 것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토끼가 말했다.
“너, 앞으로는 수현이랑 다른 애들 돈을 갈취하지 마!”
약삭빠른 명우는 사태를 쉽게 이해했다. 그래서 토끼를 모욕하기 위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꺼지라고 말했다.
“니가 어떤 새끼이든 앞으로 까불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명우는 이렇게 말하고는 콜론의 배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솜털뭉치라는 용어를 동원해 비웃었다. 이 처사는 콜론의 인내심을 자극했다. 콜론이 큰 앞니를 분노로 갈며 말했다.
“내 이름처럼 네 인생에도 마침표를 찍어주마.”
하지만 이 말에도 전혀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명우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바탕 떠들썩한 병적인 웃음소리가 집 안에서 들려왔다. 토끼는 분노로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눈은 충혈 되었고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게 되었으니 겉보기에는 진짜로 미친 것처럼 보였다. 토끼는 제일 먼저 명우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다음은 일일이 묘사하기도 번거로운 난장판의 연속이었다. 여러 가지가 날아다녔고 부서졌다. 명우의 집 안에 들어있던 패거리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이 혼돈의 와중에 명우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콜론이 명우와 같은 사악한 부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수현이는 명우의 패거리들에 의해 학교 뒤편으로 불려갔다. 주변국에서 온 대사들을 압도하기 위해 뜯어고친 히틀러의 관저처럼 명우의 패거리들은 교장의 묵과 하에 학교 뒤편에서 용맹회의 본거지로 이어지는 짧은 길을 온갖 종류의 무대장치를 동원하여 무시무시하게 꾸며 놓았다. 괴기스럽고 악의를 담고 있는 내용의 낙서라던 지 온갖 종류의 용도를 알 수 없는 육중한 쇠뭉치들이 그 장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 길의 가장 깊숙한 곳에 기적의 궁전의 꼭지딴처럼 명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콜론 앞에서 뽐낸 유약한 모습은 사라졌다. 팔짱을 끼고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높은 둔덕에 서 있는 명우의 모습은 이 녀석이 진짜 위험한 놈이라는 인상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명우는 끌려온 수현이의 앞에 서서 이 조그맣고 힘없는 바보가 이곳의 분위기에 젖어 들기를 기다렸다. 불길한 침묵에서 스며나오는 불안감이 수현이의 심장을 쥐어짰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기회만 나면 도망치고 싶었지만 수현이에게는 도망치고 나서의 뒷감당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용기도 없었다. 그저 영혼 없는 마네킹처럼, 수현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갖가지 사악한 것들을 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설령 미래의 수현이가 ‘어째서 바보 같이 도망치지 않았니? 그건 전부 네 잘못이야.’라고 현재의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듣고 다시 이 장소로 돌아오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현이의 정신은 이 모든 것들을 뿌리치기에는 너무 새것이었다. 곧 강림이 있었다. 명우가 친히 옥좌에서 내려와 수현이의 앞에 섰는데 그것은 우호의 표시가 아니라 강한 증오의 표시였다. 수현이에게는 불행이었다. 수현이가 두 려워하는 모습은 명우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명우가 말했다. 그 어조에는 감정이 신중하게 거세되어서, 마치 수술대에서 산 채로 해부되는 것 같은 감정을 수현이에게 불러일으켰다. 해부하는 사람은 대개 감정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 토끼 네 거지?”
수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모른다고 말해야겠지만 수현이에게 그것은 토끼에 대한 일종의 배반행위처럼 느껴졌다. 배교자! 배반자! 배신자! 수현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상에 사로잡혀 토끼가 절대로 그런 비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뇌가 부푼다. 정신이 부푼다. 몸도 부풀어 펑 터져 버릴 것이다. 그것은 일순간에 일어나겠지. 고통 없이 나는 죽는 거다. 성불한 부처처럼 우주의 일부가 되어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행복하겠지. 행복을 느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수현이는 필사적으로 환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잔학한 정신을 가진 인종인 명우는 수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명우는 끊임없이 수현이에게 적의에 가득 찬 말을 건네 수현이의 웅크린 마음을 현실로 끌어내렸다.
“그렇잖아. 맞잖아 이 씨발새끼야!”
