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베리의 노래
- 작성일 201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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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이므로, 그 이외의 목적으로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날것이므로 ‘반드시’ 서둘러 드셔 주십시오.
*머리카락부터 발가락까지 모두 드실 수 있습니다.
1
갑은 찾아냈다. 유리 케이스 안에서 미소 짓는 그것은, 음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고 몸집이 작은 여자 아이였다.
여자 아이는 스트로베리색의 새빨간 눈동자를 깜박이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는 작은 코와 핑크색 입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밝은 다갈색 머리카락은 금방이라도 찰랑거릴 것 같았고, 엷은 황색 피부는 도자기 같았다.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의 부푼 곳이 강조되고 있었다. 갑은 시선을 내렸다. 거기에는 가녀린 팔과 가늘지만 적당히 육질이 붙은 허벅지가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악역처럼 큰 덩치에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남자인 갑이, 작은 몸집을 가진 소녀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옆에서 보면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갑은 그런 것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이트 바(eat bar)에는 처음 왔지만 갑은 상당히 놀랐다.
생 이트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름은 스트로베리.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맛의 디저트 이트입니다. 머리카락이나 뼈까지 모두 생으로 드실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셨습니까, 고객님?”
남자 점원이 그렇게 물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의 빛이 쇼 윈도우를 비추고 있었다. 윈도우안에는 스무 개 정도의 이트가 두 줄 놓여져 있지만 갑의 눈동자에는 스트로베리 밖에 비치지 않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회사 동료들에게 말했을 때 한 사람이 가르쳐 준 곳이 이곳이었다. 갑은 생 이트를 먹으러 왔던 것이다.
갑은 입가를 오른손으로 가렸다. 그 행동은 갑이 곤란해 할 때 취하는 버릇이었다.
“이걸 꺼내 주세요.”
갑은 손가락으로 스트로베리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점원이 자물쇠를 열었다. 새콤달콤한 스트로베리 케이크에다가 바닐라 시럽을 뿌린 듯한 느낌의 향기가 살짝 퍼졌다. 이트 특유의 식욕을 증진 시키는 향기였다. 갑은 침을 삼켰다.
스트로베리의 키는 그의 어깨보다 조금 낮았다. 그녀는 귀여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저를 먹어주시나요?”
장인이 만든 목조관악기 같은 투명감과 섬세함을 가진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갑의 몸에 전율이 내달렸다.
“포장해 주세요.”
갑은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점원이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자택까지 배달해드리겠습니다.”
갑은 자기 주소를 알려주었다.
갑이 돌아가려고 할 때 점원이 뒤에서 말했다.
“반드시 서둘러 드셔 주십시오.”
2
수십 년 전부터 고기라고 하면 이트가 주류였다.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은 바이러스 때문에 번식을 하지 못해 지구에서는 식용 고기가 사라졌다. 벌써 1세기 전 이야기였다.
영양의 문제도 있고, 그보다는 맛있다는 이유로 고기를 찾던 당시의 사람들은 인공육을 대신 먹었지만, 그것은 고기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점차 불만이 더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이트가 나타났다. 처음 나타날 당시에는 식용 소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먹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먹히기 위해서 태어나 존재라고 한다.
식용 소녀를 출시한 회사에서는 먹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역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꼈다. 외형은 인간과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트 등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채로 식용 소녀는 뒤에서 거래되게 되었다. 한 번 먹은 사람들은 한동안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 식용 소녀를 찾았다.
어떤 유명한 패스트푸드점이나 인공육 가게에서는 고기에 식용 소녀의 고기가 섞여 있다는 소문이 흐르기도 했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퍼지고 나서 10년 정도가 지났을 때 어느 종교의 교황이 식용 소녀는 신이 내려준 음식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그녀들에 대한 사람들의 취급이 바뀌게 되었다. 일반 가게에 가서도 식용 소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비난하는 여론이 퍼지고 시위도 일어났지만 그것도 또 10년 정도 지나자 모습을 감추었다. 죄의식을 느끼면 신에게 기대었다. 이름이 식용 소녀에서 이트로 바뀌어 세상에 퍼져 갔다.
한 번 먹은 사람은, 그 고기의 맛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트는 매우 맛있었다. 이트고기 전문점이 생기고, 음식점에서도 이트고기를 쓰게 되었다. CM송도 각 나라마다 하나씩 만들어졌다.
이트는 격리된 장소에서 자라 격리된 장소에서 가공되어서 출시되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들의 거부감을 좀 더 완화시켜주었다. 전혀 공개를 안 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불안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었기에 공장 견학도 신청하면 가능했다. 견학 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트고기가 세상에 퍼지는 데에 일조한 또 하나의 요소는 맛의 다양성이었다. 이트는 점점 개량되어서 이제는 맛있을 뿐만 아니라 단맛 이트, 고소한 이트, 담백한 이트 등 여러 가지 맛의 이트가 있었다. 심지어 맛은 아니지만 매운 이트도 있었다. 이트는 인류의 기호를 모두 충족시키려는 듯 발전해나갔다.
