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 작성일 20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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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또 한 사람이 죽었을 때, 호준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앰뷸런스 소리가 울릴 무렵에야 잠을 깼다. 호준은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호준의 아파트는 3층에 있어 주차장이 잘 보였다. 구급대원들이 목 없는 시체를 수습해 구급차에 싣는 중이었다.
“쯧쯧…….”
잠시 후 구급차는 현장을 떠났다. 서서히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의 주차장 위에 목 잘려 죽은 남자의 핏자국만이 남았다.
“아빠아―식사하셔―.”
거실에서 딸 미현이 말했다.
“어, 지금 간다.”
일주일 전엔 앞집 아들이 죽었다. 아침 출근길에 일을 당했다고 한다.
밥 먹는 데 지장 없다.
우리 가족이 아니라면.
“헬멧 잘 쓰고 나가라!”
“아빠, 근데 이거 꼭 써야 돼? 머리 다 망가지는데. 디자인도 별로고.”
“얘가 큰일 날 소릴 하고 있어! 빨랑 안 쓸래? 아버지 회사 살린 물건 아니니! 좋은 소리 못 들을 거 알면서 자꾸 철없는 소릴 해, 애가?”
“그래두…….”
“그래두고 뭐고 학원 안 가! 용돈 깎기 전에 가, 얼른!”
호준은 부루퉁한 얼굴로 헬멧을 뒤집어쓰고 문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싫을 만도 하지. 답답할 테고.
하지만 머리 날아가 죽기보단 낫지 않겠니. 좀 더 참아라. 디자인은 바꿔볼게.
“왜 저리 철이 안 들까. 당신도 싫은 소리 좀 하고 그래! 마냥 예뻐만 하니까 당신 믿고 아직도 칭얼거리는 거 아냐.”
“알았어, 알았어. 내 잘 얘기할게.”
“항상 대답은 좋시다. 만날 나만 미운 엄마 되고.”
“거, 사람 참. 알았대도.”
아내의 잔소리가 부쩍 심해졌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살기도 바쁜데 가족의 안녕을 위협하는 요소가 늘었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만도 하지. 다행히 호준은 아내의 짜증에 맞불을 놓지 않을 정도의 지혜는 있었다.
“당신도 헬멧 잘 쓰고 다녀. 잠깐 장보러 나갈 때도 빼놓지 말고…….”
“어쩌겠어, 죽기 싫음 써야지.”
“아무렴.”
호준은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 금주 헌터에 의한 피해는 서울 5명, 경기 7명, 강원 4명, 충북 2명…….
“헌터가 헤드헌터의 준말 맞지?”
“그렇다더만.”
“원래 직업 이름 아니었수? 인재 찾고, 뭐 그런 거.”
“그렇지. 그 사람들은 기분이 나쁘겠다 싶긴 한데, 뭐 어쩌겠어. 딱이잖아? 그보다 나은 이름이 있어야 말이지.”
“좀 덜 죽었다 싶네? 저번 달만 해도 뭐…….”
“그러게, 줄었구먼.”
“어떻게 보면 당신 덕택 아닌가?”
“이제 막 팔리기 시작했는데 덕은 무슨.”
거실 한쪽에는 호준이 직접 발명한 헬멧을 넣기 위한 벽장이 따로 놓여 있었다.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경량 고강도의 헬멧은 요즘 물량이 없어 못 팔 정도였다.
“그래도 세상 참 얄궂지. 허공에서 사람 머리 뜯어먹는 괴물이 나타났는데 그걸로 장사해먹고 있으니.”
두 달 전인 6월의 어느 날 오후 7시.
서울 당산동에 사는 28세의 정씨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귀가 중이었다. 날씨는 더워지고, 취직은 어떻게 될지 막막했으며, 돈도 없는데 경조사가 줄줄이 생겨 지출이 많았다. 전날 밤 장래 문제로 부모님과 대판 싸웠고, 방금 전엔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를 피하다 늘씬하게 넘어진 차였다. 까진 팔꿈치와 무릎이 아팠다. 즐겨 입던 바지와 셔츠가 찢어졌으니 새 옷을 사야 했다.
정씨의 머리끝까지 차 있던 고민과 짜증은 그가 살던 아파트 후문 앞 횡단보도에서 한 방에 사라졌다.
허공에 구멍이 열렸고, 거기서 길쭉한 촉수 끝에 달린 괴물 머리가 튀어나와, 정씨의 머리를 통째로 뜯어먹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심신이 우울했지만 친구 결혼식도 챙기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살아보려던 정씨의 삶은 이후 헤드헌터, 보통 헌터라 불리게 된 괴물의 최초 피해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긍께 뭣이냐, 꼭 아귀 같은 모양이었지라. 꼬다리까지 하믄 대충 콩나물 줄거리거치 생기기도 혔고. 시커먼 구녕이 하나 허공에 퍽 뚫리더니 거기로 대가릴 들이밀드란 말이시. 아주 쥑는 줄 알았어요, 놀래가지고. 보자마자 딱 얼었당게. 먼가 길쭉한 게 나와, 따악 이렇게. 길쭉한 꼬다리에 대가리가 붙었는디, 워메. 눈도 없는기 입만 요래 쫙 째져가지고, 의경 아 머리통을 퍽하고 잡숴 버리더라고. 소리가 딱 수박 부서지는 소리더마. 아, 내가 과일 장사해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고. 우쨌든 간에, 괴물딱지가 생기기는 다양하다고 하던디 일단 내가 본 건 그랬어요. 뭐, 물어볼 거 더 있소? 읎어요? 이제 가시게? 가실라믄 참외 좀 사들고 가소. 한참 입 아프게 떠들어 줬고마.”
“야자 끝나고 친구랑 집에 가고 있었는데요. 어두워서 잘 안보이긴 했는데 친구가 어, 어, 막 이래요. 아, 뭔데 이러니깐 조금 앞에 가던 애들 위에 저거 보라고, 뭔데, 뭔데 하는데 대답을 못하잖아요. 허공에 대고 막 가리키길래 뭐야 하고 보니깐 진짜 뭐가 딱 튀어나와요. 어우, 잘 보이진 않았는데 막 피 튀고. 기절 첨 해봤어요. 진짜 완전 무서웠거든요. 근데 이거 TV나와요?”
“제가 본 건 되게 복잡하게 생겼어요. 철판 같은 게 붙어있다고 해야 되나? 좀 기계 같기도 하고, 반반 섞여있는 것 같아요. 너무 순식간이라서 잘 못 봤지만요. 홍대 앞에서 남자친구랑 걷고 있는데 앞에 가던 남자 입은 옷이 좀 구려서……아, 죄송해요. 다시 할게요. 앞에 가던 남자 옷이 이상해서 둘이 같이 웃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그 남자 머리보다 조금 위쯤 해서 시커먼 구멍이 뻥 뚫리더니 그게 나왔어요. 블랙홀? 뭐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몰라도, 대충 그런 이미지였어요. 괴물 머리 나오는 데까지만 보고 뒤는 남친이 눈 가려줘서 못 봤어요. 제가 끔찍한 거 싫어해서 호러영화도 같이 안 보거든요. 봤으면 아마 불면증 걸렸을 것 같아요. 멋있죠? 제가 봐도 참 잘 만난 것 같아요.”
