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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어 (人面魚)

  • 작성일 2009-12-20
  • 조회수 1,616

 

                인면어(人面魚)

                                                    화이트울프

                                             

 용준이 본 가정용 수족관 중에서는 제일 규모가 컸다. 몸길이 50㎝, 몸통 둘레 20㎝ 정도인 황금빛 잉어가 가로 4m의 대형 수족관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유독 녀석만이 현란한 황금빛이었다. 수족관에 합사된 비단 잉어들도 저마다 형형색색의 자태를 뽐냈지만, 녀석 옆에선 광채를 잃었다. 다른 비단 잉어들은 황금빛 잉어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몰려 다녔다. 용준은 이 황금빛 잉어가 왕따임을 직감하며 묘한 동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인지 도저히 황금빛 잉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용준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황금빛 잉어의 얼굴이었다. 대부분의 관상어들은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하기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런데 이 황금빛 잉어는 심드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용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습관적으로 짓는 표정과 아주 흡사했다.

 관심이 증폭된 용준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녀석을 세밀히 관찰했다. 생뚱맞게도 사람 얼굴을 닮은 잉어였다. 우선 눈이 양쪽 볼 옆에 붙어 있어서 사람의 귀를 연상시켰다. 잉어의 콧구멍은 마치 사람의 눈처럼 보였다. 게다가 얼굴의 앞면 가운데 부분에 툭 튀어나온 뼈는 영락없는 사람의 코였다. 용준은 헉 숨을 들이마셨다. 말로만 듣던 인면어(人面漁)가 실재할 줄이야.

 “이 녀석은 특이하네. 돌연변이야?”

 용준이 짐짓 건성으로 묻자, 현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비단 잉어도 종류가 다양해.  홍백, 대정삼색, 소화삼색 등이 있지. 이 녀석은 황금 잉어야. 원래는 다른 녀석들처럼 25cm 전후의 몸길이였어. 언제부터인가 쑥쑥 자라더니 이런 몸집이 됐지. 어류전문가에게 문의해봤어. 물고기의 두개골이 함몰된 골격 기형이래.”

 용준은 현곤이 인면어의 희소성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함을 눈치챘다. 인면어는 단순한 기형이 아니라 상서로운 징조였다. 불교에선 이렇게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를 극락어라고 불렀다. 용준의 모친은 독실한 불자였고, 극락어에 얽힌 비화를 용준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밤낮 없이 눈을 뜨고 수행과 정진을 통해 승천의 날을 기다리는 인면어신은 수행자들의 본보기로 거론되었다.

 인면어와 연관된 속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삼면일성(三面一成)이었다. 인면어와 세 번 얼굴을 마주치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면어는 재벌가와 물고기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용준도 인면어를 애지중지 기르며 꿈을 갖는다면, 삶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현듯 인면어를 갖고 싶다는 충동이 용준을 사로잡았다. 용준은 마른 침을 삼키며 뜬금없이 제안했다.

 “현곤아, 저 황금 잉어, 내게 팔 생각 없니? 어머니에게 선물하려고 그래.”

 용준은 농담조로 말했건만, 현곤은 손사래를 치며 완강히 거절했다.

 “말도 안돼. 저렇게 우람한 녀석이 여느 가정집의 소형수족관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의 기저에 깔린 은근한 조소가 용준의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다. 금붕어를 키우며 소일하는 백수가 남의 비단 잉어를 넘보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짓이다. 현곤의 말은 확실히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용준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현곤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어 주먹이 근질거렸다. 그 와중에도 담당 정신과 의사의 조언을 필사적으로 되새겼다.

 “김 용준 씨. 당신은 타인의 사소한 언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병이에요. 타인을 향한 분노를 무조건 폭발시킬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통제하도록 노력해봐요. 자신이 수족관의 관상어라고 상상하는 건 어때요? 수족관 밖에서 인간들이 비웃든 말든 관상어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 조언은 제법 유효했다. 용준은 현곤으로 인한 분노를 억누르고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속으로는 후회막심이었다. 섣불리 현곤의 초대에 응하다니, 너무 경솔했다. 중학교 동창인 현곤과는 거의 십 오 년만의 재회였다.

 그 날 아침, 용준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외제 승용차가 멈추더니 운전자가 차창을 열고 아는 척 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운전자는 현곤이었다.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주눅이 들어있던 용준은 얼른 등을 돌린 채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현곤은 차에서 내려 용준을 쫓아왔다. 그 태도가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기색이어서 용준의 경계심도 무너졌다. 공교롭게도 현곤의 집은 용준의 집에서 가까웠다. 이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찌어찌해서 용준은 현곤의 차에 동승해서 현곤의 집까지 놀러가게 됐다.