십 몇 년 전에는 디저트 이트라고 불리는 이트도 태어나서 올해 출시되었다. 고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부드러운 촉감과 달달한 맛을 가진 디저트 이트는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전문점에는 줄이 생길 정도였다.
아직 나이를 먹은 사람 중에서는 이트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였다. 요즘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이트를 먹는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뒤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 생 이트다. 살아있는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생 이트는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팔렸다. 양지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선호 받고 있었다.
3
갑의 방에 배달된 스트로베리는 하늘하늘한 느낌의 딸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옆에는 회색 트렁크가 놓여 있었다.
갑은 흉악범 같이 무서운 얼굴을 가능한 한 상냥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미소 지었다.
“나는 갑이야, 스트로베리.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키가 큰 갑은 몸집이 작은 스트로베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트로베리입니다. 아무쪼록 드셔 주세요.”
스커트의 옷자락을 잡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목조관악기 같이 투명한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원하시면 아파할 수도 있어요.”
통각이 없는 이트였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아파하는 연기를 보고 싶어하는 손님도 있었다.
“괜찮아, 안 해도 돼.”
갑은 히죽 날카로운 웃음을 얼굴에 띠우며 말했다.
“나는 먹지 않으니까.”
“네? 먹지……않아요?”
스트로베리는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갑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스트로베리에게도 앉으라고 말했다. 스트로베리는 그가 앉은 소파와 마주보는 소파에 앉아 갑을 쳐다보았다.
“저 맛있어요.”
스트로베리는 갑에게 몸을 기울이고 집게손가락을 갑의 입술에 갖다대었다. 달콤한 향기가 나는 손가락은 식욕을 일으켰지만 갑은 참았다.
갑은 스트로베리의 손을 옆으로 치우고 말했다.
“그 대신에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해줬으면 하는 일?”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줘.”
일순간 방안이 조용해졌다. 스트로베리는 당황하고 있었다.
“불러요? 저는 식용인데요.”
“괜찮아. 그 목소리는 굉장히 멋지니까.”
갑은 과장되게 양팔을 펼쳤다.
“내 음악 인생에서 만난 본적이 없는 목소리야. 유리로 세공한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 같은 투명함은 내가 여태껏 찾고 있던 이상적인 목소리라고! 설마 이트 중에 이런 목소리의 소유자가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어.”
무서운 얼굴을 한 남자가 몸짓을 섞어가며 역설하는 모습은 보통 여자 아이라면 울면서 도망 가버렸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하지만 스트로베리는 이트였다. 보통 사람과는 가치관이 달랐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전 한 번도 노래 부른 적이 없어요.”
“간단한 곡이라도 좋아. 조금만 불러봐.”
갑의 집에는 녹음 시설이 있었다. 방음 시설이 된 골방 하나를 음악 전용실로 사용하고 있어서 그 방 안에 녹음 시설과 여러 가지 악기가 들어가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작곡이었다. 어느 회사 소속으로 작사와 작곡 둘 다 했다.
갑은 스트로베리를 골방에 밀어 넣었다.
스트로베리는 불안해서 시선을 둘 곳을 헤매고 있었다.
갑은 마이크를 켜고, 마이크에다가 뭐든지 불러 보라고 말했다.
“뭐든 지요? ……네.”
스트로베리가 그렇게 대답했다.
스트로베리가 부르는 노래를 들을 생각을 하니 갑은 흥분한 나머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고액의 이트를 사느라 뼈아픈 지출을 했지만 이제는 그녀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그 정도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갑은 생각했다.
그리고 미소 지으면서, 이트인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열린 입으로부터 투명함을 느끼게 하는 섬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선지에 아이가 낙서 하는 것 같이 음이 괴이했다. 갑의 고막은 의지를 잃었다.
“저기, 스트로베리?
“네? 왜요?”
뭐가 이상한지 전혀 모르는 듯한 밝은 미소.
갑은 마이크를 끄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런 것이 아니었다. 마치 유치원에 다니는 보통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과 비슷했다. 즉, 그녀는 노래가 서툴렀다.
갑은 입가를 오른손으로 가렸다.
“연습 하자!”
갑의 원래부터 흉악한 얼굴은 곰이 얼굴을 찡그린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한층 험하게 변해 있었다.
문득 갑은 스트로베리가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하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게 만드는 건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미안, 무서웠어?”
그러나 스트로베리는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갑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4
갑이 사는 도시. 빌딩의 높이는 수십 년 전부터 거의 변함이 없지만 지하는 수십 층까지 나무뿌리처럼 뻗어 있었다.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실제로 미로 또는 지하미로라고 불리고 있었다. 조난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증축을 계속 하고 있는 곳도 있고 막다른 길도 있는데다가, 전기가 끊긴 깜깜한 통로도 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복잡하고 난해해서 사람을 현혹시켰다.