“사탄의 짓이죠, 사탄. 지금 세상이 많이 혼탁해졌잖아요? 그 틈을 타서 사탄의 무리들이 해코지를 시작하는 거죠.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들이 800만이 넘는다지만, 아직도 부족하니까 이런 흉측한 일이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대한민국이 어서 하나님 나라 되도록 믿음 있는 사람들이 더 애써야지. 불교니 뭐니 잡스런 것들은 근처에도 가면 안돼요. 교회 나가세요? 안 나가시면 어서 나와요. 와서 좋은 말씀 들으시고, 성경 공부도 하시고. 그럼 대낮에 머리 날아갈 일 없어요. 하느님이 지켜주시니까. 아, 전화 왔네. 잠깐만 실례할게요. 아, 영아 엄마. 무슨 일이유? 예, 예? 박 권사님이요? 아니, 정말로? 세상에, 세상에! 이를 어째!”
홀로 우두커니 서 있다 보면 눈앞의 아파트가 말을 걸어왔다.
21세의 윤태준은 의경이었다. 모 정당 당사의 경비 근무에 투입된 지 사흘, 그는 모자만 쓰고 근무를 설 수 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놈의 하이바, 저주받은 하이바.
“정말 네가 막을 수 있더냐? 괴물의 이빨을 막을 수 있단 말이더냐?”
무대 위에서 뛰어다니던 기억을 되살려 연극 투로 읊어 봤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하찮은 의경의 독백 따위를 누가 들어 주겠냐. 씨바, 왜 한여름에 하이바 쓰고 근무를 서야 되냐고!’
도대체가 이딴 헬멧을 못 뚫어서 먹을 걸 못 먹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명색이 괴물이라면 말이야, 응? 헬멧이고 뭐고 한방에 씹어 먹는 근성은 있어야지. 아니, 헬멧이 괴물 이빨을 막아 준다는 얘기도 사실 다 뻥일지 모른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장사란 무릇 구라라 하지 않으셨던가?
‘연그윽? 그래 뭐, 말리진 않겠구마. 니가 말린다고 안 할 놈 아니라는 기 애비인 내가 가장 잘 안데이. 대신 이거 확실히 알아두그라. 예술 한다고 꺼떡대도 결국 장사인기야. 장사를 할라믄 구라를 잘 치야 돼. 그걸 죄라고 생각하믄 안 된다꼬. 장사는 근본이 사기야 사기. 별껏도 아닌 기를 부풀리서 마진 왕창 남기는 게 사기가 아님 머꼬? 니도 기왕 할라믄 사기친다 생각하고 시작하그라. 구라를 칠라믄 확실히 치라꼬. 알았나?’
아, 감동했습니다. 존경합니다, 아버지. 지금도 당신의 사자후를 되새기며 불초 소자는 웁니다.
어쨌든 사기도 전역을 해야 칠 수 있었다. 광명의 그날을 향한 여정이 멀고도 험함은 앞서 지나간 선배들이 귀 따갑게 떠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여정의 일부에 괴물 출현이 끼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삼복더위에 헬멧 착용 근무도 마찬가지였다.
“기왕 씌우려면 싸제를 사주던지, 색도 시커머이 뭐냐고요. 햇빛이 통합니다, 기냥 통과 통과 합니다…….”
태준의 정면에는 아파트, 왼쪽에는 청과시장 입구가 있었다. 뭐 정당 당사가 이런 데 있어? 듣자하니 원래는 농협 건물이었다고 한다.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과일들이 신기루처럼 보였다. 살기 바빠 그런가, 모지락스런 상인들은 팔다 남은 참외 쪼가리 하나 주지 않았다. 갈증이 났다. 짜증도 났다. 여름날 오후, 헬멧을 뒤집어 쓴 청춘의 머릿속엔 한 대 치고 싶은 고참에 대한 증오, 상태 안 좋은 후임을 갈구고 싶은 욕구, 일러도 한참 이른 전역 후 계획을 비롯한 잡생각들이 뒤섞여 냄비 속 부대찌개마냥 부글거렸다.
근무는 좀 이른 시간에 끝났다.
불행히도 정말 근성 있는 놈이 나타났고, 헬멧이 머리 안 날아가게 막아준다는 이야기도 뻥이었다. 헌터의 이빨이 플라스틱 수지와 케블라 섬유를 찢고 머리통을 부수기 전, 태준은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진짜 구라였어? 썅. 아부지 말씀 틀린 거 하나 없구나. 살려줘요, 아부지.
“……자, 봐요. 군용 방탄은 아직 뚫리지 않았지만 전의경 쪽은 사례가 생겼단 말이야. 어떻게 알았냐니, 우리 아파트 옆에서 죽었다니까? 민주당사 경비 서던 놈이에요, 걔가. 어쨌든, 지금 바로 움직여야 돼. 우리 쪽에 노하우는 있으니까, 공정을 좀 더 간단히 해서. 원료 쪽이야 뭐 언제나처럼 나한테 맡기시면 되고. 최근에 기반도 좀 잡혔으니 라인만 좀 더 확보하면 사분지 삼 코스트로 공급 가능하잖아요. 아, 그러지 말고 잘 좀 알아보라니깐? 빨랑빨랑 뚫어 놔야 될 거 아니에요. 예, 예. 아, 어차피 할 거면서 만날 그러시더라? 그럼 부탁 좀 합시다. 잘 알아봐 줘요. 아, 믿지, 믿어. 그래요, 그래요. 믿고 끊습니다.”
탁.
소리 좋다. 터치폰은 못 써먹을 물건이야. 꾹꾹 눌리는 맛이 있어야지, 마누라 다리 긁는 것도 아니고. 유리 위에다 문질거리기는 사내가 되가지고 못해먹을 짓이다.
“뭐랍디까?”
“하면 다 하면서 장 형 이 양반은 왜 자꾸 쓸데없는 소릴 덧붙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뭐, 일단 기다려 봐야지.”
“근데 무섭긴 무섭네. 헬멧도 쓰고 있었는데 죽었다는 거 아냐. 당신 물건은 정말 괜찮은 거지?”
“이 사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신 남편이…….”
“아, 알았어요. 알았어. 또 시작하기 전에 빨리 끊어야겠네 그려.”
자신 있다. 헬멧 가지고 씨름한 세월이 벌써 몇 해인데? 좋은 기술자 대접할 줄 모르는 엿 같은 나라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나도 이제 좀 버신다 이거야.
“야, 너희 아버지 회사 장사 진짜 잘 된다며? 경찰에 물건 넣는다면서. 완전 대박.”
“그렇대.”
“워, 차미현~용돈 좀 오르겠다? 쏘는 거야? 쏴줄 거야?”
“몰라, 지지배야. 말도 못 꺼내 봤구만.”
“부자 된다고 나 무시하면 안돼에? 너 왠지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 의심스러워.”
“아, 뭐래! 떡볶이 먹으러 안 가?”
“아! 아퍼, 아퍼! 왜 때리고 그래. 가, 간다고.”
학원 끝나고 가는 길에 친구 떡볶이 하나 사주기도 빠듯한 마당인데, 아버지가 돈을 잘 버는지 아닌지 알 게 뭔가? 체감경제는 여전히 빈곤하고, 남자친구는 안생기고, 학원은 가기 싫다. 고등학교 2학년 소녀의 삶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과 친구 지민의 머리 위에 떡하니 얹혀 있는 뚜껑만 빼면.
“내가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한데, 가끔 이상해.”
“뭐가?”
“진짜 웃기지 않냐? 야, 봐봐. 괴물이 나와. 괴-물. 아무것도 없는데 팍 하고. 옛날에 이런 얘기 들었으면 넌 뭐라고 그랬겠냐?”
“미쳤다고.”
“그지? 근데 우리 아빠는 그거 가지고 돈 벌고 있잖아! 석 달 만에! 안 이상해? 뭔가 막, 아, 뭐라고 그러더라. 그거 있잖아. 얼마 전에 국어시간에 나온 단어. 아, 뭐더라, 뭐더라…….”