 번지르르한 이층 단독주택이었다. 인사치례로 용준의 안부를 물은 뒤, 현곤은 최근에 구입한 이 집과 승용차에 대해 자랑만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용준을 이 방 저 방으로 끌고 다니며 집안을 구경시켜줬다. 용준은 현곤과의 중학교 시절 우정이 얼마나 얄팍한지 실감했다. 현곤도 용준에겐 불쾌한 타인에 불과했다. 그들이 연발총을 난사하듯 상처를 줄 때마다 용준의 내면에 벌집처럼 구멍이 뚫렸다. 연이어 취업에 실패한 뒤 조울증으로 입원까지 했던 용준의 삶은 그들과 별개의 궤도를 돌고 있었다.

 퇴원한지 석 달이 지났지만 계속 불면증과 망상에 시달리는 아들을 보다 못해 모친은 거실에 수족관을 설치해줬다. 솔직히 말해 용준은 금붕어 따위에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모친을 실망시킬 수 없어 꼬박꼬박 먹이를 주고 수족관을 깨끗이 청소했다. 모친은 관상어를 키우는 행위가 아들의 정신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었다. 용준은 모친의 맹목적인 모성애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곤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모친은 고급 한식당 주방에서 땀 흘리며 일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용준의 팽팽히 긴장됐던 신경이 느슨해졌다. 못난 아들이라는 자괴감이 용준을 움츠려들게 했다.

 현곤의 집은 대형 수족관 외에도 화려한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미혼이자 직업도 없는 현곤이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었다. 현곤의 말로는 조부의 유산을 물려받았다지만 왠지 미심쩍었다. 용준의 기억에 의하면 현곤의 조부는 그다지 재력가가 아니었다.

 “넌 저 잉어를 예뻐하지도 않으면서, 왜 내게 팔려고 하지 않는 거지?”

 용준이 따지듯 묻자, 현곤은 버럭 신경질을 냈다.

 “자꾸 왜 그래? 절대 팔지 않는다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용준은 확신을 굳혔다. 현곤은 인면어의 진가를 익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할 뿐이다. 현곤이 직장을 때려치우고 빈둥거리게 된 것도 순전히 인면어 덕택이다. 필시 인면어가 현곤의 부를 실현시켜줬으리라. 생각할수록 분통 터지는 일이다. 현곤처럼 무례하고 몰상식한 자식이 인면어를 차지하다니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황금 인면어는 용준의 불만에 공감하듯 눈을 찡긋했다. 그럴 리가. 용준이 잘못 본 것이다. 용준은 수족관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져서 황금 인면어의 얼굴을 일별했다. 듬성듬성 빠진 숱 적은 눈썹. 눈꼬리가 내려온 눈. 뭉툭하고 콧망울이 큰 코. 그 얼굴은 다름 아닌 현곤의 얼굴이었다. 인면어의 얼굴이 느닷없이 친구의 얼굴로 둔갑하다니. 조울증 약을 끊어서 이런 환상이 보이는 걸까? 용준은 자못 혼란스러웠다.

 현곤의 얼굴을 한 황금 인면어가 꿈틀거리며 수면으로 올라오다 수족관 벽에 머리를 찧었다. 인면어는 시치미를 떼며 눈만 껌벅거렸다. 현곤이 자신의 실수를 얼버무리던 표정과 똑같았다. 참다못해 용준의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감정 조절이 서투른 용준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를 만나자, 용준의 감정은 극에 달하며 조증으로 분출했다.

 용준은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조증이 발병하면 그렇듯 용준의 기분은 들뜨다 못해 흥분 상태로 접어들었다. 용준은 과다하게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 안달복달이었다.

 “야, 김 용준. 역시 넌 싸이코야. 시도 때도 없이 웃는구나.”

 현곤의 빈정거리는 말을 듣자, 용준의 웃음이 목구멍에 딱 걸리며 금방 잦아들었다. 세상엔 비밀이 없었다. 현곤은 용준의 수치스런 비밀을 알고 있었다. 때때로 용준의 정신이 일탈해서 비정상적으로 된다는 것을. 현곤의 얼굴을 빼다 박은 황금 인면어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 입에선 현곤의 경망스런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여기 김 용준이라는 싸구려 금붕어가 있습니다. 자신이 비단 잉어라고 우기는, 살짝 맛이 간 금붕어랍니다. 이 금붕어는 수족관 밖의 세상을 전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어요.”