지하에는 가게나 주택이 주로 들어서 있었다. 갑이 사는 곳도 그 중 한 곳으로, 동쪽 지구 지하 45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쪽 지구는 지상으로 나가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그래서 갑은 그다지 지상으로 나가지 않았다.
참고로 이트 바가 있는 곳은 남쪽 지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하 사람들에게서도 지하라고 불리는, 그러나 보통 사람은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르는 장소에 있었다.
지하에는 햇빛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유사창문으로부터 햇빛이 비추는 것처럼 보이는 설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갑의 집도 다른 집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햇빛이 비추는 것처럼 설정되어 있었다.
눈을 뜬 갑은 자기 앞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아침 식사로는 절 드시는 게 어떠세요?”
스트로베리가 갑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속삭이고 있었다. 소파에서 자고 있던 갑은 스트로베리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밀어냈다.
스트로베리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은 스트로베리를 쳐다보았다. 스트로베리는 붉은 리본이 달린 흰색 캐미솔을 입고 있었다.
새콤달콤해서 식욕을 돋우게 하는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 있다. 상쾌한 아침 햇빛에 어울리지 않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갑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공기정화조가 계속 돌아가고 있어서 공기는 상쾌했다.
“갑씨, 갑씨.”
스트로베리가 갑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을 옮기며 갑을 불렀다. 갑은 눈을 내리깔았다.
“왜?”
눈매가 나빠서 시선이 살기를 띤 것 같았지만 스트로베리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맛있다니까요. 자, 봐요.”
갑에게 팔을 먹게 하려고 스트로베리는 그 가녀린 팔을 그에게 내밀었다.
“식사나 할까.”
갑은 주방으로 향했다.
“먹어 주지 않아…….”
시무룩해진 스트로베리에게 갑이 물었다.
“넌 뭘 먹어?”
“저는 전용 음식이 있어요. 트렁크에요. 그걸 안 먹으면 맛이 이상하게 되어버려요.”
갑은 이트고기를 꺼내다가 스트로베리 때문에 꺼림칙해져서 다시 냉장고 안쪽에 집어넣었다.
대신 냉동 파스타를 꺼내 해동했다.
스트로베리는 트렁크에서 튜브를 꺼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에 보면서 갑은 파스타를 접시에 담았다.
“잘 먹겠습니다.”
갑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먹었다.
갑은 먹으면서 입을 열었다.
“몇 곡 불러줬으면 하는 곡이 있어. 넌 내가 바라고 있던 것 그대로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는 일은 오랜만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연습을 시작했다.
이트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이트를 팔거나 먹으려는 사람들뿐이었기에 이트에게 제대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은 이트가 생긴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트가 노래가 서투르다는 걸 갑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갑은 끈기를 가지고 스트로베리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일부러 하려고 해도 안 될 정도로 불협화음을 내는 스트로베리였지만 연습을 할수록 음정이 안정을 찾아갔다.
녹음실에서 나온 스트로베리를 보며 갑은 흥분한 상태로 말했다.
“대단해! 스트로베리. 역시 너는 노래를 불러야 해. 왜, 그 스트로베리 페어라는 노래도 있고.”
갑이 말하려고 했던 노래는 스카보로 페어였다. 갑이 제목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노래 부르는 건 즐겁네요!”
“자, 그럼 이번엔 일단 한번 녹음해볼까?”
갑이 그렇게 말했다.
“녹음이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스트로베리가 갑의 등뒤에서 PC화면을 들여다봤다.
갑은 기분이 좋아서 가르쳐줬다.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면 돼.”
“아,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면 되는 군요.”
“그래그래. 근데 마음대로 손대지 마. 자 그럼 녹음실에 들어가 봐.”
녹음실에 들어간 스트로베리는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 섰다. 갑은 곡을 재생했다.
피아노와 전자음이 뽑아내는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템포는 미디엄이었다.
장르는 일렉트로닉에 가깝다. 리듬에는 재즈의 요소도 들어가 있었다. 곡의 중반부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졌다. 곡의 2/3쯤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와 전자음이 유려한 멜로디를 이루어 눈앞에 푸른 하늘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긴장감과는 다른 힘으로 곡에 몰입하게 만드는 잔잔한 후반부가 이어졌다.
찬란한 느낌과 함께, 어쩐지 어딘가 외로움이 감도는 곡이었다.
“이것이, 갑씨가 만든 곡?”
아슬아슬한 몇 초의 침묵 후 갑은 대답했다.
“……그래.”
그는 이 곡의 이미지와 자신의 용모가 어울리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 용모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 곡을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갑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상태였다.
갑은 스트로베리를 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스트로베리는 넋을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갑을 보며 말했다.
“대단해요, 갑씨는.”
스트로베리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얼굴을 붉힌 갑은 잠시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가 다시 스트로베리를 보며 물었다.
“저기, 부를 수 있겠어?”
“으음, 어려울 것 같은데요.”
눈살을 찌푸리는 스트로베리에게 갑은 말했다.
“그래, 제대로 부를 수 있으면 먹는 걸 고려할게.”
