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 작성일 200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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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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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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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알 흙이
노랗게 말라 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 들떠 있다
저 밭의 마른 겉흙이
올봄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동안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을
땅속에서 조금씩
잊는 동안
축축한 너를,
캄캄한 너를,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슬픔이라고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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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공손한 손』,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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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 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2002년『문학사상』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시집으로『악어』『공손한 손』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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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송 : 최일화 - 배우. 영화 『우아한 세계』『한반도』, TV 『히트』『패션70s』, 연극 『삼류배우』『서안화차』등에 출연.
고영민의 시에서는 저녁 무렵 밭에서 돌아오는 누렁소의 워낭소리가 들려옵니다. 논에서 놀던 오리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 염소 울음소리, 눅눅한 아궁이에 불 지피는 소리, 쑥국새 우는 소리, 뜸부기 우는 소리, 평상에 놓인 책을 바람이 읽고 가는 소리, 매미소리, 오후의 풍경소리, 쌀이 물먹는 소리…… 우리가 잃어버린 소리들이 그의 시집 속에서 도란도란 살고 있네요. 사람이 내는 소리는 그 소리들과 섞여서 들렸다 안 들렸다 하지요. 사람의 울음은 그 울음들 뒤에 간신히 숨어 있고요. 이른 봄 농부가 산비알 흙에 쟁기를 대기 전, 겨울을 지낸 흙을 향해 건네는 말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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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2.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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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시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모든 농사를 책임져주는 흙, 그리고 갈아엎는 시기인 봄 속에서 화자가 흙에 대해 어떤 감정을 드러낼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속흙을 겨울동안 지켜주고 감싸안아주던 겉흙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그 해의 농사를 직접해주진 않았지만, 속흙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로서 속흙보다도 많은 일을 하였다. 시의 화자는 겉흙을 생각하며 고마움과 슬픔을 표하고 있다. 시 속에서 겉흙은 마치 자식을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보호해주시는 우리의 부모님과 비슷하다는 존재임을 알았다. 겉흙 밑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겉흙이 되봐야 그 슬픔을 알 수 있듯 우리는 아직 겉흙의 감정을 모른다. 이 시의 겉흙을 부모와 동일시 하여 읽어본 후 지금까지 내가 부모님께 했던 짓을 되돌아보았다. 몇 년만 있으면 겉흙이 되는 시점에 그 때 부모님의 감정을 느끼며 후회할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부모님을 위해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흙을 겨울동안 지켜주고 감싸안아주던 겉흙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그 해의 농사를 직접해주진 않았지만, 속흙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로서 속흙보다도 많은 일을 하였다. 시의 화자는 겉흙을 생각하며 고마움과 슬픔을 표하고 있다. 시 속에서 겉흙은 마치 자식을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보호해주시는 우리의 부모님과 비슷하다는 존재임을 알았다. 겉흙 밑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겉흙이 되봐야 그 슬픔을 알 수 있듯 우리는 아직 겉흙의 감정을 모른다. 이 시의 겉흙을 부모와 동일시 하여 읽어본 후 지금까지 내가 부모님께 했던 짓을 되돌아보았다. 몇 년만 있으면 겉흙이 되는 시점에 그 때 부모님의 감정을 느끼며 후회할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부모님을 위해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는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와 이제는 갈아엎어야 할 마른 겉흙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비록 겨울 동안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어 농사를 지을 순 없었지만, 환한 햇빛을 받으며 어쩌면 속흙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던, 그 흙을 화자는 아쉬워하면서도 갈아엎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어릴 적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여러 일들이 떠오릅니다. 비록 그 시절의 나에게는 마음을 딱딱하게 얼어붙게 하고 힘들게 했지만, 내 생각을 더욱 깊게 하고 나를 성장시켜 준, 미우면서도 고마운 시절인 것 같습니다. 조금씩 잊혀 가는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이제는 마음속 한 곧에 묻어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시골의 정겨움이 생각납니다...아궁이에 불 지피는 소리..매미소리..새 우는 소리......옛날에 아빠따라 논밭에 간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시 잘 듣고 갑니다~~
우주의 초록 한자락에 내던져진 푸석푸석해진 황사빛 우리의 몸과 맘,외로움이라고 불러야 하나아픔이라고 불러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