 담당 정신과 의사의 조언은 헛소리였다. 싸구려 금붕어도 엄연히 귀가 있다. 외양으로는 안보이지만, 귓구멍이 머리 내부에 있는 좌우 두 개의 귀가 있다. 금붕어는 더할 나위 없이 예민하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금붕어를 바보로 매도해버린다.

 “닥쳐. 닥치란 말이야.”

 용준은 수족관 벽을 마구 두들기며 소리쳤다. 황금 인면어는 실실 웃으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무슨 짓이야? 너, 진짜 미쳤어?”

 현곤이 등 뒤에서 용준의 팔을 잡아채며 만류했다. 용준은 그 팔을 획 뿌리치며 현곤을 밀쳐버렸다. 현곤이 화를 내며 덤벼들었다. 현곤은 용준보다 키가 작고 체격도 왜소한 편이었다. 용준이 현곤을 내려다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용준은 인정사정없이 현곤의 턱을 후려갈겼다. 현곤이 비틀거리며 수족관 옆의 장식장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쳤다. 현곤은 주저앉더니 고개를 떨구고 꿈쩍도 않았다. 용준은 현곤이 장난을 친다고 여겼다.

 “자식. 그만 일어나.”

 용준이 흔들자 현곤의 몸이 옆으로 기울며 쓰러졌다. 현곤은 눈을 감고 길게 누워 있었다. 용준은 현곤의 가슴에 귀를 대보았다. 심장 박동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소행을 깨달은 용준의 눈앞이 노래졌다.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가며 용준을 갈팡질팡하게 했다. 당장 모친이 일하는 식당으로 달려가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게 어떨까? 예전에도 용준이 사고칠 때마다 모친이 나서서 뒤처리를 해주지 않았던가. 모친은 용준의 입원경력을 들먹여서 법원이 정상을 참작하도록 힘써줄 것이다. 아니, 아니다. 더 이상 모친의 짐이 되어선 안된다. 가급적 모친에게 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서성이던 용준은 수족관의 황금 인면어와 눈이 마주쳤다. 현곤이 죽었음에도 인면어에 박힌 현곤의 얼굴은 멀쩡했다. 시체가 된 현곤보다 오히려 인면어의 얼굴이 생생하고 현실적이었다. 그 얼굴은 살아있는 것처럼 호흡하며 미세한 근육을 움직였다. 용준의 몸에서 떨림이 멈췄다. 현곤의 얼굴을 한 인면어가 용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 공격은 전광석화 같았어. 너처럼 몸짓이 민첩한 살인자는 처음 봐.”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용준은 인면어의 입에서 나오는 현곤의 목소리가 듣기 거북했다. 어쩌면 인면어의 실체가 날조된 것은 아닌지, 가상의 동물을 현실에 대입한 것은 아닌지, 용준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갔다. 그러자 인면어에 대한 경외심은 희박해지고 그 대신 혐오감이 치솟았다.

 “인면어 너 때문에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거야. 넌 내게 보상을 해야돼.”

 용준이 삿대질을 해도, 인면어는 능글맞게 응수했다.

 “무슨 보상? 네게 행운을 부여해달라는 거야?”

 “그래. 난 삼면일성을 실천할 계획이야. 널 집으로 데리고 가겠어. 넌 내 소유가 되는 거야.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오직 나만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네 의무야.”

 인면어는 피식 웃으며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아, 피곤해. 인간들의 등쌀에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군.”

 그 능청스럽게 웃는 모습도 현곤을 보는 듯 했다. 용준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인면어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야. 그래도 소원성취를 갈구하나?”

 용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면어는 한숨을 쉬더니 못이기는 체 말했다.

 “김 용준. 네 청을 기꺼이 수락한다.”

 용준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간이 촉박했다. 누가 방문해서 현곤의 시체를 발견하면 큰일이었다. 지체하다간 범행 현장을 들킬까봐 일 분, 일 초가 초조했다. 다용도실을 뒤져 뚜껑 달린 플라스틱 양동이를 갖고 왔다. 수족관 뚜껑을 열고 상부의 물을 양동이에 부은 뒤, 수족관의 황금 인면어를 조심스레 안아올렸다. 인면어는 용준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 듯 찰싹 안겼다. 인면어를 재빨리 양동이로 옮기고 뚜껑을 닫았다.

 용준의 지문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이 집에 들어온 후로 현곤의 가구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으니까. 용준은 침착하게 현곤의 집을 나왔다. 용준의 집까지는 걸어서 십 여 분이 걸렸다. 남의 시선을 피해 골목길을 택했지만, 용준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행인이 간혹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은 용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들의 무관심은 용준으로 하여금 서운함과 안도감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용준은 분명 비단 잉어인데, 타인의 눈에는 싸구려 금붕어로 비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이 비단 잉어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인식시킬 수 있을지 그에 대한 강박증이 용준을 괴롭혔다.