“위화감?”
“그래, 그거! 위화감! 위화감 쩔지 않냐? 이상하잖아. 아, 막 뭐라고 딱 집어서 얘긴 못하겠는데, 그냥 그런 게 느껴져. 위화감.”
“그런가? 글쎄, 어쨌든 너한텐 잘 된 거잖아. 내 헬멧도 너네 아빠 회사 건데.”
“야, 넌 솔직히 그거 쓰고 싶냐?”
“처음엔 갑갑했는데, 쓰고 다니다 보니깐 그럭저럭 괜찮던데? 전보다 디자인도 이뻐지고.”
“이뻐? 이게? 아오, 이해 안 가. 좋긴 뭐가 좋냐? 센스하곤 구려서.”
“아, 너 왜 그래 오늘! 좋은 소리 해줘도 지랄이야. 됐고 빨리 떡볶이나 사줘.”
“떡볶이 맡겨놨냐!”
“저번엔 내가 사줬잖아!”
― 최근 헌터의 출현이 뜸한 가운데, 피해자의 수도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발표에 의하면…….
“괜찮을까 모르겠네.”
“뭐가?”
“매출 떨어지지 않겠어? 요즘 보면 젊은 애들 중에선 안 쓰고 나다니는 애들도 많두만.”
“걱정도 팔자일세. 이거 봐, 신 여사. 예전에 신종플루 있지. 그때 예방접종 맞았어, 안 맞았어?”
“맞았지.”
“근데, 예방접종 안 한 사람들도 많았지?”
“많았지.”
“그 사람들 다 독감 걸려 고생했나?”
“아니.”
“그렇지? 고생 안 했지? 안 걸렸으니까. 근데 우리 집은 예방접종 했거든. 우리 집만 한 게 아니고, 엄청들 했을 거거든. 지금 내 장사가 그런 장사요. 예방책이라고. 30년 무사고 운전자라고 에어백 안 다는 거 아니잖아. 헌터인지 포수인지 괴물 아직 안 없어졌지? 그럼 된 거야. 한참 더 팔릴 테니까 걱정을 말아. 설령 없어지더라도 우리 기술 어디 안 가요. 브랜드도 많이 알려졌고, 경찰 쪽에도 납품하고. 언제 괴물 없어 헬멧 못 팔았나?”
“못 팔았었지, 뭘…….”
“어허, 과거는 묻어둡시다.”
헬멧 안 쓸 거야. 머리 망가지는 건 그렇다 치고 더워! 여름방학도 끝나 가는데 날씨 왜이래! 짜증나게!
은혜로운 토요일 아침, 잠시 후 간만에 쇼핑하러 나갈 예정인 17세 소녀는 악을 썼다. 속으로만. 엄마가 아직 눈앞에 있으니까.
신명자 여사가 주섬주섬 신발을 신으며 마중한답시고 현관 앞에 몸을 비비 꼬고 선 딸에게 말했다.
“너 언제 나가?”
“응? 어, 점심때쯤 나갈 거야. 전화 오면.”
“하여튼 틈만 났다 하면……외할머니도 편찮으신데, 응? 세상도 뒤숭숭하고. 가끔 같이 가면 좀 좋아?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2학년씩이나 돼서는 아직도 놀러 다니기 바빠, 도대체가.”
“어엄마아―쪼옴―.”
“니가 애 낳아 키워 봐! 신경이 안 쓰이나. 사들고 갈 것도 많은데, 기집애가 도와주지는 못하고. 난 뭐 마냥 철인인 줄 알아? 영등포에서 상계동까지 가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겠어, 아주 그냥. 다음 주 주말에도 갈 거니까, 그땐 잔말 말고 따라나서! 약속 만들지 말고.”
“어? 진짜? 왜, 또!”
“왜는 왜야. 니 이모가 나몰라라 하는데 나라도 자주 가봐야지. 몰라 물어!”
“씨잉……지민이가 홍대 가자고 그랬는데.”
“뭘 꿍얼거려, 얘가. 아버지 공장 보러 내려가셨어. 내일쯤 오실 거야. 김치찌개랑 된장국 있으니까 아무거나 데워 먹어. 된장국은 가만두면 상할 테니까, 안 먹어도 자기 전에 몇 번 끓여 놔. 나갈 땐 헬멧 꼭 쓰고, 너무 오래 놀지 말고 일찍 들어와! 집에 혼자 있다고 마냥 정신 놓고 있기만 해봐, 그냥! 생각 같아선 다리몽댕이 확 분질러서 방에다 집어넣고 싶은데 참는 거야, 내가.”
“아, 알았어! 공부 할 거야.”
“문단속 잘 하고!”
“알았다구우!”
탁.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정적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역시 자유는 투쟁의 결실이구나. 힘들게 쟁취했으니 맘껏 누려야겠지?
약속이라도 한 듯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어딨냐, 어디 뒀지? 아, 여깄네. 여보세요?”
― 언-제-만날 거야?
“킥킥, 원-줴-는 뭐야, 지지배야.”
― 내가 언제 그랬어!
“또 그러네. 원-줴-그래써어~.”
― 너어!
“알았어, 알았어. 안했다고 해 줄게, 열 내지 마. 열두시쯤 볼까?
― 할 말 다해 놓고 선심 쓰는 척하고 있어. 열두시에 봐, 그럼. 더운데 빨리 만나서 들어가자. 아, 헬멧 쓰기 싫어. 더워!
“쓰지 마, 그럼. 나도 안 쓸 건데.”
― 진짜? 너네 집에선 절대 금지잖아.
“부모님 내일까지 두 분 다 안 계시지롱.”
― 진짜? 혼자 자는 거야? 살판났겠네~
“살판날 것까진 없는데, 헬멧 안 쓰고 나가는 건 좋아. 괴물도 거의 안 나오지, 챙기고 다니려면 무겁지, 귀찮지, 날씨 덥지. 뭐 하러 일일이 갖고 다녀? 오늘은 스킵하자.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오늘 한 번 안 쓰고 나간다고 무슨 일 있겠어?”
주위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현정은 자신의 직업에 불만이 없었다. 물론 전반적으로 대우가 박한 직업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청소를 좋아했다.
“깨끗해지니까 좋잖아.”
어쩌다 이직을 해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챙길 남편이나 자식도 없고, 나 홀로 살기엔 나쁘지 않아. 외로울 때야 있었지만 40고개 넘고 나서는 그것도 적응이 되더라고. 공항은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려 재미있고, 외국인 손님도 많으니 하얗고 검은 사람들 구경도 하고.
물론 화장실 청소, 특히 남자 화장실 청소를 하다 보면 좀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을 보고 슬쩍 당황하는 남정네들을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현정이 생각하기에 공항 청소부는 꽤 즐길만한 직업이었다. 대변기에 처박혀 잘린 목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독일인 사업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얘기다.
혼비백산한 현정이 청소용구를 내팽개치고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바깥 사정도 좋지는 않았다. 사방팔방으로 내달리는 사람들 사이로 드문드문 목 없이 누운 몸뚱이들이 보였다. 깨끗해지면 좋지만 시체 치울 용의는 없었다.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확신한 현정은 계속 비명을 지르며 뛰었다.
간만의 포상 휴가였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병장 노릇도 한 달 반이 채 안 남아 말년 소리를 듣게 된 지금, 종권은 슬슬 앞날이 걱정되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계획이었지만 제일 큰 근심거리는 용케 2년을 버텨 준 재연이었다.
‘결혼해야 되나…….’