수현이는 도의라는 것이 삭제된 이 상황에서 홀로 그것을 지키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토끼에 대한 도의를 지키는 것은 어려웠다. 그랬다가는 앞에 서 있는 절대 권력자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짓의 범위는 그야말로 무한하다. 하려는 사람이 결심만 한다면 말이다. 명우는 사악한 것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로 정신의 많은 부분에서 그에 대한 족쇄가 풀려 있었다. 노출의 일부는 조직의 보스라는 이유에서 눈물을 머금고 억지로 해야 했던 것이었지만 그런 고통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그는 일종의 괴물이었다. 괴물들끼리는 서로를 괴물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만 그 괴물에게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괴물일 뿐이었다. 명우는 맘만 먹는다면 끝까지도 갈 수 있었는데, 그 끝은 실제로 끝이 아니었다. 명우는 곧 그 끝 또한 넘어서게 될 것이다. 마치 관성처럼, 이미 시작된 그 일은 명우 스스로 돌이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작은 명우가 했다. 하지만 중간부터 고삐는 다른 무언 가에게로 넘어갔다.
“맞아, 안 맞아 이 십새끼야. 맞아 볼래!?”아이 중 하나가 벌레라도 차는 것처럼 무릎 꿇은 수현이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시비를 걸었다.
“야, 보스가 묻잖아. 이게 죽고 싶나. 야. 야!”
수현이는 불쌍하게 보이기라도 해서 녀석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래서 아이의 마지막 발길질에 일부러 나가 떨어져 눈물 콧물을 짜 내며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바닥을 기었다. 폭력배 중의 일부에는 자극받은 자들이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 토끼 네 꺼잖아! 그 새끼가 니 이름을 말했어!”
그렇구나! 내가 이렇게 얻어맞고 있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다 토끼 탓이었어! 그 녀석이 도와준다고 가서 그런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괜찮았을 텐데. 수현이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망상적인 분노였다. 사실 그것은 명우와 그의 패거리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지만 차마 공포가 쳐낸 막을 뚫고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수현이의 정신 속에 머무르던 중이었다. 이제 그것이 다른 출구를 찾은 것이다. 가짜, 환상의 출구를. 수현이는 그 분노를 목소리에 담아 말했다.
“그 토끼는 내 게 아니야.”
씨알도 안 먹혔다. 명우는 자신이 모든 인간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명우는 자신이 앞에 있는 조그만 것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함으로써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만약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도 적어도 중요한 것들은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거의 광신적인 것이어서 명우는 그것에 대해 조금의 허점도 허락지 않았다. 명우는 그 분홍색 토끼가 수현이의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다. 정확히 명문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 토끼는 명우에게 그런 인상을 불러일으켰고, 자신이 그런 기술에서 절대로 틀릴 리 없다고 생각하는 명우는 ‘자신이 그런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라는 괴기스러운 논리로 머리를 채웠다. 여기에 거짓말에 서툰 수현이가 자구책으로 내놓은 변명이 불을 붙인 것이다. 분홍 토끼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수현이의 얼굴에서 무언가 수상한 기색을 읽은 명우는 저 따위 녀석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대해 분노로 날뛰기 시작했다. 명우는 지체 없이 수현이의 따귀를 갈겼고, 폭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수현이는 흙바닥을 구르며 살기 위해 도망쳤다. 이것은 실수였다. 아직 명우의 사악함이 덜 다듬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만약 명우가 조금 더 기술적으로 사악했다면 이렇게 수현이의 변명을 폭행으로 잇는 대신 계속해서 언어적으로 고문하고 협박해 수현이가 자신이 한 말이 거짓이었음을 억지로 자백하게 했을 것이다. 그 편이 명우가 자신의 위신을 견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보너스로 수현이에게 더 큰 굴욕감을 안겨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우는 그 정도로 영악하지 못했고 결국 수현이에게 도망갈 정당성을 안겨준 셈이었다. 어른에게 울며 달려가 ‘나 욕을 얻어먹었어요!’하고 말하는 것과 ‘나 얻어맞았어요!’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점이다. 둘 사이에서 어른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 지는 자명했고, 수현이도 그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명우의 부하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굉장히 큰 소리로 악을 쓰며 복마전으로부터 달려나갔다. 곧 사태를 파악한 부하들이 수현이를 막으려했지만 명우가 가로막았다. 이렇게 위험한 사태는 직접 나서야 마음이 편하다. 괜히 어중이떠중이들에게 맡겨 두었다가는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었다.
수현이는 강풍 앞의 촛불처럼 발광하며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곳에는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엄마를 찾아서 학교 건물을 나섰다. 교문 앞에서 기대에 못 미치고 실패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분노를 곱씹던 학생주임이 기분 나쁘게 생긴 아이를 하나 발견했다.
‘어쩐지 땡땡이를 치러 학교 밖으로 나가려다가 나를 보고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는 것 같군. 지금 와서 학교로 돌아가면 땡땡이치려 한 걸로 확실하게 찍힐까봐 같잖은 변명 하나를 쟁여두고 교문으로 오는 것이 틀림없다.’