 집에 도착한 용준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용준의 집에 있는 수족관은 가로 60cm의 2자짜리였다. 몸길이 50㎝의 인면어를 키우기에는 아무래도 비좁았다. 비단 잉어와 금붕어를 합사하면, 금붕어가 스트레스를 받아 죽는다는 말을 들은 터라 더욱 망설여졌다. 적절한 방안이 없나 궁리하며 수족관을 들여다보던 용준은 뜻밖의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다섯 마리의 금붕어가 모조리 배를 뒤집고 죽은 채 둥둥 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했다. 산소공급기와 측면여과기 둘 다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물갈이를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담배를 사러 외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금붕어들은 건강했었다.

 용준은 금붕어의 사체를 뜰채로 일일이 건져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인면어가 등장하자마자 금붕어들이 죽어 자리를 비켜줬으니 행운의 조짐이 맞을 것이다. 다소 억지논리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용준은 양동이에서 인면어를 꺼내 수족관으로 옮겼다. 황금 인면어는 여전히 현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은 친구의 얼굴을 대면해야하는 상황이 용준에겐 꺼림칙했다.

 “네 짓이야? 네 편의를 위해 금붕어들을 죽였니?”

 용준이 넌지시 떠보듯 물어도 인면어는 묵묵부답이었다. 수족관을 전세 낸 듯 득의만면한 표정인 인면어에게선 위압과 압도감이 풍겨나왔다. 인면어를 오래 상대하다가는 은연중에 용준도 피해를 입을까봐 두려웠다. 용준은 하루빨리 소원부터 부탁하기로 결심했다. 인면어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 사이니까 삼면일성의 절차는 생략해도 무방하리라.

 “이봐. 내 소원을 들어봐. 경찰이 나를 용의자 선상에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줘. 현곤의 사건이 영원히 미제로 남도록 하는 거야. 그리고 난 돈이 필요해. 강남의 커피숍을 인수해서 경영하려면 4억이 들어. 내게 4억을 마련해줘.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어머니로부터 용돈을 타 쓰는 심정이 어떤지 알아? 난 분가해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살 거야.”

 용준이 열성적으로 떠드는 동안, 인면어는 성인군자 같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 표정은 낯익었다. 중학교 시절, 용준의 도시락을 훔쳐먹은 뒤 오리발을 내밀던 현곤의 표정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왕따시켰던 놈들에게도 복수하고 싶어. 내 책상서랍에 놈들의 명단이 있어. 보여줄까?”

 용준은 열을 올리며 일사천리로 지껄였다. 수족관 앞을 왔다갔다하는 용준의 발소리가 쿵쿵거렸다.

 “욕심도 많군.”

 인면어가 단호한 어조로 용준의 말을 잘랐다.

 “넌 벌써 세 가지 소원을 말했어. 난 한 가지 소원 밖에 들어줄 수 없어. 네가 말한 세 가지 소원 중 하나만 선택해.”

 인면어의 말이 옳은 줄 알면서도 용준은 못내 안타까웠다.

 “어째서 세 가지 소원은 안되는 거지? 난 세 가지 소원 모두 절실해.”

 용준이 막무가내로 졸라대자 인면어는 엄하게 꾸짖었다.

 “난 램프의 요정 지니가 아니야. 네가 심심하면 부려먹는 하인과는 격이 틀려. 난 내 의지로 행동하지. 가끔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건 일종의......”

 적당한 어휘를 고르던 인면어의 얼굴에 도도하고 건방진 표정이 떠올랐다.

 “일종의 자비 행위야. 미천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셈이지. 알아들었어? 이 탐욕덩어리야.”

 용준은 기가 막혔지만 꾹 참기로 했다. 이왕 일은 형편없이 꼬여버려서 수습하기 힘들었다. 세 가지 소원 중 한 가지만이라도 이루어진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경찰은 멍청하니까 현곤의 죽음을 사고사로 간주할 것이고, 용준을 왕따 시켰던 놈들은 나중에 복수해도 늦지 않다. 그런 식으로 대충 정리를 하니까 용준의 소원은 달랑 하나만 남았다.

 “내 소원은 4억이야. 이 소원은 반드시 들어줘야해.”

 용준은 결연히 단언했다. 인면어는 한순간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미소 지었다.

 “4억이라, 약속은 지킬 게. 나만 믿어.”


 점심을 챙겨먹은 뒤 용준은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려고 인터넷 게임에 몰두했다. 오후 세 시경, 용준의 조증이 서서히 사라지자 교대근무를 하듯 울증이 급습했다. 퇴근한 모친이 수족관의 인면어를 보며 잔소리할 것을 예상하니 골치가 아팠다.