스트로베리는 반색했다.
“정말요?”
스트로베리는 의지를 보였다. 아직 음정은 불안한 곳이 있었지만 몇 번 다시 부르면서 수정해나가다 보니 무사하게 한 곡을 녹음했다.
갑은 그 날에 MR을 조금 손보고 나서 스트로베리의 곡을 회사 프로듀서에게 보냈다.
아티스트명은 고민을 더하다가 스트로베리로 정했다. 갑은 보컬이 이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20분도 채 안 되어 프로듀서가 메신저로 감상을 보냈다.
-갑씨, 좋은 보컬을 발견했군요. 곡의 이미지와 맞는데다가 곡 자체도 좋습니다. 이것으로 진행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런데 첫 생 이트는 어땠습니까?
갑이 답장을 못 하고 있는데 프로듀서의 말이 이어졌다.
-뭔가 인생 바뀌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곡을 쓰는 데도 영감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프로듀서는 친절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 갑에게는 말하기가 쉬운 좋은 상대였지만 가끔씩 도가 지나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트 바를 갑에게 소개해준 것도 그였다.
-어쨌든, 이번에는 갑씨가 좋아하는 대로 갑시다. 저는 갑씨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갑은 지금까지 곡을 제공해왔었다. 그 공적이 인정받아서 이번 신곡은 원하는 곡과 보컬을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껏 곡을 쓰기는 했지만 보컬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었었다.
갑은 스트로베리를 쳐다봤다. 이건 운명이었다.
5
스트로베리의 데뷔곡 you and beautiful world는 발표한지 얼마 안 되어 화장품 광고에 삽입되었다. 젊은 무명 여배우를 기용한 15초 정도의 광고였다. 청순한 여배우의,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워하는 듯한 시선과 스트로베리의 섬세하고 투명한 고음의 가성이 멋진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신인 여가수는 넷에서 화제를 모았고, 데뷔곡이면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선전을 했다.
“대단해, 스트로베리!”
갑은 날카로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스트로베리는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흐를 때마다 와아, 하고 감탄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기쁘지?”
“네, 기뻐요!”
갑의 무서운 얼굴도 오늘은 조금 선해보였다.
스트로베리는 싱글벙글 하면서 말했다.
“자, 갑씨. 이제 절 먹어 주실 거죠?”
갑의 몸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살그머니 얼굴을 가리듯이 입가를 오른손으로 눌렀다.
“……아직, 기다려.”
“네? 그치만 지난번에 먹어 준다고 했잖아요! 왜 아직 먹어 주지 않는 거예요?”
스트로베리가 불만어린 표정으로 갑을 바라보았다.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니까, 아직 안 먹어.”
그는 말하고나서 스트로베리에게 등을 돌리고 작업실로 향했다. 스트로베리는 그 뒤를 쫓았다.
“불러 줬으면 하는 곡이 아직 있어. 노래 부르는 건 너한테 있어서도 좋은 일 아니야? 먹지 않는다는 건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니까.”
스트로베리는 갑의 그 큰 등을 응시했다.
“전 먹힐 수 없는데도 살아가는 건 싫어요. 이대로 썩어 가고 싶진 않으니까요.”
곤란하다는 듯한 어조였다.
“……어쨌든! 난 안 먹을 거야.”
스트로베리는 으음, 이라고 신음을 흘렸다.
“생 이트는 처음 먹는 건가요?”
“……그래.”
“그럼 자, 가르쳐 드릴게요. 저희에게 있어서 먹힐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에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요. 저는 음식이에요.”
스트로베리는 오른쪽 중지의 끝마디를 자기 스스로 씹었다. 피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다. 스트로베리는 그 손가락마디를 쥐고 갑의 등 뒤에서 갑을 덮치듯이 덤벼들었다. 그리고 갑의 입안에 손가락마디를 집어넣었다.
“으읍!”
진한 스트로베리 맛의 육즙이 갑의 혀 전체에 퍼졌다. 갑은 무의식적으로 스트로베리의 손가락마디를 씹었다. 맛있어서, 갑의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갑은 넋을 잃고 가만히 서서 입안에 들어온 고기를 씹었다. 여러차례 씹어도 맛있었다. 고기의 절묘한 부드러움이 식욕을 일으켰다.
잘게 다져져 부드러워진 고기가 식도로 넘어갔다. 문득 갑은 정신을 차렸다.
“안 돼!”
갑은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스트로베리를 떨쳐 냈다.
“……역시 먹어 주지 않는 건가요?”
엉덩방아를 찍은 상태로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스트로베리에게 갑은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먹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전, 노래 부르는 일을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에요.”
“넌 자기가 없어져도 괜찮은 거야?”
“그런 게 아니에요! 갑씨는 바보에요! 멍청해요!”
스트로베리는 그렇게 내지르고는 고개를 돌렸다. 목조관악기 같은 목소리는 스트로베리의 감정을 알려주는 듯 갈라져 있었다.