군화를 거꾸로 신어? 그게 말이 돼? 야, 어떤 미친놈들이 그런다든? 여친님이 2년 동안 안 떠나고 버텨주시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슬쩍 떠보는 친구 녀석들 앞에서 일편단심 정재연을 외쳤던 일병 때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진짜 결혼해야 되나…….’
2년. 당연히 기다려 줄 줄 알았다. 그땐 뭘 믿고 그걸 당연하다 생각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고,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한 듯 해낸 재연이 볼 때마다 점점 부담스러워져만 갔다.
대합실 벤치에 주저앉아 고민을 하고 있자니 절로 담배 생각이 났다. 군대 가기 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담배였다. 종권이 생각하기에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말은 다 헛지랄이었다.
버스 출발 시간도 다 되어서 종권은 담배도 필 겸 승강장에 나가기로 했다. 주말의 터미널은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사람들을 헤치고 가려는데, 뒷목에 뭔가 찐득한 액체가 튀었다.
“아, 씨. 뭐야?”
안 그래도 심기 불편했던 말년병장이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지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종권은 군 생활 막판에 비명횡사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버스를 향해 뛰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버스기사는 입을 벌린 채 대합실 안쪽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일들을 보는 중이었다.
“아저씨! 그냥 지금 출발하면 안돼요?”
“에? 그, 그럽시다!”
버스 기사는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황급히 시동을 넣었다. 종권은 좌석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갑자기 재연이가 보고 싶었다. 얼른 만나서 확 껴안아 주고 싶었다.
20분 후, 버스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되었다.
“엄마? 응, 나 지금 거의 다 왔어. 조금 있으면 노원역 도착해. 뭐 드시고 싶다고 했지? 응, 응. 어, 알았어. 금방 사가지고 갈게.”
멀다. 예전에는 이럭저럭 견딜 만 했지만 요즘은 다니면 다닐수록 더 힘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셨으면 했지만 상계동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아오신 부모님은 이사의 이자만 나와도 손사래를 쳤다.
‘도대체가, 괴물이 다 뭐야. 이상한 게 나와서는 사람 피곤하게 만들어.’
명자는 짜증을 냈다. 속으로만. 아직 사람 많은 지하철 안이었으니까.
삭히며 살려 해도 쉽지가 않았다. 엄마는 점점 쇠약해져 가는데, 언니라는 여자는 사업이 바쁘답시고 부모님 수발을 명자에게 일임하다시피 했다. 이젠 싸우기도 지겨웠다. 겨우 살아나기 시작한 회사 일로 바쁜 남편을 볶아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딸이라고 하나 있는 건 다 커가지고 철없이 속만 썩였다. 안 그래도 먼 길, 말동무도 해 주고 짐도 같이 들어주면 좋으련만 아까처럼 못을 박아두지 않는 이상은 잘 따라오려고도 들지 않았다.
‘참자, 참아……맘 상해봐야 내 수명만 줄지.’
혼자 인상을 쓰고 있다 보니 어느새 노원역이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더운 기운이 훅 끼쳐왔다. 내리는 사람들 중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망해버릴 뻔 했던 집안이 다시 일어서도록 해 줬으니 고마울 법도 하지만, 허공에서 나타나 머리를 뜯어먹고 사라지는 괴물에게 호의를 품기란 역시 쉽지 않았다. 더구나 가만히만 서 있어도 헬멧 쓴 머리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짜증이 날 때는 더욱 그랬다.
‘빨리 가자, 빨리. 뭘 사야 되더라.’
명자는 사야 할 것들을 적어 놓은 메모지를 다시 꺼내보며 개찰구를 나갔다. 목적지인 백화점까지 가려면 출구의 계단을 내려가서 조금 더 걸어야 했다. 역 근처에 조성된 상가는 주말을 맞아 놀러 나온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명자는 계단을 내려가며 출구 계단 옆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헬멧 쓴 애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저러다 한 번 되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죽어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명자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다.
백화점으로 가는 길은 좁고 걷기 힘들었다. 양옆에 진을 친 노점과 상점의 매대 덕분이었다. 왠지 명자는 오늘따라 더 짜증이 났다.
“어때? 똑같지.”
“어, 진짜 똑같이 그렸네요. 킥킥, 우리 오빠 그림 잘 그린다아. 아이폰 이런 것도 되고, 신기해요.”
“너도 사. 재밌어.”
“난 통신사가 달라서 안돼요. 지금 쓰는 폰 약정기간도 많이 남았고.”
앞서 걷는 커플이 핸드폰을 만지작대며 키들거렸다. 조흘 때다. 연애질 하는 건 좋은데 좀 빨리 걸어주지 않으련? 이렇게 복작대는 길에서 무릎 아픈 아줌마보다 늦게 걷고 있으면 되겠어, 안 되겠어?
한 소리 하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더운데 애들 데리고 열내봐야 나만 손해지. 더워 죽겠네. 아, 못 참겠다. 어차피 좀 있으면 도착인데 잠깐만 벗자!
머리를 살짝 숙여 헬멧을 벗자 머리와 헬멧 사이에 고여 있던 뜨거운 공기가 날아가며 정수리께가 시원해졌다. 명자는 머리를 가볍게 털면서 고개를 들었다.
여자 친구와 핸드폰을 보며 떠들던 남자의 머리 위 허공에 구멍이 열리고 괴물이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 양옆에 네 개씩, 여덟 개의 눈들이 박힌 괴물이 공룡 입처럼 단단해 보이는 아가리로 남자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명자도, 남자와 같이 걷던 여자도 순간 얼어붙었다. 맨 처음 반응을 보인 사람은 길 옆 꽃집의 주인이었다.
“아악—!”
하이 소프라노 톤의 비명과 함께 남자의 몸이 잘린 목으로 피를 뿜으며 무너져 내렸다. 같이 걷던 여자는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남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 따라서 비명을 질렀다. 소프라노 듀오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아이고! 엄마야, 뭐, 뭐야 이게!”
명자는 황망히 중얼거리며 튀는 피를 피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괴물과 괴물에게 목 잘려 죽는 사람을 본 충격 때문에 기분이 멍했다. 계속 이어지는 비명이 시끄러웠지만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명자는 다시 헬멧을 뒤집어쓰며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간만에 중국요리다.’
명자는 바로 몸을 돌려 지하철이 지나는 교각 아래 대기하고 있던 택시 문을 열며 외쳤다.
“아저씨, 주공 10단지요!”
태평하게 졸고 있던 택시기사가 깜짝 놀라며 깨어났다.
“아이고, 깜짝이야! 아니, 손님. 뭐가 그리 급하셔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세요?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냥.”
“내 이따 설명해 드릴게, 일단 가요! 주공 10단지!”
“거 참……. 알았습니다, 예. 잠깐만요~”
택시기사가 느릿한 말투만큼이나 굼뜨게 움직이며 안전벨트 버클을 찾아 좌석을 뒤적거렸다. 지나치게 여유로운 모습에 확 짜증이 올라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그랬다간 택시기사와 싸우고 다른 택시를 찾게 되지 싶어 꾹 눌러 참았다. 명자는 한시라도 빨리 역 앞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핸드백을 양손에 쥐고 잡아당기다 초조한 마음으로 오른쪽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아, 예, 손님. 갑니다. 간다고요. 가만있자, 미터기를…….”
“이쪽 좀 봐요.”
“에? 무슨……억!”
셋이 죽고 다시 둘.
괴물의 소나기가 곳곳에서 머리를 늘어뜨렸다. 여기저기로 질주하는 사람들의 소용돌이 위로 뭔가가 튀어나올 때마다 피가 솟구쳤다. 닫혀 있는 문 사이로 바깥에서 나는 아우성 소리가 흐릿하게 새어 들어왔다.