 “아시잖아요. 수행자들의 본보기인 인면어신. 나도 저 인면어신을 보며 인격수양에 정진하려고 해요.”

 이런 핑계를 대면 그런대로 통할 것이다. 그렇지만 바보짓이다. 저까짓 인면어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다니. 만약 인면어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용준은 또다시 배반당한 셈이 된다. 인간도 인면어도 용준을 무시한다면 용준은 이 세상을 살아갈 의욕이 없다. 온갖 우울한 잡념으로 용준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자신을 살인자로 만든 인면어에 대한 증오가 새삼스럽게 치밀었다.

 용준은 거실의 수족관으로 달려갔다. 아까 말한 소원은 대체 언제 이뤄줄 것인지 구체적인 날짜를 가르쳐달라며 인면어를 다그칠 작정이었다. 황금 인면어는 잠을 자는 듯 수족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확연히 달라진 인면어의 얼굴이 용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가는 반달형 눈썹, 동그란 눈망울. 오똑한 콧날. 용준은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느새 인면어의 얼굴은 현곤의 얼굴에서 모친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불길한 예감으로 용준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용준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벽을 짚었다.

 따르릉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경기를 하듯 용준의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수족관의 인면어는 연민에 찬 표정으로 용준을 응시했다. 용준이 모친의 기대를 저버릴 때마다 모친의 얼굴을 그늘지게 하던 그 표정이었다.

 “용준아. 엄마 말 들어. 넌 저 전화를 받아야돼.”

 인면어가 코를 훌쩍이며 모친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용준은 넋이 나간 듯 느릿느릿 움직이며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모친이 고용된 한식당의 주인인 홍 사장이었다. 60대 여사장인 홍 사장은 식당 종업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홍 사장을 언니처럼 믿고 따르던 용준의 모친은 용준이 속을 썩일 때마다 홍 사장에게 의논하곤 했다. 평소에 카랑카랑하던 홍 사장의 목소리가 그 날은 낮게 쉬어있었다.

 “용준이니? 네 엄마가 교통사고로 숨졌어.”


 홍 사장이 손수 승용차를 몰고 와서 조수석에 용준을 태웠다. 모친의 시신이 안치된 종합병원 영안실로 가면서, 홍 사장은 띄엄띄엄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모친은 식재료 운반차가 오는지 보려고 식당 밖에 나와 있었다. 그 때 골목길에서 주차 중이던 화물차가 미끄러지면서 모친을 덮쳤다. 화물차 운전자가 경사길에 차를 세워놓은 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사고였다. 모친의 비명 소리를 듣고 식당 종업원들이 달려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직후였다.

 용준의 머리 위로 물이 차올랐다. 용준은 숨이 막혔다. 세상의 해일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주던 모친의 부재는 여파가 컸다. 이제 해일이 밀려와 용준을 휩쓸어버릴 것이다.

 “네 엄마는 자나 깨나 네 걱정이었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이었지. 고심 끝에 네 엄마는 종신보험에 가입했어. 넌 종신보험금을 유산으로 상속받는 거야. 내가 알기로는,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 재해사망 보장금으로 4억을 받을 수 있대.”

 홍 사장의 말을 들으며, 용준의 속이 울렁거렸다. 용준은 멀미를 하듯 헛구역질을 했다. 인면어의 장담은 빈말이 아니었다. 인면어는 단 몇 시간만에 용준의 소원을 현실화시켜줬다. 용준이 원했던 액수의 돈은 모친의 생명과 맞바꾼 대가로 주어졌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야.’

 인면어의 경고가 용준의 귓전에 메아리쳤다. 용준은 머리를 잡아뜯으며 몸부림쳤다.

 “얘. 진정해.”

 당황한 홍 사장이 용준을 달래려고 용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홍 사장의 얼굴 위로 인면어의 얼굴이, 모친의 얼굴이 겹쳐졌다.

 “착하지. 내 아들. 이 엄마에게 오렴. 내가 널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줄게.”

 인면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친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인면어가 지느러미를 너울거리며 용준을 껴안으려고 했다. 부드러운 지느러미가 용준의 코끝을 애태우듯 간질였다. 용준은 그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싫어요. 저리 가세요.”

 용준은 팔을 휘둘러 인면어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홍 사장이 코피를 흘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홍 사장의 손이 운전대를 놓치자 차가 급정거했다. 용준이 황급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그 뒤에서 인면어가 모친의 목소리로 궁상맞게 흐느꼈다.