“그건 네가 그렇잖아. 난 장이나 보고 와야 겠어.”
갑은 스트로베리를 방에 남기고 밖으로 도망쳤다.
6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가게가 나란히 서있는 지역에 들어섰다. 천장이 높게 지어져서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수한 조명이 지면과 벽을 비추고 있어서 마치 햇빛이 비추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느끼게 했다. 이 근처는 통로의 폭도 넓고, 쇼핑하러 와 있는 사람들이 많아 분위기가 활기찼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는 이트고기로 만든 새로운 햄버거가 팔리고 있었다. 불고기가게 근처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고기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
편의점에서 식료품을 사 들인 갑은, 걸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험악한 얼굴을 한 덩치 큰 남자가 그렇게 있다보니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갑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귀를 기울일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갑은 자신의 험악한 얼굴이 싫었다.
음악에 심취하게 된 것도 이 콤플렉스가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험악한 얼굴이었던 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다른 또래아이들보다 키가 빨리 자랐다. 갑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내면은 외형과 달리 섬세하고 여렸다.
얼굴이 안 보이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은 그가 화가나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를 똑바로 바라볼 때는 그가 등을 돌리고 있을 때 정도였다.
그러나 등을 돌리고 있으면 사람들은 말을 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통이 없다보니 어느새 무서운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붙게 되었다.
그것이 싫어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 갑은, 우연히 접한 음악에 점차 빠지게 되었다.
싫은 일이 자주 일어나는 나날들었지만, 음악을 들은 다음에는 세계가 아름답게 보였다. 그렇게 듣기만 하던 것이었는데, 어느 날에는 자기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는 외관과는 정반대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자기가 아름다워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그의 감수성은 그가 만드는 음악에 영향을 줬다.
아름다운 곡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갑이 목표로 삼은 것은 갑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갑의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리가 필요했다. 갑이 원하는 소리는 스트로베리의 목소리였다.
갑은 스트로베리가 불러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음식인 그녀는 노래 부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주지 않았다.
즐거움을 알아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트는 본능적으로 먹히는 걸 제일 강하게 바라고 있기 때문에, 노래가 제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트와 사람은 가치관이 다른 생물이었다. 그것을 갑은 재차 통감하고 있었다.
갑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 했다. 스트로베리의 화가 다 풀렸기를 바라면서 갑은 문에 열쇠를 꽂았다.
문이 열려 있었다. 열어둔 채로 나왔던 것 같았다.
갑은 현관으로 들어섰다. 거실은 조용했다. 스트로베리는 안쪽에 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갑은 스트로베리를 불렀다.
“스트로베리?”
몇 초의 시간이 흘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갑은 거실로 들어섰다. 스트로베리를 불렀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방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스트로베리가 없어졌다.
갑은 집을 나오기 전에 보였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했다. 어쩌면, 마음대로 밖으로 나갔을 지도 몰랐다.
갑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하는 길이 미로처럼 엉켜있기 때문에 한 번 헤매게 되면 혼자서 갑의 집으로 돌아오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동쪽 지구라도 길은 꽤 복잡했다. 그렇게 헤매다가 길이 더 복잡한 북쪽 지구에라도 간다면……. 갑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이곳저곳을 내달리면서 스트로베리를 찾았다. 평소부터 운동량이 적었기 때문에 금방 호흡이 가빠왔다. 어디로 간 것일까. 스트로베리가 이 주변에서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딘가로 간다면 큰 길을 따라 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곳은 위험했다. 스트로베리의 향기는 상당히 독특했다. 누군가가 식욕이 생기는 걸 참지 못하고 먹어버릴 수도 있었다. 불안이 더해갔다.
갑은 지하 거리를 돌아다녔다. 필사적이었다. 갑의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문득, 스트로베리의 향기가 얼굴을 스쳤다.
향기를 더듬어 가보니 스위트 이트 가게가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안은 자리가 꽉 차 있었다.
가게의 앞의 진열장에는 귀엽게 반죽된 쇼트케이크형의 고기가 줄지어 놓여있었다. 스트로베리 맛, 오렌지 맛, 초콜릿 맛…….
갑은, 이것이 이트의 행복인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먹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트가 생물인 것은 변함없었다. 갑은 어쩐지 그런 것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갑은 그 자리를 떠났다.
혹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갑은 북쪽 지구로 향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거리를 내달렸다. 갑이 가고 있는 곳은 이트 바였다. 스트로베리는 가게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트 바는 북쪽 지구의 아래쪽 외각에 있었다. 많이 위험한 곳이었다. 좁은 골목도 많고, 전구가 켜지지 않거나 아예 전구가 없는 곳도 있었다.
이트 바로 가던 도중, 스트로베리의 향기를 맡게 된 것은 요행이었다. 이런 곳에 스위트 이트 가게가 있을 리 없었다. 갑은 그 향기를 더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모퉁이를 여러 차례 돌면서 미로를 헤매었다.