“밖이 이러니까, 빨리 좀 가자고요—!”
“아, 어, 예!”
택시는 바로 출발했다.
‘차를 바꿔볼까.’
호준이 오랫동안 봉인해 놨던 욕구가 슬금슬금 고개를 다시 치켜들었다.
5년 정도 탄 해외 수출용 모델 소나타2는 아직 잘만 굴러갔다. 지금도 평택의 공장을 향해 신나게 달리며 서부간선도로로 진입한 참이었다.
‘돈지랄 같아 보이려나?’
돈지랄 맞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남자란 원래 시도 때도 없이 비합리적인 소비를 일삼도록 만들어진 종족이다. 주머니에 돈이 좀 들어왔을 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벤츠를 한 대 뽑고 싶었지만, 힘들었던 세월의 습관이 소비심리에 약하게나마 제동을 걸고 있었다.
호준은 옆자리에 놔 둔 신형 헬멧의 시작품을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뒷자리에는 동시 출시될 제품들이 두 개 더 있었다. 내부에 티타늄 그물망을 짜 넣어 만들어진 고급형 라인이었다. 강도는 물론이고 통풍도 더 잘 되며, 디자인도 젊은 감각으로 일신했고, 턱끈과 해먹을 개량해 착용감을 높인데다 이어폰 착용 및 통신기기의 사용이 편하도록 기능적인 면까지 고려해 만들어진 야심작이었다.
‘니들이 잘 되면 차가 바뀐다! 부디 많이 팔려다오.’
눈앞에 미끈하게 빠진 흰색 아우디 한 대가 차선을 변경해 들어왔다. 아우디도 좋지. BMW도 나쁘지 않고. 자동차를 좀 아는 분위기를 풍기자면 크라이슬러나 재규어도 괜찮겠어.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를 주워섬기고 있으려니 줄줄이 좋은 차만 눈에 들어왔다. 포드 한 대가 다시 호준 앞으로 들어왔다. 깔끔하게 들어온 아우디와는 달리 갑작스럽고 서툰 끼어들기였다. 호준은 화가 나서 경적을 울렸다.
“이런 개새끼! 운전하곤……좋은 차 몰고 다니면 다냐? 가다가 확 엎어져라!”
5분 후.
다시 옆 차로로 옮겨가던 포드가 차선 가운데서 크게 회전했다. 차체가 180도 돌아가며 전면부가 뒤를 향했다. 크게 뜬 호준의 눈에 목 없는 운전자의 몸이 피를 뿜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포드는 왼쪽 차선에서 달려오던 차와 충돌한 후 옆으로 한 바퀴 반을 돌며 확 엎어졌다.
호준에겐 피해가 없었다. 유난히 말조심을 강조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면 호강시켜 드릴 수 있는데, 너무 일찍 가셨다.
달리는 차 안에서 사고를 당한 케이스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재주도 좋지. 창문 옆에서 튀어나왔나? 차 안에는 나올 공간이 없었을 테니까. 100km 넘게 밟고 있는 걸 잘라먹은 거야? 타이밍 죽이는군.
엄습하는 불안감에 호준은 옆자리에 놓아둔 헬멧을 집어 쓰고 라디오를 켰다.
― 뉴스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불안감이 한층 더해졌다. 타이밍 죽이는군.
― 한동안 뜸하던 헌터의 출현이 금일 오후 1시경 급증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야외에서 나타났던 습성과는 달리 사람이 많은 실내, 즉 공항과 터미널, 환승역 등 대중교통 이용객들이 밀집되는 지점이나 백화점과 쇼핑몰, 대형 할인마트 등 주말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운전 중에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만 14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최근의 출현 빈도 감소와 불볕더위로 인해 보호용 헬멧을 미착용한 상태로 외출한 사람들이 많아 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되도록 외출을 삼가시고, 실내에서도 항시 헬멧을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핸드폰, 핸드폰. 핸드폰 어디 갔어!”
대답이라도 하듯 뒷좌석에 견본품들을 놔두며 같이 벗어 둔 양복 상의의 안주머니 안에서 ‘전화 왔어요~’ 하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준은 오른손을 뒤로 뻗어 옷을 잡아채 핸드폰을 꺼냈다. 아내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 당신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어휴, 난리도 아니었어!
“난 괜찮아! 당신도 괜찮은 거 같고,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은? 아니, 도착은 한 거야?”
― 이 양반이……마누라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도 안 물어봐! 죽는 줄 알았어, 정말!
“뭐? 무슨 일 있었는데 그래!”
― 노원 역 근처에 애들 많이 놀잖수. 거기다 나 항상 백화점 지하매장에 들러서 찬거리 사들고 가잖아! 어휴, 백화점 들어가기 전에 일 터졌으니 망정이지, 역 계단 내려오자마자 꼭 무슨,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와! 내 바로 앞에 가던 남자애가 그냥……잽싸게 헬멧 뒤집어쓰고 바로 택시 탔어.
“잘 했어! 다친 데는 없는 거지?”
― 다친 데는 없는데, 아직도 심장 떨려 죽겠어. 여기만 그랬던 게 아니고, 와서 TV보니깐 사방에서 난리도 아냐! 당신도 알고 있어?
“뉴스속보 들었어! 미현이는? 집에 있어?”
― 당신한테도 아직 전화 안 왔어? 전화해보니까 안 받아! 얘 오늘 지 친구랑 쇼핑하러 간다고 하던데, 걱정돼 죽겠어!
“뭐, 쇼핑? 놀러 나갔단 말이야? 하필이면 지금!”
― 당신 지금 어디야? 오늘 꼭 내려가야 돼? 괜찮으면 얘 좀 찾아봐요. 걱정돼 죽겠어!
“뭘 어떻게 가라고? 여기 지금……제기, 알았어! 내 다시 올라가볼 테니까, 미현이한테 다시 연락해 봐! 나도 계속 전화할 테니까!”
― 빨리 가봐, 응? 보나마나 헬멧도 안 쓰고 나갔을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헬멧을 왜 안 써?”
― 왜 안 쓰긴, 나갈 때마다 머리 망가진다고 불평했잖아! 날도 더운데 뉴스서도 계속 괴물 안 나온다 그러고, 우리까지 없으니 헬멧을 썼겠어? 쓰고 나가라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해! 차에 헬멧 있지?
“견본품 실어 놨어! 실내에선 사람 많이 몰린 곳에서만 나온다고 뉴스에서 그러긴 하던데, 혹시 모르니까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이랑, 당신도 써. 알았지? 지금 갈 테니까, 미현이 찾고 나면 전화할게! 얘 쇼핑하러 어디 갔다고?”
호준은 미현의 목적지를 들은 후 전화를 끊고 내비게이션의 경로를 재설정했다. 뭐, 쇼핑? 이 녀석, 찾기만 해봐라.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놀러 간답시고 아빠 비즈니스를 방해해? 괴물이 하늘에서만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겠어. 그러니 제발, 살아 있어라.
아빠 괴물은 힘주어 엑셀을 밟았다.
“헬멧 쓰고 나왔으면 어쩔 뻔했냐? 땀 때문에 머리 푹 젖고, 꽉 눌리고. 최악.”
“야, 근데 좀 무섭지 않냐? 죽을지도 모르잖아.”
“지도 안 썼으면서 뭐래. 안 쓴 사람 많기만 하구만. 실내에선 안 나온다잖아. 혼자 쫄고 난리야.”
“야, 쫄긴 누가 쫄아. 그냥 찝찝해서 그렇지.”
“쫄았네.”
“아, 진짜!”
2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소녀들이 재잘거렸다.