 “불효막심한 놈. 네가 나를 내치다니.”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온 용준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수족관으로 달려갔다. 황금 인면어가 용준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면으로 올라왔다. 인면어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내 아들아. 이 엄마를 원망하니?”

 인면어의 얼굴과 목소리는 아직도 뻔뻔스럽게 용준의 모친을 흉내내고 있었다.

 “집어치워. 넌 어머니가 아냐. 한낱 물고기 주제에.”

 용준이 눈을 부릅뜨며 대들자, 인면어는 입에서 한 방울씩 거품을 뿜어내며 오열했다.

 “용준아. 전부 내 탓이야. 이 엄마가 널 치마폭에 감싸고 오냐오냐 키워서 그래.”

 인면어의 입을 통해 들리는 모친의 오열 소리는 용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용준은 극심한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머리를 벽에 찧었다.

 “어머니. 절 내버려둬요. 조용히 저승으로 가세요.”

 모친의 오열 소리가 그쳤다. 용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인면어를 바라보았다. 인면어가 뿜어낸 거품들이 인면어의 몸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었다. 용준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인면어는 용준을 희롱하며 용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조만간 인면어가 용준의 자아를 아귀아귀 먹어치울 것이다.

 담당 정신과 의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수족관 밖의 타인들은 관상어의 생명을 주재한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관상어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산소공급기를 떼어내는 것만으로도 수족관은 산소가 부족해진다. 용준은 황금 인면어와 자신의 위치가 전도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수족관에 갇힌 것은 인면어가 아니라 용준이었다. 인면어는 수족관 밖에서 용준의 생태를 연구하며 쾌감에 젖어있는 것이다.

 현곤의 생명을 앗아간 경험에 비하면, 인면어의 생명을 끊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용준은 부엌에 가서 식도를, 다용도실에서 커다란 고무 함지박을 갖고 돌아왔다. 식도의 손잡이는 모친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모친의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준의 목이 메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인면어가 거품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용준은 수족관의 산소공급기와 측면여과기를 떼어낸 뒤, 수족관 뚜껑을 열고 인면어를 꺼집어냈다. 온몸이 거품투성이가 된 인면어는 용준의 손에서 미끄러지며 고무 함지박으로 튕겨 들어갔다. 고무 함지박 안에서 인면어가 펄떡거리며 요동쳤다. 인면어의 얼굴이 거품에 뒤덮여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인면어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모친의 얼굴을 대하면, 용준의 살의는 맥을 못 추리고 사라질 테니까.

 “이런 개새끼. 넌 극락어가 아니라 지옥어야.”

 용준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욕을 퍼부었다. 용준의 감정이 팽창되어 조증으로 돌아섰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용준의 조증은 살의와 융화되어 기세등등했다. 용준이 인면어의 아가미를 향해 식도를 겨누었다. 그 순간 인면어의 몸을 둘러싼 거품은 일시에 녹아 버렸다. 그러든 말든 조증으로 충만한 용준의 자신감은 꺾이지 않았다. 인면어에게서 모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용준은 식도를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인면어의 얼굴을 가렸다.

 “지옥으로 떨어져라.”

 용준이 다짜고짜 식도로 인면어의 아가미를 찔렀다. 한 번으로는 성이 안차는 듯 몇 번이고 거듭해서 되풀이했다. 인면어는 아가미를 헐떡거리며 배를 불룩거렸다. 인면어의 황금빛 몸에서 황금 비늘이 떨어지며 그 자리가 빨갛게 물들었다. 고무 함지박 밖으로 튕겨나간 황금 비늘이 수북이 쌓여갔다. 황금 인면어는 자신의 비늘을 아낌없이 버리며 종말로 치닫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용준은 정신이 들었다. 고무 함지박 속에는 피투성이가 된 인면어가 자빠져있었다. 황금 비늘이 떨어져나간 인면어의 몸은 껍질 벗긴 통닭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용준의 난도질에도 불구하고 인면어의 얼굴은 말끔했고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거품이 걷힌 그 얼굴은 윤곽이 달라져 생판 다른 얼굴이었다. 고집이 세어 보이는 눈썹. 위로 치켜 올라가 찢어진 눈매. 콧대 중간이 솟아오른 매부리코. 매일 욕실 세면대 거울에서 만나는 얼굴. 바로 용준 자신의 얼굴이었다. 용준은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인면어가 입을 뻐끔거리며 용준의 목소리로 거들먹거렸다.

 “나를 봐. 난 황금 잉어로 승격했어. 세상이 나를 인정해줄 때가 도래한 거야.”

 용준의 손에서 핏기가 가시며 식도가 떨어졌다. 용준이 발을 딛고 서있던 거실 바닥이 푹 꺼지며 허공이 펼쳐졌다.