수현이는 수현이대로 사람을 때리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주임을 싫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마치 자신이 학주에게 맞아 우는 모습이지 않은가?! 그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틀림없이 학주가 비웃을 것이라는 마법적인 망상이 수현이의 뇌에 가득 차서 수현이는 잠시 동안 우는 것을 자제했다. 그렇다고 콧물자국과 눈물자국은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현이는 고개를 최대한 굽히고 얼굴을 숨겼다. 학주가 이런 모양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뻔했다. 분노가 이글이글. 수현이는 반쯤은 반항하는 마음으로 학주를 무시하고 학교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학주는 화가 나서 수현이를 부르다가 욕이 튀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밖은 바로 사회인데, 욕을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학주는 다시 도망치는 수현이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도망치는 녀석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땡땡이치지 마!”
그때 명우가 거짓된 모습으로 학주 앞에 나타났다.
“선생님! 제가 수현이를 잡아 올게요.”
하고 뛰어나갔다. 다른 아이였다면 붙잡았겠지만 교장의 아들이니 딱히 붙잡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너무 멀리 갔다. 학주는 그저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교장 앞에서 변명할 수 있도록 적당히 막는다는 쇼만 보여주면 되었다. 자발적으로 내 수족이 되어 움직이다니 기특하지 않은가. 칭찬할 만한 녀석이다.
수현이는 얼마 못가 명우에게 잡혀 개 패듯이 얻어맞았다. 진짜 개 패듯이였다. 육질을 연하게 한 다음에 잡아먹을 기세였으니까. 수현이는 울부짖었지만 공교롭게도 주위에 도와줄 어른은 없었다. 수현이는 처음에는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진짜 죽겠다 싶어지자 콜론을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콜론이 당근을 먹다 말고 나타났다. 콜론은 명우에게 마법을 걸어 성체, 그러니까 어른으로 만들었다. 자연히 수현이가 받는 괴로움이 한층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슨 깊은 생각이 있었는지, 콜론의 의중은 조금밖에는 헤아릴 수 없다. 어쨌든 이제는 어른이 애를 패는 광경이 되었다. 이것은 충분히 다른 어른들에게도 사악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죄행위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주위에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콜론이 불러들여야했다. 콜론은 어른이 된 명우를 막으려다 번번이 뒤로 나자빠졌다. 마법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야만적인 범죄를 목격하게 된 어른들은 그 추악한 모습에 경악했다. 그것은 신고를 받고도 오지 않는 바람에 콜론이 불러들인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명우는 즉각적으로 경찰서에 구금당했다. 명우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공포였다. 이런 공포에는 면역력이 없었기 때문에 명우도 감방 안에서는 수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수현이와 콜론은 엄마가 올 때까지 경찰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싫기는 했지만 수현이는 명우가 우는 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수현이는 그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다 큰 어른이 그토록 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모습은 그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명우가 불쌍해. 콜론, 쟤 풀어주면 안 돼?”
콜론이 묘한 표정으로 수현이를 바라보았다. 콜론은 아이의 순수함, 혹은 순진함에 대해서 숙고했다. 어쩌면 순수함이라는 것은 자신이 위험한 것도 모르고, 혹은 개의치 않고 남을 도우려는 마음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긍정적인 면모의 하나랄까. 비록 이용당하기 쉬운 위험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제 수현이의 옆엔 자신이 있지 않은가.
“명우가 풀려나면 복수하려 들 텐데 괜찮아?”
수현이는 그 말을 듣고는 얼마간 생각했다.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을 촉구하는 콜론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생각하는 척 했을 뿐이다. 아직 수현이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적성분자를 내팽개칠 정도로 모질지 못했다. 수현이는 이미 명우를 풀어주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수현이는 콜론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콜론은 마법을 사용했다.
명우는 다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경찰은 자신이 착각한 것 같다며 명우를 풀어주었다. 여기까지가 바로 마법, 이제 마법은 마침표, 다시 현실로.
다음 날 수현이는 교내의 인적 없는 곳에서 명우와 마주쳤다. 참으로 운 없는 조우라고 할 수 있었다. 명우는 씩씩거리면서 눈에는 분노를 가득 담고서 한참 동안 수현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하룻밤 새에 명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변한 것일까? 명우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두려워하는 수현이를 무시하고 다른 길로 휑하니 돌아갔다. 수현이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이 애써 호의를 베풀었는데 어째서 나를 계속 싫어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현이는 부디 자신에 대한 명우의 악의가 더욱 커진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것이 명우와 수현이 자신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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