주말의 쇼핑몰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원형을 그리는 형태로 만들어진 각 층이 널찍한 1층 로비에서 훤하게 보이도록 설계된 쇼핑몰 입구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글래스 처리된 천장과 전면부로 오후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입구에서 오른쪽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가 각 층을 연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 대부분은 헬멧을 벗은 채였고, 보관용 가방을 안 든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교통사고나 마찬가지야. 어차피 죽을 놈은 죽게 돼있어. 뭘 일일이 덮고 난리냐, 더운데. 후끈거리지? 짜증나지? 그냥 벗어. 그럼 편해.
많은 사람들이 여름의 유혹에 넘어갔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머리 뜯어 먹혀 죽는 사람 수보다 많아. 괴물이라고 특별날 거 없어. 조심할 때만 조심하면 돼. 어떻게 하루 종일 뚜껑을 쓰고 다녀? 요즘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미현과 지민도 그랬고, 핏줄기를 뿌리며 5층에서 떨어지고 있는 남자도 그랬었다.
“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솟았다.
미현과 지민이 2층에서 3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막 타려고 했을 때, 목 잘린 남자의 시체가 로비에 충돌하며 퍽 소리를 냈다. 먹물을 화선지에 떨어뜨릴 때처럼 핏물이 방사형 무늬를 그리며 퍼져 나갔다. 난간 쪽에 서 있던 미현이 먼저 그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꺄악! 으아, 뭐야, 뭐!”
“엄마야! 야, 저, 저 사람 죽은 거야?”
“피 봐! 당연히 죽었겠지!”
1층 로비의 현장 주변과 층계참, 각 층 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쇼핑몰 직원들은 사람들을 통제하려 애쓰며 핸드폰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지민아, 근데 저 사람……목 없지 않았어?”
“어우, 넌 그걸 또 보고 있냐!”
“보이는 걸 어떡해! 그리고 아까도…….”
“아까도?”
“별 생각 없이 저쪽 쳐다봤다가 슬쩍 보였는데, 저 아저씨 그냥 떨어지지 않고, 뭐라고 해야 돼? 그러니까, 막 빨래터는 것처럼 하늘로 팍 던져졌다가 떨어졌다고 해야 되나?”
“야, 그게 뭔 소리야? 그럼…….”
잠시 대화가 끊겼다. 안 좋은 예감이 소녀들의 말문을 닫게 했다.
미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민아.”
“왜?”
“우겨서 미안. 내가 나중에 용돈 아껴서 갚을게. 일단 하나 더 사자.”
“뭐, 뭘?”
“헬멧.”
다시 비명이 울렸다. 현장을 수습하던 백화점 직원의 머리도 날아갔다.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가 발견했다.
허공에서 튀어나온 괴물을.
“뛰어!”
미현과 지민이 난간에서 등을 돌렸을 때, 그들 오른쪽에 서 있던 여자의 머리도 사라졌다. 소녀들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뛰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태 파악을 끝낸 시작한 사람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쇼핑몰은 발소리와 비명으로 가득 찼다. 간간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이런 썅! 씨팔, 니미 좆도! 빨리 좀 가자! 빨리 빨리!”
평소에도 복잡한 영등포 시장 로터리 한가운데서 운전자 목이 날아갔으니 진종일 욕을 한들 교통체증이 해소될 리 없었다. 호준은 1분 정도 더 욕을 퍼붓다 그냥 뛰어가기로 했다. 친구랑 같이 갔다고 했지? 당연히 둘 다 헬멧 안 썼겠지. 젠장, 걔 부모는 뉘시길래 남의 집 딸까지 신경 쓰게 만들어! 호준은 헬멧 두 개의 턱끈을 한 손에 말아 쥐고 문을 열었다.
차는 그냥 바꾸기로 했다.
3층의 헬멧 판매점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비교적 빨리 움직인 미현과 지민이었지만 2층에서 3층에 있는 사람들보다 빨리 도착하긴 힘들었다. 미현이 헐떡대며 말했다.
“야, 안 되겠어! 저걸 어떻게 뚫고 들어가?”
“그럼 어떡해!”
“헬멧 파는 데 또 없어?”
“여기밖에 없을 걸?”
“지하상가나 롯데백화점…….”
“거기도 똑같겠지!”
“그냥 집으로 도망가자. 그래도 집안은 괜찮을 거 아냐!”
“우리 집 당산동이거든!”
“누가 뭐래! 우리 집에 같이 가자고! 헬멧도 쌓였고.”
“아, 참.”
“알았음 가자, 얼렁!”
“가는데 괴물 나오면 어떡해!”
“여기 있으나, 집까지 뛰나!”
돌아가기도 간단치는 않아 보였다. 헬멧을 사려고 아우성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밖으로 나가기 위해 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만원이었고, 아래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역시 내려가거나 내려가려는 사람들로 꽉 막혔다. 그 때문인지 작동도 정지된 상태였다. 밀지 말라는 고함과 욕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괴물이 나타나는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곳곳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고, 비명이 터질수록 사람들은 한층 더 혼란에 빠졌다.
“에스컬레이터 안 되겠다. 비상계단 찾아보자!”
“안 되긴 뭐가 안 돼, 비상계단도 사람들 졸라 많을 걸! 이리 와봐!”
미현은 지민의 손을 잡고 사람들 틈을 파고들었다. 덩치가 작은 두 사람이라 가까스로 인파를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냥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자고? 가다가 깔려 죽겠다!”
“그게 아냐! 조심은 좀 해야 될 텐데, 일단 해보자!”
“뭘 해?”
“손잡이 밟고 내려가려고.”
“뭐?”
“멈춰 있잖아. 괜찮을 거야!”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쪽을 제외하면, 로비 쪽은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 두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양쪽 손잡이 사이의 틈이 넓지 않았다. 반대쪽 의류 판매 매장들이 입점한 부분에도 에스컬레이터는 있었지만, 따로 설치된 데다 사람들로 막혀 있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야, 양쪽이 다 난리인데……저 사이로 지나간다고? 넘어지면 대박이겠다!”
“안 넘어져야지! 뭐하면 옆에 사람 어깨라도 밟든가. 정신없는데 신경이나 쓰겠냐?”
“아, 진짜! 뭐야 이게! 나도 몰라!”
“나 먼저 올라간다! 빨리 올라와!”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다면 누군가 먼저 떠올렸을지도 모를 아이디어였다. 괴물 방어용 헬멧을 파는 아버지를 둔 소녀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정신을 차린 후 먼저 행동에 옮겼다. 지민은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생각했다.
미현과 지민은 두 기의 엘리베이터 손잡이를 디딤대 삼아 일렬로 엉거주춤 서서 아비규환의 틈바구니를 뚫고 내려갔다.
“워, 으으, 어어.”
“야, 조심해! 생각보다 경사가……”
“말 시키지 마! 어, 어어.”
사람들이 휘젓는 팔에 부딪혀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둘 모두 3층에서 2층으로 무사히 내려왔다. 비틀대던 지민에게 머리를 밟힌 여자는 달갑지 않았겠지만.
꽉 밀린 사람들 때문에 내려서기도 쉽지 않았다. 먼저 2층에 도착한 미현이 지민의 손을 잡아 내려주며 한숨을 쉬었다.
“우와, 휴, 겨우 내려왔네.”
“평균대보다 더 어려워! 넘어지는 줄 알았어, 진짜!”
“넘어진다고 죽지는 않을 거 아냐.”
“다치잖아! 틈 사이는 왜 이렇게 넓어! 무서웠단 말야!”
“아, 고만 징징대! 또 내려가야지!”