그리고 어슴푸레한 통로의 끝에서 몸집이 작은 소녀의 뒷모습을 찾아냈다. 갑은 달리면서 외쳤다.
“스트로베리!”
소녀가 뒤돌아봤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가게에 돌아가려고 생각했었어요.”
스트로베리는 반쯤 열려 있는 상태였던 문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려. 돌아가자, 스트로베리.”
스트로베리를 따라 갑도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갑이 스트로베리의 손목을 잡지만, 스트로베리는 갑의 손을 떨쳐냈다.
“싫어요, 갑씨는 저를 먹어 주지 않는 걸요.”
스트로베리는 갑을 노려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에 다라 갑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가른 곳이었다. 조금 큰 직방형의 방이었는데, 예전에 가게나 창고로 썼던 장소 같았다.
“막다른 곳…….”
스트로베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게는 여기가 아니야. 여기는 네가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돌아가자.”
스트로베리는 뚱한 표정으로 아무 말 하지 않고 뒤돌아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손잡이를 돌렸지만, 끝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어?”
스트로베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힘을 주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몇 차례 돌렸지만 손잡이가 끝까지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왜 그래?”
갑이 그렇게 물었다.
스트로베리로부터 사정을 듣고 그도 계속 손잡이를 돌렸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물쇠가 이상하게 되어 있던 것인지 완전히 잠겨버렸다.
작은 방에 두 명은 갇혀 버렸다.
달리 나갈 수 있는 곳은 없는지 찾기 위해 갑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직방형의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켜지게 되어 있는 낡은 형광등이 두 명을 비추고 있다.
“나갈 수 없어요?”
“괜찮아, 열 수 있을 거야.”
갑은 그렇게 말했지만, 달리 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몸으로 부딪쳐 봤지만 열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당분간 연락이 없으면 회사에서 찾을 거야.”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갑은 누군가 자기들을 찾아내도록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다가 힘이 빠져서 갑은 손을 멈추었다. 방은 무음 상태가 되었다.
문을 두드리는 게 헛수가가 아닐까 하고 갑은 생각했다. 이곳은 사람이 많은 지역에서 떨어진 곳이었다. 이 방 근처에는 사람이 살지도 않았고, 이 주변을 사람이 지나다니는 일도 적을 것이다.
“아, 휴대폰!”
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휴대폰은 없었다. 달리고 있을 때 떨어뜨린 것 같았다.
7
갇히고 나서 수 시간이 경과했다. 두 명은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문을 계속 두드리다 보니 손에 피멍이 들었다.
지쳐서 쉬고 있던 갑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갑씨.”
스트로베리는 갑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속눈썹을 내리깐 채 무릎을 안고 있었다. 루비 같은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너한테는 잘못한 게 없어.”
갑은 입가를 오른손으로 누르면서 그렇게 말했다.
“……갑씨?”
스트로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갑을 부르며,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무릎걸음으로 갑에게 다가갔다.
갑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스트로베리가 말했다.
“저기, 배고프시면 저를 드세요.”
“안 먹을 거야. 넌 돌아가서 노래를 불러줘야 하니까.”
“전 먹어 주는 게 좋아요. 노래도 좋아하지만, 먹어 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아요.”
“그렇게 먹히는 게 좋은 거야? 자신이 없어지는데도?”
“네, 먹어주는 게 좋아요. 그것 때문에 태어난 거니까요.”
“먹히는 게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요. 먹어주지 않은 채로 의미도 없이 죽어버리는 게 무서워요.”
갑은, 스트로베리의 루비처럼 붉은 홍채를 응시했다. 스트로베리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지치면 쉬고, 그러고나서 또 문을 두드리는 것을 반복했다.
갇히고 나서 하루가 지났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갑은 부모님도 돌아가셨고, 자주 연락하는 친구도 없었다. 프로듀서나 회사 사람이 연락해주지 않으면 그가 없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고 갑은 생각했다.
갑은 문을 두드렸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벽으로 변해서 두 명을 가둔 것 같았다.
갇히고 나서 이틀이 지났다.
갑의 공복은 참을 만 했다. 계속 배고프다 보니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목이 마른 것이었다. 기력이 없어서 갑은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현기증이 잦아들지 않자 갑은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흘째가 되었다.
갑은 누워있는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체력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어쩔 수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갑씨?”
그렇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은 의식을 되찾았다.
매우 달고 맛있을 것 같은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향기가 났다. 갑은 손을 뻗어 그 향기를 내는 물체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갑은 그만두었다. 그의 눈에 스트로베리가 비쳤다.
“스트로베리…….”
쉰 듯한 목소리는 한층 더 거칠어져 있었다.
갑은 참았다.
갑의 옆에 스트로베리가 앉아 있었다.
“갑씨, 참지 말아요. 저를 먹어주세요…….”
갑의 손을 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잡게 했다. 그대로 입가로 가져갔지만, 갑은 완고하게 거부했다.
“싫어. 널 먹을 거라면, 그냥 이대로 아사하는 게 나아…….”