 구름이 흩어지며 용준의 시야를 갈랐다. 구름 사이로 언뜻 푸른 하늘이 비쳤다. 용준은 허우적거리며 끝없이 추락했다. 알싸한 복숭아꽃 향기가 후각을 진동했다. 용준의 몸이 마침내 바닥에 닿았다. 어떤 남자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용준아. 늙은 애비를 깔아뭉갤 셈이냐?”

 용준은 눈과 귀를 의심했다. 용준의 몸 아래 한 남자가 깔려있었다. 앞머리가 벗겨진 60대 남자였다. 웃통을 벗은 남자의 상반신은 탄력이 없고 살이 쳐져있었다. 용준의 시선이 남자의 하반신을 훑었다. 남자의 하반신은 물고기의 몸이었다. 다리와 발이 있어야할 자리에 꼬리 지느러미가 달려있었다. 남자는 덥석 용준의 손을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랜만이구나. 내 아들아.”

 남자의 얼굴을 곰곰이 뜯어보던 용준이 도리질을 했다.

 “제 부친은 돌아가신지 오래 됐어요.”

 용준은 외면하며 남자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 남자는 눈물을 닦는 듯 눈언저리를 문질렀다.

 “그래.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지. 널 두고 가느라 난 무척 마음이 아팠다.”

 용준의 시선이 남자의 옆얼굴을 힐끔거렸다. 부친이 살아있다면 저 나이의 저런 모습이겠지. 용준은 부친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둘은 햇살이 따사로이 비치는 언덕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언덕 여기저기에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꽃향기에 취한 나비들이 우아하게 날개짓하며 공중을 수놓았다. 그 풍경을 멍하니 보던 용준이 이윽고 물었다.

 “황금 인면어는 어디에 있나요?”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끝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보면서도 모르겠니? 내가 그 인면어다. 인면어는 죽지 않고 매번 다르게 재생하거든.”

 “말도 안돼요. 인면어는 친구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얼굴로......”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용준은 울먹였다. 용준의 부친은 용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상심 마라. 네 엄마도 언젠가는 부활해서 우리와 해후할 테니.”

 부친의 말에 용준은 마음이 놓였다. 눈앞의 풍경을 찬찬히 살펴볼 여유도 생겼다.

 “아버지. 이 곳은 어디인가요?”

 용준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복숭아 나무들로 즐비한 풍경은 초현실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설마 무릉도원은 아니겠죠?”

 “저인국(氐人國)이다. 하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건목의 서쪽에 있는 나라야. 나처럼 인면어신(人面魚身)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

 부친의 대답에 용준의 의구심이 점점 확산됐다.

 “인면어신이라면 바다 속에 살아야하지 않나요?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뭍인 걸요.”

 “내 손을 잡으렴. 그럼, 알 수 있을 게다.”

 용준이 부친의 손을 잡는 순간, 부친은 용준과 함께 공중 높이 날아올랐다. 저 아래 복숭아 나무들이 까마득하게 멀어져갔다. 용준은 현기증이 나서 눈을 감았다. 부친의 호기 있는 목소리가 귓전을 쟁쟁 울렸다.

 “우리는 물고기의 몸으로 하늘을 오르내릴 수 있단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제의 후손들이어서 하늘과 통하거든. 사람들은 우리를 천신이라고 부르지.”

 하늘로 올라갈수록 용준의 몸은 가벼워졌다. 용준은 슬며시 눈을 떴다. 막 생겨난 용준의 꼬리 지느러미가 넘실거렸다. 용준도 부친처럼 인면어신으로 변해있었다. 용준은 싸구려 금붕어도, 비단 잉어도 아니었다. 황금 인면어가 허물처럼 비늘을 벗듯, 용준도 환골탈태하며 본모습을 찾았다. 용준의 본모습은 인면어신의 천신이었다. 천신이 여태까지 인간 세상에 섞여 살았으니 평범한 인간들과는 괴리감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기쁨에 겨워 용준의 꼬리 지느러미가 춤추듯 흔들렸다.

 ‘어머니. 보세요. 전 승천하고 있어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듯 용준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부친이 구름 한 점을 붙잡아 그 위에 올라탔다. 용준도 부친을 따라했다. 용준과 부친은 각각 구름을 타고 비상했다.

 “우리는 자유자재로 하늘과 땅 사이를 왕래하며,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아뢰곤 하지.”

 용준은 부친의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 용준의 소원도 하늘에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소원이 뭐였지? 기억에 안개가 낀 듯 했다. 기억은 가물거리며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새 한 마리가 용준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머리가 여섯 개 달린 새였다. 몸은 노란색이었으며 발은 빨간색이었다. 용준이 부친에게 물었다.