“어? 뭘 또 내려가! 아참, 여기 2층이지? 야, 그냥 뛰어 내릴까? 별로 높지도 않은데.”
“뭐래!”
실제로 그냥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떨어진다고 죽을 높이는 아니었지만 2층과 1층 사이는 보기보다 높았고, 떨어진 사람들 대부분은 잘못 착지하거나 발을 헛디뎌 발목이 나갔다.
눈치 빠른 미현도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지만, 괴물은 느린 먹이를 더 선호했다. 빨리 움직여도 큰 어려움은 없지만 느릴수록 먹기 편했다. 정지해 있으면 더 좋고, 발목이 부러졌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하나만 더 내려가면 돼!”
“으으―완전 싫어…….”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 층계참의 인파는 3층보다 훨씬 많았다. 에스컬레이터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정문이 가까워서인지 사람들은 더 거세게 움직였다.
“이제 끝이잖아! 한 번에 가자!”
“한 번 안 가면 두 번에 가냐! 빨리 올라가기나 해!”
사람들을 비집고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나온 소녀들은 다시 내리막 줄타기를 시도했다. 지민이 미현을 받쳐 올려주고, 미현은 지민을 끌어 올렸다. 양쪽에서 넘실대는 사람들의 파도에 비틀대며 절반쯤 내려갔을 무렵, 2층 층계참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꺄악―!”
지민은 엉겁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큰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두 마리의 괴물들이 고개를 내밀고 남녀 한 쌍의 머리를 물어뜯는 중이었다.
“엄마야…….”
여자보다 지민에게 가까이 있던 남자의 입에서 피거품 끓는 소리가 끄르륵대며 새어나왔다. 다른 녀석들보다 힘이 약한지, 한 번에 머리를 뜯어내지 못한 괴물은 갈색 몸통에 세 갈래로 갈라진 아가리로 천천히 남자의 머리통을 부쉈다. 핏물이 남자의 몸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셨다.
여자 쪽의 괴물은 다섯 마리의 가느다란 괴물이 노끈처럼 비비 꼬인 모습이었다. 다섯 개의 입이 여자의 머리와 목에 달라붙어 살점을 물어뜯었다.
2층 층계참 쪽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각자의 개성대로 비명을 질렀다.
“히익!”
“우와아악!”
탈출의 물결이 더 거세졌다. 차례를 지키려는 사람은 없었다. 힘이 약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넘어져 바닥에 깔렸다.
“미현아, 조, 조금만 더 빨리!”
“나, 나, 나도 노력중이라고!”
손잡이만 밟고 가기는 불가능했다. 비틀댈 때마다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를 밟고 버텨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아!”
“으악! 죄송해요! 미안해요!”
미현과 지민은 다른 사람들을 밟을 때마다 울상이 된 얼굴로 사과를 하면서 위태롭게 내려갔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며 1층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였다.
뜨뜻하고 끈적대는 무언가가 지민의 얼굴에 튀었다.
바로 옆에 있던 남자의 목에서 솟아오르는 피였다. 지민은 번들대는 초록색 비늘로 뒤덮인 괴물의 긴 목이 남자의 머리를 물고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괴물의 입 속 남자의 머리는 눈을 크게 뜬 채였다.
“으아악―!”
깜짝 놀란 지민이 발을 크게 헛디뎠다.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려 다시 손잡이를 밟을 수 있었지만, 이미 균형을 잃은 후였다. 지민의 몸이 기울어지며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어, 어, 어어! 으아아!”
“야, 뭐……으악?!”
막 바닥으로 내려서려 하던 미현은 본의 아니게 돌진해 온 지민과 부딪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바닥에 미현을 깔고 누운 지민은 물론이고 미현도 다친 데는 없었다.
“아야야…….”
“아, 아퍼 죽겠네……뭐야, 지지배야! 갑자기 넘어지고 지랄이야!”
“미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걸 어떡해!”
“아, 알았으니까 빨리 내려 좀!”
“씨이……누군 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졌나.”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갑자기 거친 욕설이 미현의 엉덩이 아래에서 들려왔다.
“아오, 썅! 빨리 비켜, 이 씨발년들아!”
미현과 지민은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났다. 두 사람분의 무게에 깔려 있던 사내가 뒷목을 붙잡고 일어섰다. 첫눈에 보기에도 성격 안 좋아 보이는 관상의 남자였다.
“살기도 바쁜데 뭐야, 이 썅년들은!”
남자가 성을 내며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미현과 지민은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꺅―!”
“악―!”
퍼억,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미현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아픈 데는 아무데도 없었다. 실눈을 뜨고 친구를 봤지만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꺄아악―!”
미현은 실눈을 뜨고 성격 더러운 남자 쪽을 훔쳐보았다. 오른손을 들어 올린 자세 그대로였지만 왜인지 풀린 눈을 하고 흐느적댔다. 머리 위로 튀어나온 보라색 물체가 쇼핑몰의 조명을 받고 반짝였다. 헬멧이었다.
“어……아빠!”
천천히 쓰러지는 남자의 뒤로 호준이 나타났다. 기분은 나빴지만 성능시험 상대로는 나쁘지 않았다.
“살기 바쁘면 튈 것이지, 남의 집 귀한 딸한테 쌍욕을 하고 지랄이세요. 버릇없는 새끼야…….”
“어, 아빠?”
“차미현! 이 녀석아!”
“꺄아아악―!”
“야, 김지민! 정신 차려! 우리 아빠 오셨어!”
“꺄아……뭐?”
“아빠 오셨다고!”
“아……아빠?”
“우리 아빠!”
“어, 아……안녕하세요.”
“어, 그래. 지민이라고 그랬니? 너 목청 참 좋다, 야.”
“아빠, 공장 내려간다고 안 그랬어?”
아빠 괴물의 일격이 미현의 정수리에 작렬하며 콩 소리를 냈다.
“아얏! 왜 때려!”
“너 땜에 가다가 말았다, 인석아! 전화는 왜 안 받은 거야?”
“전화? 아, 가방 안에 넣어두고 깜빡…….”
“가방? 이런 젠장……아빠 할 얘기 많은데, 일단 나가고 나서 하자. 둘 다 헬멧부터 써!”
그냥 쓰기엔 좀 컸지만, 사이즈를 잘 조절하면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도 착용 가능한 러시아 군용 헬멧의 디자인이 적용된 신형 헬멧은 금방 미현과 지민의 머리에 들어맞았다.
“근데 밖은 괜찮은 거야? 실내엔 안 나온다고 해놓고 갑자기 막 나와!”
“뉴스 못 들었……을 리가 없지. 그래도 밖이 여기보단 나을 거다!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나가자!”
정문은 북새통이었지만 로비 우측, 호텔 건물과 연결된 쪽에도 출입구가 나 있어 조금만 기다리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듯했다. 기다리는 동안 괴물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이쪽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세 사람이 헬멧 턱끈을 꽉 조이고 정문의 인파 뒤쪽에서 멈췄을 때, 천장에서 굉음이 울렸다.
“아빠, 이거……무슨 소리야?”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우르릉거리는 소리에 공기가 떨렸다. 진동음처럼 들렸지만 땅울림은 없었다. 로비 천장에 매달린 큼직한 금속 원형 구조물들이 세차게 흔들렸고, 유리로 마감된 로비 외벽과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정문으로 빠져나갈 생각은 싹 가신 상태였다.
“아빠. 여기 좀…….”
“찬성. 지민이는?”
“저, 저도요.”
“뛰엇!”
호준은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정문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로비를 반쯤 가로질렀을 때, 천장의 유리가 하나둘씩 깨지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악! 꺄악!”
“빨리! 빨리 가자!”