“안 돼요! 저는 이트에요, 음식이니까, 제발 먹어요!”
“스트로베리는 노래를 불러줬으면 하니까…….”
“갑씨가……죽어버리면……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 갑씨가 만든 곡은 대단했는데…….”
스트로베리는 그 손을 강하게 잡았다.
“바보에요! 갑씨는 진짜 바보 같아요!”
갑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자기를 먹어 주지 않기 때문에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니, 이트는 정말로 이상한 생물이다……. 어째서 그렇게 자기희생 정신이 강한건지, 이상해.”
“그게 태어난 이유기 때문이니까요.”
“그러면, 나는, 그 사는 목적을……바꿔주고 싶었어.”
그는 자조 하는 얼굴로 조용히 웃었다.
“나는…….”
“네?”
방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스트로베리의 울 것 같은 얼굴을, 갑은 멍하니 응시했다.
“……나는, 스트로베리가, 좋아, 그러니까 나는, 스트로베리에 없어지면 좋지 않아.”
갑은 힘없는 웃음을 입가에 띠웠다.
“이런 나인데도 곁에 있어 주는 널, 나는 더 이상 이트로 볼 수 없었어.”
건조해지고 약해진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그라져 갔다.
“너는 분명 맛있어. 하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 음악이 한층 더 즐거워졌기 때문에, 네가 먹으라고 말해도, 좀 더, 앞으로 조금은, 뭔가 노래를 불러 달라든가 이유를 붙이고, 먹는 걸 늦추고 있었지. 너는, 먹히는 게 좋았을 거야. 하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 널 먹을 수 없어.”
스트로베리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며,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네 가치관을 바꿀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난 최선을 다해서 너를 지키고 싶어. 이트라는 건 상관없어. 나는 네가 좋아.”
스러질 것 같은 목소리는, 강력함을 되찾고 있었다.
“스트로베리, 노래 부르는 것은, 살아가는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게 고개를 젓고 스트로베리는 중얼거렸다.
“저는……, 저는…….”
투명하고 섬세한 그녀의 목소리는 금이 생긴 듯 떨리고 있었다.
“……역시 먹어주면 좋아요.”
갑은 외로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마음은 닿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지만, 스트로베리의 말에는 다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먹고 싶은데 참는 것은 대단한 일이겠지, 라고 생각해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갑씨는 무척 노력했지요? 그래도 저는 갑씨가 절 먹어 주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제가 이트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절 먹으라고 강요할지도 몰라요.”
갑은 스트로베리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미소 지었다.
“그래도, 나는 절대 먹지 않을 거야.”
스트로베리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참을 수 있을까요?”
좁은 방안에서, 스트로베리는 갑의 손을 잡은 채로, 그의 얼굴을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이 들여다보았다.
갑은 반쯤 열려 있는 상태였던 눈을 힘없이 닫았다.
스트로베리도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겠다는 듯 눈감았다.
8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갑은 수색대에게 구조되었다.
회사 사람이 신고해서 찾아다녔다고 수색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를 회사에서 방치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갑은 살아났다.
“저기…….”
갑은 근처에 있던 여성 간호사에 물어 봤다.
“저랑 함께 여자 아이도 오지 않았나요?”
간호사는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오지 않았습니다만.”
갑은 며칠 간 물을 못 마셨고 영양도 부족했었지만 며칠 입원하고 나자 개운해졌다.
퇴원하는 날이 왔다.
갑은 입원하고 있는 동안 쭉 스트로베리를 걱정했다.
집에 도착한 후, 갑은 혹시나 해서 스트로베리를 불러보았다. 스트로베리는 없었다.
갑이 초조해할 때, 구조대원에게서 받은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갑씨. 괜찮은가?”
휴대폰 화면에는 프로듀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하에 조난자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괴담이 아니었구먼.”
웃음을 짓는 그에게 갑은 스트로베리에 대해 물으려고 했다.
“그건 그렇고, 같이 갇혀 있던 아이는 누구였나? 섭섭하군, 갑씨랑 잘 알던 사람인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그 귀여운 아가씨랑은 언제 알게 된 거야?”
“그 애,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애 아니었습니까?”
“그래. 그 귀여운 아이 말이야. 아, 혹시 스트로베리? 그 아가씨가 스트로베리인가?”
갑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 애는 어디 있습니까?”
“아, 집에 간 것 같네만.”
갑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이트 바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점원은 사무적으로 말했다.
“고객의 이트는 이쪽에서 맡았습니다. 곧바로 자택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저기, 스트로베리는 괜찮습니까?”
“이쪽에서 맛을 보수했습니다.”
갑은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객님.”
점원은 어쩐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서둘러 드셔 주십시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스트로베리가 갑의 집에 도착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밝은 다갈색의 머리카락도, 루비색 눈동자도, 귀여운 얼굴도 모두 변함없었다. 달고 맛있을 것 같은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의 향기가 방안 가득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스트로베리색 튜닉을 입은 스트로베리는 갑에 미소 지었다.
“스트로베리.”
