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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강」

  • 작성일 2008-06-09
  • 조회수 5,779





?? 강

???????????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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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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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 황인숙: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 시집『슬픔이 나를 깨운다』『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자명한 산책』『리스본行 야간열차』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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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송- 방주원: 락밴드 <카피머신> bassist. <생방송 임성훈의 오천만 송이 장미>등에 출연.

투정이나 항변조차 시인의 말에는 리듬이 깃들어 있다는 걸 느끼셨나요? 이 시를 엮고 있는 다섯 개의 동사를 보세요. ‘―말라, ―말라, ―말하라, ―말하란 말이다, ―말자’로 각각 문장이 끝날 때마다 금지와 명령과 청유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꾸고 있지요. 그리고 ‘―에 대해’가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된다든지 대구적 표현이 다채롭게 변주되면서 ‘말’이 뿜어내는 지긋지긋한 독기가 실감나게 전해지는 듯해요. 우리는 늘 묵묵하게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지만, 역시 마음의 세탁소나 고해소는 강이나 운동장 같은 데가 좋겠어요.

 

2008년 6월 9일.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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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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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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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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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이송주10515

    저는 이 시에서 차가운 어투를 쓰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금지를 하는 듯한 말을 사용한 것이 지긋지긋한 독기가 실감나게 전해집니다. 이 시의 제목을 볼 때 묵묵하게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기에는 사람보다는 강이 더 잘 들어줄 것 같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반복과 대구를 신선하게 사용했다는 점이 저에게 깊은 인상을 줬습니다. 다른 시들보다 더 많이 반복하고 대구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시는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을 차용하여 시를 읽는 동안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에서 지긋지긋함이 정확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시를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8-05-29 14:42:30
    이송주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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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반복과 대구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독기라…. 타인의 시를 읽는 당신의 섬세한 결….

    • 2011-12-08 01:37:0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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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야채사'라는 시가 같이 생각나는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나 좀 알아 주세요'라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나한테 타인은 화석이었음 할 때,시마저도 화석이 될때,나를 살짝 찌른다.강에 가야겠다...

    • 2008-06-12 12:47:2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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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중독되는 것 같아요. 불혹을 넘긴 나이에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란다면 거짓말 같겠지요. 그런데 월요일 목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한번 두번 다시 듣게되요. 그리고 암송이 되요. 좋아하는 영화배우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나의 치매끼를 의심하곤 했는데... 그래요. 마음의 세탁소를 찾게 해 줘서 고마워요.

    • 2008-06-09 19:22:1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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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심정에 딱 맞는 시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낭독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심정, 단숨에 활자를 읽었습니다. 침울, 슬픔, 자명, 야간 과 같은 말들이 끌립니다

    • 2008-06-09 17:02:4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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