유리 외벽을 지탱하던 철골이 뒤틀리고 천장이 박살나는 소리가 로비를 채웠다. 3층과 4층 양끝 사이의 공간을 가로질러 놓여있던 다리가 박살나고, 흔들리던 원형 구조물들을 지탱하던 와이어가 끊어지며 파편과 쇳덩어리들이 아래 있던 사람들을 깔아뭉갰다. 폭음에 가까운 소리에 놀라 세 사람은 뛰면서도 뒤를 돌아보았고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천장을 뚫고 괴물의 머리가 떨어져 내렸다. 머리의 직경이 최소 4M정도는 되어 보였다. 초록색 비늘 위로 세로로 갈라진 거대한 눈이 허공에 오렌지색 궤적을 그리며 꿈틀댔다. 뱀과 흡사한 인상이었지만 이빨은 상어와 비슷했다. 괴물은 스스로가 부순 건물 파편을 떨쳐내려는 듯 몸을 한 두 차례 세차게 휘저은 후 주저앉은 채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 위를 덮쳤다.
“보지 마!”
호준은 거대 괴물이 사람들을 씹어 먹는 광경을 바라보던 아이들을 다시 잡아끌었다.
정문을 제외하고도 출구는 두 군데가 더 있었다. 정문 반대편 통로 끝에 위치한 문과 로비에서 바라봤을 때를 기준으로 우측에 나 있는 통로였다. 로비 가장자리에서는 두 곳의 출구 양쪽을 다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문과 반대편 통로 끝 출입문으로 몰렸는지 우측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쪽으로!”
로비 쪽에서 다시 한 번 굉음과 아우성이 들렸다. 세 사람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몇 걸음 뛰지 않는 사이에도 통로 양쪽의 브랜드 매장에서 우왕좌왕하던 사람들 몇몇이 연달아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물 쏟아지는 소리를 내며 쇼윈도에 붉은 무늬가 새겨졌다. 진열되어 있던 구두와 가방, 옷들의 색과 무늬가 핏자국과 기묘한 조화를 이뤘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금방 빠져나갔다. 조금 앞서 가던 호준이 아이들을 먼저 보내기 위해 문을 잡고 옆으로 비켜섰다. 로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른 출구를 찾아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자, 어서!”
미현이 먼저 앞으로 나서고 지민이 뒤에서 나갔다. 호준은 문을 놓고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려 했다.
문 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 눈앞에서 갑자기 지민의 모습이 사라졌다.
호준은 자리에 멈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앞서 몇 걸음 걷던 미현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이중으로 된 문과 문 사이의 공간에서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아악! 지민아!”
“꺄아아악!”
지민의 몸은 호준이 선 위치 약간 뒤쪽의 공중에 떠 있었다. 빨판처럼 생긴 괴물의 입이 지민의 헬멧을 감싸듯 문 채였다. 이빨이 헬멧에 박혀 더 들어가지도, 빠지지도 않는 상태였다.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듯 괴물이 머리를 흔들어댈 때마다 지민의 몸이 허공에서 춤추듯 흔들렸다.
“으악! 으아악!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미현아! 아저씨이!”
“지민아! 지민아아!”
우측 출구로 다가오던 인파의 선두가 공중에 뜬 지민을 보고 멈춰 섰다. 호준이 도움을 청하려 하자 사람들은 비명 소리와 함께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런 제기랄!”
“미현아! 아저씨! 이거, 이거 좀 떼 내 줘요! 살려 줘!”
“아빠, 어떡해! 지민이 좀 어떻게 좀 해봐! 아빠아!”
“알았으니까 가만 있어봐! 가만 있자, 그래, 저, 뭣이냐! 그래! 턱끈 풀어! 턱끈 풀어봐!”
턱끈을 풀면 헬멧이 벗겨지리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호준의 말을 들은 지민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턱끈의 후크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 순간, 괴물이 허공에서 똬리를 튼 후 급격히 몸을 폈다. 지민의 몸이 큰 호선을 그리며 솟구쳐 오르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꺄아아악! 지민아아아!”
미현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호준은 괴물이 입에 시작품 헬멧을 매단 채 공중에서 몸을 휘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괴물은 몇 번 더 꿈틀대다 빨려가듯 구멍 너머로 돌아갔다.
‘역시 턱끈 풀기 쉽게 만든 게 정답이었어! 방어성능도 나쁘지 않고, 이건 팔린다!’
“지민아, 지민아! 정신 좀 차려 봐! 지민
아!”
“아야야, 머리 울려……소리 지르지 마.”
“살았네! 우와! 나, 진짜 너 죽는 줄 알았어!”
“아, 소리 지르지 말라니깐……, ‘살았네’ 는 또 뭐야.”
아빠 괴물의 일격이 다시 미현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얏! 아, 왜 또 때려, 아빠!”
“시끄럽다고 하잖아! 거 말을 하면 들어라, 좀.”
“씨잉……좋으니까 그렇지.”
“꿍얼대지 마라, 녀석아. 어디 보자, 괜찮니? 떨어질 때 다친 데는 없고?”
“발목만 좀 삔 것 같아요…….”
“내가 업고 가면 돼. 일단은 내 헬멧을 써라. 사람 많은 곳에서만 나온다고 했으니까, 집까지만 가면 괜찮을 거야. 자, 업혀. 미현이가 좀 도와주고.”
호준은 지민을 들쳐 업은 뒤 미현을 앞세우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솔직히 좀 무거웠지만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른이니까.
세 사람은 쇼핑몰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골목에서 멈춰 잠시 쉬었다. 호준은 헐떡대며 지민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지민이 민망해 할 정도로 헐떡였다.
‘제기, 5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거뜬했는데……아이고, 죽겠다.’
낮게 지어진 건물들 너머로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괴물의 머리가 이젠 원래의 형체를 찾아보기 힘든 쇼핑몰 속을 헤집을 때마다 굉음과 아우성이 섞여 들려왔다. 초현실적이다 못해 신화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미현은 멀거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 지민에게 말했다.
“완전 공룡이네…….”
“그러게…….”
“괴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저거는 좀 힘들겠다.”
“그러게…….”
“도대체 오늘 뭐야? 엄청 큰 게 나오질 않나, 실내에서는 안 나온다더니 떼로 나오질 않나.”
“소나기 같은 거 아닐까?”
“괴물 소나기? 뭐야, 그게.”
숨을 고르고 있던 호준이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내뱉듯 한 마디를 던졌다. 떠오른 생각이 무심코 입 밖으로 나왔을 뿐이어서, 호준은 곧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미현과 지민은 그렇지 못했다. 도저히 못 잊을 말이었다.
둘의 머릿속에 얼마 전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진짜 웃기지 않냐? 야, 봐봐. 괴물이 나와. 괴-물. 아무것도 없는데 팍 하고. 옛날에 이런 얘기 들었으면 넌 뭐라고 그랬겠냐?'
'미쳤다고.'
'그지? 근데 우리 아빠는 그거 가지고 돈 벌고 있잖아! 석 달 만에! 안 이상해? 뭔가 막, 아, 뭐라고 그러더라. 그거 있잖아. 얼마 전에 국어시간에 나온 단어. 아, 뭐더라, 뭐더라…….'
‘위화감?’
그래, 그거.
위화감.
지민은 이제야 미현의 말뜻을 이해했다. 역시 어른은 대단해.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아니, 대단한 건가? 지민이 묻는 듯한 시선을 미현에게 보냈지만 미현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빠, 도대체 뭐람.
두 사람은 복잡한 기분으로 방금 전에 호준이 한 말을 곱씹었다.
“방호복에 휴대용 방패 세트라도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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