갑은 험악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스트로베리입니다. 아무쪼록 드셔 주세요……, 랄까요.”
스트로베리는 튜닉의 옷자락을 집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목조관악기 같은 투명한 소리로 웃었다.
그 날, 갑은 곧바로 스트로베리의 신곡 제작에 착수했다.
제목은 Sweet Magic. 첫 곡과는 달리 경쾌한 곡이었지만 이 곡도 스트로베리의 목소리와 잘 어울렸다.
스트로베리의 두 번째 곡도 인기를 얻었다. 음원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차트 상위에 올랐다.
“다음의 곡도 생각하고 있어.”
갑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스트로베리에게 이야기했다. 스트로베리는 그것을 미소 지으면서 듣고, 자기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기타를 치면서 음을 기록하는 갑에게 스트로베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갑씨.”
“응? 뭐라고 말했어?”
스트로베리는 고개를 저었다.
9
아침, 갑이 눈을 뜨면 언제나 먼저 일어나 있는 스트로베리가 보이지 않았다.
“드문 일이네.”
갑은 스트로베리의 방을 찾아갔다.
“스트로베리?”
작업실에도 들어갔다. 주방도 들여다봤다. 없었다. 어느 방에도 없었다.
“또 밖에 나갔나? 대체 왜…….”
갑이 현관으로 갔다. 그 문에, 갈색 젤리 같은 덩어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뭐지?”
덩어리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상온에서 녹아버린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같은 냄새였다.
갑은 이트 바에 연락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생 이트는 서둘러 드셔야 하는 겁니다.”
점원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생 이트는 매우 섬세한 것입니다. 빨리 먹지 않으면 녹아내립니다.”
“그런…….”
그런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갑은 그것을 파악했다.
“반드시 빨리 드시라고 전했습니다만.”
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생 이트에는 그런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트를 파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이트를 빨리 먹고 또 이트를 사길 바랄 것이다. 그렇기에 파는 사람들로서는, 이트를 사간 사람이 몇 주 동안이건 몇 달 동안이건 이트를 조금씩 아껴 먹으면서 이트가 재생하기를 기다린다던가 하면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일정기간 놔두면 녹아내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갑의 머리 속을 내달렸다.
“죄송합니다만, 녹아내린 건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네.”
갑은 통화를 끊었다. 실상이 어떻건 간에 스트로베리가 없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끝난 일이었다.
먹히지 않으면 자기가 녹는다는 걸 스트로베리는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갑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녹아내리는 것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먹히는 것에는 너무나 큰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갑은 자신의 선택을 바꾸고 싶었다. 이렇게 될 거라면 차라리 먹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갑의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쥐고 있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스트로베리…….”
어디엔가 스트로베리가 있지 않을까, 방문을 열면 어쩌면 기적처럼 스트로베리가 그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갑은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다. 발견될 리가 없었다.
갑은 작업실로 들어가, 작업용 PC로 향했다. 스트로베리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듣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갑은 녹음 데이터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 낯선 음성파일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파일명은 갑씨에게 from 스트로베리
갑은 스트로베리라는 글자를 본 순간 숨이 멎는 듯 했다.
마음대로 손대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갑은 파일을 켰다. 일자를 보니 어젯밤에 녹음한 것이었다.
갑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파일을 재생했다.
당분간 무음 상태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녹음이 되는지 시험하는 듯 몇 번인가 아― 가 계속 나오고 나서야 목소리는 말하기 시작했다.
“음, 녹음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목조관악기 같은 섬세하고 투명한 목소리, 갑은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른 누군가와 착각하는 일도 없었다. 계속 찾아오다가 얼마 전에야 마침내 만나게 된 목소리인 것이다. 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스트로베리의 목소리였다.
“녹음되고 있어.”
갑이 대답했다.
“음, 갑씨가 먼저 자고 있기에 그냥 손대버렸습니다.”
“손대지 말라고 말했는데…….”
갑은 화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괴로워하고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녹음이란 거, 제가 꼭 해보고 싶었어요. 음,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음-.”
잠시 공백이 있은 후 말이 이어졌다.
“저는 지금도 아무래도 제가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게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단한 일이지요?”
스트로베리의 목소리는 다시 중단되었다.
이게 끝인가, 그런 생각에 고개를 숙인 갑의 귀에, 기습으로 스트로베리의 목소리가 닿았다.
“저, 갑씨가 먹어 주지 않아서 좋았어요.”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스트로베리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전 곧 끝인가 봐요. 모르셨죠? 제가 녹아내린다는 거. 갑씨한테 흉측한 모습은 보이기 싫으니까, 전 떠날게요. ……아니, 그전에 한 곡만 불러도 될까요? ……부를게요.”
그리고 스트로베리는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없는, 투명하고 섬세한 그 목소리는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매우 즐거운 듯 하고, 어딘가 외로운 것 같은.
갑은 눈을 감고 그 노래를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리피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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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생 소설이므로, 서둘러 드셔 주십시오. 하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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