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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이방인」

  • 작성일 2009-04-20
  • 조회수 9,765




 

      이방인
                김영승

 

버스비 900원
버스 타서 죄송하다고
百拜謝罪하며 내는 돈

 

화장실 100원
오줌 눠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아들 고등학교 신입생 등록금 사십오만 구천오백팔십 원
학교 다녀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상갓집 부조금 3만 원
살아 있어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공중전화 100원
말 전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돼지고기 한 斤 8,000원
처먹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서러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것이다
恨이 있기 때문에

 

含笑入地할 수
있는 것이다             



● 출처 :『화창』, 세계사, 2008
 

 

● 詩, 낭송 : 김영승 - 1958년 인천에서 태어나 1986년 『세계의문학』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반성』,『취객의 꿈』,『아름다운 폐인』,『몸 하나의 사랑』,『권태』,『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화창』등이 있으며,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인 뫼르소는 바닷가에서 권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이유를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서”라고 설명하지요. 그런데 이 시에 등장하는 이방인은 폭력은커녕 세상을 향해 고개 숙이고 끊임없이 대가를 치르고 있군요. 시인은 힘없고 평범한 서민들이야말로 이방인이 되어버린 세상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러나 “서러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에서는 무욕(無慾)의 정신만이 지닐 수 있는 당당함을 읽게 되기도 합니다. 살아있음 자체가 알 수 없는 치욕이라고 느낀다는 점에서는 뫼르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2009. 4. 20.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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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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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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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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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2건

  • 표기태 10219

    문학작품에 잘 접한 경험이 없어서 이 시를 이해하기 조금 어려웠는데 돈을 사용할 때 마다 '백배사죄(百拜謝罪)하며 내는 돈' 하며 반복되는 문장으로 돈을 사용하는것에 계속 용서를 계속 비는것은 살면서 지은 죄를 죄다 모으면 그 서러움은 한이 될만하고 그 서러움에 항상 백배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 함소입지(含笑入地) 할수 있는 태도를 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돈은 이제 인간에게 없어선 안될 삶의 도구인데 이에 끌려다니는 인간의 삶을 비판을 한것 같은데 이 내용에 동감을 한다.

    • 2018-05-31 09:07:44
    표기태 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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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정말 마음에 드는 시예요. 살면서 돈의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백배사죄하는 모습이 나타나있는 풍자로 읽히기도 하고, (그러니까 돈이 삶의 주인이고, 사람은 삶의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실태를 고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치욕적인 삶을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꾸짖음 같기도 합니다!! 감탄!!!

    • 2011-09-28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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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숨쉬고 있음이 온통 백배사죄를 드려야 한다네요.그럴까요?살아있음이 고뇌와 동행해야하는 것임을 알지만, 교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있음이 죽은자들에게는 미안하니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참되고,거짓없는 삶,배려하는 마음,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 2009-12-21 14: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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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잘안봐서 잘은모르지만 감명깊네요

    • 2009-08-31 22: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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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방인]라는 세글자에 걸맞는 내용을 다룬 시인것 같아요~~현대인이 돈~돈~돈~에 이끌려 다니는 모습을 연상케 만드는것 같아요~~아름다움이 있는 그런사회가 빨리 왔으면~~~

    • 2009-08-31 19: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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