 “아버지. 저 새는 무슨 새인가요?”

 “산까마귀야. 촉조라는 이름도 있지.”

 까악까악 촉조의 울음소리는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용준의 심장은 잔뜩 부풀어 올랐다. 복숭아꽃이 개화하듯 용준의 심장은 활짝 꽃잎을 벌리고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그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가 범람하며 용준의 의식을 잠식했다.


 들것에 실린 용준의 사체는 구급차로 옮겨져 부검실로 향했다. 용준의 왼쪽 손목의 동맥을 절단한 식도가 비닐백에 넣어져 증거물 보관실로 옮겨졌다. 홍 사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거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주 형사와 양 형사는 거실에 모여 머리를 맞댄 채 사건의 진상을 검토하는 중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 사건을 재구성하면 간단해.”

 고참인 주 형사는 신참인 양 형사 앞에서 잘난 척 일장연설을 했다.

 “김 용준은 조울증이 심했어. 조 현곤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체포될까봐 심적 압박감이 컸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친까지 교통사고로 급사했으니 이만저만 충격이 아니었지. 홍 사장이 말했지? 김 용준은 어린애처럼 나약해서 어떤 곤경에 처하면 쉽게 정신을 놓을 타입이라고. 조울증 환자는 자살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그 예가 입증된 셈이야.”

 양 형사가 혀를 차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살해된 조 현곤은 몇 달 전 로또 1등에 당첨되자 주위에 알리지 않고 이 동네로 이사왔다고 합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그의 운도 여기까지였군요.”

 주 형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맞아. 조 현곤이 다른 동네로 이사갔다면, 중학교 동창인 김 용준을 만나지 않았다면, 조 현곤의 운명은 달라졌겠지.”

 양 형사는 수족관으로 다가갔다. 용의자 김 용준의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있던 조 현곤의 수족관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족관이었다. 산소공급기와 측면여과기가 바닥에 뒹굴었다. 수족관의 물은 오염된 듯 거품이 끼여서 지저분했다. 팔뚝만한 황금빛 잉어 한 마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수족관은 매우 협소해보였다. 갑자기 양 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배님, 방금 저 잉어가 사람처럼 웃었어요.”

 양 형사가 수족관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주 형사는 못마땅한 듯 황금 잉어를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 얼굴을 한 인면어야. 비단 잉어 중에 인면어가 많지. 별 게 아냐. 골격 기형이지. 자네 눈엔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 현상일 뿐이야.”

 “아니에요. 정말로 웃었어요. 눈을 가늘게 뜨고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니까요.”

 주 형사는 한심스러운 듯 양 형사를 흘겨보았다.

 “양 형사. 농담일랑 작작해.”

 “선배님. 이리 와서 직접 봐요.”

 양 형사가 팔을 잡아당기는 통에 주 형사는 마지못해 수족관 앞으로 끌려왔다. 인면어가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며 주 형사를 노려보았다. 두꺼운 눈두덩, 축 처진 눈초리, 자글자글한 주름살. 인면어는 교활하고 비굴한 노친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 형사는 못 볼 것을 본 듯 뜨끔해하며 뒤로 물러섰다.

 “우리 집에도 이런 인면어가 한 마리 있어. 그러고 보니 그 녀석도 시시각각 얼굴이 변하는 것 같아. 어떨 때는 여자 얼굴이 됐다가 어떨 때는 남자 얼굴이 되지. 우리 딸은 인면어가 무섭다며 옆에도 안 가.”

 주 형사가 주절주절 늘어놓자, 양 형사는 궁금증과 의아함이 동시에 유발됐다.

 “인면어는 희귀하다고 들었는데요. 선배님은 그 인면어를 어디서 구했어요?”

 “마누라가 비싸게 주고 샀어. 장사치의 상술에 속아서 말이야. 인면어는 소원을 이뤄주는 신통력이 있대나 어쨌대나. 그 후 마누라는 매주 로또 번호를 지극 정성으로 찍지만, 항상 꽝이지. 왜 그런 줄 알아?”

 양 형사가 대답할 틈도 없이 주 형사가 자신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했다.

 “요즘은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면어를 만든대. 인위적으로 생산된 인면어가 무슨 효험이 있겠어?”

 수족관의 황금 인면어는 형사들의 대화를 알아들은 듯 움찔거렸다. 인면어의 음영 짙은 눈이 수족관 너머의 형사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돌출된 한쪽 눈이 뿌옇게 흐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 얼굴은 웃는 듯 우는 듯 일그러져 보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